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페루의 슈바이처  문장호

  가난한 인디오의 만병통치약

 

 

 

 

 

 불가사의한 잉카문명을 꽃피웠던 나라, 페루(Peru).  아름다운 절경에 잉카인의 슬픔을 담았던 마추픽추.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잉카제국의 후예 인디오들은 옛 제국의 영화는 뒤로하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여 까야오 지역과 같은 빈민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1992년 페루 대통령 후지모리 방한을 기념하기 위해 KOICA(한국국제협력단)에서 총 15개의 병원을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까야오의 제1병원을 시작으로 꼬마스 제2병원, 아마존지역의 제3병원 그리고 안데스지역의 제4병원 등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세운 까야오병원은 저렴한 비용으로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서 이른 새벽부터 환자들은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에서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의료혜택이 있을 리 만무하였으며, 있다고 해도 이들의 생활 수준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곳들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까야오병원은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곳입니다.

 

 

 

이 병원을 지켰던 의사 문장호.

 

그는 1955년에 태어나,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마쳤습니다. 비뇨기과 전문의였던 그는 한국에서 유능한 의사로 남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그는 KOICA의 정부파견의사로 가족과 함께 1993년 페루 리마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안정된 서울생활을 정리할 때는 쉽지 않았습니다. 가족들과 2년을 약속하고 도착한 곳 페루. 그 때 페루는 경제위기에다 좌익게릴라들 때문에 걸핏하면 전기가 끊기는 등 어수선한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의사인 그도 결코 안전할 수 없었던 곳에서의 생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밤새 울고 투정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그가 쉽게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의사로서 목표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 페루 의료원에서 비뇨기과와 내과를 담당하여 외래환자 진료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비뇨기과 전문의지만 외과수술이나 소아과 진료를 할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일단 그를 찾아온 환자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습니다. 파견 기간 동안 5만 명에 가까운 환자를 진료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결핵환자 전담 진료 병동 건립 및 리마시 외곽 빈민 부락에 대한 순회 진료사업 등 열 개가 넘는 의료단 소규모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한국, 페루 의료협력사업 현장 관리 및 지역 전문가의 역할을 하였으며, 민간 외교사절로서 국위 선양 및 양국간 우호관계 증진에 기여하였습니다.

 

 까야오병원은 교민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곳이었습니다.

 언어의 장벽 앞에 병을 키우기 일쑤인 이민 1세대들. 그들에게 그는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전화상담을 받으며 멀리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반갑게 맞았습니다. 늦은 밤 식탁을 수술대로 내줘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언제나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그는 그들의 주치의임을 자처하였습니다.


1994년 11월. 그가 KOICA 총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입니다.


   정주년 총재님께.


  지난 봄 새로 부임하시면서 보내주신 격려 편지에 답신도 못 드린 채, 이번에 새로이 공로패와 함께 보내주신 서신을 읽게

  되니 송구스러운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페루의 제가 근무하는 병원은 잘 알고 계시겠지만, 후지모리 대통령의 한국방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우리 KOICA에서 건설

  하여 이곳 정부에 기증한 병원으로서, 파견의사로서는 처음으로 우리 손에 의해 건설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병원운영도 완전히 궤도에 올라, 금년 7월 이미 개원 1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히 치렀으며, 현재 치과의사와 임상병리

  의사를 포함하여 의사 6명 외에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원 등 20여 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으며, 월 진료인원 2,000~2,500

  명, 연인원 3만 명에 육박하는 진료실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페루의료센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현지주민들 뿐만 아니

  라, 이 지역의 한국인 선원들 그리고 교민들까지도 멀리서 찾아와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까야오보건청 산하의 일차 진료기관이기 때문에 입원과 수술이 안되는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처음에는 일종의 텃세라고도 할 수 있는 현지 의사들의 견제도 받았으며, 우리가 지어준 병원인데도

  불구하고, 운영권이 이미 이곳 보건청 소속이기 때문에, 개인진료실을 내주지를 않아 애로가 많았으나, 대사관의 협조와

 또한 어떠한 이해관계 없이 단지 도움을 주기 위하여 파견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결과, 출근 4개월이 지나서야

  개인진료실을 확보했습니다.

 

   이제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저에게 진료하기 위해 병원문도 열기 전에 아침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는 안면 있는 환자들의

 인사를 받을 때는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게다가 Project의 일환으로 지원해주신 X-Ray 장비나, 임상병리검사장비 덕분에

 일차 진료기관으로서는 이 지역의 다른 보건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이 또한 흐뭇합니다.

 

 

 주로 까야오와 꼬마스병원에서 진료를 하던 그는 페루생활에 적응이 되면서 누구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페루의 사회구조는 양극화가 심하여, 원주민이나 빈민계층과 일부 부유층에 대한 의료시설 및 혜택의 차이가 매우 심하였습니다.  빈민계층을 위한 보건소를 포함한 공공의료기관이나 사회보험병원들은 시설도 빈약하고 환자들이 많아 끝없이 기다려야 했으며, 의료진들 역시 박봉에 따른 의욕감소와 무성의로 일관하였습니다.

 

 반면에 부유층을 상대로 하는 시립병원들은 진료수준이나 시설도 미국이나 유럽 못지않았으며, 따라서 진료비 자체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한번 진료만 받는데 90달러, 정상 분만비용이 2,500달러, 또는 단순한 맹장수술이 3,000달러 등 상식선에서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빈민촌의 순회 진료였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선교사의 도움으로 히까마르까를 포함한 몇 개 빈민지역의 진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전혀 의료혜택이 없고 철저하게 소외되어 사는 사람들. 가끔 진료를 가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던 그는 오히려 작은 일이 더욱더 그들에게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들은 감사의 표시로 자신들의 땅을 제공하며 상주진료소를 세워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1999년 그는 리마시 변두리 비타르테지역 빈민가에 작은 병원을 지었습니다. 사재를 털고 현지 동포들의 도움을 조금씩 모았습니다.

준공테이프를 끊던 날, 그는 부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아내의 말없는 격려가 없었다면 그만두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타르테 빈민촌에 병원을 짓고 나서 그는 더 바빠졌습니다. 까야오 제1의료센터에서 정상근무를 마치고 1주일에 두 번씩 오후에 이 곳 병원으로와 무료진료를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페루 친구들을 여러 명 사귀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한 현지 자원봉사자들입니다. 그들은 교대로 시간을 내어 비타르테병원을 지켰습니다.

 

 그는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꼬 마스지역 보건소 최초로 정관수술을 시행하여 모자보건사업에 기여하였습니다. 또  그는 항상 빈민촌의 부족한 병원시설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조만간 다시 일을 벌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습니다.

 

 

 1993년. 안정된 서울생활을 접고, 가족들과 2년을 약속하고 도착한 곳 페루에서 의사 문장호는 10년간의 정부파견의사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지만, 귀국하지 않았습니다.

 

2009년 5월.《서울경제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에 따라 대사관 측은 본국에서 아직 타미플루가 도착하지도 않았으며, 예방백신이 아니라는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려


 야만 했다. ‘동포사
회의 주치의’로 불리는 한,멕병원의 문장호 박사도 ‘인플루엔자(H1N1)의 백신은 아직 없다.’고 확인해 주면

서 ‘타미플루는 치료약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의 소식이 반가웠습니다.

지금도 그는 중미 멕시코에서 동포사회와 가난하고 병든 원주민의 주치의로서 사랑의 인술을 펼치고 있을 것입니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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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imal feed mixer 2011.11.22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첨 반갑기는 한데 나이 먹은 사람으로 할줄모라서 못쓰겠네요.
    컬처랜드에 가입하기는했는데 도모지 영 이해가 않가네요.좀 알려주세요.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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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슈바이처  김일경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남아메리카 중부 태평양 연안의 나라. 위대한 잉카제국을 탄생시킨 페루(Peru).

페루는 아메리카 남부에서 유일하게 고대 문화유산을 꽃피웠습니다.

1532년 에스파냐에 정복되었다가 1824년 독립하였습니다. 스페인의 가혹한 폭정에 분노하여 1780년 농민반란을 일으켰던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의 이야기를 주제로,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가 된다던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라는 가요는 안데스인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엉뚱한 내용으로 소개되었지만, 페루하면 잉카문명보다 이 노래가 먼저 떠오릅니다.

지금도 서울의 어느 지하철 공간을 총총 걸음하다 보면 인디오 전통복장인 숄과 판초를 입은 페루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이 연주하는 안데스 전통악기 께나와 싼뽀니아의 경쾌하면서도 비장한 음률에 삭막한 도시인의 심사가 시나브로 촉촉해집니다.

 

1935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환갑의 나이로 1995년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부파견의사로 페루로 간 한국인이 있습니다. 

 

치과의사 김일경. 

 그는 5년간 꼬모스 제2 의료센터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996년 KOICA에 보냈던 편지의 일부분입니다.

  총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페루 리마 꼬모스 제2병원에 근무하는 정부파견 치과의사 김일경입니다.

 

   세계 많은 나라에 지원하시느라고 노고가 많을 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  간혹 이곳 페루에 대하여 사정을 잘 파악하시겠지만, 저로서는 근무하면서 느낀 점을 총재님께 말씀드리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리마에서 북쪽을 향하여 약 1시간정도 벗어나면 시내와는 전혀 달리한 빈민촌이 눈에 들어오고, 국도라고 하지만 소규모 시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서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도로입니다.

  이곳 제2병원 꼬모스는 신흥도시로서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하여 다소 위험하지만 근무처에 들어서면 우리 대한민국 정부의 고마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병원건물이 있고 모든 장비, 기계 등 KOICA에서 보내주신 시설에 제 자신도 놀랄 정도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고 이곳 원주민들은 저만 보면 감사한마음을 몸짓으로 표시하곤 합니다.

 

  이곳 페루 리마에는 일 년에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아 나무 잎새들은 먼지로 더더기를 입은 것처럼 모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이슬비가 내리는데 반가워서 밖으로 나가 비를 맞고자 하면 얼굴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은 콕콕 찌르는 듯한 매서운 감이 있어서 원주민들에게 물으면 잉카문명의 종식의 눈물비라고들 하여 더더욱 마음 쓸쓸하게 합니다. 


 

 

 

 

 

 

 

 

 

 

 

 

 

 

 

 

그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페루의 아픔을 치료하였습니다.

 

 연평균 치과진료인원이 약 4,200여 명이었으며 지역주민 구강위생 프로그램을 실시하였고, 현지 의료진에 대한 선진치과의료 기술을 전수하였으며, 한국과 페루 의료협력사업의 현장관리 및 중간역할 그리고 국위선양 및 민간 외교사절로서의 양국간 관계증진에 기여하였습니다.


 사회사업활동에 참여하여 사회봉사와 격지 및 오지주민 보건상태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한 NGO단체인 HAPECO(Humanitario Amistad Peru y Corea)의 창립멤버였고, 그 활동의 결실로서 설립된 리마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진 지카마르카 자선병원에서 원주민 의료진과 협조하여 진료단을 구성, 순번제로 주 2회 진료봉사를 수행하였습니다.

 

 마침내 꼬모스 관내 30여 개 보건소 중에서 수년째 진료실적 1위를 고수하여 페루 보건청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오지의 주민을 찾아 갈 때는 따로 진료소가 없어서 타고 간 소형트럭 짐 칸에서 환자를 치료하였습니다. 번듯한 진료실은 그에게 사치였습니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꼬모스의 한 주민은 갓 태어난 자신의 딸의 이름을 이 지역에 병원을 지어준 한국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덕실’이라는 한국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하였습니다.

 이것을 기념하여 병원에 초대하여 유모차 등 선물을 전달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이 병원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지으려고 대사관에 이름에 대해 문의하는 등 한동안 한국 붐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한국과 페루 사이의 비자 면제 협정으로 한국인 범법자들의 무분별한 유입에 따른 사고와 그동안 페루에 진출했던 거친 한국선원들에게 시달려왔던 주민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결핵 전담 진료실을 조성하였습니다. 전염성이 강한 활동성 결핵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매일 일반 환자 및 감수성이 높은 소아환자들과 함께 같은 건물에서 진료를 받아 감염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98년 소규모 프로젝트 사업비 전액을 별도 진료실 건축에 지원하였습니다.  이후로 결핵환자들은 따로 진료를 받음으로써 일반 환자들의 감염 위험성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매년 크리스마스 파티 및 산타할아버지 행사에는 병원직원들 뿐만 아니라 동포들을 초대하여 병원직원 자녀 및 한인자녀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양국간의 우의를 다졌습니다.

 

 1963년 한국과 국교를 맺은 페루에 남다른 애정이 깊었던 그는 여러 가지 개선점을 제시합니다.

   최초 파견시 현지 언어에 대한 충분한 연수가 필요하고, 장기 근무자의 경우 전문분야에 대한 재교육 및 연수교육의 기회를 부여하고, 국제학회참석 등의 지원이 절실하며, 또한 소외된 환경에서 근무하는 만큼 재충전을 위한 일정시간이 있어야 한다.

 

  특히 KOICA의 지원 사업이나 연수생파견에 대한 추천에 있어서 수혜기관을 페루정부에 일임하여 미국이나 일본 등 기타 선진국의 대량 원조물자에 함께 섞여 우리 측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 혜택을 주기보다는, 이왕이면 정부파견의사단과 관련이 있거나 계속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곳에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지정하여 조치하는 것이 사후관리도 용이하고 원조 효과 및 연수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의료직은 전문직으로서 직접 현지인 환자들을 오랜 기간 접하여 노하우와 언어능력이 축적되었기에 정년에 관계없이 업무수행능력에 의해 근무연장의 허락여부가 평가되었으면 좋겠다 

 

 

 

 

 

 

 

 

 

 

 

 

 




아래와 같은 그의 건의 사항은 보다 구체적입니다.

   KOICA에서 실시하고 있는 의료협력사업이나 무상원조사업은 국제사회에서 지위향상과 함께 우리 의료기자재 및 국산품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기타 선진국의 물량지원에 비하면 원조 규모가 양적으로 열세이다. 따라서 물적 지원만 하는 것보다는 의사, 치과의사, 봉사단원 등 인적자원의 지원을 통해 협력사업의 사후관리 및 원조효과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홍보효과 역시 극대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꼬모스 제2 한국 · 페루 의료센터에는 정부차원에서 건축된 병원 본 건물 외에 1994년 개원당시 한인들의 모금으로 건축된 한인의료진을 위한 별도 진료병동이 유지되고 있다. 또한 이 진료병동에는 KOICA에서 기증형식으로 원조한 치과용 의자(Unit Chair) 및 치과 X-Ray 장비를 비롯한 고가의 각종 치과장비가 설치되어, 지난 5년간 현지의 인근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한인사회에도 양질의 치과진료를 제공하여 많은 호평을 받아왔다.

 단순한 의료협력의 차원을 떠나서 어렵게 마련된 이러한 진료병동, 의료시설 유지관리차원에서도 후임 의료진의 배치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페루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많은 어려움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따라서 이를 위해 가난퇴치, 질병퇴치, 거리아동 돕기 등을 목표로 설립된, 현지의 자생적인 민간단체 또는 NGO(비정부 기구)의 많은 역할이 있다. 이에 대해서 현지 사무소나 공관을 통한 적절한 평가를 통해 지원이 가능하면 좋겠다.

 

  현지 NGO에 대한 지원은 대개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은 의욕들을 가지고 일을 하므로, 사전평가와 사후관리만 잘한다면 소규모 지원으로도 효율적이고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치과 의사 김일경.

평화를 사랑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남들은 개업 일선에서 은퇴 할 나이에 젊은이도 하기 힘든 결정을 하고 페루로 떠난 그에게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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