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세계적인 패션지의 편집장으로 등장하는 미란다(메릴 스트립 분)는 지독한

       일중독자다. 자신의 모든 인생을 일의 성공에 걸었다. 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내한다. 일례로 파리

       패션쇼에 참석하는 중에 세 번째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통고받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일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개인사가 일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언론플레이까지 마다않는다.

 

 

 

 

 

 

일에 매달리는 한국인들

 

정도의 차이야 존재하겠지만 우리 주위에서도 이런 일중독자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엔 일중독을 슈퍼직장인증후군 혹은 과잉적응증후군이라고 한다. 직장에 유능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려하고, 직장이라는 환경에 지나치게 적응을 했다는 의미다. 물론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니 문제가 된다.

 

일중독은 전 세계에 어디서나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요즘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어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들의 40%가 바로 일중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다. 만약 자영업 분야까지 설문대상을 확대하면 이보다는 더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한 가게들은 평일 저녁 9시까지는 영업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영업을 한다. 완전히 소비자 중심이다. 그런데 서구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평일 저녁 6시면 가게들이 문을 닫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닫힌 문을 열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너무나 불편하고 이해가 안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일보다는 자신의 삶과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 때문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

 

도대체 한국인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일에 매여 살까? 사실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끔찍한 반세기를 경험했다.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근면, 성실, 자조”라는 기치의 새마을 운동은 하나의 문화가 될 정도였다. 그 결과 단기간에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루어냈고 결국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치렀으며, 1995년에는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은 강화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좀 쉬어가자’는 분위기가 자리를 잡으려는 순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1997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길거리에 실직자와 구직자들이 넘쳐났다. 채무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가장들의 자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었다.

 

사람들은 고통이 닥치면 자동적으로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IMF라는 끔찍한 고통을 겪으면서는 우리 국민들은 발견한 교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쉬고 놀면 결국 망한다’ 것이 아닐까. 마치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여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한 학생이 긴장을 풀고 본 모의고사에서 꼴등을 하면, 이후로는 마음이 불안해서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되어도 마음대로 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는 2001년 IMF로부터 지원받았던 구제 금융을 모두 상환했지만, 그 이후에도 신용카드 사태니 내수 불황이니 미국발 경제위기니 하면서 아직까지도 어렵다는 소리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사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과 성공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요즘 대학 중에는 ‘취업사관학교’라는 타이틀로 홍보를 하는 곳도 있다. 이런 노골적 홍보가 아니더라도 대학은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소위 돈 안되고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학생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학문의 세계에 빠지기 보다는 입학과 동시에 취업을 걱정하며 스펙 쌓기에 연연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백수니 백조니, 잉여인간이니 하면서 자책을 하고 있다. 이런 힘든 과정을 통해서 겨우 취직에 성공한 사람들은 또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일에 매달린다. 시키는 일은 물론이고, 시키지 않은 일까지 마다않기도 한다. 자신의 삶과 가족, 취미와 여가생활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일과 일, 또 일에만 매달린다.

 

 

 

일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경고한다. 이렇게 일에만 매달리다가는 몸의 질병은 물론, 마음의 질병까지 얻을 수 있다고.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일중독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중독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생활 등을 못하게 됐으며(80.2%), 건강이 나빠졌고(58.8%), 친구나 가족들과 서먹해지거나 멀어졌다(47.3%)고 한다. 그리고 전체 응답자의 2/3가 질병을 얻었다고 했다. 만성 근육통(62.3%)이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이 우울증(51.2%), 위장병(42.0%), 목이나 허리 디스크(24.6%), 탈모증(21.3%)이었다.

 

‘일과 생활의 균형(work-life balance)’이 중요하다. 사실 일에 매달리는 것을 ‘중독’이라고 표현하는 이유 인터넷이나 알코올, 도박중독과 심리적으로는 같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알코올, 도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적절하게 균형 있게 한다면 무엇이 나쁘겠는가? 단지 이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두는 것이 나쁘다. 일이라고 다르겠는가! 물론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열심히’라는 모호한 단어 때문일까? 적절한 한계선을 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삶의 일부분일 뿐인데, 일중독자들은 마치 일이 곧 삶 같다.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일하는 성향이 중독에 가까운지 아니면 삶과 얼마나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바로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처럼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알코올, 도박중독은 본인보다는 가까운 사람들이 불편감을 느낀다. 일중독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서운해 하거나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낀다면,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증거다. 어떤 일중독자들은 “내가 이렇게 일하는 것은 가족을 위해서야”라고 생각하지만 가족이 원하는 것이 당신이라면? 당신이 정말 가족을 위한다면 일을 내려놓고 함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이것이 일과 삶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첫 걸음이다.

 

글 / 강현식 심리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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