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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맞춤형

물이 흐르 듯이…삶도 그리 흘렀으며

 

 

 

 

                

 

 

보이지 않는 것의 공포가 훨씬 큰 법이다. 영화에서도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에 깔리는 스산한 배경음악이 더 소름을 돋운다. 중국 황제가 머물고 있는 열하(熱河)로 향하는 연암 박지원은 어두운 밤에 극한의 공포를 마주한다. 깜깜한 어둠, 그것도 하룻밤에 무려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너는 것은 매순간이 절체절명이다. 어둠 아래 깔린 물, 그 공포스런 흐름의 소리, 말 위라는 불안감…. 그건 분명 공포의 극한조합이다.

 

 

 

스스로를 먼저 채워라

 

 

 

공포는 마음의 평정심이 깨진 상태다. 극도로 불안한 마음이다. 불안은 눈과 귀, 마음이 예민해진 결과다. 그 예민함을 둔화시키면 공포가 가라앉고 평상심으로 마음이 옮겨간다.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연암은 극도의 공포상황에서 ‘명심(冥心)’, 즉 평상심을 찾는다. 그리하니 그 험악한 강물 소리가 조용해졌다. 아니, 물소리는 그 물소리인데, 마음이 잠잠해진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고전인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열린 마음으로 넓은 세상을 보라는 메시지가 담긴 생생한 여행기다. 또한 물에서 깨달은 마음의 이치를 담고 있기에 더욱 뜻이 깊다.  

 

암에게 명심이란 깨달음을 준 물은 삶에 던져주는 함의가 적지않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채움이다. 자신의 낮은 곳을 채운 뒤에 비로소 흘러간다. 스스로도 부족하면서 남의 모자람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은 채우지 않으면서 남의 비어있음을 탓하지 말라는 무언의 교훈을 흘려준다. 천하를 다스리는 출발이 ‘스스로의 마음 닦기’라는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도 맥이 닿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라

 

 

 

물은 꿈이고 변화다. 시냇물에 안주하지 않고 강으로,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간다. 쉬지 않고 흘러서 좀 더 큰 세상을 보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행복도 쌓아두며 향기가 사라진다고 귀띔한다. 그날 구운 빵처럼 하루하루 만들어가는 행복이 더 향기로움을 일깨운다. 그건 게으름에 던지는 일종의 경고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굽어 살핀다’는 말이 있다. 임금이 백성을 굽어살피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굽어살피고, 강자가 약자를 굽어살피면 세상이 따스해진다. 굽어살핀다함은 스스로를 낮추고 마음을 아래로 쏟는 것이다. 또한 굽어살핀다함은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다. 시소는 균형이다. 어른과 아이가 시소를 타면 어른이 아이쪽으로 한 발짝 다가가야 높이가 맞춰진다.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다가가고,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다가가고, 많아 배운자가 덜 배운자에게 다가가야 사회가 조화롭다.

 

모든 건 상대적이다. 부자가 있기에 가난한 자가 있고, 배운 자가 있기에 못 배운 자가 있다. 내 위엔 더 부자가, 아래엔 더 가난한 자가 있다. 그러니 누구나 굽어봐야 할 대상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굽어보고,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굽어봐야 한다. 굽어보는 것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공자의 인(仁)도, 맹자의 덕(德)도 결국 더불어함에 깃든다.

 

 

 

크게 보고 화합하라

 

 

 

물은 화합이다. 만산의 골짜기 물들이 흐르고 흘러 세상이란 넓은 바다에서 꿈을 합한다. 흘러서 하나가 되는 물은 사소로움으로 편을 가르지 말고, 어깨동무를 하고 큰 세상을 함께 보라고 조용히 인간을 꾸짖는다. 노자는 ‘물이 깨져도 다시 붙는 것은 그 성품이 부드럽고 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약돌의 날카로움을 다듬어 주는 것은 결국 물의 부드러움이다.

 

세상의 이치가 꼬이고, 마음의 평정이 깨지면 오늘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보라. 마음이 탁해지는 듯하면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를 들어보라. 유유히 흐르는 그 물이, 청량한 그 소리가 연암만큼의 깨달음은 아닐지라도 의외로 삶을 정화시키고 신선한 에너지를 줄지도 모른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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