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겨울 보양식 - 타락죽(우유죽) |
조선 왕실의 대표적인 보양식으론 전복찜ㆍ타락죽ㆍ붕어찜ㆍ전약 등이 있다. 특히 겨울철 수라상엔 타락(駝酪)죽이 자주 올랐다. 타락은 말린 우유를 뜻한다. 쌀을 곱게 갈아 체에 밭쳐 물을 붓고 된죽을 쑤다가 우유를 넣고 몽우리 없이 풀어 홀홀하게 해 따끈할 정도로만 데운 음식이 타락죽이다. 임금은 식성에 따라 소금이나 꿀을 곁들여 드셨다. 타락죽은 얼핏 보면 이탈리아 음식인 ‘리조또’와 닮았다.
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엔 “궁중의 내의원에서는 시월 삭일부터 정월 보름까지 왕에게 우유락을 진상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우유락이 곧 타락죽이다. 『동의보감』엔 “우유죽을 장복하면 노인에게 가장 좋다”고 기술돼 있다. 우유엔 칼슘이 풍부하고 노인에게 가장 부족한 영양소가 칼슘이란 사실을 우리 선조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듯하다.
왕의 음식을 책임진 수라간은 임금이 고열에 시달리거나 비위를 보(補)할 필요가 있다고 여길 때 식힌 타락죽을 만들어 올렸다. 특히 왕실의 상(喪) 등 고기를 먹을 수 없는 애도기간에 타락죽이 수라에 자주 올랐다. 채식만으론 채우기 힘든 동물성 단백질 등 영양분을 제공하는 음식으로 활용한 것이다.
조선 왕실의 겨울 보양식 - 붕어찜 |
붕어찜도 조선 왕실의 대표 보양식 중 하나다. 붕어찜은 흰죽과 수라상에서 돋보이는 ‘환상의 커플’이었다. 『궁중의궤』엔 “궁중의 대연회 메뉴에 붕어찜이 31차례나 포함됐다”고 기록됐다. 붕어찜 재료론 붕어ㆍ연계(닭)ㆍ꿩ㆍ쇠고기ㆍ표고ㆍ석이버섯 등이 사용됐다. 붕어도 황토를 먹고 자란 황색 붕어의 약효를 최고로 쳤다.
『동의보감』에선 붕어를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어서 위(胃)의 기운을 고르게 하고 오장을 보한다”고 예찬했다. 모든 생선은 불 화(火)의 속성을 지니지만 유독 붕어만은 흙 토(土)에 속하기 때문에 위(胃)의 기운을 고르게 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한다는 것이 음양오행론적 해석이다.
조선의 효종 때 신하들은 채식 주의자였던 중전에게 붕어찜을 권했다. “비위를 보하고 원기를 회복하는 성약(聖藥)”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중전은 양(소의 위)는 고기라며 거부했지만 붕어찜은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 왕실의 겨울 보양식 - 전약과 족편 |
전약과 족편도 겨울에 임금에게 자주 올린 보양식. 동지엔 내의원에서 소의 다리를 고고 여기에 대추고(膏)ㆍ마른 생강(白薑)ㆍ정향(丁香)ㆍ계심(桂心, 계수나무 껍질)ㆍ청밀(淸密, 꿀)ㆍ후추 등을 넣어서 전약을 만든 뒤 왕에게 진상했다.
전약은 차게 굳혀서 먹는 음식이다. 묵보다 더 쫄깃한 맛이 난다. 궁중에선 겨울에 혹한을 이기고 몸을 따뜻하게 보하는 음식으로 여겼다. 보혈ㆍ지혈ㆍ안태(安胎, 임신 유지)를 돕는다고 봤고 악귀를 물리치는 주술적 효능도 함께 기대했다.
‘동물성 묵’으로 통하는 족편(足片)도 즐겼다. 족편은 조리 원리와 조리법이 전약과 닮았다. 쇠머리ㆍ쇠족ㆍ쇠꼬리ㆍ쇠가죽 등에 물을 붓고 장시간 고은 뒤 차게 하여 굳히면 완성된다. 족병(足餠)ㆍ우족교(牛足膠)ㆍ교병(膠餠)이라고도 한다. 조선의 반가에선 겨울에 설음식ㆍ잔치 음식으로도 즐겼다.
전약과 절편은 둘 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부족했던 단백질을 보충하는 음식이었다. 특히 쇠머리ㆍ쇠족엔 단백질의 일종인 콜라겐이 풍부하다. 콜라겐은 피부 건강에 이롭다. 족편을 만들 때 사태고기를 함께 넣어 고면 맛과 영양이 나아질 뿐 아니라 식감이 쫄깃해져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궁중잔치에선 족편을 반듯반듯하게 떡처럼 썰어놓았다. 족병이란 별명을 얻은 것은 그래서다. 우족(牛足)을 써서 만든 족편은 조선 최고의 접대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족편을 달이느라 소를 많이 잡다보니 왕에게 진상하는 것 외엔 소 잡는 것을 금지하라는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글 /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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