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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맞춤형

마음의 형상 얼굴빛

  

 

 

 

 

 

  

 

 

 

 

 

 

얼마 전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섰다. 도심의 퇴근 시간대가 대부분 그렇듯 서울 삼성프라자 앞 버스 정류장도 만만치 않게 줄이 길다. 길게 늘어선 줄은 갈등의 연결선이다. 이번 버스를 타고 서서라도 먼저 집에 갈까, 아니면 다음 버스로 편하게 앉아서 갈까. 한 번 더 기다리면 확실히 앉아서는 갈까. 퇴근길 피로도라도 높아지면 머릿속 셈법은 더 복잡해진다. 나처럼 한 시간쯤 광역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매일 겪는 ‘판단의 고통’이다. 

 

 

 

그날은 편안함을 택했다. 기다리고 기다린 덕에 긴 줄, 앞에서 두 번째. 경험상 일산행 광역버스 1000번만 오면 앉아가는 건 ‘떼 놓은 당상’. 길어지는 줄을 힐끗 보니 마음도 뿌듯(?)했다. 뒷줄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부러울까…. 순간, 한참 뒷줄에서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당당히(?) 걸어나와 내 옆에 선다. 잠깐 고민하다 얼굴에 억지 미소를 머금고 한마디 살짝 던졌다. 물론 교양 있게 작은 목소리로…. “아주머니 거기는 줄이 아닌데요.”

 

“전 어차피 아저씨 뒤에 탈 거예요.” 나름 품격 있게 사인을 보냈는데 돌아온 신호는 교양이 너무 달렸다. 물러서기가 애매했다. 목소리 톤도 조금 높였다. “아주머니, 이건 제 앞뒤의 문제가 아니라 공중질서에 관한 거예요.” 아주머니는 지지 않았다. “제가 아저씨 뒤에만 타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그리 말이 많아요?” 내가 아무리 다변이지만…. 머리가 띵했다. 마침 옆줄에 1000번과 노선이 거의 같은 1200번 버스가 왔다. 아줌마는 낚아채듯 새치기로 그 버스에 올라탔다. 분이 덜 풀려서일까. 그 짧은 순간에도 한 발을 버스에 올려놓고 머리를 반쯤 내 쪽으로 돌리며 한마디 뱉었다. “공중질서는 무슨….”

 

 

 

버스 안에서 마음이 무거웠다. 한 시간 내내 음악에 마음을 맡겼다. 무거움의 중력이 절반쯤 덜어졌다. 삶에 음악이 없다면 마음이 얼마나 더 삭막해질까…. 나머지 절반은 집식구와 ‘분노의 수다’로 떨어냈다. 불편함을 안고 자면 어차피 나만 손해 아닌가. 언제나 앞뒤 별로 안 따지고 남편 말에 공감해주는 든든한 지원군도 옆에 있으니…. 그날 밤은 편히 잤다. 누가 뭐래도 평온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은 육체 건강에도, 정신 건강에도 최고의 보약이다. 그것도 공짜 보약이니….       

  

 

버스 안에서 분노를 삭이다 잠깐 스쳐간 순자의 말이다. ≪순자≫ ‘권학편’은 ‘예의 없이 묻는 자에게는 답하지 말고, 퉁명스럽게 답하는 자에게는 질문하지 말고…, 다투려는 기색의 사람과는 더불어 논쟁을 하지 말라’고 적고 있다. 그 아줌마 얼굴은 기억이 뚜렷하진 않다. 하지만 왠지 얼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것 같은 다투려는 기색이 자꾸만 연상된다.

 

 

 

얼굴빛은 삶의 거울이다. 낯빛은 인생의 많은 것을 담는다. 남자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했다. 물론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남자만이 아니다. 여자 역시 늘어나는 주름만 안타까워 할 게 아니라 스스로의 낯빛을 살펴야 한다. 다투려는 기색이 역력한지, 오만함이 퍼져 있는 건 아닌지, 비굴함이 배어 있는 건 아닌지, 퉁명스러움이 매달려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의 얼굴빛을 살피는 건 스스로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성형의 시대다. 돈으로 아름다움을 만들고, 돈으로 청춘도 조금은 되돌린다. 그걸 탓할 이유야 없다. 스스로를 멋지게 가꾸는 것은 누가 뭐래도 삶의 지혜다. 하지만 ‘얼굴빛 성형’은 돈이 아닌 마음으로 한다. 세상에 모든 걸 갖춘 사람은 없다. 누구는 지식이 달리고, 누구는 돈이 부족하고, 누구는 명예에 갈증을 느낀다. 하지만 기품 있는 얼굴빛은 삶이 행복하다는 방증이다. 마음이 평온히 다스려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마음이 어떤지 궁금하면 주름 대신 스스로의 얼굴빛부터 살펴야 한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