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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건강 지키려고 CT찍다가 되레 건강 해칠라

 

 

 

 

 

 

 

 

의료는 기본적으로 선의의 탈을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환자 치료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도리어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모든 의료행위에는 이익과 함께 반드시 위험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의료행위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물론 위험까지도 환자에게 사전에 알려야 마땅하다.

 

의료행위에 관한 일반론이다. 하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건강검진이나 진단 검사 때 수시로 찍어대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다. 환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 어느새 CT 검사로 방사선에 노출되기 일쑤다.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구현우 교수팀이 2006년 8월∼2011년 7월 5년간 이 병원에서 CT 검사를 3차례 이상 받은 15살 미만 소아 931명(총 5천339건)을 대상으로 분석한 방사선 누적 노출량 결과에서 한 가지 사례를 보자. 

 

드물겠지만, 그렇기에 더 충격적이다. 생후 6개월밖에 안 된 종현(가명)이 이야기다. 종현이는 간에 생긴 종양 때문에 모두 49차례나 CT검사를 받았다. 종현이의 누적 방사선 피폭량을 따져보니, 71.1mSv(밀리시버트)에 달했다. 평생 암 발생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알려진 100mSv에는 미치지 못했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일상생활에서는 연간 1m㏜ 이내의 피폭량을, 진단 목적으로는 5년에 100m㏜이내의 피폭량을 각각 권고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CT 검사의 유익성이 위해성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종현이는 여전히 암과 투병 중이다. 앞으로 더 많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종현이의 누적 방사선 피폭량은 더 늘어날 게 확실하다. 암 고치려다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의료진은 종현이는 CT 검사 대신 방사선 노출이 없는 초음파나 전신 MRI(자기공명영상촬영) 등의 다른 대안을 찾는 게 좋다고 보고 있다. 종현이 사례는 종현이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CT를 찍고 또 찍는 것은 많은 환자가 의료현장에서 겪는 일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CT 재촬영 현황' 자료를 살펴보자. 2011년 1차로 CT를 찍고서 같은 질환으로 한 달(30일) 이내에 다른 의료기관을 방문해 진료를 받은 환자는 50만7천423명이었다. 이 중에서 CT를 다시 촬영한 환자는 9만9천190명이었다. CT 재촬영률이 19.5%에 달했다. 같은 병으로 한 달 새 CT 두 번 찍은 환자 연 10만 명에 이른다는 말이다.

 

불필요한 검사비용을 환자가 부담하는 것도 문제지만, 환자가 불필요한 방사능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CT 재촬영은 병원마다 들쭉날쭉, 제각각이다. 대한영상의학회가 서울·경인지역 의료기관들을 대상으로 CT 재검사 비율을 조사해봤다.

 

그랬더니, 평균 재검사 비율은 13.3%, 기관별로는 11.77∼23.18%였다. 의원급은 원래 검사 화질이 불량해서, 상급종합병원은 추적 검사를 하려고 재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형 장비로 검사하면 중복 촬영 비율(24.1%)도 높았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국내 CT 장비는 오래되고 낡은 게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4년 고가 의료장비 등록 현황' 자료를 보면, 국내 사용 중인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PET(양전자 단층촬영) 등 고가의료장비 4대 중 1대는 10년이 넘은 노후장비였다.

 

CT, MRI, PET 3천345대 중 10년이 넘은 장비와 장비가 너무 오래돼 제조일자를 확인할 수 없는 '제조일자 미상'이 모두 788대(23.6%)나    됐다. 구체적으로 CT는 1천864대 중 479대(25.7%), MRI는 1천275대 중 278대(21.8%), PET는 206대 중 31대(15.1%)가 10년이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장비가 영상품질을 떨어뜨리면서 불필요한 중복촬영을 가져와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건강보험 재정 과다지출 등 의료비 낭비로 이어지는 꼴이다. 비록 외국 연구이긴 하지만, 실제로 지나친 CT 촬영은 국민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

 

 

 

 

2012년 영국에서 CT 검사를 받은 약 18만명을 대상으로 암 위험도를 분석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CT 검사를 많이 받으면 백혈병과 뇌종양이 3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서는 정형외과 병원에서 방사선 진단장비에 장기간 노출된 의사가 그 부작용으로 손가락에 괴사 증상이 발생한 사례가 2014년 대한정형외과학회지에 처음으로 공식 보고되기도 했다. 의료용 방사선 진단장비의 피폭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았다.

 

보건당국도 CT를 포함해 고가 영상 의료장비를 이용한 무분별한 검사를 막으려고 애쓰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불필요한 진료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2014년에 CT 검사를 집중 감시 항목으로 지정해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집중심사를 벌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CT 장치로 찍을 때 방사선 환자 선량을 의무적으로 기록, 관리하도록 하는 시범사업을 경희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9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행했다. 식약처는 이 시범사업의 평가결과를 토대로 이른 시일에 전국 의료기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가 CT촬영 때 환자 선량 기록관리제도를 법제화해 시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한국소비자원·대한핵의학회·대한영상의학회·대한병원협회·대한의사협회와 함께 PET-CT(양전자컴퓨터단층촬영) 수진자 표준 안내문과 의료기관 권고사항을 만들어 보급에 나섰다.

 

PET-CT는 방사선 동위원소로 이뤄진 약물을 몸에 넣고서 방사선 발생량을 측정해 몸속 생화학·대사 변화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검사장비이다. 복지부는 이 권고에서 건강검진기관은 PET-CT 검사에 앞서 방사선 피폭량과 위험 정도 등을 수진자(환자)에게 알려 수진자가 검사에 따른 이득과 위험을 비교해 선택할 수 있게 하도록 했다.

 

이를테면 건강검진용 PET-CT 안내문에 '본원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용 PET-CT 검사를 받으면 평균 몇 밀리시버트(mSv)의 방사선을 받는데, 이는 연간 자연방사선 피폭량(3mSv)의 몇 배입니다. 한꺼번에 100mSv 이상의 방사선을 받으면 '장기간 추적·관찰 시 암 발생이 증가한다고 알려져있습니다'라는 내용을 꼭 넣도록 했다.

 

글 / 연합뉴스 서한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