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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아스퍼거 증후군', 천재들의 질병?…폐기처분된 질병일 뿐

 

 

 

 

 

 

 

미켈란젤로, 찰스 다윈,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예술과 과학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며 세상을 이끌었던 이들 천재의 공통점은 뭘까?

 

비록 좀 오래전 얘기긴 하지만, 정신의학계에서는 이들이 모두 같은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주장을 띄엄띄엄 내놓았다.  대체 어떤 질환이기에 이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같은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진단이 나왔을까? 세계적 위인들이 앓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면서 대중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졌기에 일반인이 그다지 낯설게 않게 느끼는 질환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지금도 간혹 국내외 방송이나 신문, 영화, 드라마, 책 등에 등장하며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질환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이 정신질환은 과연 실체가 있는 걸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질환은 명칭 자체가 사라지고 없다. 정신의학계에서는 이제 더는 이 질환이름을 쓰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2000년대 초 언론을 장식하며 한동안 꽤 주목받던 이 질환은 1944년 오스트리아 의사 한스 아스퍼거가 처음 지어낸 정신장애 현상이었다. 한스 아스퍼거는 자폐증 환자와 비슷한 강박적 행동을 반복하고 다른 사람과의 친교나 의사소통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이 질환의 범주에 넣었다. 다만, 자폐증 환자와는 달리 대부분 정상적인 지능을 지니고 있기에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여기에다 예외적인 재능과 기술까지 겸비한 경우가 많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야말로 모호한 정의다. 정상인과 자폐증 환자의 경계선 상에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인지, 그 뚜렷하게 갈리는 지점이 불분명하기 그지없다. 아무튼,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이름을 달자마자 이 질환은 마치 날개를 단 듯 널리 퍼졌다. 언론들이 앞장섰다. 흥미 위주로 보도하면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알리는데 선전꾼 역할을 자처했다.

 

 

 

 

2003년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자폐증 전문가들의 주장을 인용해 천재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턴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아스퍼거 증후군의 전형적 증상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 과학전문지에 따르면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면밀하게 살펴보니, 뉴턴은 남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일에 몰두할 때는 종종 먹는 것조차 잊었다. 몇 안 되는 친구에게는 무심하거나 거칠게 대했다. 아인슈타인도 어린 시절 외톨박이였다. 7살 때까지 몇 마디의 말을 이유없이 반복하는 장애 증상을 보였다. 전형적인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의심할 만한 조짐을 뚜렷하게 나타냈다.

 

르네상스시대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도 아스퍼거 증후군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았다. 영국 의학전문지 저널 오브 메디컬 바이오그래피는 2004년 6월 정신의학 전문의의 말을 인용해 미켈란젤로가 사회적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미켈란젤로는 괴팍하고 애정이 없었다. 자신만의 현실에 사로잡혀 일에만 몰두하고 고립된 생활을 했다. 관심사는 매우 제한돼 있었다. 다른 사람과 사귀는데도 서툴렀다. 미켈란젤로의 부친과 조부, 형제 중의 한 명도 모두 자폐 성향을 보였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영국의 과학자 찰스 다윈도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았을 것이란 주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2009년 2월 정신의학 교수의 주장을 토대로 다윈의 독창성이 자폐증의 산물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일간지에 따르면 1809년 2월 12일 태어난 다윈은 세밀한 부분까지 과도하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었지만, 외톨이처럼 어린 시절을 보내는 등 사회적 상호작용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했고, 매일 같은 길을 혼자 걸었다. 곤충과 조개껍질, 기계류 등을 모으는 수집광이었다.

 

 

 

 

이처럼 지능은 높은데 대인관계를 잘 못하는 특징을 가진 사람들에게 종종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이 내려진다. 이에 대해 일본의 의학 전문 칼럼니스트 무로이 잇신은 아스퍼거 증후군은 약이나 검사와 같은 의료행위로 이익을 얻는 의료 관계자들이 만들어낸 질환의 하나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실제로 아스퍼거 증후군은 대체 어떤 병인지 불분명하다. 기준도 애매하다.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진단받은 사람들도 특징이 제각각이다.

 

이런 혼란을 인정해서인지, 미국정신의학회(APA)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기준에서 삭제하고 다른 질환으로 통합했다. 201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질환 진단·통계편람 제5판(DSM-5: 5th edition of Dias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을 내면서 아스퍼거 증후군, 자폐증, 소아기 붕괴성장애(CDD), 전반적 발달장애(PDD) 등 4가지 형태의 정신장애를 '자폐스펙트럼장애'(ASD)라는 하나의 커다란 범주에 집어넣었다. 

 

이에 따라 증상이 심하지 않은 형태의 자폐증으로 분류되던 아스퍼거 증후군은 이제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APA의 정신질환 진단·통계편람은 전 세계 정신질환전문의들이 기본적인 지침서로 받아들이는 세계정신의학계의 '바이블'로 일컬어지고 있다.


글 / 연합뉴스기자 서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