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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잘 속는 사람의 심리

 

 

 

 

 

 

 

# 1. 오씨(60세, 여성)는 어느날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란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한 그 사람은 오씨 명의의 H은행 계좌의 개인정보가 도용당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자칫하다가는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갈 수 있다며, 지금 바로 해당 계좌의 돈을 경찰청의 계좌로 송금해, 돈을 보호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 씨는 경찰이 자신이 돈을 보호해 준다는 소리에 의심하지 않고 상대가 불러주는 계좌로 입금을 했다.
 
# 2. 박씨(35세, 남성)는 친구로 부터 “모바일 돌잔치 초대장을 보내드렸습니다.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란 내용과 함께 인터넷 주소(URL)가 포함된 문자를 받았다. 평소 잘 연락하고 지내지는 않았지만 친구의 문자를 외면할 수 없어 날짜라도 확인할 겸 링크를 클릭했다. 연결된 인터넷 창은 오류가 있는 것 같았고, 박 씨는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바쁜 일상으로 금세 잊었다. 하지만 그 순간 악성코드가 박씨의 핸드폰에 설치되었고, 중요한 금융정보가 빠져나가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사기를 치다’란 말을 들으면 기분이 불쾌하고 경각심이 들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이 사기를 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면, 분을 삭이지 못해 의절하기까지 했다. ‘사기꾼 같은 놈’이란 표현은 욕중의 욕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보이스 피싱(전화), 스미싱(문자)을 이용한 온갖 전자 금융사기가 판치는 세상에서 살다 보니, 걸리지만 않으면 사기 치는 일이 용인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보이스 피싱이나 스미싱을 경험하더라도 이제 화가 나기 보다 “이 정도 가지고 나를 속여? 어림도 없지!”라며 마치 게임에서 이긴 것 마냥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사기가 일상화된 지금, 곳곳이 지뢰밭인 형국이다.

 

 

 

 

보이스 피싱과 스미싱으로 남의 지갑을 노리는 사기꾼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전략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권위’다. 자신의 소속을 경찰이나 검찰, 법원을 비롯해 금융 기관이라고 밝히면서 직간접적으로 개인정보나 송금을 요구한다. 이런 조직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상당한 권위와 권력의 상징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민의 권리에 대한 교육보다 권위와 권력에 대한 순종 교육을 받으며 자란이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그러하기에 이들을 믿고 따르는 일은 당연지사.

 

또 다른 전략은 ‘인정’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인의 경조사 초대장 문자나 메신저(채팅)를 통해 지인을 사칭하고, 급히 돈을 보내달라거나 모임에 참석하라는 요청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소위 ‘난’ 사람보다 ‘된’ 사람이 더 인정받을 정도로 ‘관계’가 중요하다. 그런데 초대장을 보내거나 돈을 급히 빌릴 정도라면, 상대의 소식이나 사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바꿔 말하면 평소 연락도 없이 지내던 지인으로 부터 연락이 왔을 때도, 인정 때문에 결국 외면하지 못해 사기꾼에게 당하는 것이다.

 

 

 

 

 

‘권위’와 ‘인정’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속지 않을 텐데……. 보이스 피싱과 스미싱으로 금전적 피해를 입는 경우가 계속 발생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현대인들이 평상시 자동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데 의존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정보를 접하고,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이렇게 바쁘다 보니 마치 기계처럼 미리 정한 대로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의심하거나 잴 필요 없이 바로 반응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많은 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연예인들이 ‘몰래카메라’에 속을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같다. 시청자들은 모든 상황을 알고 TV를 본다. 하지만 매일 촬영을 하는 연예인들이 모든 상황에서 몰래카메라인지 아닌지 의심을 해야 한다면 매번 하는 촬영이 꽤 힘들어진다. 다시 말해 그저 PD와 작가가 지시하는 대로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편이 익숙하고 편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몰래카메라에 번번이 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정보가 필요하다. 워낙 사기 수법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이나 가족을 통해 이런 수법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여유가 필요하다. 보이스 피싱이나 스미싱을 당한 사람들은 당황과 혼란, 그 자체라고 한다. 특히 보이스 피싱의 경우, 당장 무슨 일이라도 날 것처럼 사람을 조급하게 만든다. 사람은 당황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만약 평소에 모든 일을 빠르게, 자동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수법에 더 빠르게 당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보다 현재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다 보면, 갑작스럽게 문자를 통해 경조사를 통보받아야 하는 일은 적어도 없지 않을까.


글 / 심리학 칼럼니스트 강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