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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화개장터-쌍계사 트레킹,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백두산(白頭山)과 지리산(智異山)을 축으로 연결된 백두대간의 무수한 크고작은 산뿌리는 한반도 허리쪽 남북으로 달리다가 서남쪽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거칠음과 부드러움을 모두 끌어안고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세우더니 남도 땅에 비옥(肥沃)한 토지를 남겼다.


섬진강은 지리산이 낳은 알토란같은 젖줄이며 지리산은 섬진강의 어머니요, 섬진강은 지리산의 자식이다. 남도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화개장터를 사이에 두고 섬진강의 봄은 재첩, 벚굴이 먼저 입맛을 들이게 하고 벚꽃으로 눈을 호강시키니 지리산의 봄은 섬진강에서 올라간다.





화사한 봄날에 벚꽃이 만개한 섬진강 주변은 꽂바람에 청류는 더욱 맑고 모래톱은 곱다. 굽이굽이 흐르는 드넓은 섬진강을 끼고도는 도롯가에는 벚꽃이 강바람에  빨간 새악시 연두같은 점을 두르고 화사하게 꽃비처럼 날린다.


평사리 최참판댁 입구에는 봄나물을 파는 할머니와 엿장수가 길가에서 진을 치고 초가집과 기와집이 따로 또같이 잇대어 나그네를 맞이한다. 최참판댁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좌우로는 상가가 형성되어 마치 드라마 세트장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섬진강의 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평사리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별의 별 꽃이 만개하고 새싹이 움튼다.





초가집을 지나 중턱에 오르면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고래등같은 최참판댁이 우람하게 자리하고 그 앞에는 드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멀리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는 평사리는 섬진강의 혜택을 한 몸에 받는 듯 봄 햇살이 들판을 따사롭게 비춘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평사리에는 소설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었으며 조선 후기 생활모습을 담은 초가집, 유물 등 드라마 토지 세트장도 조성되어 있다.


섬진강을 옆에 두고 화개장터는 좁은 공간에서도 오밀조밀 있을거는 다 있다는 듯 은어튀김, 벚꽃빵, 쑥떡과 산수유, 막걸리 등과 향수를 자극하는 개떡 등 각종 먹거리와 산나물, 약초 등이 포진해있고 마침 벚꽃 축제기간이라 좁은 화개장터는 인산인해였다.





[화개장터는 화개면 탑리에 있으며 5일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지리산 맑은 물이 흘러 내려와서 섬진강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 화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이어주는 화개장터는 해방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중 하나로 전국의 어느 시장보다 많은 사람이 붐볐던 곳이다. 지리산 화전민들은 고사리, 더덕, 감자 등을 가지고 와서 팔고, 전라도 구례, 경남 함양 등 내륙지방 사람들은 쌀보리를 가져와 팔았다. 그리고 전국을 떠돌던 보부상들도 이 장을 놓칠세라 생활용품을 가지고 왔으며, 또한 여수, 광양, 남해, 삼천포, 충무, 거제 등지의 사람들은 뱃길을 이용하여 미역, 청각, 고등어 등 수산물을 가득 싣고 와 이 화개장터에서 팔았다.옛날 시골장터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화개장터에는 국밥집, 도토리묵, 재첩국집, 주막, 엿장수, 산나물,녹차 등의 특산품 등이 있으며 특히 우리 전통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장간이 있어 호미, 낫등 전통 농기구와 주방용 칼등을 즉석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훈훈한 인심을 주고받는 만남과 화합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출처 :하동군 홈페이지]





서민이 많이 모여드는 장터 축제에 빠질 수 없는 유랑극단같은 엿장수도 약방의 감초처럼 임자없는 공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화개장터를 들썩였다. 엿 하나에 웃음과 해학이 넘치고 분장과 기교로 구수한 입담에 트로트를 부르는 엿장수는 현대판 거리의 예술가였다.





하동 십리 벚꽂 길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코스로, 가로수가 온통 버드나무로 하동 동천을 따라 벚꽃이 눈꽃처럼 수를 놓는다. 왕복 2차선 차량도 통제없이 드나들어 다소 불편해도 걸어서 벚꽃 길을 구경하는 상춘객이 줄을 잇는다. 벚꽃 축제 기간에는 벚꽃 길에 차량출입을 통제한다면, 좀 더 편하게 벚꽃을 볼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화개동천 건너편에도 벚나무 천지로 하동 십리벚꽃 길에 들어서면 온통 벚꽃천지다.





하동 십리 길 만이 아니라 주변 들과 산 그리고 마을을 둘러싼 언덕에도 벚나무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간혹 개나리 속살이 드문드문 비쳤다. 가로수 고목 암팡진 곳에도 꽃이 피고 꽃비가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면 벚꽃터널은 물결을 이루며 문득 먼저 가신 님, 그리운 님들이 언뜻 비쳐진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쌍계사 경내를 돌아본 후 불일폭포까지는 시간적 제약으로 포기하고 쌍계사 주변을 돌아봤다. 하동 쌍계사 구층 석탑은 고산 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모니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셨다고 전해진다.





[쌍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관장하는 말사는 43개이며, 4개의 부속 암자가 있다. 쌍계사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이 절은 723년(성덕왕 23)에 의상(義湘)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정강왕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벽암(碧巖)이 1632년(인조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국보 제47호인 진감국사대공탑비(眞鑑國師大空塔碑), 보물 제380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925호인 팔상전영산회상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호인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인 불경책판이 있다. 대공탑비는 887년(진성여왕 1)에 진성여왕이 진감국사의 도덕과 법력(法力)을 흠모하여 시호와 탑호를 내리고 이를 만들도록 한 것이다. 비문은 최치원(崔致遠)이 쓴 것으로 우리나라 4대 금석문(金石文) 가운데 첫째로 꼽힌다.-출처 다음]





쌍계사 주변에도 산나물과 약초 파는 아낙네로 혼잡하였으며, 인도에서 동동주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찹쌀로 빚었다는 막걸리는 달짝쌉싸름했으며 떨어지는 벚꽃을 안주삼아 풍미(風味)가 깃들어 있었다.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둘러본 섬진강 구역의 평사 최참판댁과 화개장터 그리고 하동 십리 벚꽃 구경은 하루는 너무 짧았지만 강렬한 물빛과 모래톳, 벚꽃의 잔영이 오래도록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