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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자, 지나친 시비를 가리지 마라






공자는 시비(是非)에 민(敏)했다. 앎(知)으로 가르고, 인(仁)으로 나눴다. 그의 앞에선 누구나 군자 아니면 소인, 둘 중 하나다. 앎이 깊으면 군자, 앎이 얕으면 소인이다. 인을 쌓으면 군자, 이(利)를 쌓으면 소인이다. 공자는 “사람으로서 인하지 못하면 예는 무엇할 것이며, 음악은 무엇하겠는가”하고 한탄했다. 장자는 생각이 달랐다. “스스로는 이(利)를 좇지 않지만 이익만 따라가는 하인을 속되다고 나무라지 않는 게 참 군자”라고 했다. 공자는 시비로 선악을 가렸고, 장자는 시비를 선악의 맹아(萌芽)로 지목했다. 공자에게 시비는 심판의 잣대다. 장자에게 시비는 평온의 파괴자다. 장자는 왕예의 입을 빌려 “선악·시비의 갈림길이 어수선하게 뒤섞여 어지러우니 어찌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겠느냐”고 했다.




자연의 높음에는 천장이 없고, 깊음에는 바닥이 없다. 뛰고 난다해도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광활한 들판의 좁쌀만한 삶이다. 그래도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며 어깨에 힘을 준다. 한 뼘 남짓한 자신만의 잣대로 세상사 곳곳을 들이대며 시비를 가린다. 여기저기 선을 그어 피아(彼我)를 구별하고, 높낮이를 가르고, 귀천을 따진다. 티끌만한 앎에 스스로를 가두고, 그 티끌을 태산으로 착각한다. 대지(大知)는 나의 앎이 극히 미소함을 깨닫는 게 시작점이다. 습(習)은 스스로 작음을 알고, 큰 것으로 향하는 겸허한 여정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부풀리지 않은 그대로의 자신을 제대로 가늠해보라는 고언(苦言)이다. 우물 안에서 세상을 보지 말고, 계곡물로 바다를 헤아리지 말라는 깨우침이다.





틀에 갇히면 세상이 좁아진다. 그 좁음을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앎이 얕고 좁은 자는 하나 같이 목소리가 크다. 허황된 신념을 진실로 맹신하는 탓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문구멍으로 내다 본 세상은 달랑 풍경화 한 점이다. 낙엽 하나로 세상 이치를 꿰뚫는 건 득도(得道)한 수도승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라. 이견(異見)을 틀림으로 선을 긋지 말고, 다름으로 받아들여라. 나는 너와 다르고, 너는 나와 다르다. 그게 만물의 이치다.

  



누구나 한 뼘 남짓한 자신만의 잣대가 있다. 그걸로 세상사 곳곳을 들이대며 시비를 가린다. 높고 낮음을 재고, 밝음과 어둠을 구별하고, 선과 악을 가르고, 귀하고 천함을 재단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잣대로  만사 시비를 가릴 수 있다고 착각한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는 습이 몸에 밴 까닭이다. 주역은 세상을 음양으로 구별한다. 한데 음양은 부딪침이 아닌 마주봄이다. 음이 있어 양이 존재하고, 양이 있어 음이 존재한다. 서로가 합쳐지기에 생(生)이 움트고, 서로가 이어지기에 밝음(明)이 생긴다. 빛이 있기에 그림자가 진다. 밤의 끝은 낮의 시작이다.





세상의 시비는 칼로 베듯 가려지지 않는다. 만물은 어느 구획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늘 경계를 넘나든다. 높음이 낮음으로 내려오고, 낮음이 높음으로 올라간다. 좌(左)도 내가 한 걸음만 옮기면 우(右)가 된다. 사사건건 시비를 가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건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자신의 틀에 모든 걸 맞추려는 무모함이다. 시비가 되레 갈등을 휘젓는다. 시비의 촉은 좀 둥그스레 한 게 좋다. 너무 예리하면 곳곳에 상처를 남기고, 스스로도 상처를 입는다.




“선함이 마음의 중심에 있지 않은 사람은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실행이 말과 합치되지 않는 사람은 명예를 이루지 못한다.” ‘만물을 두루 사랑하라’고 설파한 중국 춘국전국시대의 사상가 묵자가 한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건 ‘남의 말 하기’다. 가장 어려운 건 ‘스스로의 언행일치’다. 자신의 흠에 관대한 자가 남의 흠엔 더없이 엄격하다. 언행이 엇박자를 내는 자가 남의 ‘빈말’은 엄히 따진다. 자신 눈의 들보보다 남의 눈의 티끌이 더 잘보이고, 더 크게 보인다. 격(格)은 ‘바로세움’이다. 인격은 인간다움의 바로세움이고, 품격은 내면의 바로세움이다. 스스로 바로세운 사람은 타인의 ‘기울어짐’을 과하게 나무라지 않는다. 관용이 격의 주춧돌임을 터득한 때문이다.





진정한 건강은 육체와 정신의 ‘조화로운 어우름’이다. 근육이 빛나도 정신이 초라하면 ‘반쪽만 건강한’  삶이다. 육체에 최고 보약은 마음이다. 마음이 꼬이면 기(氣)와 혈(血)의 순환이 어지러워진다. 최고의 화장품 또한 마음이다. 세상에 마음만한 화장품은 없다. 세상사를 남의 탓으로만 보는 자는 마음에 늘 분(憤)이 가득하다. 탓을 내 쪽으로 옮겨오면 평심이 분노를 밀쳐낸다. 틀을 깨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자. 사사건건 따지기보다 넉넉함으로 다름을 받아들이자. 남의 흠엔 눈을 좀 가늘게 뜨고, 자신의 흠엔 두 눈을 부릅뜨자. 모든 걸 나로부터 시작하자.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