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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반 고흐 인사이드, 빛과 음악의 축제를 다녀와서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자화상,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까마귀가 나는 밀밭... 제목만 들어도 떠오르는 빈센트 반 고흐 작품들. 반 고흐는 그림을 그린 기간이 십 년 남짓밖에 되지 않지만 시대를 넘어 현대 예술가들의 뮤즈로 영원한 클래스를 자랑합니다.





짧은 생애동안 네덜란드 뉘넨, 프랑스 파리, 아를, 오베르를 거치며 완성되었던 그의 강렬한 색채를 찾아 빛과 음악으로 어우러진 축제, 반 고흐 인사이드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미디어 아트로 꾸며져 자유로운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새로운 테마의 전시회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안에서 전에는 갖지 못 했던 색채의 힘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주 거대하고 강렬한 어떤 것이었다.“





반 고흐의 마을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뉘넨은 작은 마을인데 고흐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터너, 모네, 르누아르, 드가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이 대담한 색채로 빛을 그릴 무렵, 고흐는 주로 빈민층, 노동계층의 삶의 애환이 담긴 들판과 풍경을 담아 어둡지만 진솔한 작품을 그렸습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해 온 하층민과 노동자들을 구원하고 싶어 성직자를 꿈꿨지만 현실과 괴리된 신학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고, 진실된 그림을 그려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그들을 구원하리라 생각하여 27세의 반 고흐는 목탄을 손에 쥐었습니다.





앉아서 봐도 좋고, 서서 봐도 좋고, 흩어져 있는 시선들을 천장에 띄운 8개 대형 스크린을 통해 펼쳐집니다. 10분 정도 작품과 음악이 함께 흐르고 반 고흐 인사이드라는 전시회 타이틀처럼 넋을 놓고 빠져드는 느낌이 듭니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억누를 수는 없으니 터트리기 보다는 태워버리는게 나아”





자신만의 화풍을 찾아 모험과 도전의 날들을 파리에서 보냅니다. 화려한 도시의 빛과 만나면서 고흐의 색을 찾아 갑니다. 세잔은 고흐 스스로 우수작이라 꼽은 뉘넨 시절의 <감자먹는 사람들>에 대해 혹평을 퍼붓습니다.





이에 충격을 받은 고흐는 조금씩 어두운 세계에서 활기찬 파리의 빛을 수용하고 풍부한 색채와 점묘법 수용, 일본풍 색체의 혼합 등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하게 됩니다. 하나 하나의 점들이 모여 전체를 수놓는 점묘법은 단편적인 기법을 넘어 점차 계획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표현됩니다. 그 치밀함과 세심함은 빈틈없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게 구원과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우울증과 외로움은 점차 깊어지고 방황하는 고흐의 영혼이 강렬한 색채로 뿜어져 격정적인 예술혼이 전시회장을 가득 메웁니다. 고흐는 이때 아를의 여인들, 아이들, 주아브 병사, 매춘부 등 다양한 인물화를 그렸고 상상으로 인물화를 그리거나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고흐는 파리에서 사귄 인상주의 화가들 중 고갱에게 가장 애정을 가졌으나, 극심한 성향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고 우정이 파국으로 치닫자 고흐는 극심한 불안과 우울증상을 보이며 급기야 자신의 귓불을 잘라 매춘부에게 쥐여주는 광기 어린 소동을 벌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고흐에게 구원이었습니다. 점점 불행해지는 고흐의 감정을 받아줄 수 있었건 그나마 캔버스였을 겁니다.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고흐는 강변의 작은 도시 오베르로 이동합니다. 이곳은 고흐가 태어났던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을 닮은 평화로운 시골이었습니다. 고흐는 스스로 삶을 정리하기 까지 70여일을 이곳에서 머물렀습니다.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한 밀밭>, <까마귀 떼가 있는 밀밭>을 보면 황량함 위에 흐르는 진한 색채와 피폐해진 고흐의 감정이 그대로 녹아 느껴집니다. 고흐는 검푸른 밀밭에서 권총으로 자신을 심장을 겨눴고 결국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전시회가 매우 짧게 느껴질 만큼, 그의 생애도 명성에 비해 참 짧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사후에야 고흐의 그림들이 프랑스에서 전시되면서 그제야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니... 평생을 외롭고 고통 속에서 살았는데 말입니다.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 합니다. “고통은 영원하다”로 끝나는 전시회는 마지막까지 고흐스러웠습니다. 고흐의 인생을 따라 전시회가 흐르다보니 이상하게 먹먹해졌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지금 생애가 끝이 난다고 해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격정의 생애 끝에 우리가 마주한 고흐의 찬란한 유산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