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제5원소의 의상담당과 칸영화제심사위원, 미국팝가수 마돈나의 브라수트 제작으로 유명한 프랑스 패션디자이너 <장폴고티에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프랑스출신인 장폴고티에는 정식 패션공부현를 한 것은 아니지만 24세에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댕의 조수로 일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패션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릴때 뷰티컬설턴트인 할머니의 살롱에서 곰인형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며 상상력을 키웠다고 하네요. 그의 패션쇼는 전세계에서 8번째인 한국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데요, 패션쇼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고티에는 기존관념을 탈피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된 남성성을 부정하면서 남성에게도 여성의 전유물같은 치마나 드레스를 입히므로서 신선한 파격을 보여주었습니다.
"프랑스 패션을 대표하는 장 폴 고티에는 상식을 뒤엎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시도로 아름다움의 기준을 재정비한 디자이너로 불리운다. 그는 성별,인종,외모에 따라 규정되는 '이상적 아름다움'이라는 통념에 끝없이 도전함으로서 남녀구분 없는 룩을 디자인하고 백발노인모델, 일반인 모델을 기용하는 등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것에 맞서왔다. 패션계데뷔한지 40년이 지났지만 현재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 그는 여전히 패션의 첨단에 서 있는 현재 진행형 거장이다." - 전시회 설명글 中 -
전시장에 들어온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기존통념을 깨는 그의 작품속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파격속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여자인 저로서는 감춰야할 속옷이면서 여성들을 억압해온 브래지어와 코르셋을 겉옷처럼 디자인한 옷들에서 해방감마저 느꼈습니다. 고티에의 전시는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린시절 할머니의 살롱에서 노는걸 좋아했던 고티에는 옛날 옷 중에 코르셋에 끌렸는데 이후 그의 작품주제가 됩니다. 텔리비젼의 공연본 후 뮤직홀 댄서들의 의상에 매료된 그는 자크 베케르의 영화 <팔발라>를 통해 파리 오트쿠튀르의 세계를 알게 되고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네요. 고티에는 현대여성에게 코르셋은 억압과 순종이 아닌 권력, 노출과 유흥의 연결고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위사진(콘브라와 코르셋을 입은 두여인)과 콘브라의상들에서 인간의 가장 내밀한 욕망인 '성'을 어둠이 아닌 한낮의 공간으로 끌어낸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고티에의 뮤즈이기도한 마돈나가 입었던 콘브라와 무대의상들입니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마돈나의 의상들과 영상물들을 볼 수 있었어요.)
"고티에의 코르셋은 매우 섹시하고 나는 그것이 표현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코르셋을 몸매보정을 위한 속옷이 아니라 겉옷으로 입었다. 전통적인 개념에서 탈피한 이런 방식은 여성의 힘과 성적 해방을 상징한다." - 마돈나 -
"나는 성별의 논란, 즉 남성성과 여성성을 혼합시킨다는 점에서 고티에의 옷을 좋아한다. 나는 그가 굉장히 도발적이라고 생각한다" - 마돈나 -
두번째 주제는 오디세이입니다. 고티에 컬렉션에서 핵심적,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오디세이에서 비롯됩니다. 선원들과 장난치는 인어, 세이렌 님프들은 남성와 여성의 유혹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 공간에서 고티에는 자신이 직접 줄무늬 선원복을 입고 등장합니다. 선원의상은 고티에가 어릴때 부터 좋아했던 패턴으로 그의 작품속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합니다. 불어로 말하고 있는 가운데 빨간 스카프 두르고 있는 이가 장 폴 고티에랍니다.
이 컬렉션에서 인상적인 것은 보석과 조개 진주등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인어와 님프들의 의상뿐 아니라 마네킹이 살아있는 사람처럼 웃고 말하고 노래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 고티에와 친한 연예인들의 얼굴을 마네킹에게 레이져빔을 활용해 실물처럼 보여주는 점이 참 신기했습니다. 표정이 살아있고 노래도 부르는 마네킹들에게서 눈을 뗄수 없었답니다.
고티에는 이번 파트에서 컬렉션을 통해 성, 나체와 에로티시즘의 개념을 탐구했습니다. 신체와 피부는 그에게 마르지않는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소재를 제2의 피부로 변신시키는 동시에 눈속임 효과를 사용하며 때로 신체의 안밖을 뒤집어 뼈와 혈관 근육을 내비치는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체제전복적인 작품들은 베르사체부터 톰 포드까지 많은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피부인지 옷인지 헷갈리는 의상들, 핏줄과 뼈가 겉으로 드러난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문 작품, 콘브라를 모티브로 한 고티에의 향수컬렉션까지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파트에선 고티에는 벨 에포크시대부터 1930년대 파리까지 아름다운 파리시절과 파리지엥의 이미지를 담아냅니다.
또 청년기에 그는 런던의 평크족에게 감명 받아 라텍스, 깃털, 레이스, 격자무늬, 스터드와 금속핀 등 관습과는 동떨어진 패션세계를 선보이는데요, 2011년 기성복컬렉션의 제목이기도 한 펑크캉캉은 파리와 런던의 세계가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파리야경과 에펠탑이 수놓아진 드레스와 남자들에게도 치마를 입힌 코티에. 개성이 넘치는 런던의 펑크의상들까지 정말 멋있었습니다.
고티에는 패션의 시장성 대신 다름을 중시하여 표준화된 패션이 닿지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남다른 것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는 의상에 다른 문화와 민족간의 대화를 담아내며 '새로운 미학'을 창조합니다. 고티에는 이번파트에서는 도시와 야생, 전통와 현대, 동물과 사람이 섞인 혼성체를 담아내는 패션을 선보였습니다. 투우사의 볼레로, 길고 어두운 랍비코트 ,게이샤의 기모노, 아프리카의 가면들은 코르셋, 가죽, 비닐등 그의 대표적 요소와 섞여 그의 일부가 됩니다.
앵무새와 인간의 이미지가 혼합된 모델, 어떤 작품은 가죽과 모피, 수놓기와 뜨게질이 혼합되어 한참을 쳐다보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표범무늬 드레스는 가죽이 아니라 한땀식 비이드(작은 구슬류)로 일일이 꿰메 만든 제작시간 300여시간이 걸린 작품입니다. 그 정교함과 예술성에 반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대형 아나콘다 한마리통가죽에 스터드(징)으로 장식을 넣어 특이한 느낌을 자아냈던 작품도 있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tv를 통해 영화와 음악에 대한 애정을 키웠던 고티에는 공연, 오페라, 영화를 위한 의상을 디자인해 왔습니다. 피터 그리너웨이감독의 <요리사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뤽 베송감독의 <제5원소>같은 영화의 의상을 담당했고 보이조지, 안무가 로리스 베자르, 레이디 가가, 마돈나, 너바나등의 세계적인 팝스타들과 작업했습니다.
그가 영화와 공연을 위해 제작했던 의상들과 필름으로 만들어진 드레스. 그리고 미래의 남성을 상징하는 복장으로 관람객들의 발길을 오래 붙잡아둔 의상들도 있었습니다.
전시의 제일 마지막은 <결혼>으로 다양한 고티에의 웨딩드레스를 볼 수 있었는데요 그는 기존의 공주같은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드레스를 제작했습니다.
여성에게 결혼이 억압과 순종의 의미가 아니라 힘을 쟁취하는 전사의 이미지로서 추장의 깃털머리장식과 견장으로 장식된 웨딩드레스라니, 발상이 비범합니다. 다양한 그의 드레스들은 정말 발상의 전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고티에의 의상중 가장 여성스런 디자인의 작품들도 보였습니다.
장 폴 고티에의 전시는 제게 볼것도 생각할 꺼리도 많은 전시였습니다. 다양한 소재로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한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파격, 도발, 전복, 통합이란 단어들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전시된 그의 작품들은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는 그의 창의성과 천재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모티브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패션을 통해 발현되는 그의 창의력에 전시를 둘러보는 내내 예술의 바다에서 헤엄친 느낌이었습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깨는 그의 도발에 몸과 패션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생기는 전시이기도 했고요. 끝나기 전에 봐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인상적인 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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