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길거리에 은행나무들이 어느 새 노랗게 물든 것을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은행나무 밑을 지그재그로 걷거나 까치발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땅에 떨어진 은행을 밟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인 셈이죠. 땅에 떨어진 은행은 고약한 냄새를 풍깁니다. 행여 밟아 신발에라도 묻으면 한동안 구린 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고약한 냄새만 빼면 은행은 더할 나위 없는 먹거리입니다. 영양이 풍부한데다, 익혀 먹으면 쫄깃한 식감이 좋습니다. 여러 음식에 고명으로 얹어도 좋고 꼬치 등으로 먹어도 일품입니다.




식물학자들은 은행나무가 약 3억5,000만 년 전인 고생대 석탄기 초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은행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열매가 아니라 은행나무 종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은행나무는 암나무, 수나무가 따로 있습니다. 개나리나 목련, 진달래 같은 나무는 수꽃과 암꽃이 한 그루에서 피기 때문에 모든 나무마다 열매가 열리는 반면, 은행나무는 주로 암나무에서만 종자가 납니다. 종자는 과육 성분의 노란색 외피 안에 단단한 껍질을 가진 하얀 색 알맹이가 들어 있습니다. 암나무의 이 종자가 황색으로 익으며 땅으로 떨어지는데, 그 시기가 10월 즈음입니다.





은행의 고약한 냄새는 종자의 외피에서 납니다. 외피를 감싸고 있는 과육질에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ginkgoic acid)’이 함유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물질들은 옻에 함유된 우루시올 구조와 닮은 화합물로, 피부에 발진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때문에 다른 동물들은 은행나무나 종자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오로지 사람만이 은행나무 종자를 먹고 다른 곳에 종자를 퍼뜨려 줍니다.




냄새는 고약한 반면, 은행은 영양학적으로 우수합니다. 글로불린을 비롯해 단백질, 지방, 칼슘, 인, 철분, 펙틴, 비타민A, 비타민 B1 및 B2 등이 들어 있습니다. 모세혈관을 확장시키는 효능이 있어 혈액 순환을 돕고 혈관 속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줘 피를 맑게 합니다. 또, 폐와 관련한 병에 약효가 뛰어납니다. 폐를 깨끗이 하고 기침을 멎게 하며 가래가 많을 때 먹으면 좋습니다. 실제, 「동의보감」에도 은행이 폐와 위의 탁한 기운을 맑게 하고 숨이 찬 것과 기침을 멎게 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밖에 비타민C 함유량이 높아 면역력을 향상하고 피로를 회복하는데 좋으며 엘고스테린 성분을 함유해 뼈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저열량·저지방 식품으로 다이어트에 좋은 건 물론이죠.





은행나무 종자보다 더 약효가 우수한 것은 바로 은행나무 잎입니다. 은행잎에 들어있는 플라보노이드는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는 물질로, 유해 산소를 없애고 세포막을 보호하며 혈압을 내리는 기능을 합니다. 현기증이나 이명, 두통, 기억력 저하, 집중력 장애 등을 개선하는데도 효과적이죠. 특히 이 성분은 살충·살균 효과가 있어 병들거나 해충을 예방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전에 은행잎을 책 사이에 끼워 둔 것은 운치뿐만 아니라 책에 좀이 슬지 않도록 하는 삶의 지혜였습니다. 같은 원리로 은행잎을 헝겊에 싸서 집안 구석에 놔두면 해충 등을 쫓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은행잎에는 징코라이드라는 특유의 성분도 들어있습니다. 징코라이드는 모세혈관의 확장과 혈행 촉진, 혈전 방지, 혈압 조절 등의 기능을 합니다. 플라보노이드와 징코라이드는 서로 보완적으로 작용하며 우리 뇌를 젊게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은행은 익혀 먹으면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입니다. 주로 볶아 먹거나 전골 등의 음식에 고명으로 얹어 먹는데, 이외에 밤이나 대추 등을 함께 넣어 영양밥을 해먹어도 좋고 죽으로 끓여 먹어도 맛있습니다. 다만, 은행에는 청산배당체와 함께 메틸피리독신이라는 독성물질이 있어 과량 섭취할 경우 중독으로 간질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심장 맥박이 빨라지고 어지러움을 일으키기도 하죠. 청산배당체는 그 자체는 유해하지 않으나 효소에 의해 분해되어 시안화수소를 생성해 청색증 등을 유발하므로 너무 많이 섭취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메틸피리독신 또한 한 번에 많은 양을 섭취하면 의식을 잃거나 발작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사망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성인은 하루에 10개 이하로, 어린이는 2~3개 정도 먹어야 합니다.





행은 전자레인지에 2~3분 정도 돌리면 내피를 벗겨먹기 좋습니다. 양이 많아 보관을 해야 한다면 완전히 말린 다음 냉장고나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한 곳에 두는 게 좋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화이트데이나 발렌타인데이에 사탕이나 초콜릿으로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반면, 우리 조상들은 은행으로 연모의 정을 표현했습니다. 조선시대 농서 「사시찬요」에 따르면, 옛날 우리 조상들은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양력 3월 5일 전후)에 은행을 서로 주고받아 함께 먹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또,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 은행수나무와 암나무를 도는 것으로 사랑을 확인하고 다졌죠. 그런데 왜 하필 은행이었을까요?





조상들은 은행나무 암수가 서로 마주봐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천년을 사는 은행나무 암수가 오랫동안 서로 바라보며 사랑을 키웠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때문에 조상들은 전 해 가을에 은행을 미리 주워 고이 간직했다가 이듬해 3월 초에 소중한 이에게 선물하며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가 봄의 길목에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지 모릅니다.



글 / 이은정 프리랜서 기자




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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