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나이란 것이 있다.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나이를 먹기 시작해 태어나자마자 1살이 된다. 이처럼 우리 선조는 잉태(孕胎)된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했다. 태아기(胎兒期)를 인간 형성 과정의 필수 단계로 본 것이다. 임신하면 바로 태교(胎敎)에 들어간 것은 그래서다.  태교 음식은 태교의 일부로 간주된다. 임신부의 식생활이 태아의 발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태교신기’(胎敎新記)는 조선시대의 여성 실학자인 사주당(師朱堂, 1739∼1821) 이씨가 저술한 세계 최초의 태교 전문 서적이다. 정조 24년(1800년)에 발간된 이 책에선 임신부의 권장 식품과 금기 식품을 함께 다뤄지고 있다. 임신부의 금기 식품으론 “모양이 바르지 않은 과일, 벌레 먹은 것, 썩어 떨어진 것, 익지 않은 풀” 등이 꼽혔다. 참외ㆍ수박 등의 열매와 푸성귀, 찬 음식, 물커지고 쉰 것, 상한 생선, 썩은 육고기, 빛깔ㆍ냄새가 좋지 않은 것, 제철이 아닌 것도 금기 식품에 포함시켰다.


“고기를 밥보다 더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임신부는 곡식으로 지은 밥을 주식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름진 음식을 과다 섭취하면 임신부에게 가려움증ㆍ부기가 생기기 쉽다는 것도 고기 섭취 자제를 강조한 이유다. “술을 마시면 100가지 혈맥(血脈)이 풀리고, 당나귀ㆍ말고기 비늘 없는 물고기를 먹으면 해산이 힘들며, 엿기름ㆍ마늘은 태를 삭이고, 비름ㆍ메밀ㆍ율무는 태아를 떨어뜨리고, 참마ㆍ복숭아는 자식에게 마땅치 않다”는 대목도 나온다.





사주당은 홍어ㆍ문어ㆍ낙지ㆍ오징어 등 비늘 없는 물고기의 물렁거리는 연골을 먹으면 아기의 뼈가 물러진다고 봤다. 엿기름ㆍ마늘은 소화 작용을 왕성하게 하는 식품이어서 새 생명이 생기는 데는 적당하지 않다고 여겼다. 메밀은 소화가 잘되지 않아 임신부에게 부적합하고, 율무는 성질이 차서 아이를 유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몸을 덥게 하는 인삼, 몸을 차게 하고 구토를 일으킬 수 있는 참외도 임산부 금기 식품으로 포함시켰다. 어혈(瘀血)을 풀어주는 살구씨(행인), 모란 껍질(목단피), 복숭아씨(도인)와 광물 성분이 함유된 우황청심환 등도 임산부의 금기약물로 분류된다.


“자식이 단정하기를 원하면 잉어, 슬기롭고 기운차기를 원하면 소의 콩팥ㆍ보리, 총명하기를 원하면 해삼, 아이를 낳은 뒤엔 새우ㆍ미역을 먹어라.”  ‘태교신기’에 나오는, 태교 중인 임신부에게 권할만한 식품 리스트다. 사주당은 잉어를 최상의 임신부용 식품으로 쳤다. 민물고기 중에서 가장 생김새가 뛰어나고 어류를 대표한다고 여겨서다. 옛 이야기 속에선 잉어가 용왕의 아들로 자주 등장한다. 우리 선조는 태몽에 잉어를 보면 귀하게 될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다.





잉어는 양질의 단백질ㆍ불포화 지방(혈관건강에 이로운 지방)ㆍ칼슘ㆍ비타민 B1이 풍부한 생선이다. 소화ㆍ흡수도 잘된다. 잉어는 몸길이가 평균 35㎝ 정도지만 길이 1m에 무게가 22㎏ 이상 나가는 놈도 있다. ‘동의보감’에서 잉어는 ‘민물고기의 왕’이다. “황달ㆍ소갈(당뇨병)을 다스리며 기(氣)를 내린다. 냉기(冷氣)를 부수고 태동(胎動)과 임신부의 붓기를 다스리며 안태(安胎, 임신 유지)한다”고 예찬했다.


해삼엔 모체와 태아를 편안하게 해주는 성분이 들어있어 임산부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다. 한방에선 해삼을 임신한 여성의 몸을 보(補)하는 약재로 쓴다. 선천적으로 허약하거나 태반이 약한 임신부에게 인삼 대신 해삼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가을 새우는 굽은 허리도 펴게 한다”는 속담이 있다. 노인의 굽은 허리를 펴게 할 만큼 가을 새우의 맛이 뛰어나다는 것을 비유한 속담이다. 굽은 허리를 교정해 주지는 못할지언정 뼈 건강엔 유익하다. 뼈의 주성분인 칼슘이 멸치 못지않게 풍부하기 때문이다. 새우는 고단백 식품이다. 새우를 스태미나 식품으로 치는 것은 단백질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민간에선 미역을 산후선약(産後仙藥)이라 부른다. 해산날이 가까워지면 가정에선 미리 미역을 사다 놓는다. 이때는 흥정을 하지 않고 상인이 부르는 데로 값을 치렀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가격을 깎으면 아기의 수명이 단축된다고 여겨서다. 해산 미역은 꺾지 않고 새끼줄로 묶어서 팔았다. 꺾인 미역을 먹으면 난산(難産)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미역국을 산모에게 추천하는 것은 고칼슘ㆍ고철분 식품이기 때문이다. 산모가 미역국을 먹으면 임신 중 아기에게 빼앗긴 칼슘을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다. 칼슘은 산후 자궁수축과 지혈도 돕는다. 미역은 임산부의 산후 빈혈 예방식품이다. 출산 도중 출혈로 빠져 나간 철분(100g당 9.1㎎)을 보충할 수 있어서다.


사주당이 태교 음식으로 권장한 잉어ㆍ소의 콩팥ㆍ보리ㆍ해삼ㆍ새우ㆍ미역은 단백질ㆍ칼슘ㆍ철분 등이 풍부한 식품이다. 태아는 임신부의 음식에서 모든 영양을 공급받는다. 골격을 이루는 시기엔 칼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태반이 형성되는 시기엔 철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뇌신경 세포가 잘 발육하려면 단백질 공급이 필수적이다. 현대 영양학의 관점에서 봐도 ‘태교신기’의 권장 음식은 과학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글 /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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