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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단골 마케팅에 의지한 손님의 진심 어린 말

 "에구 에구, 섭섭해서 어떡해."


 빈말 아닌, 할머니의 진심 어린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직장을 다닌다는 것
 은 여자에게 참으로 가혹한 일일 것이다. 아무리 친정과 시댁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나름대로 한계가 있었다.


불경기라, 조금이나마 가계에 도움이 돼볼까 싶어 결혼 전에 하던 약국을 다시 열었건만, 또 그 불경기 탓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우리 집에서 좀 가까운 곳이면 그래도 어느 정도 해 보련만, 좀 싼 곳을 고르다 보니 서울 바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날 데리러 오는 남편에게도 피곤한 일이라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 되어 새로은 인수자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금방 정이라는 것이 들었나 보다.

 

사실 이 동네는 그리 윤택한 동네는 아니었다. 아니 '그리 윤택한'이라는 말은 좀 돌려 말하는 것이고, 아직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네온사인 번쩍번쩍한 번화가 뒷켠으로, 숨쉴 곳 없이 촘촘히 박힌 집들과 어른 하나 간신히 빠져나갈 골목사이로 높다랗게 솟은 집들은 바라만 봐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다지 삶의 환경이 좋지 못해 특히, 어르신들의 병치레가 잦았다. 이 동네 병원은 쉼 없이 환자들을 토해냈
 고 그 처방전을 받는 약국들은 또 우후죽순 격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첨예한 경쟁 속에, 오로지 차별을 둘 수 있는 것은 친절이라 여기며 어르신이 문 앞에서 아른거리면 얼른 문 열어드리고, 따끈한 쌍화차 한잔 대접하는 등 신경을 썼었다. 솔직히 나야 좀 더 많은 단골을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었지만 의지할 곳 없는 노인분들에게는 그런 마음 씀씀이마저 의지가 되었는지 이제 약국을 정리한다고 하니 다들 섭섭하다는 말을 한아름씩 건넸다.

"잠깐 지둘려 봐..."

 

조제한 약을 건네려는 순간, 할머니가 갑자기 어디론가 나가셨다. 그러더니 잠시 후, 손에 뭔가 들고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에구, 내가 가난해서 줄 것이 이것 밖에 없네..."

 

하시며 건네주시는 건 떡 두 봉지와 야쿠르트 몇 병이었다.

 

"애들 갖다 주라고.."


"아.."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려운 형편에, 의료보호대상자도 안 되어 늘 아픈 몸으로 병원 다니시는 분이...꼬박꼬박 진찰료며 약제비를 내야 하는 할머니에게 돈은 곧 목숨줄이었고, 지금 내게 건네준 것은 바로 그 목숨줄을 나눠준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예, 할머니"

 

할머니가 건네준 것을 받아들고 부랴부랴 손에 잡히는 드링크와 영양제를 챙겨 드리는 것 말고 달리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할머니는 예의 그 환한 얼굴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가득 안은 얼굴로 날 바라봤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가난한 동네라 아직 더욱 풋풋하게 살아 있는 인심, 할머니가 남긴 인심이라는 향기는 오랫동안 약국을 맴돌았다.

 

김희정 / 서울시 중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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