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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아직은 사람의 따뜻한 정이 남아 살만한 세상

  요즘 텔레비전 뉴스나 세상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회가 갈수록 삭막해짐을 느낀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못
  본 척 하거나 남이 어떻게 됐건
만 잘 살면 된다는 사회현상들이 늘어갈수록 사람 사이의 정이나 배려 같
  은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 같다.  그
렇게 사회의 무관심과 이기심에 점점 물들어가던 내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며 아직은 사람의 따스한 정이 남아있음을 알게 해 주는
일이 있었다.


내가 사는 마을은 가까운 곳에 하천을 두고 있다. 좁은 하천이지만 물이 많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마을 사람들의 훌륭한 휴식공간이 되
고 있다. 특히 하천을 따라 산책로와 운동시설이 있어서 저녁이면 간편한 차림으로 조깅을 하거나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저녁에 시간이 되면 종종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가볍게 조깅을 하곤 했다.

 


그날은 저녁을 조금 늦게 먹어서 운동 갈 시간이 조금 애매했다. 갈까 말까 망설이던 나는 요전에 목욕탕에서 늘어난 몸무게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월요일인데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산책로와 공원에는 사람이 평소보다 적었다.

빨리 한 바퀴 돌고 들어갈 생각으로 대충 몸을 풀고 가
볍게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뛰었을까. 갑자기 뒤에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뒤돌아봤지만 길 위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뛰려는데 어디선가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귀기울여보니 소리는 산책로와 하천 사이 비탈에서 들렸다.

서둘러 길 아래를 살피니 어둠 속에서 자전거와 사
람이 함께 쓰러져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비탈길을 내려갔는데 쓰러진 사람은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였다. 입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이 아마도 약주를 하고 자전거를 타시다가 길 밖으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경사가 깊어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어서 다시 길 위로 올라와 공원에 있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서로 생면부지인 사람들은 바로 뛰어왔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길 위로 옮기는데 함께 힘을 합쳤다. 목이나
  척추를 조심하느라고 옮기는데 무척 조심스럽고 힘들었지만 모두들 흙투성이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
  다. 심지어 물에 반쯤 잠긴 자전거
도 끌어올려 놓았다.


어느새 모여든 사람들은 119에 전화를 하거나 할아버지의 상처를 손수건으로 닦거나 들고 있던 생수를 마시게 했다. 모두 할아버지의 안
전을 염려했으며 무언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눈빛이었다. 멀리서 응급차가 다가오자 모두들 손을 흔들어 위치를 알렸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안전하게 응급차에 실려 가자 안심하고 크게 다치지 않길 바라는 말을 한마디씩 하며 흩어졌다.

나는 어둠속으로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 가득 따스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기쁨이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사람들 마음속엔 관심과 배려가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비록 삼십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보다 훨씬 긴 감동으로 내게 다가왔다.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임을.

 

홍성국 / 서울시 중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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