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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취미

정신분열증 환자도 햇볕을 즐길 권리가 있다



  우리 국민 10명 중 3명이 평생에 한 번은 정신 질환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신지요? 몇 년
  전에 보건당국이 국립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에 의뢰해 조사한 통계입니다. 물론 이 통계는 이른바 ‘
  미쳤다’ 고 하는 정신분열증뿐만 아니라 조울증, 알코올 니코틴장애까지 포함한 것이지만, 많은 이들이
  정신질환으로 고 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분명한 수치로 알려줬지요.

 


정신질환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치부되는 정신분열증은 보통 1000명당 1명꼴로 앓는다고 합니다. 이 병의 양성 환자는 환각, 환청에 시달리고, 음성 환자는 의욕이 없어 아무일도 하지 않으려 듭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95년 정신보건법 통과 이후로 정신질환자의 사회재활사업을 활발히 펼쳐왔습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지요.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열증환자가 사회생활을 하 는 것을 위험하게 여깁니다. ‘걸어다니는 흉기’ 를 방치하는 것은 안전하게 살대 다수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크지요. 일부 질환자가 벌인 범죄나 사건이 소문의 귀를 타고 불안스럽게 증폭된 결과입니다.

 

 

 

 

영화 ‘샤인(Shine?1999년 작, 스콧 힉스 감독)’은 정신질환 때문에 10년이나 정신요양원에서 지냈던 호주 출신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1947~제프리 러시 분)을 모델로한 작품 입니다. 헬프갓이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 연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그의 아버지 피터(아민 뮬러-스탈 분)는 아들을 피아니스트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합니다.

 

그러나 피터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집착에 가까운 것이어서 헬프갓이 미국 음악학교 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나려 하자 ‘가족을 버리고 가지 말라’며 막습니다. 헬프갓은 영국왕립 음악대학에서 장학생 제의가 들어오자, 아버지의 반대를 뿌리치고 런던으로 떠나버리고 이후 부자간의 연은 단절되고 맙니다.


그는 왕립 음대에서 스승 세실 팍스(존 길거드 분) 교수의 애정 어린 지도에 힘입어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라흐마니노프 피아 노협주곡 3번’을 연주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정신을 놓아버리고 결국 병원에서 정신치료를 받게 됩니다.

 

10년이나 정신요양원에서 음악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그가 다시 피아노 연주자로 거듭나게 된 것은 점성술사 길리언(린 레드그레 이브 분)을 만나 사랑을 나누며 정신적인 안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헬프갓은 1984년 첫 재기 독주회를 한 후 전 세계로 투어 콘서트를 다녔습니다. 한국에도 두 번이나 와서 성황리에 연주회를 마쳤지요.

 

 


‘샤인’은 피아니스트의 일생을 다룬 작품답게 세상을 빛낸 음악들을 쉼 없이 들려줍니다.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리스트의 ‘라 캄팔레손’, 비발디의‘영광’, 림스키 코르사코프의‘슐 탄 황제이야기’ 등이 이야기 흐름에 맞게 적절하게 흐릅니다. 무엇보다 헬프갓을 미치게 하고, 또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이 영화의 주제곡 역할을 합니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음악 마니아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2번보다 서정의 깊이가 덜하다는 평을 듣지만, 화려한 기교 때문에 피아니스트들이 도전하고 싶어 하는 곡입니다. 이 3번에 대해 헬프갓의 아버지 피터는‘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음악’이라고 경외를 표하고, 스승 세실 팍스도‘미치지 않고는 칠 수 없는 곡’이라고 말하지요.


영화에서 헬프갓이 이 곡을 연주할 때, 그의 손놀림은 눈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면서도 정교합니다. 장엄하면서도 화려한 선율과 더불어 뛰어난 영상미를 선사하지요. 그런데 이 대목을 보면서 음악가들의 짖궂은 인연에 고개를 흔들었습 니다. 헬프갓이 위대한 작곡가로 흠모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 역시 정신질환에 시달린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정신질환을 치료해준 의사에게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헌정했다고 합니다. 협주곡 3번은 그가 신경쇠약을 완전히 극복한 뒤에 만든 작품인 셈이지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헬프갓이 정신 질환 증세로 끊임없이 중얼거리거나 옷을 걸치지 않고 돌아다녀도 주변 사람들이 너그럽게 받아준다는 것입니다. 길리언은 헬프갓이 괴팍한 행동을 하더라도 늘 웃는 얼굴로 대합니다. 그런 너그러움이 헬프갓으로 하여금 연주가로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것이지요.


의학적으로 정신질환의 원인에 대해선 분명하게 알 수 없고, 다만 추정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헬프갓의 경우엔, 아버지의 집착과 성공에의 강박관념이 주요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지요. 전문의들에 따르면, 정신분열 초기에 병원을 찾아서 적절한 약물 치료를 받으면 완쾌될 수 있습니다. 중증의 경우엔 일정 기간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나,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되면 사회에 다시 적응할 수 있는 재활 훈련을 병행하는 게 바람직 합니다.

 

사회가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해주는 게 중요하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도 인내와 애정을 갖고 재활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라흐마니노프와 헬프갓이 정신질환을 이기는 데 의사 의 헌신적인 치료와 주변 사람들의 너그러운 배려가 있었다는 것은 무척 시사적입니다. 영화 ‘샤인’은 정신분열증 환자도 햇볕을 즐길 권리가 있으며, 그것을 위해 사랑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장재선/ 문화일보 기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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