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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춘곤증인 줄 알았더니 만성 수면장애

 

  완연히 봄기운이 드는 낮에 꾸벅꾸벅 조는 김 대리, 춘곤증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병이었
  다. 낮의 문제가 아니었다. 김 대리의 상습적인 춘곤증은 밤잠의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춘곤증은 우리 몸이 계절 변화에 적응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해가 길어지는 자연현상에 따라 생체시계도 변화하게 된다. 또 기온이 상승하면서 겨우내 추운 날씨로 굳어 있던 근육이 처지고 혈관이 팽창하면서 나른함과 졸림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오는 것이 '춘곤증'이다.


하지만 낮에 참을 수 없는 졸음이 계속돼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면 춘곤증의 범주를 넘어선다.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여 낮에 졸림이 심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름 하여 만성 수면 장애다.

 

< 낮잠을 즐기는 사람들 >

 

배우 김태희가 대낮에 침대 매장에서 전시된 침대에 누워 달콤한 잠에 빠지는 장면의 광고가 있었다. 낮잠을 자고 난 김태희는 눈을 반짝 뜨며 “잘 잤다”는 멘트를 날리며, 그 침대를 사겠다고 카드를 내민다. 현명한 구매를 한다는 한 카드회사 TV 광고다. 그런데 김태희가 실제로 그렇게 잠을 잤다면 ‘김태희’도 만성 수면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보통 대낮에 낯선 공간, 낯선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쉽게 푹 잘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야간 수면에 문제가 있어 낮에 졸리니, 시도 때도 없이 낮잠에 빠지는 것이다. 보통 아침 기상 후 8시간 정도가 지나면 낮에도 졸음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래도 밤 수면의 양과 질이 좋다면 ‘픽’ 쓰러져 잠들 정도는 안 된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거꾸로 야간 수면을 조사해 봐야 한다.

 

 

인간의 평균 수면시간은 대개 7~9시간이다. 물론 사람마다 체질마다 다르다. 낮에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면 6시간 미만의 수면 시간도 괜찮다. 문제는 얼마나 수면을 취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숙면을 취했느냐이다. 잠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 낮잠을 즐기는 농부 >

밤잠의 질이 문제가 되는 대표적인 수면 질환은 ‘ 코골이 ’ 다. 최대 80 데시벨 (㏈)대에 이르는 소음이 나오는 코골이는 특이한 수면습관이 아니다. 질병이다. 이들은 대개 낮잠을 잘 때도 코를 곤다. 누가 옆에서 코를 골면서 낮잠을 자고 있으면, 다들 “얼마나 곤하게 자면 코까지 고냐”고 그러는데 의학적으로는 “얼마나 잠을 못 자면, 코까지 고냐”고 하는 것이 맞다.


코를 골면 수면 시 산소 호흡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 되어 뇌가 ‘ 반(半) 각성 ’ 상태가 된다. 대개 하룻밤에 1~3회는 꼭 깨어났다가 다시 잠든다. 산소가 제대로 공급이 안 되는데 뇌가 아무 생각 없이 잘 수는 없다. 코골이가 있으면 수면 중 숨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수면무호흡증이 동반된 경우가 많다. 수면의 질은 더욱 나빠져 ‘ 낮잠 사태 ’ 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코골이는 깊은 수면 단계로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몸과 뇌의 기능을 회복하는 호르몬 분비에도 이상이 초래된다. 따라서 아무리 8시간을 잤다고 해도 코를 곤 경우라면 거의 ‘날 밤’을 샌 거나 다름없다. 만성 수면 부족과 피로 상태가 되니, 환한 대낮에 아무 데서나 천연덕스럽게 자게 된다. 그런 사람 중에는  “ 내가 그래도 낮에는 잠을 잘 잔다 ” 고 말하는 이가 있다. 실제는 밤에 못 자서 낮에 자는 것이다.

 


수면 무호흡증도 문제가 된다. 이는 잠자는 동안 20~30초가량 숨을 쉬지 않는 증상이 5번 이상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숙면은 그른 상태다.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오랜 시간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피로가 회복되지 않아 낮 동안 계속해서 졸림과 피로를 호소하게 된다.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과 김지현 교수는  " 수면 무호흡증은 잠 자는 동안 뇌에 저산소증을 초래할 수 있다 " 며  " 지속하면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 등의 심혈관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 고 말했다.

 

 

수면 중 ‘하지 불안증후군’도 밤잠을 방해하는 복병이다. 잠자려고 누우면 무릎과 발목 사이에 벌레가 기듯 스멀스멀하거나, 잡아당기는 느낌이 든다. 이 증상이 있는 사람의 90%는 하지 경련증을 동반한다. 일어나 발을 구르거나 다리를 긁으면 이상한 느낌이 사라지지만 오래지 않아 반복된다. 특히 여성에게 많이 나타난다. 철분 부족, 당뇨병, 신장병 등이 원인일 수 있어 원인 질환을 치료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 질병이 없는데도 낮에 너무 졸리면, 밤 수면의 절대량이 부족한 경우일 수 있다. 사람마다 정해진 개인의 적정 수면 양은 선택 불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낮에 최상의 뇌기능을 유지하면서 개인의 노력으로 줄일 수 있는 수면 시간은 최대 1시간 정도이다. 8시간을 자야 집중력과 기억력이 유지되는 사람이 매일 6시간만 잔다면 낮 동안에 전날 취하지 못한 2시간의 수면을 벌충하느라 발버둥치게 된다.

 

이런 사람은 낮에 졸음 참을 수 없게 된다. 결국 낮의 피로와 늘어지는 잠은 밤잠의 질을 보여주는 징표다. 낮잠에 계속 지나치게 빠진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증 등 쾌면을 방해하는 질병이 있는지 조사해봐야 한다.


드물게는 낮잠에 기절하듯 빠지는 병이 있다. 기면병이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견디기 어려운 증상이다. 스스로 졸음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인지ㆍ운동기능장애로만 나타날 수도 있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운전 중이나 작업 중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로 청소년~청년기에 잘 생긴다. 유전적 경향이 매우 강하다. 국내 환자는 3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사회생활에 지장이 많을 뿐 아니라, 사고위험이 크므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수면 중 나타나는 간질로 생각해 간질 약을 처방하기도 했지만 최근 잠이 덜 오게 하는 각성제나 기운이 빠지지 않는 항우울제로 치료한다.

 


화가 피카소는 매일 독특한 낮잠을 즐겼다.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양철 판을 놓고 붓을 쥔 손을 침대 밖으로 내놓고 잠을 청했다고 한다. 잠이 들어 손에 든 붓을 놓치게 붓이 양철 판에 떨어져 나는 ‘굉음’에 깨도록 한 것이다. 즉, 그가 낮잠에 투자한 시간은 불과 몇 초. 그것만으로도 낮잠의 상쾌함은 충분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결국 밤잠이 좋았다는 의미다.

 

 

  Tip_ 낮을 위한 밤잠 관리학.

  1. 침실에 벽시계를 치워라 - 소음과 잠에 대한 강박감을 없애준다

  2. 침실에서 일하거나 책을 읽지 않는다 - 잠도 만들어가는 습관이다

  3. 낮잠은 15분을 넘기지 마라 - 긴 낮잠은 밤잠을 방해한다

  4. 따뜻한 물로 목욕한다 - 수면은 우리의 체온이 천천히 떨어질 때 잘 이뤄진다

  5. 자기 전에 우유를 마신다 - 트립토판이란 천연 수면제가 들어 있다

  6. 밤 운동은 금물 - 자율신경이 흥분돼 각성상태가 유지된다

  7. 불면증이 심하면 수면제를 활용한다 - 수면 진입용으로 짧게 약효를 내는 약이 있다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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