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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아름다운 봄꽃과 함께한 '신 상춘곡(新 賞春曲)'

 

 

 

 

 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 엇더고

속세에 묻혀사는 사람들아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떠한가?

녯 사 풍류 미가  미가

옛사람의 운치있는 생활을 따를까? 못 따를까?

천지간 남자 몸이 날만 이 하건마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서 나만한 사람이 많겠지만

산림에 뭇쳐 이셔 지락을  것가

산림에 묻혀 사는 자연의 지극한 즐거움을 누릴 줄 모르는 것일까?

수간모옥을 벽계수 앒픠 두고

초가삼간을 시냇물 앞에 지어놓고

송죽 울울리예 풍월주인 되어셔라.

송죽이 우거진 숲속에서 자연의 주인이 되었도다.

 

 

 정극인의 가사 상춘곡을 배우지 않더라도, 4월에 흩날리는 눈을 보며 황당해마지 않았던 우리들에게 봄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인 봄꽃은 무척 반가운 존재다.  힘들고 정신없는 일상을 벗어나 가을에는 단풍구경, 봄에는 꽃구경을 하며 시 한 수 읊조리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동경해 보았을 안빈낙도의 삶이 아닐까?

 

 지난 가을 주왕산으로 비 속의 단풍여행을 떠났으니, 올 봄에는 봄 꽃에 제대로 취해보고자 했다.  하지만 ‘엘리뇨 모도키’의 영향으로 추위가 쉬 가시지 않아, 계획했던 날짜에 벚꽃은 아직 멀었다 하여 급히 광양 매화마을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른 봄 추위 속에 맑고 깨끗한 향기를 그윽히 풍기며 피어난 매화는 氷肌玉骨(빙기옥골)이라하여 사군자 중의 하나로 큰 사랑을 받는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 과연 꽃이 피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며 서울을 출발했는데,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어느새 버스는 섬진강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고 노란색 개나리와 산수유나무가 창밖으로 스쳐갈 때마다 “우와~”하는 어린애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윽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를 건너 경상남도 하동에서 전라남도 구례로 건너왔고, 하얀 눈처럼 매화가 가득한 광양 매화마을에 도착했다. 매화축제는 지난 주까지였는데, 기온이 낮아 오히려 이번 주가 매화의 절정이라고 하니 아주 좋은 때에 왔다.

 

 

 

  매화나무의 열매인 매실은 그냥 먹기엔 조금 힘든 과실이지만, 그 용도는 아주 다양하다.

 가수 조성모를 CF스타로 만들어준 음료 CF처럼 음료로 먹기도 하고 매실엑기스는 설탕대신 요리에 사용하고 소화가 안 될 때 희석시켜 먹기도 하는 등 액체 상태로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열매 자체로 장아찌를 담아서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된장, 고추장에 첨가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여름이 끝나갈 때 쯤이면 길거리에 탐스럽게 익은 매화나무들에서 매실이 쏟아져 나오는데, 진한 소주와 함께 담아 묵히면 달고 맛있는 매실주의 탄생이다.

 

 

 

 매화마을에는 이런 매실 생산품도 판매하고 있었고, 섬진강변에서 잡아 올린 재첩과, 껍질이 내 손만한 벚굴도 지역특산품이었다.

 

 

 이바 니웃드라, 산수 구영 가쟈스라

이보게 이웃들아, 산수구경 가자꾸나

답청으란 오 고, 욕기란 내일새

산책은 오늘하고, 목욕은 내일하세

아에 채산고, 나조ㅣ 조수새

아침에는 산나물을 캐고, 저녁에는 고기를 낚으세

 괴여 닉은 술을 갈건으로 밧타 노코

갓 익은 술을 두건으로 걸러 놓고

곳나모 가지 것거, 수노코 먹으리라

꽃나무 가지 꺽어, 수를 세며 먹으리라

화풍이 건 부러 녹수 건너오니

화창한 봄바람이 잠깐 불어 푸른 물을 건너오니

청향은 잔에 지고, 낙홍은 옷새 진다

맑은 향기는 술잔에 스며들고, 붉은 꽃잎은 옷에 떨어진다.

 

  

 좋은 풍경을 보며 눈이 즐겁고, 꽃향기를 맡아 코가 즐겁고, 산들바람을 몸으로 맞으니 몸이 즐겁고, 사랑하는 사람의 속삭임에 귀가 즐거우니 이제는 입이 즐거울 차례다. 맛있게 보이는 가게로 들어가 매실동동주와 재첩파전, 그리고 재첩국을 시켜본다.

 

 

 

 어릴 때 부산에서 새벽이면 잠결에 들리는 소리 “재칫국 사이소~”. 어린 마음에 재칫국이 뭘까? 먹으면 재치가 많아지나? 궁금해 했던 얘기를 집사람에게 해주니 재미있어 한다.
 뭔가 좀 멀건 하지만 매실향이 강한 동동주와 푸짐한 재첩파전을 먹고 시원한 재첩국으로 마무리하니 배도 든든하다.

 

 

 그렇게 광양 매화마을을 다녀온 지 3주가 지났으나 서울은 당최 벚꽃이 필 조짐을 안 보였다.

 꽃 구경을 나섰다가 개나리, 목련만 보고 들어오길 여러 번, 드디어 서울 여의도에 벚꽃 축제를 가보게 되었다.

 

 

 서울에도 많은 벚꽃 축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윤중로 벚꽃 축제를 가 본것은 13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즐기고 오리라 마음먹고 갔지만, 본 것은 70% 정도 개화된 벚꽃과 사람 그리고 사람 또 사람이었다.

 

 인파에 휩쓸려 윤중로에 들었다가 일단 피신하여 국회 앞을 돌아 KBS 뒤편으로 향해 가기로 했다. 여기도 사람들 많고 노점상천국이었지만 그런대로 개나리며 벚꽃들이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고, 연신 셔터를 눌러 아름다운 2012년의 봄을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공명도 날 ㅅ긔우고, 부귀도 날 ㅅ긔우니,

공명도 나를 꺼리고 부귀도 나를 꺼리니

청풍명월 외예 엇던 벗이 잇올고

아름다운 자연 이외에 어떤 벗이 있으리오

단표누항에 홋튼 혜음 아니 ㅣ

누추한 곳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여도 번거로운 생각을 아니하니

아모타, 백년행락이 이만들 엇지리

아무튼 평생 즐겁게 지내는 것이 이만하면 족하지 않는가?


 

 

해외의 수려한 절경을 보러 나가지 않더라도, 매년 봄을 꽃과 함께 맞이할 수 있다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래스카 사람들은 모르지 않겠는가? 상춘곡의 마무리 부분처럼 작은 일에도 행복해 할 줄 알고 우리의 삶을 유쾌하게 사는 것이 건강과 장수의 첩경일 것이다.

 

 

 

 

 

 

 

 

글 /  오동명  국민건강보험공단 블로그 사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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