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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독자참여] 명절날때마다 찾아오는 어머니의 산타양말

 

호미도 날이 있지마는 낫처럼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어머님같이 나를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더 말씀하지 마시오 사람들이여,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 고려속요 사모곡(思母曲)


매년 추석과 설날에 어머니는 식구들에게 양말을 한 켤레씩 선물하신다. 처음 시집오던 해부터 받았으니 어언 십 년이 넘게 이어져온 선물의 역사다. 몸이 편찮으시거나 아무리 바쁜 일이 있을 때도 어머니는 어김없이 장으로 가셔서 식구들 수만큼의 양말을 사오셨다.


사실 처음엔 어머니의 양말선물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여느 어머니들 또한 명절이 되면 으레 자식들의 명절빔이나 양말 한 켤레 정도 준비하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작년 설 때의 일이다. 당시 어머니는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 해 가을 고추를 수확하던 어머니는 부주의로 손수레와 함께 개울로 곤두박질쳤고 허리와 다리를 많이 다치셨다. 안 그래도 오랜 지병인 관절염 탓에 고생을 하시던 터였다.

명절을 앞두고 시댁에 내려가니 어머니는 그때까지 지팡이 없이는 운신조차 힘든 상태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성치 않은 몸으로 읍내까지 가셔서 양말을 사 오셨다는 것이다. 길도 미끄럽고 지팡이 없이 걷는 것도 여의치 않아 떡이랑 제수거리들은 아버님께 부탁을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그만 자식들에게 줄 양말을 사오라는 걸 깜박하신 모양이었다. 아버님은 까짓 양말 한 켤레가 대수냐고 말리셨지만 어머니는 기어이 읍내에 나가는 차를 빌려 타고 양말을 사 오신 것이다.

차례를 모신 뒤 부모님께 세배를 마치고 나자 아버님은 쌈지를 열어 세뱃돈을 건네시고 어머니는 자식들마다 고루 양말 한 켤레씩을 선물로 주셨다. 자식들은 이구동성으로 편찮으신 와중에 읍내까지 가셔서 양말을 사 오실 게 뭐냐고 지청구를 해댔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지만 늘 하던 걸 안 하려니 서운하고 맘이 허전해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냥 이 어미 마음이려니 하고 신거라.”  고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뵈니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릴 때 설날이 되어도 설빔을 얻어 입은 기억이 없다. 가난한 살림에 자식들은 많으니 가래떡이나마 뽑아 조상들께 떡국 한 그릇씩 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을 살림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설날이 되면 자식들 몫으로 양말 한 켤레씩은 꼭 잊지 않고 준비하셨다. 별 무늬도 없이 밋밋한 빨간색 양말을 서로 신겠다고 다투던 세 자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명절을 앞둔 대목장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어머니는 양말을 고르셨을 것이다. 자식들이 열한 명에 배우자와 손자들 몫까지 챙기느라 몇번씩 손가락을 구부렸다 펴며 숫자를 헤아렸을 당신이다. 한 켤레에 얼마 안 하는 양말이지만 자식들 수가 만만치 않으니 양말 값도 무시 못할 액수였겠다. 또한 손자들 성별이며 연령대까지 배려하느라 양말 한 켤레 고르는 데도 그만큼 품이 들었을 터이다.

분홍색에 귀여운 토끼 캐릭터가 들어간 양말은 유일한 손녀인 딸애 몫, 파랑색에 곰돌이 캐릭터가 들어간 것은 딸애와 나이가 같은 외손자 몫, 길이가 짧고 맵시 있는 건 막 멋을 부리기 시작한 중학생 조카의 몫… 각자의 개성만큼 모양도 빛깔도 다른 양말들이다.

무릇 선물이란 값어치를 떠나 주는 이의 정성이 으뜸이 아니겠는가. 새 양말을 신고 날아갈 듯 집 안팎을 오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봄 햇살만큼이나 자애롭다.

                                                                                                                           (조현미 경기 일산 서구 대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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