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과속 스캔들'을 재밌게 봤다. 망나니 아버지가 딸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는 흐름이 공감갔다. 이 영화가 흥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책임과 희생이야말로 가족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지금 우리 가족은 안녕한가? 이혼율 전세계 3위, OECD 2위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우리 가족은 화목한가?





이번 설 연휴에도 가족간에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 줄을 이었다. 친언니를 목졸라 살해하고, 친형을 칼로 찌르는 등의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화목하고, 서로를 믿어야할 가족 간에 이런일이 도대체 왜 벌어지는 걸까.


소통 부재가 가장 크다. 영화 <everybody's fine>이 좋은 예다. 주인공은 상처했다. 혼자 산지 오래됐다. 자식들은 장성해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산다. 첫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둘째는 잘나가는 광고회사 직원, 셋째는 라스베가스서 춤추는 댄서다. 막내는 화가다. 네명의 자녀는 아버지의 자랑이다. 마트에 들러 고기를 살때도 자식 자랑을 잊지않는다. 1년에 한번있는 가족모임. 자식들에게서 "참석하지 못한다"는 전화가 약속이나 한듯 걸려온다. 바베큐 도구를 새로 장만하며 기대했던 아버지는 실망한다. 고민끝에 아버지는 연로하고 병든 몸을 이끌고 직접 자식들을 찾아 나선다.





첫째 아들은 놀랐다. "말씀이나 하시고 찾아오시지..." 그는 지휘자가 아니다. 팀파니 연주자다. 그것도 상임이 아니다. 오케스트라에서 필요할 때만 부르는 '알바'다. 아버지는 실망한다. 아들은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화를 낸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아버지는 묻는다. 왜 거짓말 했냐는 힐난이다. 아들은 답한다. "아버지의 기대가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사실을 말할 기회를 당신이 거절했어요." 어색한 포옹을 마치고 아버지는 돌아선다. 둘째 딸을 찾아갈 참이다.


뭔가 이상하다. 휴가라는 답이 돌아온다. 딸은 아이를 돌보고 있다.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으리으리한 집은 딸의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온다는 연락을 듣고 딸이 친구에게 빌린 집이다. 스파게티를 나누며 딸과 대화를 나누던 아버지는 이렇게 오붓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면 우리들은 당황했어요. 엄마를 바꿔달라고 떼쓰곤했죠." "왜?" "아버지는 항상 우리가 잘되길 바라셨어요. 실수와 실패는 용납되지 않았어요."





첫째딸도 수상하다. 손자는 사위를 싫어한다. 소리를 지른다. 첫째 딸은 허둥지둥한다. 아버지에게 뭔가 숨기는 기색이다. 넷째 아들은 숫제 집에 없다. 직접 쓴 편지만 두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온다. 비행기를 타던 중에 정신을 잃는다. 꿈 속에서 어린 줄만 알았던 네 자녀의 진실을 본다.


첫째는 지휘자가 아니라 알바식 팀파니 연주자다. 둘째는 남편과 별거 중이고, 새로운 남자와 만나고 있다. 셋째는 레즈비언이다. 댄서가 아니라 레스토랑 알바다. 넷쨰는 마약 과다 복용으로 죽었다.





자식들은 아버지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기대를 배반하는 게 두려워서다. 덕분에 아버지는 상상속의 화목한 가정속에 혼자만 살고 있었다. 여행을 통해 진실을 알게 된 그는 이제 기대를 내려놓고 자식들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자 다짐한다. 자신이 항상 야단치던 넷째 아들의 그림 '아버지'를 보며 깨달은 진리다. "네가 내 기대를 충족할 수 없더라도 너는 내 자식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 딸이다." 비로소 가족은 대화를 시작하고 소통을 깨닫는다.


영화  <little miss sunshine>의 가족은 '막장'이다. 입만 열면 음담패설을 내뱉는 할아버지, 2류 사업가 아버지, 스트레스에 담배를 배운 어머니, 게이 삼촌, 가족과 얘기하기 싫어 묵언 수행 중인 오빠를 둔 여자아이가 있다. '예쁜 아이 컨테스트'에 참가하고 싶어하지만 전혀 예쁘지 않다. 틈만 나면 싸우는 가족이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컨테스트가 열리는 타 고장까지 '긴' 여행을 한다. 싸움은 계속되고, 할아버지는 도중에 숨을 거둔다.





이윽고 도착한 대회장. 다른 아이들은 모두 예쁘다. 노래부터 춤까지 다들 다재다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못생긴'아이는 허접하다. 할아버지에게 배운 야한 춤을 춘다. 사람들이 욕을 한다. 듣고 있던 아빠는 화가 난다. 일어나서 춤추며 호응한다. 가족들은 이윽고 무대로 난입해 함께 춤을 추고 하나가 된다. 이 영화의 백미다. 막장 가족이 그대로를 인정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가족은 건강하다. 겉으로는 막장이라도, 이 가족은 화목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 두 영화의 공통된 교훈은, 가족은 서로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족도 이래야 한다.




글 / 국민일보 기자 박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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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화두는 가족과 건강이다. 둘 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족 구성원을 떠난 나는 생각할 수 없다. 아내와 자식이 첫째다. 그 다음은 형제 자매. 부모님이 안 계시기에 그렇다. 장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형제도 자주 안 만나면 사이가 멀어진다. 남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틈 나는대로 만나는 것이 좋다. 피를 나눈 형제 이상의 관계는 없다고 본다. 자주 만나야 우애도 돈독해진다. 내가 바라는 바다.





건강은 자기가 챙길 수밖에 없다. 겉으로 건강해 보였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는 경우도 본다.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결과다. 몸에 이상신호가 오면 즉시 체크해야 한다. 그래야 큰 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추위 때문에 산책을 거르니 몸도 근질거린다. 한파가 하루 이틀 더 지속될 것이라는 예보다. 그래도 봄은 올 터다.


얼마 전 고향인 충남 보령시 청라면에 다녀왔다. 부모님 묘소에 가서 성묘를 했다. 음력으로 12월 12일이 아버지 기일이다. 형제들이 묘소에서 만나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낸다. 대신 방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그렇게 했다. 제사를 지낸 후 점심을 함께 한다. 그러한 모든 준비는 세종시에 살고 있는 바로 위 형님이 책임진다.





이번에도 형님이 형제들의 의견을 모았다. "토요일날 11시에 산소에서 참배를 하고 대천에서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이야기해요." 각자 의견를 낸다. 바로 밑 남동생: "맛있는 거 먹으면서 형제간 우애를 다져요." 제일 막내 여동생은 로맨틱하다. "바다 전망 좋은 곳으로 해줘요. 밥 먹고 바닷바람 쐬고 걷고 싶어요. 해안절경 산책로도 좋구요." 제일 큰 누나: "모두 준비하느라고 애쓰네."


형님이 보령시청 관광과에 전화해 3곳 추천을 받았단다. 그 중 경치가 뛰어난 대전횟집을 골랐다. 대천해수욕장에 있다. 꽃게찜과 쭈꾸미 샤브샤브가 전문이라고 했다. 벌써부터 입맛이 당긴다. 그보다는 형제들을 모두 만날 수 있어 신난다. 거듭 말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 형제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최근 지인의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부인이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항암 치료도 거의 불가능하단다. 늦둥이를 봤다고 좋아하던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 늦둥이는 이제 초등학교 저학년일 듯싶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까. 병이 때론 불가항력적일 수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합검진이 꼭 필요하다.


매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미리 발견할 수도 있다. 나중에 후회하면 손을 쓸 수 없다. "설마 무슨 일 있겠어" 하면서 방심했던 것이 화를 불러오는 것이다. 어떤 암이든지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내가 주례사를 하면서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부부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부모님 건강도 꼭 챙겨드려야 합니다.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도록 하십시오."





정작 나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머니도 8년 전 신장암으로 돌아가셨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 퍼져 손을 쓸 수 없었다. 사람이 안 아플 수는 없다. 자기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병원을 가까이 해서 나쁠 것은 없다. 때를 놓치면 병이 커진다. 안 아픈 게 최고다. 다시말해 건강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시 요즘 얘기. 하룻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확히 네 시간 잤다. 8시 40분 취침, 12시 40분 기상. 신기할 정도로 눈이 떠진다. 잠자기 대회라도 있다면 입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몸도 개운하다. 다만 새벽운동은 하루 이틀 더 쉬려고 한다. 물론 어제도 손목이 아파 못 나갔다. 손목 통증은 거의 다 나았다. 약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계속 아팠다면 어찌 했을까 상상하기조차 싫다.





통풍은 굉장히 아프다. 참을성 많은 나도 견디기 어렵다. 결론은 딱 하나.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것. 미리 손쓰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 뭐든지 원인 없이 아프진 않을 터. 지난 번 입원했을 땐 술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이번엔 아니다. 술 이외에 다른 원인이 있다는 얘기.


얼마 전 건강검진 결과 나쁜 콜레스트롤 수치가 좀 높게 나왔다. 그것이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병원에서 그 처방도 받았다. 그 밖의 모든 수치는 정상이다. 잘 자고, 잘 먹으면 된다. 최고의 건강관리라고 할 수 있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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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정말 중요하다. 가정의 구성원이다. 더 소중한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가족 돌봄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매일 봐서 그럴 지도 모른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가족을 최우선해야 한다. 가족을 챙긴다고 팔불출로 여기지 않는다.

 

 

 

 

나도 처음부터 가족의 중요성을 느낀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땐 일에 치여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할까. 그러나 나이들면서 그것을 깨우치게 됐다. 몇년 전부터 골프 나가는 것도 확 줄였다.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의미 있었다. 물론 골프는 재미 있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가족과 골프 중 택일하라면 가족을 택하겠다. 우리 가족은 모두 네 명. 장모님, 우리 부부, 아들이 전부다. 요즘은 장모님이 외출을 못 하신다. 지팡이 두 개에 의존해 겨우 걸을 정도다. 그 전에는 항상 넷이 같이 움직였다. 다리가 불편한 것 말고는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아들도 외할머니, 엄마 아빠를 잘 챙긴다. 아주 자상한 녀석이다. 딸을 뺨칠 정도. 아내도 마찬가지. 넉넉하진 못해도 집안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런 가족들이 곁에 있어 늘 고맙다. 직계 가족 뿐만 아니라 형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출가하면 내 식구 챙기느라 소홀하기 쉽다.

 

근 형제들과 아주 의미있는 하루를 보냈다. 우리 5남매가 부부동반으로 서울에서 모임을 가진 것. 생전 처음이다. 나의 9번째 에세이집 '오풍연처럼' 출간 기념도 겸한 자리였다. 세종에서 형님, 대전에서 남동생이 올라왔다. 나와 누나, 여동생은 서울, 부천에 각각 산다. 진작 이같은 모임을 가지지 않았던 게 조금 후회스러웠다. 형제들이 그렇게 좋아했다.

 

나와 누나, 여동생이 대전에 제사지내러 종종 내려갔지만 대전 형제들의 서울나들이는 처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형수님과 제수씨가 즐거워 했다. 12시 정각 성북동 누브티스에 모두 모였다. 승용차는 나와 여동생만 가지고 갔다. 차량 두 대로 하루 종일 같이 움직였다. 이경순 누브티스 대표님이 멋진 점심을 내 놓으셨다. 풍'스 패밀리 메뉴까지 개발했던 것. 모두 맛있게 먹었다.

 

 

 

 

점심 식사 후 누브티스 바로 이웃에 있는 길상사에 들렀다. 서울에서 기를 받을 수 있는 3대 명당 중 한 곳 이란다. 이어 교보문고로 가서 누브티스의 '오풍연 쇼 케이스'도 구경했다. 그리고 아내와 형수님, 제수씨가 차를 마시는 동안 우리 5남매만 경복궁에 들렀다. 나도 20여년만에 다시 가봤던 것. 사람이 정말 많았다. 경회루와 근정전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저녁은 여의도 산삼골. 오리훈제와 전골을 정말 맛있게 한다. 사장님이 안 계셨지만 직원들을 시켜 복분자 술도 내왔다. 형님과 남동생은 거나하게 마시고 내려갔다. 음력 11월 17일 어머니 제사 때 대전에서 다시 모인다. 7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많이 했다. 집에 돌아오는 나 역시 뿌듯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다시 한 번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첫 제사는 2010년 1월 1일이었다. 2008년 12월 14일 돌아가셨는데 윤달이 끼어 새해 첫날 모두 모였다. 엄숙한 가운데 제가 시작됐다. 맏상주였던 형님이 먼저 술을 부어 올렸다. 두 번째 잔은 차남인 내가 가득 채웠다. 이후 식구들이 돌아가며 참배를 했다.

 

한 분이 어머님을 ‘작은 거인’에 비유하며 기도를 드렸다. 베풂의 삶을 실천하셨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어머님은 그랬다. 우리 다섯 자식들에게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친․인척 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집안의 중심에 섰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가족 대소사를 모두 챙기셨다.

 

 

 

 

당시 대학생이던 아들녀석이 내 대신 할머니 임종을 했었다. 그리고 2009년 4월 6일 군에 입대했다. 놈이 마침 외박을 나와 첫 제사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가슴이 뿌듯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놈이다. KTX로 상경하면서 녀석에게 말했다. “할머니는 작은 거인이셨다. 너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잠시 후. “명심하겠습니다.” 녀석이 더욱 늠름해 보인다.

 

이제 녀석도 28살. 머지않아 장가를 갈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고 한다. 나 자신부터 가족을 챙기고, 효도를 해야 하는 이유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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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더운데 집에서 밥해 먹지 말고 오랜만에 나가서 먹을까?" 아내의 한마디에 우리가족은 여느 퀴즈 프로그램에서처럼 재빨리 버저를 누르며 제각기 다른 답을 내뱉었다. 나는 삼겹살, 아내는 아귀찜, 아들은 소고기, 딸은 탕수육. 달라도 어찌 이만큼 다를 수 있을까? 서로의 확고한 의견을 수렴해서 결국 우리가족의 저녁 식사 메뉴는 통닭이다. 우리 가족은 너무나 '다르다'. 식사 메뉴를 정하는 사소한 것부터 다소 큰 부분까지 뚜렷한 개성을 보인다. 이제부터 재미삼아 혈액형별 우리가족의 성격 탐구를 해보겠다.

 

 

 

 

 

다소 소심한 성격으로 널리 알려진 a형인 우리 집안의 장남은 어릴 때부터 조용하지만 큰(?)사고를 많이 쳤다. 조용조용한 성격이지만, 축구하다 다리를 다치고, 야구하다 팔뼈를 부러뜨리고, 놀러 갔다 오면 상처를 달고 오기 일쑤였다. 활동적인 유년시절 이후에도 친구들과 야외에서 노는 활발함과 동시에 부모님, 선생님 말 잘 듣고 모범적인 모습과 함께 축구, 야구, 농구, 인라인 스케이트 등의 야외 활동도 하는 아이였다.

 

일반적으로 조용하고 소심하다고 알려진 a형과 다른 점이 있다면 활동적이고, 조용하지만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고집을 들 수 있다. 중학생이 되면서 다이어트를 통해 살을 빼기 위해 식단조절을 한다거나 새벽까지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한다고 하는 것은 밀어붙이는 남자다운 성격도 가진 것 같다.

 

 

 

 

 

아내를 보면 참 바르다는 느낌이 든다. 법 없이도 살 사람처럼 올곧다. 다른 사람에 비해 뒤쳐지지도 유별나게 튀지도 않는 성격을 가졌다. 매사에 철두철미하기 때문에 간혹 즉흥적이지 못해서 단조롭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알차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결혼 생활 시작부터 느꼈기 때문에 지금은 아내의 성격을 존중하고 따르는 편이다.

 

사실 결혼 초기에는 즉흥적인 나의 성격과 달라 아내의 사고방식 전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아내의 성격처럼 짜여 진 계획이 있어야 같은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더 잘 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획이외에도 가계부 적기나 통장정리, 시장을 봐야 할 때 메모 같은 집안일을 기록해 두기 때문에 집안 살림을 구석구석 모르는 것이 없다. 이로써 우리 집의 실질적 보스(?)는 아내로 밝혀졌다. 100점 만점 아내가 나와 함께 우리 집을 이끌어 줘서 고맙다.

 

 

 

 

 

2005년에 개봉한 “B형 남자친구”는 모든 b형들의 원성을 샀다. 하지만 딸을 가까이서 지켜본 바, 우리집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봄 날씨'같은 아이다. 봄날의 햇살처럼 애교만점인 막내모습과 더불어 겨울바람처럼 까칠하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대부분이 삐져있거나 뾰로통한 표정이다. 이처럼 즐거웠다가 바로 심통을 부리는, 앞뒤 다른 일분일초 갈대 같은 마음덕분에 집안 분위기가 얼음장이 되기도 하고 꽃밭이 되기도 한다.


그 분위기를 감지하기 어렵지만, 질투나 어리광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신호로 보인다.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엄마아빠의 안마는 물론이고 집안 청소나 정리정돈을 하는 애교쟁이 효녀였다. 고등학생때는 사춘기여서 그런지 공부에 흥미가 없어 보였지만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꿈을 찾은 후에는 교내활동, 대외활동, 아르바이트, 공모전 수상, 해외봉사에 장학금까지 받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가고 있다.

 

 

 

 

 

흔히들 AB형은 같이 지내기 어렵다고 한다. B형의 진화버전이라 감정기복이 심하다고 한다. 가족들은 나의 성격을 맞추기 참 어렵다고 한다. 특히 아내는 "밖에서는 100점짜리 남편이겠지만 집에서는 ......"이라며 말을 줄였다.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것, 못해본 것이 너무 많다. 그림, 플룻, 사진, 사내 모델 등 활동적이고 대외적인 활동을 좋아한다. 한번 태어난 인생인 만큼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볼 예정이다. 이왕이면 나의 특기를 살려서 남들에게 봉사할 수 있으면 더 좋다.

 

그 예로 수년 동안 배운 사진기술로 무료 영정사진 봉사에 사용한다거나, 봉사에 뜻을 둔 분들과 봉사동아리를 만들어 정기적인 도움을 드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간혹 "너무 나이가 많아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를 보고 힘을 얻었으면 한다. 아직도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청춘이라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다양함' 우리 가족을 대변해 주는 말이다. 비록 사인 사색의 너무나 다른 성격을 가진 우리가족이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위기가 닥쳤을 때 해결방안이 네 개나 되는 셈이다. 하나로 똘똘 뭉쳐지는 것도 좋지만 우리처럼 각자의 생각과 개성을 존중하면서 가족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뭉쳐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나'라는 의미가 꼭 통일된 형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함께'라는 것이 아닐까?

 

아들과 딸을 보면 꼼꼼하고 세심한 기록가의 모습은 아내를 닮았지만, 대담하고 진취적인 활동가의 모습은 나를 닮지 않았나 싶다. 나와 사랑하는 아내를 닮은 아들과 딸이 건강하게 한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각자 주관이 뚜렷하기 때문에 식사메뉴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끝나지 않는 토론은 이어지겠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토론을 이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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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이 땅에서 불과 35년 만에 올림픽을 개최했으니 말이다. 세계는 '한강의 기적'에 혀를 내둘렀다. 수많은 개발도상국의 모델이 되었다. 1996년에는 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으로 가는 발판에 올라섰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물론 1997년부터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지만 전 국민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4년 만에 전액 상환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세계에서 7번째로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엄청난 성과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밤과 낮,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또 일하는, 죽도록 일하는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OECD 국가 중에 주당 근무시간은 가장 높고, 수면시간은 가장 적은 나라라고 한다. 이 정도 했으면 좀 쉬어가만도 한데 현실은 다르다. 이제는 국민소득 3만 달러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특히 세계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국가도 기업도 모두 위기라고 말한다. 국가는 기업을, 기업은 국민의 고삐를 계속 죄고 더욱 박차를 가한다. 지금까지도 죽을힘을 달렸지만 또 다시 달려야 하다니! 국민은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이른바 번 아웃 신드롬이다.

 

 

 

 

 

아웃이란 완전히 지쳐서 소진된 상태를 말한다. 번 아웃은 단순한 신체적 피로나 피곤과는 다르다. 몸이 지친다면 푹 자거나 쉬면 회복이 된다. 핸드폰 베터리가 방전이 되었을 때 충전기만 꽂고 기다리면 되듯이 말이다. 그러나 번 아웃은 더 이상 충전이 되지 않는, 즉 베터리의 수명이 다 된 상태다. 아무리 충전기를 꽂아도 소용없다.

 

번 아웃이 되면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많이 자더라도 회복되지 않는다. 몸이 지친것이 아니라 마음이 지쳤기 때문이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 일 생각이 떠나지 않아 괴롭고 불안하다. 일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일이 끔찍하게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에서는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불면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은데, 눈을 붙여도 잔 것 같지가 않다. 꿈에서도 무엇에 쫓기거나 조바심을 내는 일이 많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허기가 지는 것은 배가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번 아웃은 크게 심리적 증상과 신체적 증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심리적 증상으로는 피로감과 무기력, 우울이나 불안, 분노와 짜증이 있고, 신체적 증상으로는 불면증이나 폭식증, 대인기피나 출근(직무)거부가 있다. 번 아웃을 방치할 경우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알코올이나 게임, 쇼핑중독에 빠질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을 빈번하게 겪기에 가정에서는 배우자나 자녀에게 폭언이나 폭행을 일삼을 수도 있다. 당연히 직장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극단의 고립감과 무기력, 자기비난에 빠져서 자살시도나 자해를 할 수도 있다. 당연히 수면과 섭식 문제와 스트레스 때문에 온갖 신체적 질병에 취약해지기 쉽다.

 

 

 

 

 

어떻게 해야 번 아웃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번 아웃은 일종의 경고등이다. 자가용 계기판에 경고등이 들어왔을 때 제대로 된 수리를 하지 않고 무리하게 달린다면 폐차를 시켜야 할지 모른다. 번 아웃은 우리 삶의 방향이나 방식이 잘못 되었다고 알려주는 빨간불이다. 점검이 필요하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일하고 있는지 되짚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잘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일하기 위해 살게 되지는 않았는지, 가족을 위해서 일한다지만 정작 일 때문에 가족이 고통 받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필요하다면 이직을 고려하거나 새로운 삶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만약 현재의 삶의 방식과 방향을 바꿀 수 없다면 되도록 일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직장에서 성공을 쫓아가다가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으니, 자신이 욕심을 내는 것이 있다면 포기하는 것도 좋겠다. 어떻게 되었든 시간을 확보해 제대로 쉬는 것이 필요하다. 제대로 쉰다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의 휴식이 먼저다. 마음이 편안해 지는 방법으로는 적절한 강도의 운동이 좋다. 운동을 하면서 근육의 긴장감, 심박의 증가도 느끼고 운동 이후의 이완과 상쾌감을 느껴보자. 이와 더불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는 것이 좋다. 사람은 뿌리부터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현대 사회는 서로를 대상화시킨다. 필요에 의해서 만나고 헤어지며, 상대를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만든다. 이것이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따라서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 번 아웃에서 회복될 수 있다.

 

글 / 심리학 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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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묘한 기분이다. 운명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고, 가족보다 더 가까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상대가 이성이라면 어떨까?

 

이츠키는 중학교 3년 내내 한 여학생과 같은 반이었다. 여학생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이츠키였다. 동명이인이었던 것.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두 사람은 놀림도 많이 받았고, 도서부장 일도 같이 해야 했다. 이츠키는 소녀를 좋아하기 시작했지만 워낙 수줍은 탓에 자신의 감정을 전혀 표현하지도 못했다. 소녀 이츠키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소년 이츠키는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숨겼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전학으로 소년은 첫 사랑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이츠키는 시간이 흘러흘러 그렇게 어른이 되었고, 어느 날 대학 선배의 소개로 히로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여자는 놀랍게도 자신의 첫사랑과 너무나 닮았다. 이츠키는 주저하지 않고 히로코에게 마음을 전했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결국 약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츠키는 히로코에게 줄 약혼반지를 준비해 놓고도 선뜻 청혼하지 못했다. 사실 이츠키의 마음에 있었던 사람은 히로코가 아니라 이츠키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츠키는 산에서 조난당해 죽음의 문턱에서도 첫 사랑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도대체 첫사랑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강렬할까? 비단 이츠키뿐이랴. 많은 사람들이 이츠키처럼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첫 사랑이 강렬하게 남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과 주장이 있겠지만,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완결을 추구하는 인간의 고유 성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사람에게는 한 번 시작한 것은 끝을 맺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자이가닉(Zeigarnik)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고안했다. 한 집단의 피험자에게는 과제를 다 풀도록 하고, 다른 집단의 피험자에게는 과제를 다 끝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 과제를 기억하라고 했을 때, 과제를 미완성한 집단의 피험자들이 과제를 완성한 집단의 피험자들보다 그 과제를 비교적 정확하게 기억했다. 이처럼 완성된 과제보다 미완성된 과제를 더 오래 마음 속에 간직하는 현상을 자이가닉 효과라고 한다.

 

 

 

 

이는 비단 기억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심리치료 이론 중 하나인 게슈탈트 치료에서도 이와 비슷한 개념인 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에 대해 말한다. 과거의 사건 중 해결(완결)되지 않은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게슈탈트 치료자들은 내담자들의 미해결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과거의 연인이나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께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내담자가 있다면, 빈 의자에 그 사람이 앉아 있다고 상상하게 만든 후 그 말을 하도록 한다.

 

 

 

 

 

첫사랑은 실수가 많다. 제대로 고백해 보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혹은 어렵사리 고백은 해놓고, 사소한 싸움으로 등을 돌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충동적으로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고는 그 즉시 후회가 들어 말을 주워 담고 싶지만, 첫 경험이라 모든 것이 미숙하고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춤주춤하다가 정말 헤어지게 된다. 또 상대방의 이별 통보에 얼떨결에 동의하는 바람에 정말 이별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첫 사랑은 시작도, 중간 과정도, 끝맺음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되지 않기 쉽다. 당연히 마음에 남을 수밖에.

 

 

 

 

우리의 마음은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해결하라고 계속 추구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하려고 한다. 이츠키 역시 그랬다. 제대로 고백도 못해보았던 자신의 첫 사랑 이츠키와 닮은 여인 히로코를 만나자마자 프로포즈를 했다.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어쨌든 조난사를 당하긴 했지만, 이츠키는 나름의 방법으로 미해결 과제를 해결한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미해결 과제를 완수하려는 이츠키의 노력은 조난사를 거치면서 히로코에게 미해결 과제를 던져주었다. 히로코는 약혼자 이츠키가 세상을 떠난지 2년이 지난 후에도, 심지어 자신을 그토록 사랑해주는 또 다른 남자 아키바가 있음에도 이츠키를 잊지 못한다. 아키바가 보통의 남자였다면 아마 전 약혼자 이츠키를 못 잊는 자신의 약혼녀에게 망각을 강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키바가 선택한 방법은 외면이 아니라 직면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존중하면서도 그 마음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게 도와주었다. 이츠키의 옛 주소로 편지를 쓰는 것도 인정해 주었고, 이츠키가 살았던 그 동네로 여행도 떠났다. 마침내 이츠키가 조난사 당했던 그 산으로 자신의 여자친구와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히로코로 하여금 이츠키를 향해 마음을 전하려고 독려한다.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스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

 

보는 이의 마음을 울렸던 안부인사, 절절한 외침, 아련한 메아리.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히로코의 마음의 미해결 과제는 완결 상태로 접어들게 되었다. 게다가 여자 이츠키와의 서신 교환을 통해, 히로코는 이츠키의 사랑이 자신이 아닌 여자 이츠키였음을 알게 되었다. 

 

내면의 소리를 잘 듣고, 그 소리에 제대로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억지로 마음을 바꾸려거나 고쳐먹으려고 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 직면할 때, 우리의 삶은 환상에서 현실로, 고통에서 행복으로 내려앉게 될 것이다.

 

글 / 심리학 칼럼니스트 강현식
이미지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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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진료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이 불안장애를 가장 많이 앓고 있다고 한다. 청년 시절에는 꿈을 꾸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지 못해서 나온 결과다. 나이 들어 의지할 곳 없이 노년을 스스로 책임져야하기에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리 할아버지들. 어떻게 해야 할아버지들의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 상황별로 알아보자.

 

 

 

 

평생 가족을 위해,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자신의 삶은 없었고, 가족의 삶과 애국만이 있었을 뿐이다. 새벽 출근과 늦은 밤 퇴근, 직장에서는 상사 눈치 부하직원 눈치, 퇴근 후 이어지는 원치 않는 회식, 주말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게 만드는 직장 상사의 전화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돈 많은 집안 배경 가진 친구들이야 아쉬울 것 없이 직장을 떠나곤 했지만, 그런 입장이 아닌지라 아무 말 않고 열심히 일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다. 그 때는 누구나 그렇게 일했고, 살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고통을 참고 일했다.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면서 하루 이틀, 1년, 10년, 그 이상을 견뎠다. 결국 꿈에도 그리던 그 날이 현실이 됐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처음에는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여유 있게 신문을 읽고 TV를 보고 식사를 했다. 젊은 친구들이 허둥지둥 직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조용해진 동네에 나와 천천히 산책도 했다. 가끔 친구들이나 옛 동료들을 만나기도 한다. 점심을 먹은 후 노곤해진 몸을 달래지고 안락의자에 잠시 기댔다. 잠깐 눈을 붙였는데 꿈을 꿨다. 꿈속의 자신은 30년 전이었다. 아침부터 허겁지겁 직장으로 달려가 아침부터 회의다 결제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식당에서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점심을 먹으니 너무 졸린데 일이 많아 도저히 잘 수가 없다. 직장 상사의 호출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니 잠이 깼다. 꿈이었다. 다행이다. 꿈은 뒤숭숭했지만 잠깐 눈을 붙이고 나니 피로가 싹 가신다. 자신의 처지가 신선놀음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 내로 처리해야 할 집안의 잡일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저녁시간이다. 저녁을 먹고 TV를 틀었다. 드라마와 뉴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예능을 좀 보다보니 어느 덧 잘 시간이다. 그렇게 오늘도 마음 편히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에 기분마저 좋다. 그렇게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이런 신선놀음이 하루 이틀 지나자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왠지 자신이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 마냥 불안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느끼는 것은 더 이상 여유가 아니었다. 무료함이었다. 오후에 졸린 눈을 잠시 붙이고 일어났을 때 느끼는 것은 개운함이 아니었다. 자신이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불안함이었다. 예전에는 은퇴를 한 후 작은 가게라도 하겠다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친구들을 보고 “왜 사서 고생이냐, 사서 고생은 젊어서나 하는 것”이라면서 타박했는데 이제는 그 친구들이 부럽기까지 하다. 일하면서 너무 힘들었기에 일을 안 하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왜 막상 꿈꾸던 상황이 되자 불안하고 무력한 것일까? 이런 감정이 당연하기는 할까?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본래 성향이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일이 너무 많아도 문제지만, 할 일이 없어도 문제 수 있다는 말이다. 마치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약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진다고 한다. 그 증거가 은퇴자나 실직자가 겪는 불안과 우울, 무기력이다. 이런 상황을 벗어날 방법은 하나다. 일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후 자금을 사용해 무리하게 사업을 하는데, 이것은 위험할 수 있다. 꼭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자원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 지역 사회를 둘러보면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자원활동이 적지 않다. 지역신문을 살펴보거나 동사무소나 도서관, 사회복지관을 직접 찾아가 보는 것도 좋다. 아니면 시간제 근로(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떻게든지 살아있는 동안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 하는 존재다. 자신의 시간과 건강을 고려하여 적절한 일을 하게 되면, 불안과 우울,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보면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가족을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으로서의 역할인 줄 알았다. 일제 강점기 후반이나 한국전쟁 전후에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은 확고해졌다. 그래서 결혼과 동시에 일에 매달렸고, 직장에 헌신했다. 가사와 육아는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크는지 몰랐고,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얼굴 보다 등을 보여주었다. 대화보다는 침묵이 길어졌다. 아내의 반응도 별다르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은 달랐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나타나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말이 없어졌다. 자신은 그저 열심히 가족을 위해 일했을 뿐인데, 가족의 반응이 너무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자녀들은 모두 출가했다. 손녀손자도 있는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하락한 가장이라는 지위는 올라갈 줄 모른다. 자녀들은 물론 손주들의 소식도 아내를 통해서 듣게 되니 속상하다. 어떻게 해야 가족과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다. 자연스럽게 가족과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동안 가족으로부터 소외되어 억울한 마음이 있다고 갑자기 덜컥 다가가서 잔소리나 푸념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상처를 받았을 수 있는데,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태도변화를 보이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관계는 더 안좋아질 수 있다.

 

대화의 목적은 누가 잘못했는지 따져서 사과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이 원망을 하면, 그 원망도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녀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내와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아내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서러운 마음도 있겠지만, 아내 역시 혼자서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면서 너무 지쳤을 것이다. 또 시댁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받았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당신에게 의지를 하고 위로를 받고자 했겠지만, 그 때 당신은 아내의 마음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아내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위로를 받으면서 힘든 시간을 이겨냈고, 아이들 역시 엄마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느꼈을 뿐이다.

 

이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얼마가 될지 모르는 인생의 남은 시간 속에서더라도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손주들과의 관계로 들어가고 싶다면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열쇠는 아내나 아이가 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의 손에 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고 동료들과 함께 찾았던 포장마차. 그것이 유일한 삶의 낙이고 위로였다. 요즘 젊은 아버지들은 회사의 공식적 회식 자리에서도 아내나 아이의 핑계를 대로 일찍 들어간다고 하지만 그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아내나 아이 이야기를 하면 ‘공처가 아니냐!’면서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원하던 원치 않던 술자리에 빠지지 않게 되자, 어느 새 유일한 삶의 낙은 퇴근 후 소주 한 잔이 되어 버렸다. 

 

한 잔 기분 좋게 걸칠 때마다 아이들 생각이 나서 과자를 한 아름 사서 집에 가거나 아이들에게 용돈이라도 쥐어주면 그렇게들 좋아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맨 정신에 집에 들어가면 서로가 서먹해서 어떨 때는 일부러 술 약속을 만든 적도 있을 정도다. 술이라고 한 잔 들어가야 아내나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났었다. 이러다 저러다보니 삶의 유일한 낙은 술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그 시절도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직장인도 아니다. 퇴근 후 한 잔을 기울일 사람이 없게 되자, 집에서 반주(飯酒)로 한두 잔 먹기 시작했다. 이제는 술김에라도 마음을 표현할 아내도, 아이들도 없다. 아내는 바깥 일이 많아진 것처럼 보이고, 아이들은 출가했거나 늦게 오니 얼굴을 마주칠 일이 없다.

 

가끔 얼굴을 보는 아내나 자녀들은 그렇게 집에서 혼자 술 마시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늘어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술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알코올 중독은 물론 알코올 치매, 그리고 술 때문에 벌어지는 온갖 사건사고나 건강 악화가 남의 일 같지 않다. 하지만 별 즐거움이 없는 세상, 술 한 잔이라도 있으니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데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술 이외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술과 가까워지게 된 이유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술이 좋았다기보다는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거나,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였다. 집 안에서는 술김에 평소 표현 못하던 마음까지 표현할 수 있지 않았는가! 

 

결국 술에서 벗어나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려면 다시 그 시작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이가 들어 옛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면, 지역의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을 찾아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것도 좋다. 인터넷 사용이 크게 어렵지 않다면, 젊은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동호회 활동도 좋다. 술이 아닌 다른 삶의 즐거움을 찾으려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래 사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이런 의심이 드는 이유는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떠남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이별을 맞이한다는 의미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대가족제였기 때문에, 배우자가 사별해도 자녀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녀들도 자신의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시대다. 명절 때 얼굴이나 볼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내가 아프다면 걱정이 앞선다. 이러다가 먼저 떠나는 것은 아닌지, 혼자 남겨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친구들 가운데 홀로 남은 이들을 보면 남일 같지 않다. 노인들이 고독사했다는 기사만 봐도 가슴이 철렁하다. 어떻게 해야 홀로 살아가야 하는 서러움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최근 노인들의 재혼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방법 역시 홀로 살아가야 하는 서러움과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체가 해결방법은 아니다. 제대로 된 마음의 준비가 없다면 재혼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력가 노인과 재혼을 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재산을 요구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자녀들과의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노인들의 재혼은 법적 관계가 아닌 경우도 적지 않아, 관계가 쉽게 깨지기도 해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해가 많다.

 

당장의 외로움과 서러움을 없애기 위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급급하다보면 이런 일이 벌어지기 쉽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젊은이나 노인이나 다르지 않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욕구 해결이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충분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자녀나 이웃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모두 무시해서는 안 된다.

 

꼭 누군가를 새로 만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어차피 누군가를 만난다 해도 또 다시 혼자가 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새로운 인연을 만드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인식하고 표현해야 한다. 다른 말로 현재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드러내지 못한 감정이 있다면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살았을지라도 이제는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혼자 남겨진 상황을 잘 이겨낼 수도 있다. 좋아하는 마음과 섭섭한 마음, 속상한 마음과 행복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새로운 관계를 맺더라도 또 다시 외로워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죽음과 질병, 노화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려 하지 말고 정확히 인식하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배우자를 비롯해 형제나 자녀 등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을 떠올린다. 이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 사람들은 시작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심리학자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인류의 현자들은 한결 같이 마지막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생이라고 다르겠는가? 우리의 삶은 준비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으나, 죽음은 경우에 따라서 준비할 시간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혼자 남겨진 시간이 그 준비의 시작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 / 강현식 심리학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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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섬유종은 신경 다발에 발생하는 양성 종양의 일종이다. 신경섬유종이 한 개만 단독으로 발생한 경우는 유전성 질환이 아니고 동반되는 이상이 없으므로 간단히 제거하면 된다. 하지만 이 신경섬유종이 여러개 나타나는 신경섬유종증은 문제가 좀 달라진다.

 

 

신경섬유종증은 상염색체 우성 양식으로 유전되는 희귀난치성질환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만 5,000명 정도의 신경섬유종증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크게 제1형(NF1)과 제2형(NF2), 슈반종증 등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제1형은 신생아 4,000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며 피부에 담갈색 반점이 나타나고 말초신경에 종양이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다.

 

제2형은 신생아 40,000명당 한 명꼴로 발생해 뇌신경(뇌에서 나와 얼굴 주위눈, 귀, 입 등으로 가는 신경)이나 척수신경(척수에서 나와 목, 몸통, 팔, 다리로 가는 신경)에 종양이 발생한다. 슈반종증은 제2형과 비슷한 양상을 띠나 제2형 신경섬유종의 특징인 내이강 신경섬유종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신경섬유종증은 환자별로 증상의 정도 차이가 큰 질환이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신경섬유종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증상이 아주 가벼워 어른이 되어서도 담갈색 반점만 몇 개 가지고 있기도 한다. 반면 어떤 사람은 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큰 종양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제2형은 주로 10~20대에, 슈반종증은 대체로 중년 이후에 증상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신경섬유종증 환자는 가족이나 친척 중에 비슷한 임상적인 증상이 나타나는지 잘 알아두고 병원을 찾아야 하며, 신경섬유종증으로 인해 다른 종양이나 이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세밀한 진찰 및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것을 권장한다.

 

심경섬유종을 이기는 사람들  www.nfkorea.or.kr

후원금 납부 계좌  국민은행 : 702701-01-317123, 농협 : 421017-51-019664

 

글 / 최가영 기자

도움말 / 신경섬유종을 이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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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가구 시대’가 뚜벅뚜벅 걸어온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사는 사람만 450만 명이다. 대한민국 4가구 중 1가구는 혼자산다는 뜻이다. 아빠, 엄마, 아들, 딸이 오손도손 살아가던 ‘4인 가족 모델’은 갈수록 구식으로 밀려난다. 할아버지·할머니가 손자·손녀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던 풍경은 말그대로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기러기 아빠, 이혼, 홀로된 노년, 수명 연장 등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이유는 다양하고 이를 보는 시선 역시 제각각이다. 누구는 ‘가족의 진화’로 담담히 받아들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외로워지는 시대’의 반영이라고 씁쓸해 한다. 가족의 진화이든, 외로워지는 시대의 반영이든 급증하는 1인 가구는 주변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좀 더 따스해져야 함을 함의한다.       

 

 

 

4가구중 1가구는 '나홀로'

 

통계청이 올해 초 발표한 ‘한국사회 동향 2012’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우리나라 1인 가구는 전체의 23.9%로, 4인 가구(22.5%)를 앞질렀다. 1인 가구 비율은 1990년 9%에서 2000년 15.5%,  2010년 23.9%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최근 20년간 1인 가구 비중은 2배 이상 급증하며 베이비붐 이후 가족구성에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2012년 말 기준으로는 1인 가구 비율이 25.2%까지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히 아빠, 엄마, 아들, 딸이라는 전형적인 4인 가족의 틀은 빠르게 깨지고 있다. 1990년 29.5%에서 2000년 31.1%로까지 높아진 4인 가구 비율은 가파르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통계청은 2035년에는 4인 가족 비중이 9.8%로, 10%를 밑돌 것으로 전망했다.

 

자녀의 유학으로 홀로 남겨진 ‘기러기 아빠’, 고향을 떠나 자취하는 대학생, 결혼을 미루고 부모님을 떠나 독립해 사는 30~40대, 이혼으로 혼자 된 중년, 덩그러니 홀로 된 노년…. 혼자 사는 집이 늘어나는 요인은 다양하다. 1인 가구의 급증은 핵가족이 더 분열되는 현상이고, 장수시대가 낳은 또 다른 가족의 모습이다. 염유식 교수(연세대 사회학과)의 말처럼 “1인 가구는 그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상관없이 뚜벅뚜벅 다가오는 우리사회의 ‘확정된 미래’다.

 

 

 

선택의 자유 vs 불가피한 고립

 

1인 가구의 급증은 기본적으로 핵가족이 한 단계 더 ‘핵분열’을 하고 있는 결과다. 독립하고 싶은 ‘자유의 의지’가 그 어느 시대보다 커졌다는 의미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독립을 원하고, 부모 역시 자식에게서 ‘홀로서기’를 선택한다. 가족 구성원 자체가 적어지니 1인 가구가 늘어날 소지가 그만큼 커진 것이다. 늦어지는 결혼적령기, 늘어나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 증가하는 황혼이혼도 ‘나홀로 가구’를 양산하는 사회적 변화상이다. 급증하는 ‘홀몸 노인’은 특히 장수시대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다.  1인 가구가 된 이유는 미혼(44.5%), 사별(29.2%), 이혼(13.4%)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른바 ‘솔로 이코노미’(solo economy) 시대도 활짝 열리고 있다. 1인 가구가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떠오르면서 식품, 주택, 소형 가전 등의 관련 산업이 이들을 겨냥한 제품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솔로 이코노미의 급성장은 실제 수치로 입증된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레토르트·냉동식품 등 즉석요리식품 생산은 최근 3년간 2배나 급증했다. 올해 편의점 판매에서도 밑반찬 삼각김밥 도시락 등 간편식 매출이 크게 늘었다. 홈쇼핑도 1인 가구의 눈높이에 맞춘 상품들로 독신자들의 소비심리를 부추긴다. 일본 캐나다 유럽 등에선 이미 일반화된 주거 유형인 ‘셰어하우스’(share house)도 확산되는 추세다. 셰어하우스는 한지붕 아래에서 방이나 욕실 등 개인공간은 따로 쓰면서 거실이나 주방을 같이 씀으로써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거주 형태다. 싱글들로선 주거비를 줄이고 외로움도 달래니 ‘일석이조’다.

 

 

 

더 절실해진 '더불어 사는 지혜'

 

1인 가구가 가족의 표준은 분명 아니지만 염 교수의 표현처럼 ‘뚜벅뚜벅 다가오는 확정된 미래’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년 후에는 3가구 중 1가구가 혼자 산다는 분석도 나왔다. 홀로사는 시대엔 그림자도 짙다. 독신이 이따끔 TV에서 그려내는 낭만만은 아니다. 생계, 질병, 외로움은 1인 가구에 따라다니는 어두운 수식어들이다. 얼마전 늦가을의 쌀쌀한 날씨에 ‘4년간 가족을 못봐 몸건강, 정신건강’을 모두 잃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50대 기러기 아빠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홀로 남은 자의 아픔을 보여주는 이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공자가 강조한 인(仁)을 풀어보면 두사람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가 곧 어짊이라는 뜻이다. 결국 인은 이웃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다. ‘1인 가구로의 진화’를 막을순 없다해도 더불어사는 지혜를 터득해야 덜 고독한 1인 가구 시대가 열린다. 경제대국이라는 슬로건이 아무리 나부껴도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지혜가 빠지면 부자들이 사는 소인배의 나라일 뿐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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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학교에서 가훈을 조사하는 숙제를 종종 내주곤 했다. 사실 먹고 사는 일이 급했던 시절이니 뼈대 있는

        집안이 아니고야 제대로 된 가훈이 있을리 만무했다. 분명 대다수의 부모님들은 학교 숙제라니 그제야 가훈을 결정

        하셨던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숙제로 조사해 온 가훈의 상당수가 엇비슷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왔던 것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이었다.

 

 

 

 

 

 

 

왜 가정이 중요한가?

 

가족의 갈등을 다루는 가족치료는 심리치료의 한 분야다. 가족치료의 대가인 사티어라는 심리학자는 가족(family)을 가리켜 사람을 만드는 공장(factory)이라 했다. 노골적인 비유지만 생각할수록 참 적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두 남녀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후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사람의 몸과 마음 모두 가정에서 만들어진다.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을뿐더러 사고와 행동의 패턴까지 배우게 된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가정이 중요하다. 굳이 심리학자들의 거창한 이론을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사람은 자고로 보고 듣는 것의 영향을 상당히 받는다. 특히 어릴수록 더욱 그렇다. 얼굴표정, 유머감각, 인간관계, 장래희망과 식습관에 이르기까지 가정의 영향은 광범위하다. 그래서일까? 어른들은 자녀가 결혼을 한다고 할 때 자녀의 배우자가 될 사람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까지 고려한다.

 

 

 

과거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

 

어린 시절이나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은 과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운명론, 결정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고 훌륭하게 된 사람들의 예는 무수하게 많다. 게다가 한 가정에서 태어난 형제라고 해서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왜 과거를 극복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생기는 것일까? 그 이유는 관점의 차이다.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과거를 떠 올린다. 현재를 보더라도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과거를 극복하는 사람들은 힘들었던 과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려고 한다.

 

사람들 중에는 과거의 가정환경을 탓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시절 조금 더 좋은 환경을 부모가 만들어 주었더라면, 부모가 자신에게 더 큰 사랑을 주었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이들에게 지금도 부모님이 그대로인지 물어보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의 연로한 부모님을 볼 때에도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상처를 곱씹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가정이 중요하다

 

한국사회는 가족주의 문화다. 자녀가 성인이 되었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것을 당연시 할 정도로 가족을 중시한다. 이런 문화에서 가정이 편치 못한데 행복할리 있을까? 이와 반대로 가정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다면 집 밖에서 당하는 아무리 힘든 일이라고 극복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가정을 편케 여기지 않는 상당수의 이유는 과거의 갈등이다. 과거의 갈등 때문에 지금도 가정이 불편하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물론 과거를 묻어두라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상처가 없었던 것처럼 살라는 것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도 있고, 확인할 것도 있다. 그리고 어떨 때는 사과를 받거나 해명을 들어야 할 것도 있다. 그러나 이런 걸림돌이 있다고 가정의 행복을 포기하기엔 너무나 값지다. 비록 과거의 가정은 불행의 시작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가정을 행복의 시작으로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력과 애씀이 절실하다.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마주 앉아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 모두가 이런 필요성을 느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라도 누군가는 나서서 시도해야 한다. 사람은 ‘좋지만 어색한 것’보다는 ‘나쁘더라도 익숙한 것’에 더 끌리는 법이라 가정의 분위기를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과거를 뛰어 넘어 행복한 지금의 가정을 만드는 일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정말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지금의 가정에서 그 행복 찾기를 시작할 수 있다. 기회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바로 부모에게나 형제, 배우자, 자녀에게 안부 문자나 전화를 걸어보자. 식사를 제안하고 선물을 준비해 보는 것도 좋다. 마음을 담은 감사편지도 좋은 시도다. 가화만사성은 단지 보기 좋은 가훈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있는 몇 안 되는 진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글 / 강현식 심리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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