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가지 마라. 그대 안으로 들어가라.”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은 애절한 자기성찰이다. 그는 젊은 시절의 방탕과 욕망을 벌거벗겨 ‘참회대’에 세웠다. 그 참회 위에 믿음을 심었다. “당신은 당신을 향해 우리를 지으셨기에 우리의 마음이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까지는 우리의 영혼이 평온을 누릴 수 없습니다”는 그의 고백은 믿음이 굳은 자에게나, 믿음이 약한 자에게나 포근한 영혼의 안식을 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은 인간의 행복이 외물(外物)에 있지 않고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깊으면 고요하고, 고요하면 비친 형상이 이그러지지 않는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善)하다고 했다. 맹자는 그 근거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꼽았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씨앗이 있으니 정성껏 품으면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봤다. 순자는 생각이 달랐다. 순자는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순박함에서 멀어 진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욕망·탐욕·시기·질투는 스스로 멈추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니 인의예지를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교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성을 보는 시각은 달랐지만 맹자·순자는 모두 선한 세상을 꿈꿨다. 맹자의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인간의 본성이 모두 선하다면 세상에 악인이 어찌 그리 넘쳐나는지요?” 맹자가 답했다. “욕심 때문이지. 욕심이 지나치면 어느 순간 본성을 덮어버리거든.”





철학자 니체는 인간의 정신을 3단계로 구분했다. 1단계는 ‘낙타의 정신’이다. 내가 모든 짐을 지고 가겠다는 복종의 정신이다. 희생하고 고난을 짊어질수록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니체는 이런 정신을 얕게 봤다. 2단계는 ‘사자의 정신’이다. 의롭지 않는 것에 과감히 저항하는 정신이다. 니체는 사자의 정신을 낙타의 정신보다 높게 봤지만 여전히 최상은 아니라고 했다. ‘사자의 정신’이 품고 있는 대립의 불씨 때문이다. 최상인 3단계는 ‘어린이의 마음’이다. 내것 네것을 가르지 않고 더불어 즐기는 원초적 인간 유희의 정신이다. 탐심에 찌들지 않고,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는 순수함의 경지다. 순수함은 나이와 더불어 퇴색한다. 그러니 가끔씩 순수의 순도를 체크해보자. 건강한 영혼에 건강한 신체가 깃든다.




외물(外物)은 늘 현혹적이다. 아무리 가져도 더 가진 사람이 있고, 아무리 높아져도 더 높이 오른 사람이 있다. 대부분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 남의 떡은 언제나 커보인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중국 성리학을 집대성한 송나라 시대의 학자 주자는 <근사록(近思錄)>에서 “사람의 마음에 주됨이 없으면 물레바퀴처럼 돌기만 할 뿐 멈춰설 곳을 모른다”고 했다. 주자는 공자의 제자 자하의 말을 가슴에 새겨 <근사록>이란 이름을 붙였다. “널리 배우되 뜻을 독실히 하고, 간절히 묻되 가까운 것부터 생각(近思)하면 인(仁)은 절로 그 가운데 있다.”  뜻을 독실히 한다는 건 본래의 나로 돌아가, 나를 바로 세운다는 의미다. 가까운 것부터 생각한다는 것 역시 스스로의 중심을 세운 뒤 넓은 세상을 본다는 얘기다.





나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만사 헛거다. 밖으로만 눈을 향하고, 밖으로만 귀를 세우면 영혼은 갈수록 쪼그라든다. 세상에만 촉을 곤두세우면 호흡이 거칠어진다. 거친 호흡은 건강에도 적신호다.  밖으로만 나가지 말자. 안으로 들어가자. 내면의 고요함에 머물자. 행복은 바로 그곳에 있다. 밖의 물건에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 말자. 외물과 다투면 덕이 쇠하고, 마음도 흐려진다. 세상은 삶에 집착하고 교묘히 출세한 사람을 일러 흔히 지혜롭고 꾀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한데 이건 알아야 한다. 세상의 평판이 늘 정답은 아니다.




‘답다’는 건 나잇값을 하는 일이다. 열정이 식은 청춘, 관용이 인색한 중년, 이타심이 허약한 노년은 모두 나잇값을 못하는 삶이다. 성숙은 ‘나에서 우리’로 생각의 지경이 확장되는 과정이다. 이타심이 이기심을 비집고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는 과정이다. 이기심에 찌든 노년은 ‘옹고집쟁이’다. 노인이 아닌, 어르신으로 대접받고자 한다면 스스로 나잇값을 해야 한다. 얼굴은 삶의 형상이다. 겸애설을 주장한 중국의 사상가 묵자는 “물에 비쳐보면 자신의 얼굴 하나쯤은 보이겠지만 사람에 비쳐보면 자신의 길흉화복이 다 보인다”고 했다. 얼굴은 한 인생의 궤적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얼굴빛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삶 바로 그 자체다.





마음과 건강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앞뒤로 붙어다닌다. 마음이 꼬이면 건강도 삐걱댄다. 현대인에게  건강의 최대 적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마음의 평온이 깨진 상태다. 나이가 들수록 ‘나'에만 집착하는 옹고집쟁이가 되지 말자. 더불어 사는 ‘우리’로 생각을 넓히자. 의견 차이를 틀림보다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이익 앞에선 의로움을 생각하고, 탐심을 줄이고 평심을 회복하자. 마음의 건강이 회복되면 육체의 건강은 절로 그 가운데에 있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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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건 늘 설렘을 안고 온다. 새로움은 일상이 되고, 일상에 익숙해지면 설렘의 농도는 옅여진다. 그게 세상 이치다. 설령 그렇다해도 새로움은 언제나 설렘으로 맞을 일이다. 흐르는 세월은 두려움보다 기대로, 낯선 사람은 불편함보다 반가움으로, 새로운 지식은 고정관념보다 신선함으로 맞자. 삶은 생각대로 펼쳐진다. 생각이 바로 인생의 지도다. 2016년이 밝아온다. 기대반, 불안반으로 다가오는 새해다. 기대엔 언제나 불안이 섞여있다. 하지만 불안은 훌훌 털고, 설렘으로 새해를 맞이하자. 그리고 행복한 한 해를 펼쳐보자.

 

 

 

 


새해엔 더 건강하게 살자.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자. 모든 건 결단이 필요하다. 건강, 일, 가족, 관계 모든 게 마찬가지다. 스스로 결단해야 마음과 몸이 움직인다. 새해엔 ‘건강한 습관’ 하나쯤은 꼭 익혀보자. 골고루 먹고, 규칙적으로 먹고, 천천히 먹고, 적당히 먹자. 몸을 움직이자. 가까운 곳은 운전대를 잡지말고 걸어보자. 중년의 건강은 근력이 필수다. 걷는 건 돈 안드는 보약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한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자. 이왕이면 TV는 운동하면서 보자. 세상을 긍정하자. 스트레스의 천적은 긍정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세상은 생각대로 된다. 항상 명심하자. 건강을 지키는 건 ‘한가한 사치’가 아니다. 그건 삶의 으뜸가는 지혜이자 철학이다.

 

 

 

 


새해엔 좀 단순해져보자. 뒤엉킨 일엔 우선순위를 매기자. 그럼 일의 효율이 놀랄 만큼 높아질 것이다. 지난 한 해 책상이 지저분했다면 새해엔 좀 가지런해보자. 수년째 입지 않은 옷들이 답답한 옷장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다면 한번쯤 시간을 내어 숨쉴 공간을 터주자. 찬장도 마찬가지다. 시각은 늘 생각을 좌우한다. 시각이 복잡하면 생각도 너저분해진다. 우린 모두 바쁘게 산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바쁘다는 그 자체가 아닌, 뭘로 바쁘냐는 것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미들도 늘 바쁘지 않은가.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 때문에 바삐 움직이는가이다.”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의 말이다. 칸트의 지적처럼 중요한 일이 덜 중요한 일에 밀려나지 않게하자.

 

 

 

 


새해엔 더 행복해지자. 행복은 명사다. 하지만 실제론 동사이자, 늘 과정인 단어다. 당신이 마음을 어디로 끌고가느냐가 행복을 좌우한다. 덜 비교하고 살아보자. 내 이름으로, 우리 가족이란 이름으로 당당히 살아보자. 그럼 적어도 비교에서 오는 불행감은 적어진다. 다름을 인정하자. ‘다름’을 ‘틀림’이라고 고집해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는 어리석음을 줄이자. 어느 역사에서든, 어느 나라에서든 무식한 자의 목소리는 늘 컸다. 우물안 생각에 갇혀 세상 넓은 줄 모른 탓이다. 스스로를 낮추고 비워서 다름을 오롯이 마음으로 받아보자. 그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누군가 말했다. “천사가 하늘을 나는 건 날개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가볍기 때문”이라고. 사실 행복이란게 별거 아니다. 마음이 가벼우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

 

 

 

 


새해엔 더 배우며 살자. 다문궐의(多聞闕疑), 다견궐태(多見闕殆). 공자는 제자 자공이 ‘관직자의 처세’를 묻자 답변을 이 여덟 글자로 압축했다. 가능한 한 많이 듣되 의구심이 드는 것은 판단을 보류하고, 가능한 한 많이 보되 미심쩍은 건 일단 생각을 미뤄두라는 뜻이다. 다문(多聞)과 다견(多見)은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문을 여는 열쇠이기도 하다. 앎은 통찰의 씨앗이다. 새해엔 책과 더 친해지자. 책은 세상을 넓게 보는 망원경, 사물을 깊게 보는 현미경이다. 가장 싸면서도 값진 삶의 지렛대다.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변하는 시대다. ‘평생학습’은 이 시대 생존의 키워드다. 배움만한 재능은 없다. 남보다 앞서가고, 일의 효율을 높이고, 지성인으로 사는 덴 책만한 벗이 없다. 지식은 어느 시대나 최고의 밑천이다. 지성의 밑천이자, 비즈니스의 밑천이다.

 

 

 

 


새해엔 더 격(格)있게 살자. 격은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바로 세운다는 건 얄팎한 지식으로 독선의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조그마한 부(富)에 취해 없는 자를 멸시하지 않고,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타인을 속이지 않는 일이다. 새해엔 내면과 외면의 높이를 더 맞춰보자. 더 포근한 눈으로 이웃을 보고, 더 따스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백 번의 다짐보다 조그마한 한 번을 실천하자. 욕심에 찌들려 밤톨만한 영혼으로 살지말자. 비워서 채우는 오묘한 마음의 이치도 깨우쳐보자. 스스로가 근사해지는, ‘명품 아우라’를 걸쳐보자.

 

 

 

 


행복은 늘 긍정에 둥지를 튼다. 새해엔 더 긍정하며 살아보자. 그럼 삶이 훨씬 행복해진다. 게리 켈러, 제이 파파산의 ≪원씽≫(원제:The One Thing·비즈니스북스)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로 글을 마무리한다(편의상 원문을 좀 짧게 요약했다). 체로키 인디언 장로가 손자에게 인간의 마음에서 왜 갈등이 일어나는지를 들려줬다. 장로가 말했다. “그건 우리 마음 속에 두 마리 늑대가 살고 있기 때문이지. 한 마리는 두려움이라는 늑대야. 그 늑대는 불안, 공포, 망설임 등을 데리고 다니지. 또 한 마리는 믿음이라는 늑대야. 그 늑대는 열정, 확신, 행동 등을 데리고 다닌단다.” 듣고 있던 손자가 물었다. “그럼 어느 늑대가 이겨요?” 장로가 답했다. “그건,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지.”

 

 

 글 / 신동열 한국경제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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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날씨만큼 변덕스런 것도 없다. 갠 듯 하면 흐리고, 흐린 듯 하면 어느새 햇볕이 든다. 청명한 하늘에서 뜬굼없이 소나기도 쏟아진다. 그러니 아무리 우산을 챙겨도 이따금 옷이 젖는 게 삶이다. 하지만 삶이란 날씨도 자연의 이치를 크게 벗어나진 못한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여름의 끝 자락엔 가을이 매달린다. 가끔은 심술도 부리지만, 그건 어린 아이의 어리광쯤이다. 삶의 날씨는 자연의 계절만큼이나 우주의 많은 이치를 담는다. 차가움이 가시면 따스함이 오고, 먹구름이 걷히면 햇볕이 든다. 

 

 

색깔도 형상도 다양한 삶

 

삶은 색깔도, 모양새도 형상이 너무 다양하다. 사람의 마음이 같지 않음은 얼굴이 서로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나의 잣대로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스스로 큰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다. ‘삶이란 00다’라고 단정짓는 것 또한 성급함의 오류다. 무지개가 고운 것은 빨·주·노·초·파·남·보가 조화로움을 만들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무지개처럼 고운 빛을 내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꿈. 삶은 꿈을 품어야 한다. 눈뜨고 꾸는 꿈이 삶을 바꾼다. 꿈은 가고자 하는 방향이자, 쏟고자 하는 에너지다. 삶의 곳곳에 깃발을 꽂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에 나를 맡기지 않고 스스로 좌표를 찍고, 스스로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꿈은 삶의 방황에 찍는 마침표다. 세상은 꿈꾸는 자에게 무심하지 않고, 운명은 꿈꾸는 자를 비켜가지 않는다. 꿈의 색깔은 무궁하다. 그러니 청년도, 중년도, 노년도 꿔볼만한 꿈은 도처에 널려있다.

 

 

땀을 흘려야 빛나는 삶

 

땀. 삶은 땀을 흘려야 가치가 빛난다. 거저 얻은 것만큼 쉽게 흘러가는 것도 없다. 거액의 로또 당첨으로 행복해진 삶은 그리 흔치 않다. 땀에 녹아난 감사가 오래가고 고귀하다. 땀을 아끼는 사람에게 세상은 그 문을 활짝 열어주지 않는다. 머리는 꿈을 꾸고, 몸에선 땀이 흘러야 한다. 땀을 흘리는 사람이 건강하다. 뛰든 걷든 몸을 움직여야 한다. 땀 흘리는 습관이 바로 건강의 습관이다. 

 

격(格). 격은 외면과 내면의 키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허세로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고, 말과 행동의 간극이 좁은 것이다. 격은 ‘다운’ 것이다. 부모는 부모답고, 스승은 스승답고, 정치인은 정치인 다운 것이다. 답다는 것은 과시하지 않고, 자신의 책무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이지 않고, 이익에 지나치게 비굴해지지 않는 것이다. 낮다고 무시하지 않고 없다고 깔보지 않는 것, 그게 바로 격이다.

 

 

끈을 이어주는 건 '역지사지'

 

끈. 삶은 관계다. 관계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다. 끈은 선이다. 점으로 홀로서지 않고, 이어짐으로 세상을 그리는 것이다. 끈을 이어 주는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칭찬으로 춤이 춰지면 남을 먼저 칭찬하고, 인정받기에 목이 마르면 남을 먼저 인정하라. 그대의 삶에 박수쳐주는 자가 없는가. 그럼 세상을 탓하기 앞서 그대가 마음을 다해 타인에게 쳐준 박수소리를 스스로 들어보라. 그 소리가 작다면 역지사지의 의미를 다시 꼽씹어 봐야 한다. 

 

정(情). 삶엔 온기가 배어있는게 좋다. 슬며시 몸을 기대고, 마음을 나누고 싶어지는 그런 포근한 사람 말이다. 때로는 차가운 이성보다 따스한 감성이 삶에 해답을 준다. 미국 시인 아치볼드 머클리시는 이성의 언어는 죽음이든, 운명이든 그 무엇에도 해답을 주지 못한다고 했다. 성경 속 ‘돌아온 탕아’처럼 세상엔 훈계보다 끌어안음으로 삶의 방향을 바꾼 일화가 훨씬 많다. 정이 따받치면 인생 고난의 무게는 훨씬 가벼워진다. 

 

삶. 참으로 정의가 난해한 단어다. 삶의 판세를 바꿀 ‘신의 한수’는 영화 속 얘기다. 삶이란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어떻든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것 또한 살아있는 자의 길이다. 삶은 주인공은 나다. 그러니 그 빛깔도 내가 내는 것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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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의 공포가 훨씬 큰 법이다. 영화에서도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에 깔리는 스산한 배경음악이 더 소름을 돋운다. 중국 황제가 머물고 있는 열하(熱河)로 향하는 연암 박지원은 어두운 밤에 극한의 공포를 마주한다. 깜깜한 어둠, 그것도 하룻밤에 무려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너는 것은 매순간이 절체절명이다. 어둠 아래 깔린 물, 그 공포스런 흐름의 소리, 말 위라는 불안감…. 그건 분명 공포의 극한조합이다.

 

 

 

스스로를 먼저 채워라

 

 

 

공포는 마음의 평정심이 깨진 상태다. 극도로 불안한 마음이다. 불안은 눈과 귀, 마음이 예민해진 결과다. 그 예민함을 둔화시키면 공포가 가라앉고 평상심으로 마음이 옮겨간다.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연암은 극도의 공포상황에서 ‘명심(冥心)’, 즉 평상심을 찾는다. 그리하니 그 험악한 강물 소리가 조용해졌다. 아니, 물소리는 그 물소리인데, 마음이 잠잠해진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 고전인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열린 마음으로 넓은 세상을 보라는 메시지가 담긴 생생한 여행기다. 또한 물에서 깨달은 마음의 이치를 담고 있기에 더욱 뜻이 깊다.  

 

암에게 명심이란 깨달음을 준 물은 삶에 던져주는 함의가 적지않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채움이다. 자신의 낮은 곳을 채운 뒤에 비로소 흘러간다. 스스로도 부족하면서 남의 모자람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은 채우지 않으면서 남의 비어있음을 탓하지 말라는 무언의 교훈을 흘려준다. 천하를 다스리는 출발이 ‘스스로의 마음 닦기’라는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도 맥이 닿는다.

 

 

 

끊임없이 변화하라

 

 

 

물은 꿈이고 변화다. 시냇물에 안주하지 않고 강으로,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간다. 쉬지 않고 흘러서 좀 더 큰 세상을 보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행복도 쌓아두며 향기가 사라진다고 귀띔한다. 그날 구운 빵처럼 하루하루 만들어가는 행복이 더 향기로움을 일깨운다. 그건 게으름에 던지는 일종의 경고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굽어 살핀다’는 말이 있다. 임금이 백성을 굽어살피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굽어살피고, 강자가 약자를 굽어살피면 세상이 따스해진다. 굽어살핀다함은 스스로를 낮추고 마음을 아래로 쏟는 것이다. 또한 굽어살핀다함은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다. 시소는 균형이다. 어른과 아이가 시소를 타면 어른이 아이쪽으로 한 발짝 다가가야 높이가 맞춰진다.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다가가고,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다가가고, 많아 배운자가 덜 배운자에게 다가가야 사회가 조화롭다.

 

모든 건 상대적이다. 부자가 있기에 가난한 자가 있고, 배운 자가 있기에 못 배운 자가 있다. 내 위엔 더 부자가, 아래엔 더 가난한 자가 있다. 그러니 누구나 굽어봐야 할 대상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나를 굽어보고,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굽어봐야 한다. 굽어보는 것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공자의 인(仁)도, 맹자의 덕(德)도 결국 더불어함에 깃든다.

 

 

 

크게 보고 화합하라

 

 

 

물은 화합이다. 만산의 골짜기 물들이 흐르고 흘러 세상이란 넓은 바다에서 꿈을 합한다. 흘러서 하나가 되는 물은 사소로움으로 편을 가르지 말고, 어깨동무를 하고 큰 세상을 함께 보라고 조용히 인간을 꾸짖는다. 노자는 ‘물이 깨져도 다시 붙는 것은 그 성품이 부드럽고 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약돌의 날카로움을 다듬어 주는 것은 결국 물의 부드러움이다.

 

세상의 이치가 꼬이고, 마음의 평정이 깨지면 오늘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보라. 마음이 탁해지는 듯하면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를 들어보라. 유유히 흐르는 그 물이, 청량한 그 소리가 연암만큼의 깨달음은 아닐지라도 의외로 삶을 정화시키고 신선한 에너지를 줄지도 모른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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