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마음이 병들어 간다. 물질이 풍족해도 삶은 버겁고, 인맥이 넘쳐나도 속내는 고독하다. 


마음이 무겁고, 자존이 약해지고, 삶의 지혜가 흐려진다면 인문이란 스승을 곁에 두자. 인문은 마음의 치유사, 세상길의 나침반, 삶의 격려자다. 영혼의 아픈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료사다. 




#보이지 않아 더 고치기 힘든 ‘마음의 병’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이 더 고치기 힘들다. 마음의 병은 이명(耳鳴)과 같다. 본인은 어지럽고 시끄럽다고 호소해도 정작 남들은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외로움이 무서운 것도 비슷한 이치다. ‘마음의 병’은 보이지 않아 고치기 힘들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 더 외로운 현대인들이 경계해야 할 병이다. 



한데 이 병을 많은 현대인들이 앓고 있다. 우리나라가 13년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병이 한국에서 유독 더 심하다는 부끄러운 증거다.


증상은 같아도 원인은 다양한 게 병이다. ‘마음의 병’ 또한 원인들은 무수하다. 


욕구를 채우지 못해 마음이 상처를 입고, 남보다 부족하다고 느껴 마음 한켠에 열등감이 웅크리고 있고, 자긍감이 부족해 스스로를 비하하고, 미래에 대한 지나친 염려로 마음에 근심이 가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상대적 궁핍감은 마음을 병들게 하는 최악의 독소다. 영국의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이 말하지 않았나. “거지가 질투하는 대상은 백만장자가 아니라 좀 더 형편이 나은 거지”라고.      



#인문(人文)은 인간의 다양한 형상이다


인문(人文)은 글자 그대로 인간의 문양이다. 사유의 문양, 관계의 문양, 길의 문양, 지혜의 문양이다. 


우주의 수많은 문양에서 자신의 문양을 골라 아름답고 당당하고 근사하게 삶을 살라는 게 인문학의 궁극적 지점이다. 



인문학은 자신에게 맞는 신발을 신고 편안하게 길을 걸으라고 한다. 신발이 불편하면 오래 걷지 못한다. 걷는 내내 마음도, 몸도 편치 않다. “발끝으로 서면 온전히 설 수 없고, 다리를 너무 벌리면 바르게 걸을 수 없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문구다. 


우리는 자주 내달린다. 서쪽으로 가는 이유, 동쪽으로 가는 까닭도 모른 채 무리를 좇고, 남들이 매달아 놓은 욕망에 닿으려고 까치발을 한다. 까닭 모르고 좇으니 방향을 잃고, 까치발로 서니 내 걸음을 잊는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남의 욕망만을 좇다 ‘나’를 잃어가는 현대인의 비이성, 주인임을 포기하고 노예로 사는 맹목성을 신랄히 꼬집는다.  



#인문이 깨우쳐주는 인간이란 존재



인문학의 질문은 크게 세 가지다. 인간은 무엇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나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무리가 아닌 개별의 나로 살아가는 다양한 팁들을 던져준다. 


그 팁들 중 어느 것을 자신의 삶에 차용할지는 역시 각자의 선택이다. 삶은 결국 선택이고, 인문은 우리 앞에 무수한 선택지를 던져준다. 


예전에 잘 보지 못한, 무심히 스친 사유를 끊임없이 펌프질한다. 그런 점에서 인문은 일종의 마중물이다. 사유의 씨앗, 무수한 길들의 나침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이다.



인문은 우리에게 ‘닮지 말고 당신으로 살라’한다. 누구도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 또한 그 누구도 될 수 없으니 당신의 DNA로 당신 삶을 살라 한다. 


인간은 모두 고유명사이니, 다름을 틀리다고 삿대질하지 말고 아름다운 무지갯빛으로 받아들이라 한다. 타인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한 잣대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라 한다. 맑고 큰 영혼을 품으라 한다. 


톨스토이는 “타인 또한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라고 했다. 세상사 마음의 병은 대개 사랑으로 치유된다.     



#인문이 귀띔해주는 행복의 길


인문의 한 축인 철학은 동일한 주제를 다양하게 분해한다. 



철학자들은 행복 죽음 사랑 실존 신(神) 등의 주제에 서로 다른 답안을 내놓는다. 그 다른 답안들이 때로는 퍼즐처럼 맞춰지고, 때로는 원자로 공기에 흩어져 인간의 사유를 풍성하게 한다. 


인문은 인간에게 행복에 이르는 무수한 갈림길을 보여주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형형색색의 거울들을 비춰주고, 사유를 팽창시키는 사고의 씨앗들을 뿌려준다. 


인문의 향기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보자. 인문은 어렵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색깔에 맞는 책 한 권을 손에 쥐어보자. 의외로 그 안에 아픈 마음을 달래는 ‘힐링의 마법’이 숨어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 한 권이 당신 삶을 행복하게, 여유롭게, 우아하게 바꿔놓을지는 또 누가 알겠는가. 씨앗 한 톨이 자라 커다란 느티나무가 되듯, 작은 책 한 권이 당신 삶에 태산만한 위안이 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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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VS 알파고, 인간과 기계의 세기의 대결'이라는 신문 헤드라인이 전국은 물론 전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바둑이라는 인간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인공지능(AI)이 이제는 사람의 영역을 대신해 보다 풍요로워 질 것이라며 흥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알파고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는 '범용 인공지능' 개발을 발표하며 세계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다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멀었다면서 우려를 경계했지만 영화에서처럼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어 필자역시 기대 반 두려움 반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찌됐든 아직까지 인공지능은 여전히 인간들에게 여러모로 유용한 분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정밀함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의학분야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병원의 영상의학과는 CT나 MRI, 엑스레이 속에 숨어있는 작은 병을 찾는 분야이다. 알파고가 바둑의 기보입력으로 바둑기사 이세돌을 물리쳤던 것처럼 수많은 의사들의 판독결과를 인공지능에 삽입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확률적으로 인간보다 더 정밀한 진단결과를 나타내지는 않을까? 이미 이러한 시도는 세계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질병이 바로 파킨스병 환자 진단이다. 목소리에는 195개의 지표가 있는데 파킨스병 환자와 정상인의 목소리를 입력해 파킨스병 환자의 목소리에서 더 크게 나는 지표만 골라 진단을 하는 방법이다. 이때 무려 890만 가지의 경우의 수가 생기는데 이것을 인공지능에 맡기는 것이다. 어려운 분야중 하나인 뇌파를 분석하는 것 역시 인공지능이 시도하고 있는 분야다. 예를 들면 경도인지장에에서 치매로 진행될 확률을 계산해내는 통계분석 방법을 인공지능 기술이 대체하는 식이다.





재활분야 역시 인공지능이 적용되기 좋은 분야로 꼽힌다. 한 국내 기업은 신경계, 근골격계 환자들이 재활 글러브를 착용한 상태에서 게임으로 재활훈련을 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을 탑재한 솔루션을 개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때 환자의 상태에 따라 게임강도가 조절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적용된 사례다. 이 업체는 이미 미국 FDA 승인도 받고 헬스케어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만큼 인공지능이 헬스케어에서 각광을 뱓는 것은 곧 시간문제인 것이다.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에릭 슈미트 회장도 "조만간 인공지능이 의료계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바 있다. 질병진단의 정확도가 높아지고 덩달아 환자들이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를 쌓아간다면 의학분야의 접목은 그 어떤 분야보다 빠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나라 의사들 역시 인공지능이 의사들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란 전망은 어느 정도 하고 있다. 기술적인 경험이 데이터로 쌓이고 정교한 기계로 오차 없는 수술을 할 수만 있다면 의사로봇도 불가능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다만 이때 의사로봇이 갖추기 힘든 것이 하나가 꼽히는데 바로 인문학적인 소양이다. 언뜻 보면 의학과 인문학이 동떨어진 개념 같지만 사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본질적인 의사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면 과연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기계는 데이터에 의해 확률적인 판단을 내린다. 결국 수많은 정보에 의해 계산되지만 인간은 계산하기 힘든 경험을 종합해 판단하고는 한다. 예를 들면 가난한 아이가 치료비가 없어 상처를 방치해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있다면 어떨까? 환자를 바라보는 의사의 역할을 생각해본다면 기계가 판단하지 못하는 따뜻한 마음 감정을 통해 의사는 치료를 서두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언론인터뷰를 통해 밝힌 대한의학회 한 관계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수 십년 후 많은 의사활동 부분이 인공지능에 대체될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인문학적 소양밖에 없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만이 인공지능과 비교되는 의사로 인정받을 것이다"라고. 의학이 곧 인문학이 되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글/ 김지환 자유기고가(전 청년의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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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반가 2016.06.09 0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역시 인문학을 이루는 근간이다. 이를 위해서는 감정을 수용할 수 있는 진정한 대화가 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의 감정을 표현해 주는 깊은 공감이야말로 관심과 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인문학 강의를 하러 다니다 보면, 인문학이 생활 속에서 유용한지를 묻는 질문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중 젊은 친구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이 있는데, 바로 “인문학이 연애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 이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예스”라고 대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문학이 다루는 내용들은 너무도 광범위해서 그 모두가 즐거운 화젯거리가 될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심리학이 인문학의 주된 분야이다 보니 인간의 심리, 남녀의 심리와 직결되는 것들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심리학의 연구 결과가 보여주는 단순한 통계나 이성의 행동에 대한 의미 분석, 또는 이성을 자극하는 행동과 언어에 대한 조언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녀 간의 사교 스킬보다도 인간으로서의 상호 이해와 대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은 날 그리 출중하지 못한 탓에 이성의 마음을 얻고자 여심 공략법이나 다양한 심리서들을 들추어 보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와 주변의 여러 사례들을 보아 오면서 이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또한 상대를 얼마나 이해하고 또 알아봐 주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연애의 시작임은 물론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도, 심지어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다. 대화와 이해가 부족한 남녀는 쉽게 연인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연인이 되더라도 만남이 오래가지 못하거나 즐겁고 활기찬 만남이 되지 못하며, 어찌 결혼까지 하더라도 서로 만족한 결혼 생활을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대화야말로 두 사람 앞에 직면한 모든 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 열쇠이며, 동시에 서로의 사랑과 관심을 확인하며 키워갈 행복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대화란 '감정의 수용'이다

 

그렇다면 시작하는 연인에게도 필요하고, 함께 사는 부부에게도 필요한 대화의 방법이란 무엇일까? 단적으로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감정의 수용’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말이 오간다고 다 진실한 대화는 아니다. 지시하고, 아는 척하고, 상대를 함부로 해석하는 것은 진정한 대화라 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일상에서뿐만 아니라, 심리학자, 특히 내담자와 전문가의 직접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담 분야의 발전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과거 많은 상담가가 내담자들에게 주의를 주고 충고하고, 바람직한 것을 하기로 약속을 받아내곤 했다. 프로이트로부터 본격화된 초기 정신분석학은 내담자들의 문제의 원인을 파헤치고 알 수 없던 이유들을 모두 해석해 주었다. 또한 많은 상담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와 같은 긍정적 암시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상담가들은 그런 것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주의와 충고, 일방적인 약속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유해할 수 있음이 밝혀졌고, 마음을 다 파헤쳐 지식을 전달한다 한들 치료가 되기보다 저항받기 쉬우며 아무리 긍정적인 암시도 말 없는 억압이 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에 가장 탁월한 상담가 중 하나요, 오늘날 상담의 주 흐름을 제시한 칼 로저스(Carl Rogers)를 위시한 많은 상담가가 내담자의 가능성을 믿고 그의 감정을 수용하면서 상담을 시작하라고 이야기한다.

 

칼 로저스가 열어 보인 인본주의 심리학이 그러하듯 그들은 인간이 가진 자아실현 욕구와 이성의 의지를 믿는다. 그들이 당면한 슬픔이나 분노 등 당면한 감정만 충분히 받아들이고 이해해 준다면 그들은 다시 용기를 내어 올바른 자신의 길을 선택해 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에 그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해 피드백하라고 이야기한다.

 

 

 

상대의 감정을 표현해 주자

 

그렇다고 그들이 말하는 피드백이라는 것이 그렇게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어떤 일에 몹시 분개하고 있다면,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그것 때문에 몹시 기분이 상했군요.”라고 말해 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랑하고 싶은 일을 당신에게 이야기한다면, 잘난 체한다고 지적하거나 무성의하게 맞장구를 치기보다 “그래서 매우 자랑스럽구나.”라고 말해 주면 된다. 논리적으로 해석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단순히 상대방의 감정을 수용하고 그것을 표현해 주는 것만으로 상대방은 자신이 이해받고 수용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그렇게 말하기 위해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마음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내친김에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다면

 

한 번 시도해 보라. 놀랍게도 빠른 시간 안에 서로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이 마음을 열지 않는 많은 내담자를 접해야 하는 상담실에서 가장 유용한 방법이며, 심지어 고집불통에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아동상담에서도 사용하는 첫 번째 방법이기 때문이다. 부모역할훈련(Parent Effectiveness Training) 등의 권위 있는 자녀교육 프로그램에서도 가장 먼저 제시하는 방법 또한 이것이다.

 

감정의 수용 없이 시작된 대화는 마음과 마음의 대화로 들어가기 쉽지 않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 감정을 이해받고 나누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지식 또한 이것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유해할 수 있다. 그저 아는 것이 많음을 과시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관심거리에만 푹 빠져 인문학 지식 나열에 급급하다 보면 오히려 사람들은 당신과 담을 쌓고 멀어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감정의 수용이야말로 마음을 여는 것이요, 관심의 시작이고, 대화의 시작이며, 카운슬링과 교육의 시작인 것이다.

 

물론 내 말이 다 맞으라는 법은 없다.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도 알기 힘든 것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게 믿을 때 내 삶이,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따뜻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 / 주현성 인문학 작가

출처 / 사보 '건강보험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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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의 핵심 키워드는 ‘마음’이다.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 정의에서, ‘흔들리는 마음은 어찌 잡을까’라는 실천적 과제까지 마음은 언제나 철학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연구대상이다. 동양고전의 백미인 논어 역시 ‘마음 다스리기’로 귀결된다. 행복은 마음이 평온하게 다스려진 결과이고 갈등과 대립은 마음이 난잡해진 탓이다. 누구나 새 해엔 ‘새로운 결심’을 한다. 누구는 건강을, 누구는 명예를, 또다른 누구는 사람과의 관계회복을 소원한다. 하지만 건강이든, 부(富)든, 명예이든 마음이 흩어지면 행복은 저만치 멀어진다. ‘마음 다스리기’에 실패하면 모든 것이 공염불이 된다는 얘기다.

 

 

 

더불어 살아보자

 

흔히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라고 한다. 이질적인 것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다. 인문학과 기술이 결합해 새로운 제품들을 만들어내고, 옛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 또다른 새로움을 창조한다. 더불어야 더 빛이나는 시대다. 더불어 사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출발점이다. 세상은 넓고 생각은 너무나 다를 수 있다는, 어쩌면 너무나 단순한 진리를 먼저 인정하자. 우리나라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극심한 생각의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나와의 다름’을 ‘나만 옳다’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 자로편에서 군자를 화이부동(和而不同), 소인을 동이불화(同而不和)로 풀어냈다. 군자는 남과 두루 어울려 지내되 의(義)나 도리까지 굽혀가며 무리를 좇지는 않는다는 의미고, 소인은 겉으로는 모든 사람과 한마음인 듯 하지만 속으로는 진심으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화이부동엔 현대적 해석까지 따라붙는다. 군자는 모든 사람과 화합하지만 한마음 되기를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면 마음은 저절로 다스려진다.   

 

 

 

때때로 비워보자

 

원래 마음이란 것은 하루종일 그네를 탄다. 사랑과 미움이 종일 들락거리고, 비움과 채움이 수시로 교차한다. 의마심원(意馬心猿)은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꼬집은 표현이다. 당나라 석두대사는 ‘인간의 마음이 말처럼 날뛰고 원숭이처럼 가볍다’고 설파했다. 서유기의 손오공은 인간 존재의 가벼움을 상징한다. 하지만 인간은 가벼운 존재이면서도 끊임없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만물의 영장’이다. 손오공은  악들을 연이어 물리치고 극락의 세계, 즉 서방으로 나아간다.

 

최근엔 비움이 화두다. 정신건강을 회복하고 행복을 크게 하려는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다. 노자의 도덕경엔 무지이위용(無之以爲用)이란 말이 나온다. 없는 것이 쓰임새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쉽게 풀면 비움의 효용성을 강조하 것이다. 그룻이 아무리 화려하고 재료가 좋아도 결국 쓰임새는 비어있음, 즉 빈 공간에 있다는 얘기다. 비움은 자연에의 순응이다. 세월이 가는 것, 주름이 느는 것, 생각이 다른 것은 넓게 보면 모두 자연의 순리다.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미련을 오래 두지 않는 것도 마음을 비우는 요령이다. 

 

 

 

작은 일에도 웃어보자

 

불교에 무재칠시(無材七施)라는 말이 있다. 물질과 재능이 없어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7가지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석가모니를 찾아가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다”고 호소했고, 이에 석가는 “남에게 베풀지 않은 탓”이라고 답했다. 그가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털이’라고 해명하자 석가가 물질말고도 남에게 베풀수 있는, 요즘말로 노하우를 귀띔해준 것이다.

 

무재칠시의 첫째는 화안시(和顔施)다. 환한 표정을 짓고, 부드러운 얼굴로 남을 대하면 그 것이 바로 베품이라는 것이다. ‘웃는 얼굴에 침못뱉는다’는 속담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환한 표정은 주위에 덕을 베풀고, 스스로의 격도 높인다. ‘한번 웃으면 하루가 젊어진다’는 말은 인생을 건강과 행복으로 인도하는 명언중 명언이다. 언시(言施)는 사랑과 칭찬으로, 심시(心施)는 열리고 따스한 마음으로, 안시(眼施)는 호의를 담는 눈빛으로, 신시(身施)는 몸의 수고로움으로, 좌시(座施)는 자리양보로, 찰시(察施)는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물질이 없어도 얼마든지 세상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자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은 얼굴빛이 다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말씀은 감사가 바로 행복을 담는 그릇임을 함의한다. 감사의 크기가 바로 행복의 크기인 것이다. 병의 절반은 마음이 원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감사가 부족한 탓이다. 감사의 마음이 옅어지면 ‘감사하다’는 말부터 일상화하자. 감사는 얼굴빛을 바꾸고, 우울증을 치료하고,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감사는 상대와 내가 동시에 행복해지는 ‘소통의 시너지’다.

 

천 날의 기도보다 한 시간의 실천이 더 귀한 법이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소망을 꿈꾸고,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면 꾸준한 실천으로 소망과 목표의 결실을 거두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 다스리기’로 행복의 덩치를 키운다면 그 또한 2014년을 더 없이 멋진 한 해로 만들 것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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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크라테스와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내놓을 수 있다. 애플을 애플답게 하는 것은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이다.”(스티브 잡스) “나를 만든 건 어릴 적 동네의 공공도서관에서 읽은 고전들이다.”(빌 게이츠) 

      “나라는 인간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논어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경영의 기술보다 그 저류에

       흐르는 기본적인 생각, 인간의 마음에 관한 것이다.”(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인문학의 상상을 IT가 현실로

 

IT(정보기술) 시대라는 21세기에 인문학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인문학의 상상을 IT가 현실로 만든다’는 말은 인문학과 IT가 시너지를 내는 조합임을 의미한다. 인문학은 인간에 관한 학문이다. 인문학(humanities)은 흔히 문학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의미로 쓰이지만 용어 자체는 라틴어의 ‘인간다움’(humanitas)이 뿌리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인문학을 “인간 삶의 경험에 대한 이해와 그 의미 탐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숙한 삶을 형성시켜 주는 학문”으로 정의했다. 한마디로 인문학은 인간성을 고양하기 위한 가이드라는 것이다. 인문학에 삶을 보는 통찰력과 지혜의 향기가 묻어나는 이유다.

 

‘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을 중시한 대표적 인물이다. 동양의 불교철학에 심취한 그는 ‘기술과 인문학, 그리고 사람의 결합’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의 대표작 아이폰에는 불필요한 것은 버린다는 ‘무소유’의 철학이 담겼다는 분석도 있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삶과 경영철학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논어다. 이 회장은 자서전에서 “나의 생각이나 생활이 논어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해도 오히려 만족한다. 논어에는 내적 규범이 담겨 있다”고 술회했다.

 

 

 

공자의 仁-노자의 無爲

 

공자(孔子)는 누가 뭐래도 동양 최고의 사상가다. 학문을 사랑하고, 인(仁)과 예(禮)의 근본을 세운 현실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다. 칼(권력)이 모든 것을 말해주던 시대에 인문의 길을 터준 위대한 철학자다. 공자는 2500년 전(BC 551~479) 세상에 잠시 머물렀지만 그의 사상과 삶의 궤적이 담긴 ≪논어≫는 시공을 초월해 여전히 향기를 뿜는다.

 

인(仁)은 공자 철학의 중심이다. 인간 품성의 바탕이자 모든 관계의 근본이다. 군신 간 윤리인 충(忠) 의(義) 예(禮), 부자간 윤리인 효(孝)에도 어짊이 깔려 있다. 공자는 공손함, 너그러움, 미더움, 민첩함, 은혜 베풀기를 인의 핵심으로 꼽는다. 구체적 가르침을 청하는 제자 자장에게 공자는 “공손하면 모욕을 당하지 않고, 너그러우면 뭇사람을 얻고, 미더우면 남들의 신임을 얻고, 민첩하면 이루는 것이 있고, 은혜를 베풀면 족히 남을 거느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은 군자와 소인을 가르는 핵심 잣대이기도 하다. 예(禮)는 공자 사상의 또 다른 축이다.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강조한다. 스스로를 극복해 예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유교무류’(有敎無類·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엔 공자의 학문 철학이,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엔 배움에 대한 공자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고요 속에서 세상을 본 노자

 

노자(老子)는 중국의 고대 사상가다. 초나라에서 태어나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걸쳐 살았으니 대략 기원전 500년께 인물이다. 공자(孔子·BC 551~BC 479)와 동시대를 살았지만 삶의 궤적은 희미하다. 삶의 행적이 다소 묘연하지만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대표되는 노자의 사상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인류의 삶과 우주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한마디로 무위(無爲)다. 무위는 ‘하는 일 없이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다. 인위적으로 틀(법·관습·예법 등)을 만들어 행동이나 사고에 굴레를 씌우지 말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라는 뜻이다. ‘군주가 무위의 상태로 있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교화가 된다’는 노자의 말은 군주가 통치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통제수단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인위적 규제를 만들지 말라는 경고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작은 생선을 구울 때 자주 뒤적이면 부서지고 흉해지는 것처럼 국가경영도 지나치게 ‘인위’가 가해지면 통치의 근본이 망가진다는 것이다. 노자의 무위를 범부(凡夫·평범한 사람)에 적용하면 ‘스스로를 알고, 욕망을 줄이라’로 요약된다. 노자는 ‘남을 아는 것은 지혜롭고, 자기를 아는 것은 명철하다’고 설파했다. 또한 ‘강(强)은 스스로를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아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다.

 

 

 

고전의 향기가 영원한 이유

 

인문학은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의 샘물이다. “인문학은 새로운 생각의 촉매로 작용해 사회발전에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인텔연구소 제네비스 벨 박사)는 말은 첨단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이 인문학과의 접점을 넓히는 이유를 잘 설명한다. 창의력을 키우고, 미래의 인류를 꿈꾸는 데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인문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삶의 지혜가 담긴 철학, 인생의 향기가 묻어나는 문학,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밝혀주는 역사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인문학적 소양은 개인의 품격을 높이는 데도 제격이다.  

 

시공을 초월해 인류에게 주는 함의는 고전의 향기가 영원한 이유다. 노자의 도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자연과 우주의 이치를 터득해 좀 더 욕망을 줄이라는 조언이요, 삶의 진리를 성현들의 말씀이 아닌 세상 이치 속에서 꿰뚫어보라는 따끔한 충고다. 한마디로 겉은 고요하고 속은 더 깊어지는 허정(虛靜)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노자≫에 ‘도대(道大), 천대(天大), 지대(地大), 인역대(人亦大)’라는 말이 있다. 도가 크고, 하늘과 땅이 크지만 만물의 이치를 터득한 인간(정신) 역시 무한히 크다는 의미다. 노자의 인간존엄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내면을 쌓기보다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고, 합리적 판단보다 현혹적 슬로건에 휘둘리고, 입만 열고 귀는 닫는 세상이다. 삶의 중심이 흔들린다면 무위자연의 참뜻을 한번쯤 되새겨 보는 건 어떨까.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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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피선샤인 2013.06.07 14: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2. 도도한 피터팬 2013.06.07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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