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는 이 질문에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인생의 목적=행복’이라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명제는 오늘날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어린 시절부터 목표 지향적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행복이란 성취해야 할 또 다른 목표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많은 돈이나 좋은 학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외모라는 조건으로 행복을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목표들은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서 사람들은 지금 만족하고 행복을 느낀다면 더 이상의 노력하고 발전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에는 타인보다 뒤처지게 되어 또 다시 불행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자신할 수 없다.

 

과연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모습의 현대인들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이 주장했던 ‘인생의 목적=행복’의 참된 의미를 잘 이해하면서 살고 있다 생각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했던 “행복(유다이모니아)”이란 헬라어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幸福, happiness)” 개념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행복은 일종의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만족과 편안함, 기쁨과 같은 상태와 행복을 같은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기 위해서 자신이 세운, 혹은 부모나 우리 사회가 제시하는 어떤 조건과 목표를 충족시키려고 애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행복”은 다른 말로 ‘훌륭한 정신적 존재’가 되는 것과 연관이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중요한 삶의 덕목이었던 용기와 정의, 우정과 친절이라는 측면에서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면서 삶의 참된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과학과 행복론

 

어떤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생각을 고리타분한 옛 철학자의 탁상공론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사변적인 철학자들과 달리 자료를 모아서 통계적으로 검증하기를 즐겨하는 현대 심리학자들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심리학에는 인간의 행복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가 생겼다. 바로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다. 긍정심리학자들은 그간의 심리학 연구가 인간의 부정적 측면(정신병리, 편견과 고정관념, 인지 왜곡과 편향 등)에만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면서, 그 동안 외면했던 주제(행복과 감사, 성격 강점과 미덕 등)를 연구하고 있다. 행복은 긍정심리학의 주요 연구주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행복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고, 몸이 건강해야 하며, 공부를 많이 해서 보수가 높은 안정적인 직장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사람들은 결혼과 날씨, 인종과 성별 등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구결과 이런 조건들은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자료를 얻어서 통계적으로 계산을 해 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다 얻어도 고작 8~15% 정도의 행복만 증가할 뿐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현대 과학의 만남

 

그렇다면 사람들을 정말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행복한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가 낙관주의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실패와 역경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사고방식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행복 연구의 선구자인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의 심리학자 에드 디너(Ed Diener) 역시 우리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첫째, 좋은 친구나 가족 등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합니다. 이는 친밀하고 애정 어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중요합니다. 둘째, 좋아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가장 실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그것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목표 자체보다는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또 인생에서 좋은 면을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행복이란 어떤 목표와 조건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때 얻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글 / 심리학 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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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능력과 시간, 여건이 된다면야 무슨 문제겠는가? 오히려 주변사람들로부터 괜찮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일도 못하면서 남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했으면 적어도 제때에 제대로 들어줘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면? 남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처음에는 ‘친절하다’, ‘착하다’, ‘참 괜찮다’는 말이 들리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책임하다’, ‘우유부단하다’, ‘참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을 다잡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도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법도 한데, 또 다시 누군가가 부탁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

 

먼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들은 경우가 많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무조건 순종할 것을 강조한다. 부모입장에서는 말을 잘 듣는 아이가 키우기 편하다. 심부름도 잘하고, 형제와 싸우지 않으며, 학교에서도 교사와 친구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당연한 마음이다. 그런데 아이가 착해야 한다는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아이를 비난하거나 사랑을 철회하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에게는 부모가 전부다. 따라서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착해지는 전략, 아니 겉으로라도 착한 척 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이런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위해 ‘착한 아이’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무관하게 남들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개인주의는 ‘우리’보다는 ‘나’, 집단주의는 ‘나’보다는 ‘우리’를 중시한다. 한국은 전형적인 집단주의 문화로 자신의 아내를 소개할 때 “내 아내(my wife)”라고 하지 않고 “우리 아내”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다. 문화의 차이는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자아 개념에도 영향을 미친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마커스(Hazel R. Markus)는 독립적 자아(independent self)와 상호의존적 자아(interdependent self)로 두 문화권의 자아개념을 구분했다. 독립적 자아를 가지면 자기 자신의 내면의 욕구에 충실하지만, 상호의존적 자아일 경우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을 쉽게 희생한다. 특히 직장이나 학교처럼 타인의 평가가 중요한 환경에서, 뒷담화의 대상이 되어 보았거나 따돌림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무리하게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다.

 

마지막 이유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확신, 즉 자만심 때문이다. 누군가 부탁을 했을 때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다 생각하면 거절하는 것이 상식이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부탁하는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거절해야 한다. 그러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탁받은 일을 잘 해낸다면 실제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겠지만 자신의 일도, 부탁받은 일도 제대로 못한다면 자신의 능력을 과대지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탁, 거절할까? 들어줄까?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신의 입장과 상황,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자.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자신이 해도 되는 일인지 아닌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거나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되고, 시간이 촉박하다면 거절해야 한다.

 

그 다음은 부탁을 하는 상대방을 파악하자. 왜 자신에게 이런 부탁하는지 그 의도를 알 필요가 있다. 정말 자기가 바쁘거나 능력이 안 돼서 부탁을 하는지, 아니면 단지 일이 귀찮거나 휴식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 아니면 내 업무처리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서인지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상황이 불가피하다면 부탁을 들어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거절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당한 타인의 평가에 어느 정도 둔감해 질 필요가 있다. 자기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받게 되는 정당한 평가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귀를 기울이고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시간이 없어서 타인의 부탁을 거절함으로 겪게 되는 타인의 불평이나 비난의 눈초리는 부당하다. 때로는 이런 부당한 평가에 주변 사람들까지 영향을 받아 ‘이상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으로 찍힐 수도 있다. 하지만 열에 아홉은 그 평가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안다. 열에 하나가 두려워서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느라 자신의 일도 제대로 못하게 된다면, 당신은 열에 열로 ‘이상한 사람’, ‘무책임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잊지 말아야 할 것

 

부탁을 잘 들어주고, 착하게 대해줘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늘 이런 모습이라면 ‘원래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 즉 호구(虎口)로 인식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아무도 고마워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탁을 들어주고도 욕을 먹는다.

 

어차피 먹을 욕이라면 차라리 부탁을 거절하면서 듣는 편이 낫다. 부탁을 거절하면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확보된다. 그래서 자기 일을 제대로 해낸다면, 주변의 부정적 평가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평소에는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다가 능력과 여유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의 부탁을 멋지게 들어주자. 그러면 당신은 정말 멋있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될지, 그리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행복하게 만들지 불행하게 만들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글 / 심리학 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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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감은 양날의 칼과 같다. 자신이 정한 기준 이상으로 무엇인가를 해내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지나, 계속 실패를

      거듭할 경우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실패의 이유를 노력의 부족에서 찾지만, 무조건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꼭 성취와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사람들에게 높은 자존감은 그림의 떡과 같다. 방법이 없을까?

 

 

                     

  

 

 

 

자존감, 한계를 만나다

 

어린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이나 사랑과 애정을 표현해 주면 된다. 성인의 경우는 이것으로 부족하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존중받을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걸맞는 혹은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해낼 필요가 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반복적으로 실패를 하는 사람은 자존감을 높이기 힘들다는 뜻이다.

 

실제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들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실패의 경험으로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경우가 많다. 사람의 마음은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한번 실패의 악순환에 빠진 사람들은 실패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자신은 실패자라는 생각 때문에 무엇을 해도 자신 있게 하지 못하고, 주어진 과제에 집중해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지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수록 자존감은 곤두박질친다.

 

 

 

자존감을 뛰어 넘는 자기수용

 

자존감의 이런면 때문에 자기수용을 더 중요하게 보는 심리학자들이 있다. 사실 자존감(self-esteem)의 ‘존중(esteem)’은 사물이나 사람에게 평가하는 것을 의미하는 ‘추정하다(estimate)’라는 동사에서 유래되었다. 다시 말해 자존감이라는 개념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의 의미가 수반된다.

 

회사에서 승진을 했기 때문에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 높아진 자존감은 회사의 합병과정에서 직장을 잃는 순간 낮아진다. 결국 자존감은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조건은 개인마다 시간마다 문화마다 다르다. 여기서는 충족되는 조건도 다른 곳에서는 충족되지 않을 수 있다. 조건은 이렇게 불안정하고 일관되지 못하다. 자존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기수용(self-acceptance)은 다르다. 어떤 조건이나 기준을 충족시킬 필요가 없다. 외적인 성공이나 성취를 전제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평가를 매길 수 없는 인간으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조건에 있든지 자기수용은 일관되고 안정감이 있다.

 

 

 

행복의 지름길

 

현대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평가를 받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으로부터,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평가를 받았다. 단순한 평가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자신들이 제시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경우 거부당하고 배척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성인이 되어서 스스로를 평가하고 질책한다. 과거에 받았던 상처, 평가와 비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게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본래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같지 않다. 각자의 개성이나 특성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비교와 평가가 있을지언정, 적어도 존재 자체가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존재 자체가 부정당할 때 사람들은 극도의 우울과 불안을 경험하게 되고,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심리학자 엘리스(Albert Ellis)는 진정한 행복이 무조건적인 자기수용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목표가 있어야겠고, 나름의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이를 빌미로 자신을 평가하고 질책하고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옳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잘못됐고 틀렸다. 사람이 먼저지 목표가 먼저가 아니지 않는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기수용은 꼭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게을러지고 나태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신바람 나게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도 있고 이를 위해 더욱 노력할 수 있게 된다. 자 어떤가? 행복의 지름길로 가겠는가?

 

                                                                                                                                    글 / 강현식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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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자신을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의미하는 자존감(self-esteem)은 심리학자들의 주요 연구주제였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주요 연구주제라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자존감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자존감, 자존심, 자만심

 

자아존중감이라고도 하는 자존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이와 많이 혼동되는 자존심, 자만심과의 차이점을 알아보자.

 

자존감, 자존심, 자만심은 모두 자신을 좋게 평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자존심이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성공할 때 경험할 수 있는 느낌이라면 자존감은 타인과 무관하게 자신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긍정하는 느낌이다. 당연히 타인과의 경쟁에서 실패한다면 자존심은 곤두박질치지만, 자존감은 그렇지 않다.

 

또한 자신을 스스로 존중할 수 있는 자존감은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번져나가지만, 자만심은 자신만 귀하다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상태로 타인을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만, 자만심이 많은 사람은 그렇지 못할 수밖에 없다.

 

 

 

자존감의 영향

 

심리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 심리적 기제인지를 밝혀냈다. 정말 많은 연구들이 있지만 그 중 눈에 띄는 몇 가지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존감은 우울이나 불안, 분노(화)와 공포(두려움) 같은 부정적 마음과 부적 상관이 있었다. 다시 말해 자존감이 높을수록 이런 부정적 마음은 적게 나타나고, 자존감이 낮을수록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었다. 객관적으로 더 잘나고 예뻐서가 아니었다. 이보다는 자신의 외모와 신체적 특징에 대해 주관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하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자존감은 학업 성적이나 또래관계와 정적 상관이 있었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성적이 좋고, 또래와의 관계도 좋았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비해서 공감능력도 뛰어났고, 당연히 리더가 될 가능성도 높았다.

 

이 외에도 자존감의 중요한 삶의 부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행복의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어떻게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자존감이 높기를 바라고, 모든 상담자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자신을 찾아온 내담자가 자존감이 높아져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심리학의 기초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윌리엄 제임스라는 심리학자의 설명을 참고해보자. 그는 자존감을 다음의 공식으로 설명했다. 

 

  

 

 

설명하자면 자신에게 기대할 수 있는 잠재력에 비해 자신의 실제 능력이 얼마나 큰지가 자존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요한 회의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잘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기대했는데, 막상 잘 해내지 못했다면 자존감은 낮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합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자존감은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아서 자신의 잠재력보다 조금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에 맞게 낮추는 것이다.

 

심리상담의 목표 중 하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를 현실감 있게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았던 능력 이상의 기대는 떨쳐버리고, 또 이후 성장과정에서 반복되는 실패경험으로 갖게 된 지나친 자기비하도 떨쳐버리게 한다. 그래서 현실감 있게 자신을 알고,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높아지게 된다.

 

                                                                                                                                   글 / 강현식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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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주변에 불평불만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은 행복할까, 아니면 행복하지 않을까? 이와 반대로

        불평불만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이 사람은 과연 어떨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불행하고,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왜 그럴까?

 

 

                           

 

 

 

피할 수 없는 불평불만

 

세상이 마냥 행복하게‘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둘 중 하나다. 도(道)를 깨달아 세상의 대소사를 초월했거나 아니면 세상을 제대로 인식할 능력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엄습해 오는 걱정과 불안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실패한 사람은 나름의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이 끝날까봐 불안해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내가 땅을 사면 사촌에게 미안하다. 가진 자는 더 가지지 못해 안달이 나고, 못 가진 자는 못 가져서 분통을 터뜨린다.

 

어떻게든 우리 마음은 편치 않을 때가 많고 이럴 때 터져 나오는 것이 불평불만이니, 어쩌면 불평불만은 우리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불행하게 만드는 불평불만

인류는 오래 전부터 삶의 고통이 자신의 생각에서 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불교와 힌두교를 중심으로 발달한 명상과 수행에서는 생각을 고통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생각을 없애는 다양한 방식들이 발전해 왔다. 이러한 원리를 수십 년 전부터는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이 적극 받아들여서 다양한 방식의 마음챙김(mindfulness)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부정적 생각 때문에 불평불만이 나온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을 버리면 불평불만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된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뿐 아니다. 불평불만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제 아무리 좋은 것을 갖다 주어도 불평불만하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처리하는 경향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결국 불평불만이란 우리의 마음에 있는 부정적 생각을 표출하는 동시에, 주변 사물을 계속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도 피곤함을 느끼고 하나 둘 떠나버리면 불행의 최고봉에 설 수도 있다.

 

 

 

행복하게 만드는 불평불만

그런데 불평불만을 어느 정도 한 후에는 이내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자신의 기분회복을 위해서 불평불만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많은 학자들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 웨스턴캐롤라이나 대학교의 심리학자 로빈 코발스티는 걱정을 묶어두지 말고 자유롭게 풀어놓으라고 격려한다. 걱정을 늘어놓는 것이 우울증 등 심신의 질병을 막아주는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적절하게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 사람들, 즉 자신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가겠다는 일념으로 혼자서 모든 것을 끙끙대는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탄식이 정화 작용을 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많은 문화권에 존재하는 ‘애가’는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눈물과 탄식의 기회를 제공함으로 치유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서양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恨)’이라는 정서가 있다. 우리민족은 한이라는 정서를 노래와 민담, 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기도 했다.

 

 

 

어떻게 불평불만을 해야 하나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불행하기 만들기도 하는 불평불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불평불만을 하기 전에 불평불만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자신의 근심과 걱정을 털어놓겠다는 목적이라면 좋다. 다시 말해 여기서 불평불만을 하고 나름의 위로를 받겠다고 결심하고 불평불만을 하면 정화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마치 가톨릭교회에서 하는 고백성사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불평불만을 잘 받아줄 대상이 필요하다. 고백성사는 사제가 받아주고, 심리상담에서는 심리학자가 받아준다. 이렇게 전문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찾아가도 좋고,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가까운 사람(가족, 친구 등)을 찾는 것도 좋겠다.

 

그러나 이런 명확한 목적의식 없이, 그리고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불평불만은 하면 할수록 고통에서 빠져나기 힘들다. 부정적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더 커지고 구체화된다. 이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당신을 위로를 해주기는커녕 떠날지도 모른다.

 

오늘부터 함께 모여서 행복을 가져다주는 불평불만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 / 강현식 심리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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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학교에서 가훈을 조사하는 숙제를 종종 내주곤 했다. 사실 먹고 사는 일이 급했던 시절이니 뼈대 있는

        집안이 아니고야 제대로 된 가훈이 있을리 만무했다. 분명 대다수의 부모님들은 학교 숙제라니 그제야 가훈을 결정

        하셨던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숙제로 조사해 온 가훈의 상당수가 엇비슷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왔던 것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이었다.

 

 

 

 

 

 

 

왜 가정이 중요한가?

 

가족의 갈등을 다루는 가족치료는 심리치료의 한 분야다. 가족치료의 대가인 사티어라는 심리학자는 가족(family)을 가리켜 사람을 만드는 공장(factory)이라 했다. 노골적인 비유지만 생각할수록 참 적확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두 남녀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후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사람의 몸과 마음 모두 가정에서 만들어진다.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을뿐더러 사고와 행동의 패턴까지 배우게 된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가정이 중요하다. 굳이 심리학자들의 거창한 이론을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사람은 자고로 보고 듣는 것의 영향을 상당히 받는다. 특히 어릴수록 더욱 그렇다. 얼굴표정, 유머감각, 인간관계, 장래희망과 식습관에 이르기까지 가정의 영향은 광범위하다. 그래서일까? 어른들은 자녀가 결혼을 한다고 할 때 자녀의 배우자가 될 사람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까지 고려한다.

 

 

 

과거를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

 

어린 시절이나 가정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은 과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운명론, 결정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고 훌륭하게 된 사람들의 예는 무수하게 많다. 게다가 한 가정에서 태어난 형제라고 해서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왜 과거를 극복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생기는 것일까? 그 이유는 관점의 차이다.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과거를 떠 올린다. 현재를 보더라도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과거를 극복하는 사람들은 힘들었던 과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려고 한다.

 

사람들 중에는 과거의 가정환경을 탓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시절 조금 더 좋은 환경을 부모가 만들어 주었더라면, 부모가 자신에게 더 큰 사랑을 주었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이들에게 지금도 부모님이 그대로인지 물어보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의 연로한 부모님을 볼 때에도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상처를 곱씹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가 아니라 지금의 가정이 중요하다

 

한국사회는 가족주의 문화다. 자녀가 성인이 되었더라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것을 당연시 할 정도로 가족을 중시한다. 이런 문화에서 가정이 편치 못한데 행복할리 있을까? 이와 반대로 가정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다면 집 밖에서 당하는 아무리 힘든 일이라고 극복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가정을 편케 여기지 않는 상당수의 이유는 과거의 갈등이다. 과거의 갈등 때문에 지금도 가정이 불편하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물론 과거를 묻어두라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상처가 없었던 것처럼 살라는 것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도 있고, 확인할 것도 있다. 그리고 어떨 때는 사과를 받거나 해명을 들어야 할 것도 있다. 그러나 이런 걸림돌이 있다고 가정의 행복을 포기하기엔 너무나 값지다. 비록 과거의 가정은 불행의 시작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가정을 행복의 시작으로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력과 애씀이 절실하다.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마주 앉아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 모두가 이런 필요성을 느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라도 누군가는 나서서 시도해야 한다. 사람은 ‘좋지만 어색한 것’보다는 ‘나쁘더라도 익숙한 것’에 더 끌리는 법이라 가정의 분위기를 쉽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과거를 뛰어 넘어 행복한 지금의 가정을 만드는 일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정말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지금의 가정에서 그 행복 찾기를 시작할 수 있다. 기회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바로 부모에게나 형제, 배우자, 자녀에게 안부 문자나 전화를 걸어보자. 식사를 제안하고 선물을 준비해 보는 것도 좋다. 마음을 담은 감사편지도 좋은 시도다. 가화만사성은 단지 보기 좋은 가훈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있는 몇 안 되는 진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글 / 강현식 심리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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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을 한다. 여기서 일이란 단지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직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학생들에게는 공부, 아이들에게는 놀이, 직장인에게는 업무, 주부

       에게는 가사가 일이다. 만약 일이 즐겁다면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일의 종류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공부는 괴롭지만, 놀이는 즐겁다고 생각한다. 직장의 업무나 가사(집안일)는 고통이지만, 여행은 즐겁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부가 즐거워 평생을 배우고 연구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도 있고, 놀이와 휴식이 괴로워 잠시도 놀고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직장의 업무를 통해서 성취감을 느끼면서 승승장구 하는 사람도 있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집안을 아기자기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해 일찍부터 전업주부를 희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 가서 낯선 것을 경험하는 여행을 끔찍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일에 행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신나고 즐거운 일을 찾지만 어떤 일을 해도 즐거워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행복은 결정하는 것을 일을 대하는 자세다

 

사람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한 가지는 자율성이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 원해서 무언가를 할 때 사람들은 행복해 한다. 학창시절 오랜만에 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더라도 부엌에 계시던 어머니의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는 즉시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놀기 시작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소위 청개구리 심보라고 하는 심리적 반발심은 자율성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공부도 일도 놀이도 여행도 마찬가지다. 정말 자신이 원해서 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신나게 한다. 그러나 누가 시켜서 하거나 혹은 어떤 목적 때문에 한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내적 흥미와 자율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일의 종류가 아니라 일을 대하는 자세다. 이와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있다.

 

미국 남부 어느 마을에 유태인이 양복점을 열었다. 평소 유태인들을 좋아하지 않던 백인 주민들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을 시켜서 이 가게 앞에서 돌을 던지며 "유태인 물러가라!"고 소리를 지르도록 만들었다. 유태인으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기발한 대응책을 생각해 냈다. 밖으로 나가 난동을 피우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수고했다"면서 10센트씩 주었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했지만 돈을 마다하지는 않았다. 다음날에도 신나게 난동을 피우는 아이들에게 유태인은 또 돈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5센트만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유태인은 아이들에게 돈을 주러 나왔다. 하지만 유태인은 "사정이 좋지 않아 1센트씩 밖에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우리가 고작 1센트 받기 위해 여기까지 와서 돌을 던지며 소리를 지를 수는 없다구요!"라면서 강하게 항의했다. 그 날 이후로 아이들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내적 이유를 찾으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지금 이 일을 왜 하는가? 내 욕구와 행복, 성취감 같은 내적 이유 때문인가? 아니면 돈, 성적, 명예, 타인의 인정 같은 외적 이유 때문인가?

 

물론 어떤 일이든지 내적 이유도 있고 외적 이유도 있다. 온전히 내가 원해서만 하는 일도 없고, 반대로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만 하는 일도 없다. 필자 역시 그렇다. 내가 좋아서 글 쓰는 일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돈처럼 외적 이유에 초점을 두면 글을 쓰기가 싫어진다. 글을 쓸 때에도 행복하지가 않다. 이럴 때 나는 내적 이유에 초점을 둔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고, 돈은 그저 내가 한 일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물이라고 해석한다.

 

일하면서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당신이 하는 일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면 된다. 당신이 일을 즐겁게 한다면 반드시 그에 걸 맞는 결과는 따라오기 마련이다.

 

                                                                                                                                         글 / 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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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펜을 들고 적어보자. 당신이 행복해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겠는가? 연봉은 어느 정도여야 하고, 직급은

       어느 정도면 되겠는가? 어떤 지역에, 어떤 종류의 주택에서 살아야 하는가? 외모는 어떠해야 하는가? 주변의 인간

       관계는 어떻기를 바라고, 만약 자식이 있다면 자식이 얼마나 공부를 잘하면 행복하겠는가? 생각나는 모든 조건을

       적어보자. 그리고 생각해 보자.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된다면 정말 행복할까?

 

      

            

 

 

 

행복에 대한 일반적 오해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조건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돈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면 그래서 돈 걱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한다. 일 자체가 좋다기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으로 이직을 하고, 복권에라도 당첨된다면 자신의 일터를 아쉬움 없이 떠나버린다. 

 

돈 다음으로 사람들이 꼽는 행복 조건 중 하나는 외모다. 남들의 시선을 끌 만한 외모를 가진다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다. 2007년 4월 의료광고 허용과 함께 우리 주변 곳곳에서 병의원 광고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곳마다 볼 수 있는 광고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광고가 대부분이다. 모두 아름다움의 욕구를 자극하는 문구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성형수술을 받거나 피부관리를 받기만 하면 내 삶 자체가 행복해 질 것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돈과 외모는 행복과 별 상관이 없다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경제적 풍요로움과 신체적 매력이 행복에 정말 영향을 미치는지 많은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둘 다 행복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먼저 돈의 경우 여러 나라에서 연구를 진행했을 때 평균 소득을 벌기 전까지는 소득과 행복이 함께 증가했지만, 평균 소득을 넘어선 사람들의 행복점수는 제자리걸음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시대를 비교한 연구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일본에서 진행했던 어떤 연구는 2차 대전 직후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경제적으로는 매우 풍요로워졌으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전쟁 이후 잿더미에서 시작해 지금은 OECD 국가에서도 어깨를 견줄 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했지만 자살율은 몇 년째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체적 매력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에드 디너(Ed Diener)의 연구팀과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팀의 연구 모두 타인이 평가한(객관적) 매력과 개인의 행복 점수는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이 스스로 평가한(주관적) 매력과는 상관이 있었다.

 

 

 

행복공식

 

왜 객관적 매력(조건)과는 상관없던 행복 점수가 주관적 매력과는 상관이 있었을까? 그 한 가지 대답은 행복 공식에서 찾을 수 있다. 행복 공식은 다음과 같다.

                                              

 

 

돈이 많거나 외모가 출중해서 원하던 행복조건(분자)이 충족돼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그에 따라 기대(분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올 때 마음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의 욕심이나 기대는 그냥 두면 한 없이 커질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대를 무조건 줄이자는 것은 아니다. 기대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 기대와 욕심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 진리를 일찍이 깨달았던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한 필요한 5가지를 다음처럼 언급했다. 다음 5가지에는 모두 절제된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

 

1. 먹고 살고 입기에 조금은 부족한 재산

2.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약간 부족한 외모

3.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 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4. 남과 겨루어 한사람에겐 이겨도 두 사람에겐 질 정도의 체력

5.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

 

                                                                                                                                           글 / 강현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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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행복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가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4주 이내에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돈을 챙겨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매 순간을 즐기며

          사는 그녀에게 선물 하나가 도착한다. 그녀가 받은 진단은 기계 이상으로 생긴 오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선물은 현재를 사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깨달은 것이었다. -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 줄거리 -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현재?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직장인들은 높은 연봉을 위해, 사업을 하는 이들은 최고의 수익을 얻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는다. 공부하고 일하고 장사를 한다. 또 공부하고 일하고 장사를 한다. 휴식도 여유도 사치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 나간다. 미래에 무언가를 얻으려면 현재의 고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굳이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이런 생각 이면에는 미래가 확실히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 미래가 온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의 삶 자체가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 일은 한치 앞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우리 주변에는 예기치 못한 사고와 질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이라고 자신이 그렇게 갑자기 가게 될 줄 알았을까?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확실한 현재를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별것 없는 미래를 위한 현재?

 

사람들은 현재를 희생하는 이유는 미래의 특별한 행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미래의 어떤 사건도 기대하는 만큼의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과장되었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에 대해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시끄럽던 소음도 얼마 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듯이 사람은 변화에 금방 익숙해지기 때문이고 한다. 단칸방에 살던 사람이 꽤 오랜 시간 절약하고 또 절약해서 돈을 모아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집이 넓다는 행복은 몇 개월이면 끝난다. 금세 집이 좁다고 불평하게 된다.

 

둘째,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이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일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려움을 가져오고, 나쁜 일도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주는 법인데 이것을 완벽하게 상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부정확하고 과도한 예측과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 막상 그 미래가 현실이 되면 생각보다 행복하거나 즐겁지 않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별 것 없는 미래를 위해 특별할 수도 있는 현재를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극단이 아닌 균형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현재를 삽시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그럼 되는 대로 흥청망청 살라는 말인가요?”

“미래를 위한 저축, 연금, 보험 같은 것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인가요?”

“욕구에 이끌려 하고 싶은 대로 막 살라는 말인가요?”

 

물론 아니다. 극단이 잘못되었다고 또 다른 극단에 가서 답을 찾으면 안 된다. 균형을 이뤄야 한다. 미래를 위해 무조건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현재도 내 삶의 일부분으로서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면서 회색빛 현재를 사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

 

어렸을 때부터는 대학 진학이 목표, 대학에 가서는 취직이 목표, 취직을 해서는 결혼이 목표, 결혼해서는 노후가 목표라면 노후의 목표는 무엇인가? 죽음? 그렇다면 결국 죽기 위해 사는 인생 밖에는 안 된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성공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현재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현재에 행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미래에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present)라는 영어 단어가 ‘선물’이라는 뜻이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현재만큼 우리의 삶에 좋은 선물이 없음을 기억하라.

 

                                                                                                                                          글 / 강현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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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라.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 어떤 가방을 들고 있으며, 헤어스타일은

         어떤가? 어떤 전자제품을 사용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커피를 마시는가? 조금 더 세밀하게 관찰을 해본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유행에 끌려다니는지 알게 될 것이다.

 

 

             

              

 

 

 

 

타인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숙명?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유행어를 선호하는 탓에 말 표현도 비슷하고,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집계하는 베스트셀러 목록 때문에 읽는 책도 비슷하다. 삼삼오오 모여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유행하는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소위 ‘뜨는’ 연예인들 이야기를 한다.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유행, 트렌드, 대세를 따라가는 것일까? 남이 사면 나도 사고 싶고, 남이 보면 나도 보고 싶은 심리는 무엇일까?

 

미국의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페스팅거(L. Festinger)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생각과 능력 등)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기준이 필요한 법!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할까? 페스팅거에 따르면 사람들의 평가 기준은 바로 타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들의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를 기준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를 사회비교 이론이라고 명명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회사에서 회의를 하다가 이해가 안되는 것을 질문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주변 사람들을 살피는 일이다. 다들 아는 것처럼 보인다면 왠지 질문하기가 꺼려진다. 자신의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때 손을 들고 질문한다면 사람들이 비웃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다들 모르는 것 같다면 손을 들기가 보다 수월하다. 자신을 비웃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모두를 대신해 용기 있게 물어봐주어서 고마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는 너무나 자동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한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어쩌면 타인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것을 노력해야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또래 사촌들과 키 재기를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이런 식의 비교를 통해 키가 커야겠다고 자극받은 아이들은 편식 같은 나쁜 식습관도 고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타인과의 비교는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면 노력해도 안 되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비교가 자극제는커녕 고통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점심식사 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자판기로 달려가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총동원해서 뽑은 커피 한잔을 행복하게 홀짝 거리다가도, 유명 커피전문점 로고가 찍힌 컵을 들고 지나가는 무리들을 보면 자신의 커피가 너무 초라하게 보인다. 아침마다 옷장을 보면서 “입을 옷이 없다!”고 딸이 한탄할 때 어머니들은 “왜 입을 옷이 없어! 네 앞에 있는 옷은 옷이 아니고 걸레냐?”면서 타박을 한다. 어머니들은 딸이 원하는 옷이 그저 보온을 위한 기능성 옷이 아니라 유행에 맞는 옷이라는 것을 아실까? 돈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유행하는 옷을 때마다 사면되겠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매일 아침 옷이 아닌 고통을 입어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나’보다는 ‘우리’가 강조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유행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다수에 속하기 위해, 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기업들은 이런 한국인의 심성을 잘 이용해 먹는다. 광고를 보라. 제품의 특성을 홍보하기보다는 다수가 이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그러니 당신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이 제품 하나 구입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소비자 평가 1위, 브랜드 평가 1위, 올해의 소비자 상을 받은 제품은 왜 그렇게 많은가? 또 인증하는 기관이나 단체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시장점유율 운운하는 것도 비슷하고,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라고 홍보하는 책들 역시 다수의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식의 광고에서 사람들은 압박감을 느낀다. 마치 저런 상품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뭔가 큰일이라도 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쯤 되면 광고가 아니라 협박이다.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는 건강한 사회

 

물론 유행이 나쁘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다수의 선택이 틀렸다는 말도 아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다는 것은 분명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유행을 따르기 위해서 무리하게 소비하고 지출하는 것은 고통일 뿐이다. 경제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심리적으로 행복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심리학자들은 꼭 그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들과 비교(상향 비교)하면서 자신을 평가하고, 더 나아 보일 목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쉽게 후회하고 불행을 더 많이 느낀다고 한다. 소위 잘 나가는 엄친아, 엄친딸 이야기를 접하고 그들과 비교하게 되면 좋은 자극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불행해진다는 것은 우리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반대로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향 비교)하는 사람들일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았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타인과의 비교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자신의 기준에 따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남들과 비슷하게 입고 먹고 마시고 읽고 보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않다. 진짜 행복은 남들과의 비교가 아닌 자신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다수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선택도 존중되는 사회가 진짜 행복한 사회다.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소식이 이제 더 이상 놀랍지 않은 대한민국.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한다면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삶, 그것이 진짜 행복한 삶이 아닐까!


                                                                                                                                           글 / 강현식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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