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근길에 있었던 일입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무겁게 한걸음, 한걸음을 옮겨 집으로 걸어
  가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저의 시선은 신호대기 중에 멈추어 있던 한대의 버스로 향했습니다. 이
  버스는 다름 아닌 장애가 있는 학생
들이 타고 있는 스쿨버스였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도 모두가 중증도의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 외에도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 가득한 미소  " 였습니다. 세상 그어떤 걱정, 근심 없이 해맑게 웃고 있는 그들의 미소에 신호대기의 그 짧은 시간동안 저 역시 가슴 시원한 행복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쿨버스는 지나갔고 그 자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저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무능한 내 자신을 탓하고, 내게 없는 것을 욕심내고 이미 충분히 많은 걸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늘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불평, 불만에 너무나 익숙해졌으며, 일상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지쳐있는 저에게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해맑은 미소는 삶을 다시금 생각하고,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소중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만약 저에게도 장애가 있다면 저들처럼 단 한번이라도 해맑게 웃을 수 있을까? 아마 영원히 웃을 수 있는 미소를 잃어버릴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어느 날 퇴근길 다시 장애학생들의 버스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라도 말이죠.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때, 저 또한 일상에 감사하면서 활짝 웃을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얼굴과 마음이 모두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내가 이미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소중한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말입니다.


전정민/ 대구 달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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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친한 친구한테 사기를 당해 재산의 절반을 날린 남편이 강물에 빠져 죽겠다며 난리치는 것을 붙잡고 다시
 시작해보자며 울부짖었던게 엊그제 같다.

 

 
그러고 보니 벌써 7년이 흘렀다. 있는 돈 없는 돈 닥닥 긁어모으고, 시댁에서 도움 좀 받아 시내 변두리에서 방 한 칸이 딸린 통닭집을 빌려 장사를 한지도 7년이 된 셈이다.

처음 시작할 때 통닭 튀김집에 딸린 방은 정말 초라했다. 미닫이문 하나가 달린 방은 둘이 누우면 돌아누울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그 때문에 아이들 둘은 친정집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 아이들 생각하면 친정 엄마와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겨울철 삭풍에는 연탄을 때는 방에서 남편과 부둥켜안고 자면서 ‘내일은 좋아지겠지’ 하는 한 가닥 희망의 빛줄기를 그리며 잠을 청했다. 늘 돼지꿈이 꿔지기를 희망하면서….


하얀 입김이 천정으로 올라가며 인생살이의 고달픔을 전해줬지만 그렇게라도 장사를 시작할 마음의 여유가 있었고, 거기에 몰두할 수 있게 해준 남편에게 감사했다.


샐러리맨들은 퇴근 시간이면 우리 통닭 가게를 찾아와 맥주 한 컵 마시며 통닭 날개에 시름을 얹어 회포를 풀며 직장과 가족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험 대리점 소장님, 환경 미화원 아저씨, 술을 좋아하는 화물차 기사님이 단골이었다.이들은 기쁜 일이나 힘들었던 일, 슬픈 일이 있을 때면 우리 튀김집을 찾아와 부담 없이 시름을 달래곤 했다.


돌아가실 때는 집에 있는 꼬마가 튀김 닭을 좋아한다며 꼭 한 마리 덤으로 사가시던 분들. 우리 가게는 동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정들었던 이 튀김집을 정리해야 한다. 우리 통닭집이 있는 주변 전체가 깨끗이 주변 정리가 돼서 아파트가 들어 설 모양이다.


하지만 곧 그동안 모아뒀던 돈으로 더 큰 통닭집을 개업해서 또 다른 서민들의 휴식처가 될 것이다. 그간 미뤄두었던 살림살이를 차분히 정돈하였다.


그간 모아둔 적금을 털어 마련한 새 보금자리도 작지만 나에게는 궁전이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과 아담한 부엌과 조그마한 목욕탕이 있다. 처음으로 내 보금자리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꿈만 같다. 그간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아끼면서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게 시련일지라도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라고 했던 것처럼 부닥치며 뛰면 다 되더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 내 주변의 모든 이웃이 성공해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신은영/ 경기도 안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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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남편의 도시락을 싸느라 허덕거리면서 새삼 친정 어머니의 노고가 생각납니다. 단 한 사람
   분의 도시락을 싸면서도 반찬 걱정을 하는 지금의 저와 비교해보면 어머니의 고생은 참으로 컷을 것
   입니다
.

  


전기코드만  꽂아놓으면 밥이 되는 편리함도 없이 무쇠솥에 밥을 해야 했던 그 시절, 우리 잡에는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자식들이 6명이나 됐습니다. 위로 언니를 위시하여 어린 막내까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골고루 분포된 6남매의 도시락은 어머니께 분명 힘겨운 일이셨습니다.

 


없는 살림이어서 반찬걱정도 많으셨죠. 그렇다보니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그럭저럭 반찬을 싸갈 수 있었지만,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김치나 콩나물 무침 등을 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요일과 금요일의 점심시간이 참 싫었습니다. 친구들은 다른 반찬도 잘 해오는데 유독 나만 그런 김치를 싸가게 되는 저희 집 형편도 싫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속을 뒤집느라 가끔은 도시락을 아예 집에다 두고 등교하기도 하고, 가져갔다가도 그냥 가져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배가 고파서 어떡하냐?'


지금 생각해봐도 어머니께서는 제게 단 한번도 야단을 친 적은 없고, 늘 그렇게 배고픈 것만 걱정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트집을 잡곤 했으니 어머니께서는 많이 서운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저에 비해 남편은 도시락을 늘 비워서 가져옵니다. '맛있었다'는 한 마디도 잊지 않고 해줍니다. 가끔은 '반찬이 부실한데 괜찮을까?' 하면서 싸준 도시락도 고맙게 잘 먹었다는 말과 함께 빈통으로 가져오는 남편이 참으로 고맙고 기분도 좋습니다.


그럴 때면 '나도 그때 어머니께서 싸주셨던 도시락을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면 어머니께서도 도시락을 기분좋게 싸셨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후회를 상쇄하려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서 다를 얘기를 하다보면, 어머니께서 제게 주시는 사랑만 더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덕분에 저는 자식의 일이라면 이해가 우선인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기분좋게 도시락을 싸고 있습니다.


바로 행복을 싸고 있는 셈이죠.

 

박혜균/ 경기도 성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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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한 지 약 10년 만에 현수와 연진이를 낳은 김희선, 송창훈 부부에게 아이들은 누구
    보다 
각별하다. 한 때 부부끼리 행복하게 살까라는 고민도 했다는 부부는 아이를 낳는 
    기쁨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의 시험관 아기로 낳은 현수와 연진이

 

1998년에 결혼한 김희선, 송창훈 부부는 시험관 아기를 통해 작년 이란성 쌍둥이인 현수와 연진이를 낳았다.

결혼 초반에는 경쟁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 않아 임신을 늦췄던 부부는 2006년부터 임신 계획을 세웠지만 알 수
없는 원인
으로 임신이 되지 않았다. 불임으로조바심을 내지 않았지만 그동안 주위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에 상처를
많이 받기도 했다고.


“4년 전 도보여행을 다녀온 후 임신이 된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많이 걷고, 힘들었던 여행이었는데 임신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
했어요. 태명을‘江’이라고 부를 정도로 기뻐했죠.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 계류유산이 되고 말았어요.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평생
울었던 것을 다 합한 것 같았어요.”


한때 아이 없이 부부가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있었지만 30대 후반이 되자 나중에는 임신이 더 어려울 것
같아
결국 시험관 아기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2번째 시도 끝에 지금의 현수와 연진이를 낳게 되었다. 출산 당시

 

“얼떨떨해서 잘 몰랐지만 하늘을 날아갈 만큼 좋았어요. 낳는 기쁨이 이렇게 큰 줄 몰랐어요.”라고 김희선 씨는 당시의
감회를
이야기했다.

  

 


각종검사비와 보육지원료 확대돼야

 

현수와 연진이를 낳은 후 송창훈 씨는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해 3개월 동안 김희선 씨와 함께 아이들을 돌봤다.

“아이들과 살을 맞대며 지낼 수 있는 시기가 그때가 아니면 힘들 것 같고, 아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 육아
휴직을
신청했어요. 아내의 육아 부담도 덜어주고요.”

남편의 육아휴직이 큰 힘이 되었다는 김희선 씨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 낳기를 참 잘 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 소소한 모습 등은 엄마만이 기억할 수 있잖아요? 하나하나
너무
소중해요.”라며 “더 열심히 살고, 아이들에게 잘 해줘야겠다.”라는 다짐이 생겼다고.


시험관 아기 시술, 임신∙육아를 하면서 비용이 많이 지출되어 놀랐다는 부부는 최근 시험관 아기 시술 비용, 고운맘 카드
등을 정부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말했다. 임신 시 각종 검사와 초음파 검사, 출산 후 소아마비 접종,
로타 바이러스 접종 등은 지원되지 않아 한번 주사를 맞기라도 하면 10만 원이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서도 김희선 씨는 출산 후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려 해도 몇 십 만 원이
드는 보육료 부담 등이 아닐까라며 국공립 보육 시설이 늘어나야 한다고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현수와 연진이를 낳은 김희선, 송창훈 부부는 요즘 아이들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아이들에게 옳고 성실하게 자라는 법을 가르쳐줄 생각이에요. 남편은 아이들이 바르고 크게 커서 사회의 기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저는 아이들이 경쟁사회에서 성공하기보다 본인의 삶에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을 안으며 잠재울 준비를 하는 김희선, 송창훈 부부. 지그시 아이들을 바라보는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글 / 장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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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사는 곳은 작년 슬로우 시티로 지정된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다.  집 앞으로는 전국 제일의 저
 수지인 예당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바로 옆에는 대흥 향교. 그리고 뒤에는 백제 부흥 운동의 마
 지막 본산인 임존성이 위치한 봉수산을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있다. 그녀의
 공간에서 행복을 조금 담아 가지고 온다.





그녀를 알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4월, 함께 살고 있는 그녀의 어머님이 중풍으로 거동이 어려워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조사를 하면서였다. 쇼파에 누워 거동을 거의 못하시던 그녀의 어머니를 조사하면서도 그녀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몇 개월 후 그녀가 서울 신문사에 근무했고, 글도 지으시는 작가분이며, 온양민속박물관장을 지냈다는 것을 이웃분들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되었는데, 동네에선 지금도 관장님으로 불리며 유명하시다.


그 후 국민건강보험 예산지사 직원과 지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봉사단 “푸른하늘”에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항상 꾸밈없고 행복한 얼굴의 그녀가 말하는 '행복하게 사는 법'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픈 마음에 인터뷰를 부탁하고, 올 3월 그녀를 다시 한 번 찾았다.



자연을 닮은 그녀

  


 

그녀의 집앞에 도착하면 그녀가 직접 만들었다는 우체통이 문짝이 없어진 대문기둥 옆에 몸을 꼿꼿이하며  마중 온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뷰를 하던 날에는 근처 다양한 나무들, 고즈넉한 정원 등 주변 여기저기서  봄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부르자,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하시면서 화장기 없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 오라신다.  인터뷰는 소박하고 조용한 서재에서 이루어졌는데 "시골에 사는 할머니한테 무슨 얘기를 들을게 있다고 , 나야 고맙지, 물어 볼 것 있으면 물어봐"라고 하시면서 편하게 대해 주셨다. 그녀의 행복을 들어보자.



Q. 서울에서 성공한 직장인으로 알고 있는데, 대흥으로 귀향하게 된 이유가 뭐예요?

A. 이곳은 부모님 고향이에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50이 넘으면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서 흙과 함께 생활하려 준비 중에 있었지요. 아버님이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병 수발하던 어머니마저 건강이 악화되어 그 시기가 좀 빨라졌는데 마침, 우리나라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가까운 곳에 민속박물관장 제의가 들어와 흔쾌히 수락하면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이곳에서 온양까지 출,퇴근을 했죠

그 후 2005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져 중풍으로 쓰러져 모든 것을 정리하고 어머님과 함께 이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한거예요.


        “글쎄, 먹기 싫다는데 왜 그래. 제발 귀찮게 좀 하지 마!”
       눈치 없이 자꾸 음식 디민다고 제발 이러지 마세요.
       주어도 주어도 덜 준 것만 같아 속 끓이는 것이 엄마랍니다. 

       “아버지는 원래 그러니까 엄마가 좀 참아.”
       엄마가 져야 큰소리 안 나고 편안하다고 제발 이러지 마세요.
       '걱정 마 걱정 마'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참는 것만 입력된 인조인간이 아니랍니다.

       그리고 제발 이러지 마세요.
       “엄마 괜찮지?”
       힘없어 주저앉으면서도 ‘괜찮아 괜찮아’ 하는 것이 엄마랍니다.

       나이 들어 걸음 둔해진 엄마는 
       당신 나이 든 것까지도 자식에게 미안해 많은 걸 숨긴답니다. 
       온 힘 다해 쥐고 있던 끈,
       너무 힘겨워 한순간 놓쳐버리면 그만 스르르 무너지고 마는 것을.
       지금, 
       중환자실, 저 문 안에서 혼자 힘겹게 싸우고 있는 엄마, 
       딸은 또 한번 바보같이 이런답니다.
       '엄마 괜찮지? 우리 엄마는 강하니까 이겨낼 거야'

 

 

                   박효신/『바람이 흙이 가르쳐 주네』'엄마한테 이러지 마세요' 中



Q. 귀향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어려움이 있으셨으면 말씀 좀 부탁드려요.

A. 육체적 노동에 따른 체력적인 어려움이 가장 컸어요. 첫해에는 요령도 없고, 무작정 일을 해 허리 치료를 오래 동안 받았는데, 어느정도 적응이 된 지금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서울에서의 생활도 즐겁고 행복했지만 자연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행복해요.



Q. 그럼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혹시 행복하려고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지요?

A. 보통 사람들은 너 지금 행복하니! 하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생각을 하죠. 행복하고 싶기는 하니! 라고 다시 물어도 여전히 고개를 가우뚱 거리구요.


 저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즐겁게 일하고, 성취하는 모든 것에 행복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 노력을 했구요. 자신의 행복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행복에게 대접을 해주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꼭 행복해 지려 일부러 한 것은 아니지만, 즐거운 생활을 위해 나를 사랑하며 살아왔지요.

'나'가 아닌 '누구나'라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사랑하고 싶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했고, 사물에 대한 호기심, 고정 관념 깨기, 재미 찾기, 긍정적 사고, 인생 설계, 비우며 살기, 내탓이오, 마음에 남을 위한 공간 만들기, 지금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나누고 봉사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해요. 지금도 저는 나는 행복하다 라고 주문을 걸고 있고, 미워하지 말고, 욕심을 버리고, 인연을 만들지 말자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조그만 시골이지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예산지사에서도 지금 청소년들에게 행복을 만들어 주는 함께 나누는 푸른하늘 봉사단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Q. 현재 나눔을 통한 행복한 삶에 대해 말씀 해주세요.

A. 지금요!. 자연과 나누고 있죠..시골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을 맡기고 사는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시간에 쫓기고, 안달하고, 성공을 위해, 경제적 효용가치를 위해 계산하며 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마음이라는 운동장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아요. 생각도 넓고, 마음도 오픈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무엇이든 한방에,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고 없이 자신의 노력만큼, 자연이 주는 만큼만 얻으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지금도 저는 배우고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거든요.

2006년에 농사일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시작한 블로그 “풀각시 뜨락”도 지금 저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연령대 관계없이 일상을 나누고 있고, 함께하는 이웃들과도 나에게 필요한 것 외에는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내가 심어 키운 꽃의 씨를 나누고, 받아 키운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것을 보며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거창한거 같은데 자연과 나누려 노력하고 있어요. 지구를 지켜야죠, 작은 일이지만 나부터 열심히 지키려 재활용 한다든지, 필요한 만큼 먹고, 버리지 않고, 무엇이든 아끼면서 말이에요.

저는 양말이 발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이렇게 뀌메고, 깁고, 짝이 없어도 그냥 신고 있어요.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물 절약을 위해 설거지는 모아 두었다 하루에 한번, 수세미는 제가 직접 키운 천연 수세미를 이용하고 있죠 (웃음~)

그리고 대흥 슬로시티 주변에 있는 임존성, 대흥 동헌, 의좋은 형제 등의 문화 해설을 맡고 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구 있구요, 물론 무보수입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문화를 나누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제대로된 문화 해설을 해주고 싶어서 하는 일이에요



Q. 마지막으로 건강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것이 있을까요?

  



A. 건강해야죠, 어머니 수발을 위해, 농사일을 위해서는 더욱요. 특별히 하는 것은 없고, 봉수산 주변을 자주 걷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자연스럽게 채식위주의 제철에 나는 것 들을 먹고 사니 건강해 지는 거 같아요.

제가 직접 키우는 제철 과일과 음식들, 사시사철 이것들로 인해 건강은 자연스럽게 관리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화장품은 거의 쓰지 않아도 피부가 매끄러워요, 나이보다 젊어 보이지 않나요.(웃음~) 가끔 쌀뜨물로 세안하고, 매실주를 직접 담가 스킨 대용으로 이용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녀가 경제인연합회 참사 시절, 건강보험 탄생에 참여 했고, 마포로 독립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아버지의 병원 생활과, 어머님의 중풍 등을 수발하게 된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관여 했던 일이었지만 건강보험은 참 잘 만들어졌다 하는 얘기를 하면서, 지금은 어머니가 노인요양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으니, 사람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같단다.

그녀를 만나고, 뒤돌아 예당저수지를 바라보면서 내려오는데 치매로 어린아이가 되었던 아버지의 딱딱해진 변을 손가락으로 파내면서도 즐겁더라고, 자기에게 이런 기회를 준 아버지에게 고마웠다는 얘기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눔과 행복이 바로 내 앞에 있다는 사실과 어머니를 위해 본인이 건강해야 된다는 말과 함께 떠돈다.

짧은 인터뷰이지만 그녀의 나눔의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였으면 좋겠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사내기자단 / 박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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