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라는 말은 참 많이 쓰는 단어이죠. 담배, 커피 등..  내 의지대로 쉽게 중단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중독”이라고

하는데요. 봉사도 하다 보면, 그 뿌듯함과 타인을 위한 일을 했다는 성취감 때문에 중독이 된답니다. 가슴은 따뜻,

심장이 뭉클해지는 그런 ‘건강보험공단 동대문지사’의 봉.사.중.독.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실까요? ^^

 

 

2014년 5월 15일, 따뜻한 봄날, 동대문지사의 건이강이 봉사단은 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에 다녀왔어요. 한 달에 한 번

어르신들을 위한 배식 봉사를 하러 갔어요. 배식봉사 하면 흔히 밥을 퍼주는 장면만 생각이 나시지요? 하지만 밥을

푸기까지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많이 필요하답니다. 

 

 

400명이 넘는 어르신들의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모든 게 다 대용량이랍니다. 장롱만한 냉장고 세 개에도 안 들어갈 만한

엄청난 양의 식재료를 깨끗이 물에 씻고, 정성껏 칼로 다듬어 준비를 하는 첫 준비 작업이 필요해요. 하고 나면 칼을 쥐었던

손에는 영광스런 눌린 자국이 남고, 팔 근육이 당기고 알이 송송이 밴답니다.

 

 

 

다음은 고기볶음을 만드는 작업인데요.

 

성인이 두 팔 벌린 길이만큼의 가마솥에, 호랑이랑 사자가 함께 먹어도 배가 부를 양만큼의 돼지고기를 넣어요.

양 팔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을 있는 힘껏 사용하여 고기에 양념이 고루 배게 젓다 보면, 어느 덧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심박동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마냥 쿵쿵쿵 뛰지요.  

  

 

400인 분의 식사를 준비하다보니, 폐기물 박스도 고물상에 팔아도 될 만큼 많이 나온답니다. 박스에 끈끈하게 붙어있는

테이프를 쭉 잡아 뜯고, 버리기 수월하도록 꾹꾹 눌러 펴서 카트에 올리는 작업을 수십 개 하다보면 입에 단내가 난답니다.

밥을 담아드리는 것만 생각했지, 이런 고단한 작업이 있는 줄은 몰랐지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작업들까지 맛있는 식사 준비가 완료 되고 나면, 배식봉사자들은 먼저 밥을 먹는답니다. 젖먹던

힘까지 내어 배식을 하려면 밥심이 필수이거든요. ^^

 

내가 만든 반찬이라서 그런지, 직접 조리과정을 보고 믿을 수 있는 식사라서 그런지, 완성된 밥들은 참말로 꿀맛입니다.

브로콜리와 시금치의 건강한 향기와, 미역국 속 들깨 가루 하나하나가 입 안에서 맴돌며 춤을 추는 기분이 듭니다. 

 

이제, 이 맛있는 식사를 오랫동안 기다리신 동대문구 어르신들에게 하나하나 사랑담아 퍼드릴 시간이 왔어요. “줄을

서시오.” 허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인기있는 복지관 식당 계단엔 배식시간 1시간 전부터인 10시 반부터 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계시답니다. 

 

11시 27분, “3분 남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복지관 영양사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밥 담당, 반찬

담당, 퇴식구 담당이 일사불란하게 자기의 위치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1시 30분 정각이 되면, 입구가 열리자 마자 물밀 듯이 어르신 듯이 몰려 들어오십니다. 그 과정에서 새치기를

했다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그럴 때면 봉사자들은 어쩔줄 몰라 하지요.

 

숟가락 젓가락을 나누어 드리면서, 어르신들게 맛있게 드시라고 미소로 따뜻한 말 전해드리면,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 한마디가 정말 마음이 먹는 꿀처럼 느껴져요. 

 

 

 

 

역시, 오늘의 식사 만족도는 100% 였나봐요! 불만족 칸에 담기는 공이 한 건도 없이, 모두들 활짝 웃고 가셨어요! 

 

비싼 호텔 식사도 좋지만, 봉사자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식사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깨끗하고 믿을 수

있는 식재료로 봉사자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거든요. 한 끼 식사라 할지라도, 건이강이 봉사단 5명과, 시니어

봉사단 5인이 합작하여 만든 사랑과 정성의 하모니이기도 합니다. 정말 뿌듯하지요!

 

 

이제, 배식봉사의 꽃인 설거지가 시작되었어요. 식판 수백 개를 뜨거운 증기가 나오는 소독기 옆에서 씻어내는 고단한

작업이 남았습니다. 옷에는 있는 대로 음식물 찌꺼기가 섞인 물이 튀고, 날도 더운데 뜨거운 바람 때문에 더 힘든 작업

이에요. 그래도, 다음 식사를 위해서 꼭 해야 하는 일이기에, 동대문지사 건이강이 봉사단은 분주히 움직입니다. 

 

고된 일정을 마치고 건이강이 봉사단의 마음엔 달처럼 두둥실, 행복이 충전되었어요. 

 

아차, 봉사중독 이야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말씀을 드리고 끝을 맺어야 할 것 같아요. 건이강이 봉사단 동대문지사와

함께 봉사한 시니어봉사단 단원이신 75세의 할머니께서 그러시더라구요. “나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여기랑 밥퍼

봉사랑 같이해. 봉사를 안하고 집에서 쉬면 쉬는 것 같지가 않아. 봉사 중독인 것 같아. 봉사를 안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그 강력한 단어 봉.사.중.독. 이 세상 어떤 중독보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뭉클해지는 아름다운 단어인 것 같아요.

함께 사는 세상, 국민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공단의 아름다운 가치가 빛난, 건이강이봉사단 동대문지사의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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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맞아 2013년 9월 6일부터 10월 20일까지 개최되는 ‘2013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약초축제행사로는 올해로 13번째 열리는 이번 행사는 ‘미래의 더 큰 가치, 전통의약’을 주제로 세계의 전통의약을 접하고 또한 우리 한의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열렸다고 합니다.

 

 

 

과연 약초축제 행사답게 행사장 입구 부터 온갖 약초 냄새와 함께 약초판매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약초?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요? 뭐니뭐니해도 바로 산삼이겠죠^^

 

그런데 산삼은 너무나 귀하고 값이 비싸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약초는 아니구요. 산삼만큼은 아니지만 만성질환에 좋다는 여러 가지 약재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약초들이 너무 많아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만성질환에 좋다는 약초 몇 가지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당뇨에 좋다는 여주

 

   여주 씨와 열매에 들어 있는 카란틴이라는 성분은 식물인슐린

   이라 부리며 췌장의 기능을 활성화시켜 인슐린 분비를 촉진

   다고 합니다.

 

 


 

    곰보배추를 아시나요?

 

    수세미, 도라지와 함께 기침, 천식과 비염에 좋은 약초이며
    곰보배추에는 플라노이드,호모플란타기이닌,히느파둘린, 

    에우카포놀라,7-글루코사드,상포닌 감심 배당체,불포화지

    방산 등 우리몸에 좋은 성분이 아주 가득 들어있어 면역력

    향상에 아주 좋다고 하네요~

 

 

 

 

 

 

   개똥쑥?

 

   개똥처럼 아무 곳에나 널려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요즘은 환경오염으로 오히려 찾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암세포를 죽인다는 플라보노이드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 

   기존 항암제 보다 1200배 높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차가운 성질의 약초로서 열을 끌어 내리는 효과도 있다고

   하네요.

 

 

     꾸지뽕은 뽕나무의 일종으로 동의보감, 식물본초 등에

   널리 소개된 약초입니다. 플라보노이드계 루틴, 루닌,

   모린, 알기닌 등 각종 암 예방에 좋은 성분이 다량 함유

   되어 있고 비타민B,C도 다량 함유되어 있어 피부질환,

   감기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꾸지뽕으로 효소를 만들어 섭취하면 당뇨병, 고혈압 등

   예방에도 좋다고 하네요.

 

 

 

 

 * 꾸찌뽕 효소 만드는 방법 *

   

       1. 물에 식초 몇 방울을 넣은 후 꾸지뽕을 넣어 깨끗이 씻은 다음 흐르는 물에 한번 더 씻어 물기를 빼냅니다.

      2. 꾸지뽕과 설탕의 비율을 1:1로 섞어서 항아리에 담아 한지로 입구를 막아 100일간 발효를 합니다.

      3. 100일이 되면 꾸지뽕 열매를 빼내고 2차 발효에 들어가는데 6개월 후에 효소원액과 물의 비율 1:7로 희석

          해서 드셔도 좋지만 2차 발효기간이 오래될수록 효소로서 좋답니다.

 

 

 

   약초전시장에는 익히 들어 앎직한 약초들도 많았지

   처음 듣는 생소한 이름의 약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감기에 좋다는 약초들

  

 

 

자양강장, 신경쇠약에 좋다는 약초들

 

 

 

남자(?)들에게 좋다는 약초들 입니다.

 

 

이번 약초엑스포는 작년과는 약간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데요. 크게 주행사장인 동의보감촌과 부행사장인 각종 전시관 풍물시장 등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리산 자락 161만㎡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산청엑스포는 주제관을 비롯해 11개 전시관에서 동의보감과 세계전통의약의 체험 전시 행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촌에 입장하려면 입장권을 구매하여야 하는데 가격은 15,000원 @.@ 조금 비싸네요. 하지만, 입장해 보시면 가격이 왜 비싼지 조금은 이해하실 수 있게 됩니다.

 

한방뜸질, 족욕, 스트레스 진단과 사상의학 체질 자가측정, 침 시술 등 여러 가지 한방체험행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체험 기초 재료비로 이해하면 되겠죠?

 

 

피톤치드를 함유하여 아토피에 좋다는 편백나무 체험장. 편백나무로 만든 베개와 방향제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베개는 조금 비싸네요.

 

 

동의보감 하면 명의 허준 선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죠? 의성 허준 선생은 1539년 태어나 1615년에 돌아가셨는데요. 동의보감은 6년의 과정을 거쳐 1613년에 발간되었습니다. 동의보감은 귀향을 갔던 유배지에서 저술하였다고 합니다.

 

병이 있으면 치유의 길도 반드시 있다고 합니다. 들길을 가다가 산길을 가다가 무심코 보고 지나치는 야생초들. 그들이 모두 약초로쓰이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산청세계한방의악엑스포를 관람하고 나서 들길에, 산길에 무심하게 피어 있는 풀들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네요. 그러나 아무리 귀하고 뛰어난 효능을 가진 약초라도 약효를 알지 못하면 한갖 잡초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대한민국을 힐링하다’

이번 행사의 슬로건처럼 앞으로 한방의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병의 치료는 물론, 만성질환 예방에도 한방의학이 좀더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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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피선샤인 2013.10.19 1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들이네요~

  2. 도도한 피터팬 2013.10.19 16: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3. L'artiste curieuse 2013.10.20 0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막을 내리겠군요. ^^ 생소한 약초들 뿐인데, 그 나마 둥글레는 친근한 느낌이 드네요. 정말 아는게 힘인 것 같아요. :)

 

 

 

 

 

        “내용이 독창적이고 귀중하며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 중요한 기록유산이다. 세계 의학지식을

        보존한다는 의미가 있다. 현대 서양의학 이전에 동아시아인 보건에 도움이 됐고, 서양의학보다 우수한 것으로

        인정되는 분야도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유네스코는 2009년 7월 의학서적으로는 최초로 ≪동의보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유네스코가 밝힌 ‘등재 이유’는 한마디로 ‘한의학계의 바이블’로 불리는 동의보감이 400년이란 시공을 초월해 그 가치가 여전히 빛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조선시대의 명의이자 의학자, 어의(御醫)였던 허준(許浚·1539~1615)이 17년에 걸쳐 집필한 동의보감은 한의학사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조선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호학의 군주 정조가 “의학도 유술(儒術)의 하나다. 동서의 의서(醫書)들 중 우리나라에 적합한 것은 오직 양평균 허준의 동의보감”이라고 격찬한 것은 동의보감이 단순한 의학서적을 넘어 세계관·인체관이 함께 담긴 의학·철학서임을 함의한다.  

 

임진왜란 중에 백성들이 전쟁으로,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선조는 허준에게 의학서적 편찬을 명한다. 아울러 우수한 처방을 찾아낼 것, 약을 쓰지 않고도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연구할 것, 구하기 쉬운 약재를 사용할 것 등 몇 가지를 당부한다. 동의보감에는 이런 선조의 당부와 생각이 고스란이 담겨있다. 한마디로 실용적이고, 경험적인 의학서인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가 소개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약재 637종의 효용을 한글로 상세히 적어놓은 것이다. 어려운 용어로만 채워진 오늘날의 의학현실과 비교된다. 애민(愛民)과 실용이라는 동의보감의 기본철학이 읽혀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기존의 전통의학 이론에 방대한 경험을 접목한 것 역시 동의보감이 한국 한의학을 대표하는 고유명사로 자리잡은 이유다. ‘동의보감에 따르면…’은 바로 처방의 실효성을 검증하는 표현이 됐다.

 

 

 

통즉불통(通則不通)…·통하면 아프지 않다

 

동의보감은 약재의 효용 나열에만 그치지 않고, 인간의 건강을 정(精) 기(氣) 신(神)이라는 양생(養生)적 차원으로까지 확대했다. 도교에 철학적 기반을 둔 양생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명의 정기를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동의보감은 청정한 마음을 갈고 닦으라고 강조한다. 병의 예방엔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동의보감의 핵심은 순환이다. 혈의 순환, 기의 순환이 바로 건강이다. 통즉불통(通則不通·통하면 아프지 않다)은 동의보감의 맥을 짚는 사자성어다.

 

동의보감은 유교 불교 도교 중 철학적 기반은 도교에 가장 가깝다. 동의보감은 인체의 내부를 구성하는  생리적 요소로 정(精) 기(氣) 신(神)을 제시하는데, 이는 도교에서 쓰는 전문 용어다. 정은 생명의 원천, 기는 원천을 작동시키는 에너지, 신은 에너지에 방향을 주는 정신활동을 말한다. 정·기·신이 균형을 맞춰 원활히 순환을 하는 것이 바로 건강인 것이다. 원천적으로 타고난 기를 회복하는 것이 핵심인 양생술의 관점으로 보면 질병의 원천은 탐진치(貪瞋癡)다. 탐욕은 정을 소모시키고, 진심(분노)은 기의 흐름을 흐트러뜨리고, 치심(어리석음)은 신을 어지럽힌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정신의 불균형은 육체의 불균형을 낳는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병이 예방되고 치유됨을 곳곳에서 시사한다. 정신의 붕괴는 바로 몸의 붕괴다. 

 

 

 

시공 초월한 가치 동의보감


동의보감(東醫寶鑑)은 말 그대로 ‘우리의학의 보배로운 거울’이다. 동의는 중국 의학과 구별되는 조선 의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을 뛰어 넘으려는 허준의 자존심이 엿보인다. 연암 박지원이 1763년 중국 사신으로 가서 베껴온 중국판 동의보감 서문엔 ‘동의보감을 보급하는 것은 천하의 보배를 나눠 갖는 것’이라고 적혀있었다니 충분히 근거있는 자존심이다. 동의보감은 1613년 출간 직후부터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일본은 1724년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막부차원에서 일본판 동의보감을 펴냈다. ‘의학의 표준을 얻으려 한다’는 게 편찬 목적이었다. 중국에서는 30여종의 다양한 동의보감 판본이 나왔다. 일본과 중국인들 스스로도 동의보감을  ‘의학의 표준’, ‘천하의 보물’로 평가한 것이다.

 

동의보감의 영향력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쳐가고 있다. 허준은 당시 중국 한의학의 두 갈래인 남의(南醫)와 북의(北醫)에 견줄만한 한 축으로 동의(東醫)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동의’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한마디로 동의가 남의, 북의에 판정승을 거뒀다는 의미다. 동의보감을 영어로 옮기는 작업도 거의 마무리 단계다. 또한 허준의 ‘고전’ 동의보감에 현대 한의학자들이 새로운 지식이나 임상을 추가한 ‘신동의보감’ 편찬도 속력을 내고 있다. 올해로 동의보감이 출간된 지 만 400년이다. 무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동의보감은 단순한 고전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에도 학문·실용적 가치가 여전히 빛나는 ‘한의학 백과사전’이다.

 

                                                                                                                            글 /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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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도한 피터팬 2013.03.26 1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2. 해피선샤인 2013.03.26 1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

 

  민족의 의성 허준 선생과 그의 스승인 신의 류의태 선생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의술을 펼친 동의보감의 고장 산청에서

  열린 산청한방약초축제 현장을 다녀 왔다.

  

 


 산청군 둘레에 위치한 지리산에는 천혜의 자연자원인 여러 가지 약초가 자생하고 있는데, 그 약초의 효능이 탁월하여 약초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지리적 자연환경과 역사적 배경은 산청군을 명실공히 '전통한방과 약초의 본고장'이라 불리게 하는 이유다.

 

산청한방약초축제 전경

 - 다양한 전시관과 체험관이 마련된 이번 행사는 5월 3일부터 5월 9일까지 7일간 개최되었다.-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 선생과 그의 스승 류의태 선생이 주로 의술활동을 펼친 고장인 산청에서는, 그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우수한 우리의 전통한의학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매년 5월 초순경에 산청한방약초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유망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이번 축제는 '동의보감 숨결따라~ 산청약초 향기따라~'라는 행사 슬로건 아래, 산청군 금서면 경호강변 4만 여평 부지에서 올해 12번째로 개최되었으며,  여러 가지 전시와 체험을 통해 약초에 대한 올바른 인식 함양과 약초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행사 목적으로 하고 있다.

 

동의보감관(주제관)내 약초생태관

 - 인체의 각 장부를 상징하는 오색별 약초화분 등 산청의 각종 희귀약초를 체험할 수 있다. -

 

동의보감관내 한방산업관

- 우수한 산청 약초를 이용한 각종 한방 가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

 

 효자 대보탕 만들기, 염색약초향기주머니 만들기, 한방약차 체험 및 한약달이기, 한방떡 만들기, 한방약초술 칵테일 체험, 약초 교실, 약초축제사진콘테스트, 약초비누 만들기, 약초 훈증기 체험, 약초 화분 만들기 체험 등 여러 가지 체험행사가 축제기간동안 펼쳐져 지역주민들과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의 즐거움을 자아 냈고, 행사기간 중 어린이날을 맞아 어린이를 위한 다채로운 체험행사도 펼쳐졌다.

 

비누방울 만들기 체험

 

 

어린이 부채만들기 체험

 

 약초로 분재를 만들고 또 여러 가지 약초를 직접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 보고 약초 썰기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하여 약초를 전혀 모르는 일반인들도 어느 새 "아~! 약초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약초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산청 한약방 한의사 체험

- 어의, 의녀복을 입고 즐거워하는 외국인관광객의 모습, 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한약재 썰기 체험

- 작두로 한약재를 썰고 있는 외국인관광객, 이색적인 체험에 무척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


 ‘음식이 곧 보약’ 이란 말이 있듯이 들이나 산에서 나는 풀, 열매, 뿌리가 비단 약재로 쓰이는 뿐만이 아니라 우리네 밥상의 훌륭한 반찬으로 올려진다.  한방향토음식, 동의보감 상차림, 관광체험음식 등 100여 종에 전시된 약선음식관을 둘러보면서 "음식도 모르고 먹는 것 보다는 알고 먹는 것이 우리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의보감관 내 위치한 약선음식관

- 오장음식, 동의보감 상차림, 관광체험음식등 100여종이 전시되어 있다 -


 평소 약초라 하면 생소하고 어렵게만 여겨졌던 것이 사실인데 여러 가지 약초를 직접 만져보고 또 약초로 만든 나물이나 장아치를 먹어보고 직접 체험해 봄으로써 약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생겨질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한방약초술 칵테일(사진출처 :산청한방축제 홈페이지)

 

 지리산이 품고 있는 청정한 자연에서 자라는 나물과 한방약재로 쓰이는 모든 약초를 이번 한방약초축제 체험 한번으로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이런 행사를 통해서 우수한 우리 약초가 널리 홍보가 되고 허준 선생과 류의태 선생이 전하는 우리 한의학의 전통도 더욱더 계승, 발전되기를 기원해 본다.

 

 

 

 

 

 

글 /  국민건강보험공단  사내기자  김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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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닐라로맨스 2012.05.18 07: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경만해도 건강해지는 기분입니다! ㅎ

  2. +요롱이+ 2012.05.18 0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만 봐도 너무 좋네요^^
    잘 보구 갑니다..!!
    오늘만 지나면 주말이네요^^
    좋은 하루 보내시고 평안한 주말 되시기 바래요^^

  3. 아레아디 2012.05.18 1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금요일!!
    불타는 금요일 되시길 바라면서,,,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으로,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허준  하동주

 어려운 시기의 고결한 열망

 

 

 

 

 

 

 

 

 

 

 

 

 

 

  김라리사 뻬뜨로브나와 신 아가피야입니다.


  한국한방병원집단에게 모든 환자를 위한 주의 깊고 친절한 태도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타슈켄트 시민들을 원조하기 위하여 봉사활동하시는 닥터 하동주와

  김지연님께 특별히 고맙습니다.

  환자 대부분의 의견을 표현하면 놀랍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의 고결한 노동과 우즈벡 국민을 도와주는 열망에 매혹됩니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1997년 10월 10일. 

 

 

  우즈베키스탄(Uzbekistan)의 한 환자가 한의사 하동주에게 쓰는 편지에는 감동과 고마움이 가득합니다.
  하동주는 1965년에 태어나, 1984년 원광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정부파견한의사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우즈베키스탄 ‘김병화 농장’ 보건진료소와 타슈켄트국립

제1의과대학교 병원에서 5년간 근무하였습니다.

 

한국, 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 앞에서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중부에 위치하면서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80년의 지배에서 벗어나 1991년 독립하였습니다.

  병원체제는 구소련의 공산주의체제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지역별로 선진국 의료체계를갖추었지만, 약품이 부족하고 의사가 없어 각종 질환으로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최초의 한국사람은 고구려 출신인 당나라 장군 고선지입니다.
  1,200여 년 전에 고선지 장군은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석국을 정복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바로 이 석국이 오늘날의 타슈켄트입니다. 그리고 구소련에 의해서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한인들의 일부가 지금의 타슈켄트 근방에 정착을 했고, 그 후손들의 상당수는 아직도 이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고려인 김병화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1905년 연해주에서 태어나서, 다른 한인들처럼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습니다. 그리고 강제이주 직후에 황무지에 물길을 열어놓고 수백만 평의 벌판을 논밭으로 개간하고 식량을 지원한 공로로 구소련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서 노력영웅훈장을 받은 인물입니다.

 

  김병화가 일했던 농장은 원래 ‘북극성 농장’이었는데, 1974년 김병화가 죽으면서 ‘김병화 농장’으로 변경됐습니다.

  김병화가 1940년부터 35년간 농장장으로 있을 당시에, 이 농장은 뛰어난 생산능력 때문에 구소련으로 부터 수차례 훈장을 받았습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을 방문 기념하여 ‘김병화 농장’ 보건진료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는 KOICA와 우즈베키스탄 진출 기업단체의 도움으로 타슈켄트국립 제1의과대학교 안에 한국,우즈베키스탄 한방병원이 10년간의 계약으로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한의사 하동주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처음으로 의료 활동을 펼친 한국인입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한방진료 활동을 하였으며,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의 개원에 일조를 담당하였습니다.

  날로 늘어나는 환자로 인하여 진료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며, 또한 제 때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여 만성화되고 고질화된 환자를 치료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의료장비 및 의약품으로 인하여 원만한 의료 활동이 힘들었습니다.

 

  저임금으로 인한 간호사 부족으로 한 명의 간호사로 매일 70여명을 진료하였고, 지원금이 부족하여 통역이 없는 관계로 정확한 의사전달이 안되었습니다.

  진료소 내에 난방시설이 작동되지 않아 항상 추웠습니다.

 

  그는 동포 및 현지 주민 대상의 무료 한방진료를 하였고, 대한한의사협회와 공동으로 우즈베키스탄 의료 봉사활동 실시 등 보건 수준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진정한 인술 실천으로 민간 외교사절로서의 양국 우호증진에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의 열악한 의료수준으로 인해 동포와 현지주민들에게 무료로 질병을 치료해주는 한방진료에 대한 선호가 나날이 높아지는데 기여하였습니다.

 

  ‘김병화 농장’ 보건소에서 하동주의 활약은 눈부셨습니다.
  그들은 치료를 받으면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초콜릿을 선물하였는데, 그 초콜릿을 간호사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맛은 달콤하였지만 마음만은 씁쓸했습니다.  백인계 러시아인 그리고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그를 아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감사의 편지를 씁니다.

 

 

 

  존경하는 김영삼 대한민국 대통령 귀하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김병화 집단농장의 주민들은 당신께 글을 드리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이 독립한지 4년이 되었는데 이는 매우 짧은 기간 입니다.
  그러나 공화국은 그 동안 국민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 공화국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위하여 까리모프 대통령은 여러 나라들과 국민들의 복지 향상을 위한 지원협정을 맺고 있습니다.  특히 까리모프 대통령과 각하 간에 맺은 정부간 국제협력 협정의 일환으로 하동주 한의사가 우리 집단농장에 왔습니다.

 

  진료를 시작한 이래 그는 환자들 사이에서 그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과묵하고 겸손하며, 환자를 대할 때는 주의를 기울이는 등 좋은 성품에 따뜻하고 양심적인 의사입니다. 그로 인하여 대한민국과 각하는 이곳에서 무한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하가 1994년 김병화 집단농장을 방문한 이래 각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각하는 우리 모두의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각하가 김병화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이 곳 집단농장의 많은 주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각하가 해주신 모든 일들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의사와 많은 약품을 이곳에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작금 공화국의 경제상황과 특히 우리 집단농장 주민들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고려하여 우리는 각하가 우리를 도와주시고 추가로 약품을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동주 한의사가 가져온 약품이 벌써 다 쓰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능하다면 하동주 한의사가 보건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의료장비들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각하의 건강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합니다.

 

                                                                        김병화 집단농장 주민을 대표하여
                                                                                                의사 대표 황 나탈리

 

                                                                        마을 협회 대표 바바베코프
                                                                                                 집단농장 주민들

 

 

  어려운 상황 아래서 그의 의료 활동은 박애심과 인내심에서 우러난 결과입니다.  그리고 1997년 그는 정부파견의사 계약기간이 만료되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근무연장사유서는 간곡하기까지 합니다.

 

 

 

  본인은 1995년 11월 21일자로 우즈베키스탄에 의료단으로 파견되어 ‘김병화 농장’과 타슈켄트 국립 제1 의과대학 병원에서 한방진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김병화 농장’에 한방진료소를 개설하여 근 2년여 동안 5,0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여

이들에게 적지 않은 호응을 얻었다고 사료되며, 또한 최근에는 본인의 의료 활동에 따른 호응에 힘입어 타시미의과대학과 대한한의사협회가 주최가 되어 한국,우즈베키스탄 친선한방병원을

개원하여 한방의료 활동을 통한 국위 선양에 일조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위와 같은 점을 토대로 앞으로 2년 동안 근무를 연장시켜 그 동안 배웠던 이 나라의 언어와 풍습을 밑바탕으로 삼아 한방의료 활동을 통한 국위 선양과 아직 미비한 이 나라 의료제도 및 시설에 조금 더 이바지하고싶습니다.

 

 


  1995년. 한의사 하동주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습니다.
  비행기에는 시내버스처럼 지정된 좌석이 없었습니다. 빨리 뛰어가서 앉으면 되었습니다. 승객들은 비행기 안에서 매운 담배를 피웠고, 독한 보드카를 연신 마셔댔습니다. 술이 취해 큰소리로 이야기하다가 끝내 싸움까지 벌어졌습니다.

 

  난생 처음,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하늘 길은 너무 험하였습니다.
  가까스로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으려고 3시간을 기다렸지만 이방인에게 누구도 친절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마중 나와 있던 대사관 직원이 입국심사장까지 들어와서야 우즈베키스탄 땅을 정식으로 밟을 수 있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KOICA 정부파견한의사로 처음 발을 내딛은 한의사 하동주는 그곳에서 무녀리의 역할을 훌륭히 담당하였고, 그 열망은 밀알이 되어 타슈켄트에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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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닐라로맨스 2011.11.25 0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훌륭한 분들덕에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2. 꽃보다미선 2011.11.25 09: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하시네요.
    그져 감탄할 따름이지요. ^^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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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스탄의 허준  이정열

  시인 한의사

 

 

 

 

 

 

 

 

 

 

 

 

 

 

여태 뭐 했어!
귓전을 때리는 소리에 놀란다.
아내의 지청구에 나는 무너진다.
어디 무너지는 게 공든 탑뿐이겠는가.
추억은 세월의 사리가 되어 쏟아진다.

‘너에게 내가 전부였으면’
오래 전 나에게 온 쪽지 한 장
책갈피에서 떨어진다.
아프지만 단호한 손길로
그 전부를 구겨서 버린다.

이제 겨우
한걸음 나갔을 뿐이다.


 시인이며 한의사인 이정열이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부파견 한의사 자격으로 카자흐스탄(Kazakhstan)으로 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면서 쓴 시의 일부분입니다.

 환자에게 봉사하는, 환자를 사랑하는 의료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제껏 쌓아 온 공든 탑은 단호한 손길로 구겨 버립니다.
 그는 의료봉사의 발걸음을 재촉하기 위해 아프지만 과감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인 한의사 이정열...

 

 이정열은 1960년에 태어나, 1986년 원광대학교 한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한의대를 다니면서 원광대문학회에서 시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상지대학교에서 임상학 강의도 하였고, 서울에서 한의사로 일하던 그는 부도 쌓았고 명성도 이루었습니다. 한의사이면서 시인이었던 그는 환자를 돈으로만 보아온 지금까지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봉사를 자원했습니다.


 인술의 근본을 새롭게 배우고 싶었고, 진정으로 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에게 자신의 온 정성을 쏟고 싶었습니다.

 그는 파견되기 전에 카자흐스탄 관련 자료를 수집하던 중 알마티에 거주하는 고려인 시인 이 스타니슬라브의 우슈토베에 관한 시를 읽고 감동받았습니다. 그는 중앙아시아 작가회의에 참가하여 《고려문화》에 여러 차례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고려인들은 정든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슈베토, 눈물의 유배지로 강제이주 당하였습니다.

 그는 흩어진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원형 격인 그곳을 찾아 잡초처럼 다시 일어난 고려인들과 의료혜택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경제성장 본거지로 급속히 떠오른 카자흐스탄에는 고려인 10만여 명과 1990년대 초부터 기회를 찾아 몰려든 한인동포 3,000여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정부파견한의사로 카자흐스탄에 파견되다...

 

 드디어 2006년 KOICA의 정부파견한의사로 한국 · 카자흐스탄 친선병원에 부임하여 3년간 재임하였습니다.
 한국 · 카자흐스탄 친선병원은 2000년 KOICA의 지원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개원 당시 알마티의 여러 시립병원에 흩어져서 진료하고 있던 한방과, 외과, 내과의 한국 해외파견 의사를 중심으로 개원하였습니다.

 

 2002년 알마티시청으로 병원 운영권이 이관된 후에도 의사가 꾸준히 늘어나 치과, 방사선과, 임상병리과, 신경과, 척추교정과 등에서 15명의 현지 의사들과 함께 진료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운영권이 시청으로 넘어간 후에는 늘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에게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민족과 국적을 떠나 똑같은 환자였습니다.

 KOICA의 특성상 현지인 위주의 병원이 될 수밖에 없지만, 먼 이역만리에서 기쁨의 씨줄과 슬픔의 날줄을 엮어가고 있는 교민들도 진료하였습니다.

 

 그는 통역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원주민 환자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러시아어를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고려인들을 위한 정기순회 진료를 정례화 하였습니다.

 

 

 

  우슈토베에서의 무료진료 그리고 고려인...


 고려인들이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최초로 정착한 우슈토베.

 알마티에서 420km 떨어진 길을 자동차로 7시간이나 직접 운전하면서 우슈토베로 달렸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 가도 가도 황량한 벌판. 길은 멀었고 너무나 거칠었습니다. 어떤 때는 튀는 돌에 자동차의 연료통이 구멍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우슈토베가 마치 푸른 섬처럼 그에게 다가왔으며, 그곳에서 고려인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신고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의 옛 모습을 오롯이 지켰습니다.

 

 조국의 풍속과 습관에 따라 집을 지었고, 논밭을 일구었고, 추석과 설을 보냈습니다. 먼 길을 달려그곳에 도착하면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은 그를 반겼습니다. 긴 여정의 피곤함이 싹 사라졌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한국의 과거로 달려간 듯 평온한 느낌에 행복하였습니다.

 

 그곳의 고려인들은 물론 체첸족과 쿠르드족 등 현지인 2,900명에게 침과 부항 그리고 뜸을 사용해서 한방진료를 무료로 실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부파견한의사로서 정해진 일만 하지 괜히 일을 벌이지 말라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마음고생도 하였습니다.

 

 카자흐스탄은 사회주의 잔재가 남아 있어 의사의 근무시간을 하루 3시간으로 제한하였습니다.
 그런 의료 현실에서 한의학의 인기는 당연히 높았습니다. 그가 한국 · 카자흐스탄 친선병원 전체 수입의 70%를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비를 들여 우슈토베의 무료진료를 꾸준히 수행하였고, 마침내 한국대사관도 지원에 나섬으로써 정식 프로그램으로 정착시켰습니다. 마침 부산대학교 의대를 나와 해외 협력의사로 합류한 젊은 내과의사 황상현이 흔쾌히 힘을 보태면서 그의 무료 진료는 가장 성공적인 봉사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한방진료에 대한 우슈토베 현지인 반응도 매우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소련시절 노력영웅이었다는 신 리사는, 그의 일행이 무료진료를 시작한 이후 한방의 뛰어난 효과를 체감한 현지인들이 지역병원 찾기를 꺼리게 되는 현상이 생겨났다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이런 봉사활동을 하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어 고려인이란 것이 자랑스럽다고 하였습니다.

 

 

 

  3년간의 파견활동을 회상하다....


 그는 자신을 돌아봅니다.

 

 보은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제가 많이 배웁니다.
 우슈토베에는 고려인과 사나운 체첸인 그리고 기구한 처지의 독일 민족까지 수많은 민족이 말이 잘 안 통해도 몇 시간을 공감하며 대화를 나눌 정도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평화롭습니다.

 

 가난하지만 갈등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죠. 탈레반과 9·11테러 같은 건 여기선 싹 틀 수 없어요.

 우슈베토의 고려인 사회는 내게 다시 시인의 꿈을 안겨준 오래된 미래였습니다.

 

 2011년.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였던 카자흐스탄.

 그는 정부파견한의사로서 카자흐스탄에서의 3년간의 세월을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특히 아픔의 과거를 간직한 채 척박한 황무지, 고립된 우슈베토에서의 내 나라 내 겨레 고려인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리고 그는 강조합니다.

 

 따스한 정에서 우러난 인술을 펼치는 것보다 더 높고 숭고한 외교활동은 없습니다.

 

 


카자흐스탄 일간지 베체르니이 알마타에 실린 의료장비 기증식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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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닐라로맨스 2011.11.04 0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한민국 사람이라는것이 자랑스럽네요! ^-^

  2. 꽃보다미선 2011.11.04 0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한 분들 .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하겠네요.
    존경합니다 ^^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를 엮어 출판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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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스탄의 허준  김동선

  알마티의 하늘 아래

 

 

 

 







 

 

 

 그에게 슬픈 역사가 담긴 어느 고려인 동포의 아픔이 찾아옵니다.

바쁜 일정으로 눈코 뜰 새 없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국대사관의 영사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한 환자를 부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싹 마른 노인이었습니다. 처음 본 순간, 김동선은 그를 꼭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석도인.
경남 합천군 용주면 버드실마을이 고향이었습니다.


일제강점하, 막 결혼한 그의 형에게 징병통지서가 날아들었고, 집은 한마디로 초상집이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형님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머나먼 전장 사할린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사할린에서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카자흐스탄까지 떠돌았습니다.

 

그는 고향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한국에서 온 청년 한의사 김동선의 옷자락에 매달렸습니다.

 

“내 고향에 좀 데려다 달라."

 

여느 동포와 다른 정확한 발음이었습니다. 한시도 고향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김동선은 결심하였습니다.

 

바쁜 한국 출장길이었지만, 합천군 용주면 사무소 호적계를 찾았고, 수소문 끝에 마침내 그의 조카를 찾아냈습니다.

부산에서 온 그의 조카는 아버지 대신 사할린으로 떠난 작은아버지를 가물가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온 김동선은 이 사실을 알렸고, 조카들의 사진도 보여주고, 통화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후로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는 매일 김동선을 찾아와 아이처럼 졸랐습니다.

결국 한국의 조카들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카와 마지막으로 통화할 때 울먹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고향에 가고 싶은데, 안되냐…….”

거기에 물러 설 김동선이 아니었습니다.
합천군수에게 간곡한 편지를 썼습니다.

비행기표는 내가 부담할 터이니 고향에서 그가 체류하는 동안 보살펴 줄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2월에 편지를 썼는데 3월이 가고 4월이 다 지나가도 합천군에서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 날은 5월 5일이었습니다.
우연히 한국대사관에 들렀더니, 어느 직원이 합천군수로부터 온 행정우편을 김동선에게 전하였습니다.

급히 뜯어보았습니다. 언제라도 환영이니, 담당자와 상의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1997년 3월 합천군에서 발송된 편지였는데, 외교행낭 속에 묻혀 있다가 그제야 빛을 본 것입니다.

 

김동선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하였습니다.

급히 그의 집으로 달려가 보니 러시아인 부인에게서 낳은 14살 아들이 아버지 주검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김동선은 장례식만이라도 한국식으로 치러 드리고 싶었습니다.

관에 빨간 천을 씌우고 붓이 없으니 굵은 매직으로 명정을 썼습니다.


‘대한민국 석도인지구’


그날은 5월인데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진눈깨비가 하염없이 날렸습니다.

 

 

한국 · 카자흐스탄 친선병원 의사들과 함께(맨 오른쪽 김동선)

 

 

김동선은 1964년에 태어나, 1989년 대구한의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광산 김씨 종택인 쌍벽당이 그가 자란 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보수적이었지만, 그는 외국을 동경하고 모험을 좋아하는 개방적인 성격이었습니다.

 특히 역사학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년이었습니다.

 

 

대학시절에 대구 비산동에서 주말의료봉사를 했습니다.

봉사라기보다 모순을 개혁하고 싶다는 갈망이었고, 올 곧은 선비정신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에서 한의원을 개원하여 부도 많이 쌓았습니다.

 

 

1994년 여름. 한국에서는 약사법분쟁이 가열되었습니다.그의 고민은 더 심해졌고, 출구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정부파견한의사를 모집한다는 신문 공고를 보는 순간, 운명적으로 ‘내 길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교사로 근무하던 아내에게 그 뜻을 이야기하자 아내는 ‘3일의 시간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3일 후, ‘당신이 원한다면 하자.’고 대답하였습니다.

 

1995년 출국 준비를 분주하게 서두르고 있었는데, 건강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지만, 장례를 마치고 예정대로 카자흐스탄(Kazakhstan) 알마티 국립아카데미학술원병원에 부임하였습니다.  1999년까지 알마티 제5시립병원에서 이전 근무하다가 2000년 귀국하였습니다.

 

유목민의 후손인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의 인구는 약 150만 명 정도이며 이중 동포는 2만 명가량입니다.

1993년과 1994년에 한의사들이 알마티를 방문해 무료진료봉사활동을 펼쳤고, 동포 등 현지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카자흐스탄정부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의사를 파견해 주도록 요청했으며, 그동안 인도적인 차원에서 의사들을 해외에 파견해 온 KOICA가 그 요청을 받아들여 한의사 김동선이 파견되었던 것입니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북부에 위치하며, 카스피해에서 몽골 접경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나라입니다. 1991년 구소련의 해체로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 독립했습니다. 약 120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로 종교는 이슬람교와 러시아정교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정국 불안으로 치안이 취약하여 외국인에 대한 신변안전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고, 특히 돈을 많이 가지고 다닌다는 한국인에 대한 테러가 빈번하였습니다. 생계형 범죄로 의사뿐만 아니라 의사가족들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도둑이 들어 비싼 의료기구들을 가져가는 바람에 진료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가족들과 입주한 집은 대학기숙사로 부엌은 밖에 있었습니다. 든 것이 한국과 달랐습니다.

 

아내가 우유를 사러 다녔지만 구할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들이 손으로 주물럭주물럭 짜서 널브러진 그릇에다 파는 생우유를 사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뭉텅이 고기를 사다가 뼈를 발라 얼렸다가 썰어서 삼겹살을 구우며 가족의 건강을 챙겼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립다고 하는 현모양처입니다.


그는 진료에 정진하였습니다.

 

임상 경험은 짧지만 의술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아직 젊은 만큼 봉사정신을 발휘하여 한의학을 카자흐스탄에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에 처음으로 파견된 정부파견의사로서 자부심과 성실함을 한시도 잃지 않았습니다.

 

진료실의 난방이 원활하지 못하여 겨울철 환자 치료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매 분기 심장질환, 요통질환, 각종 관절계질환, 부인과질환 등 2,200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였습니다.

현지 환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시술했던 금연침에 대한 효과가 입소문을 타게 되어 이에 대한 요청이 급증하여 하루 5~6명 정도의 금연침 시술을 하였습니다. 구스따나이, 끄즐오르다, 우스토페, 아띠라우, 우스찌까메노고로스 등지로 년 3~4회 순회 진료를 하였습니다.

 

 

당시 식량이 부족하여 굶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먹는 네모난 빵을 많이 사 놓고 치료를 받고서 하나씩 가져가도록 하였는데, 빵 때문에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도 많았습니다.

 

카자흐스탄인과 터키인 그리고 강제 이주된 고려인에 이르기까지 100여 민족으로 구성된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인접했기 때문인지 침술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으나 말이 잘 안 통해 진료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색을 보고 진맥과 청진기 등을 통해 환자를 진단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았는데, 유능한 고려인 간호사 김옥남의 도움으로 해결했습니다.

 

한약재 등 필요한 약재는 한국에서 왔으며, 기본적인 진료장비와 함께 KOICA에서 소규모 프로젝트 지원비로 연간 만 달러를 지원해주었습니다.그밖에 대구한의대와 대구시한의사회 그리고 대한한의사협회에서도 지원해줘 진료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몰려드는 환자들을 다 돌보지 못하는 형편이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알마티 제5병원에서는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한방을 특강하였고, 보건성 및 정부 관계자들의 환자진료에 관한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호응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한의학》이라는 서적을 영어로 옮기고 러시아어로 편역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그는 1996년 1월 폐결핵을 진단받습니다. 

 

그곳에서 겨울에 할 수 있는 운동은 스키가 거의 유일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스키장에 가보지 않았는데, 스키를 배워 겨울철 건강유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스키장에서 심하게 넘어졌는데, 왼쪽 가슴이 아파 며칠 후 엑스레이를 촬영하였습니다. 결과는 반대쪽인 오른쪽 폐에 결핵이 발견되었습니다.

 

하루에 120~13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무리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으로 후송되어 여러 가지 검사를 실시하였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3개월 정도 휴식하라고 권고 받았지만, 석달치 약을 챙겨가지고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주일 정도 쉬었지만, 밀려드는 환자를 보고 자신의 건강을 챙길 겨를이 없었습니다.

 

오른쪽 가슴에 맺혀있던 망울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주위의 강력한 권유로 결핵요양원으로 가야만 하였습니다.

알프스처럼 풍광 좋은 바라보예 옥제트페스요양원에서 하루 종일 아무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환자들과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들과 정을 나누며 ‘세상은 참 묘한 것이다. 내가 이런 곳에서 이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이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는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인정의 나눔과 생명의 섬김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습니다.  뜨거운 감동이 번졌습니다. 한의사로서의 사명감도 느꼈습니다.

한 달 보름간의 요양이 끝나고 결핵도 완치되었습니다.

 

 

 

그의 성실하면서 정확한 의술은 소문에 소문을 탔습니다.

1997년 8월 12일 어느 중앙 일간지에 실린 그의 기사내용을 간추려 봅니다.

  부와 명예를 버리고 인술 3년째인 카자흐스탄 한의사 김동선씨.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에 사는 미하일로바 지나이다 할머니는 요즘 기분이 아주 좋다. 수년 동안 시달리던 원인모를 두통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온갖 병원을 다 돌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원에선 간단한 진료만 하고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몇 달 전 이웃 사람이 한국에서 온 의사가 용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의사가 있다는 국립과학원 부설병원을 찾았다.

  말도 없이 손목을 잡고 뭔가를 생각하던 의사는 몸 이곳저곳에 가는 바늘을 꽂기만 했다.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기를 며칠, 이제 두통은 잊고 지낸다


  한국국제협력단의 해외파견 의료단원으로 지난 1995년 1월 이곳에 온 한의사 김동선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처음 진료를 시작할때 그를 찾는 환자는 하루 10여 명 정도에 불과했다.

  고국에서의 정신없던 하루를 생각하면 왜 이역만리 먼 이곳까지 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가 감쪽같이 병을 고쳐내는 명의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갈수록 환자들이 늘어나 올해 초에는 하루 130여 명의 환자를 돌보기도 했다.  초인적인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최근 들어서야 진료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환자수를 하루 30여 명으로 제한해 그런대로 환자를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정부파견한의사 임무가 끝난 지도 어언 10년이 넘어갑니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에게 ‘독또르 김’이라 불리던, 그는 언제나 KOICA의 존재에 대하여 뜨거운 갈채를 보냅니다.
만약 정부파견한의사제도가 계속 시행된다면, 그는 언제라도 다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동아일보(1995.2.2일자) 한의사 김동선 관련 기사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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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마트 별님 2011.10.01 2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훌륭한 분들이 많으시군요 ^^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을,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스리랑카의 허준  이상호

   아름다운 촛불

 

 

 

 

 

 

 

 

 

  보우머 이쓰뚜띠, 마터 고닥 싼또레이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내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스리랑카(Sri Lanka) 사람들이 그에게 전하는 영원한 인사말입니다.
자기가 가진 재능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라 말하고,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난 그는 한국과 스리랑카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한의사 이상호.

1968년에 태어나,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정부파견한의사로 인술을 펼치다가 2004년 7월 8일 새벽 스리랑카 북동부 지역 트링코말리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습니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그곳에서 하루 100~200여 명 에 달하는 환자들을 보살피느라 누적된 피로가 뼈아픈 요인이었습니다.
그는 경희대학교 한의학과에서 공부를 마치고, 2003년 스리랑카 콜롬보의 보렐라 교육병원에 정부파견한의사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장마비로 순직하였으니, 1년 3개월간 그의 꿈을 뜨겁게 펼친 셈이었습니다.

 

이 슬픈 소식이 매스컴을 탔을 때,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아름다운 행적을 깊이 새겼습니다.
한의대 본과 시절, 다일공동체에서 한의사인 아내 황경선과 함께 주말 의료봉사를 했습니다.

젊고 촉망받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시절, 학교에 남아달라는 부탁이 이어졌지만 그의 열정은 누구보다도 뜨거웠습니다.

 

2001년 KOMSTA(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 단원으로 스리랑카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날씨는 더웠고 몸은 피곤했지만 당시의 감동은 여느 때의 봉사활동에서 느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2002년 다시 스리랑카에 왔을 때, 그곳 사람들에게 한의학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자기 인생에 큰 보람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는 정부파견한의사에 지원했습니다.

 

 

 

 

  다음은 정부파견한의사 지원 동기서의 내용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재능을 통해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리라 확신한다.

 

나와 나의 아내는 한의사이다.

의료는 다른 직종에 비해 그 특성상 공익성이 두드러지는 직업이고 직종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학창시절부터 의료봉사에 관심이 있었고, 본과 3~4학년 때는 다일공동체(청량리소재)에서 지금의 아내와 함께 주말 무료봉사를 했었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경희의료원 한방재활의학과 레지던트 2년차 때(2000년 11월), KOMSTA의 일원으로 스리랑카로 해외의료봉사를 가게 되었다.

 

날씨는 더웠고, 피곤한 몸으로 많은 환자를 보았지만, 잠시 스쳐가는 일회성 봉사의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때의 감동은 여느 때의 봉사에서 느꼈던 것 이상이었다. 이듬해 다시 한 번 스리랑카로 봉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되어 해외의료봉사를 다녀왔으며, 나는 2번의 스리랑카 의료봉사를 통해 이곳에서 내가 가진 의술, 한국이 한의학으로 이들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큰 보람이며 아울러 영광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의료봉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한의학을 세계화시킨다는 것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배우고 익힌 의학지식이 나와 나의 가족만을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이 의학적인 도움이든 그것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것이든지 간에……)

 

아내와 함께 고민하며 결정한 것이 있다. 그것을 지킬 수 있을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그것은 60세 이후부터는 full time으로 의학적인 지식과 기술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베풀며 살자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시기를 조금 앞당겨 보고 싶다.

 

그리고 지금 당장 이웃을 위해 살지 못한다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한번 살아 보자는 것이 지금 나와 나의 아내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스리랑카 정부파견한의사에 지원한다.


대학에 남아 한의학 이론을 세워 존경 받는 교수가 되어도, 한의원을 개원하여 이웃을 도우면서 명예를 쌓아도 될 터인데, 그는 자신을 태워 주위 를 밝히는 촛불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찾았습니다.의서 《의방유취醫方類聚》에서 강조하는 ‘환자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는 인술을 태생적으로 갖춘 아름다운 한의사 이상호였습니다.

 

 

  그는 늘 자신을 이렇게 다독였습니다.

 

배우고 익힌 의학지식이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사용돼서는 안 되며,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이웃을 위해 베풀며 살고 싶다.    가난한 자가 가장 서러울 때는 제대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할 때이다.

 

그는 스리랑카의 전통의학을 존중하는 아유르베딕(Ayurvedic) 교육병원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대학부속 종합병원 같은 곳입니다. 곳에서 진료실 설치, 진료 등 모든 일을 도맡아 해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유르베딕 의사들에게 한의학을 가르치고 병원에 개설된 Korea Clinic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진료활동을 하였습니다.

 

경혈침구학 기본과정을 만들어 1기생 10명을 배출했으며, 2기생 18명을 가르쳤습니다.
그곳에서 구하기 힘든 약재들이 많았으나, 홀로 돌아다니며 구했습니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도 참기 힘들었고, 불규칙한 전력공급에다가 의료기기도 지원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늘 환하게 웃었습니다. 자녀교육에도 빠듯한 월급이지만, 아내 그리고 1남 1녀의 자녀와 너무나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주위에서는 뭔가 이룩하려 하지 않고 하나하나 채워나가는 사람이다 라고... 그를 그렇게 기억했습니다.

2005년 제33회 보건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석류장을 추서했습니다.

신앙인이었던 그는 훈장을 받으며 생전에 하던 말 처럼 이렇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그냥 삶입니다. 나를 낮추기만 하면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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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복돌이^^ 2011.08.12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사가 아닌 그냥 삶이라고 하신 부분이 너무 감동적이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2. soybbay 2011.08.12 2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듯요.. 저라면 절대 못할텐데 ㅎ


이하 글은  아프리카 오지로 머나먼 남미의 산골로 젊은 시절을 온통 다바쳐 인류애를 실천하신 정부파견 의사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엮어 출판된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내용을, 발간 주체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동의를 얻어 건강천사에서 금요특집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읽는 모든이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감동과 삶에 귀감이 되길 기원합니다.

 


 

   몽골의 허준  문영식

  초원의 무지개

 

 

 

 

 

 

 

  "약재는 한국에서 가져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기 것입니까? "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파견한의사 문영식의 안내로 한국, 몽골 친선한방병원의 진료실과 약제실을 둘러보면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한의사 문영식은 관절 통증 질환, 부인과 질환, 심혈관계 질환을 주로 진료한다는 설명과 함께 치료 한약재와 소모품은 대부분 한국에서 가져오는 정부지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는 물리치료실로 이동해 한국에서 봉사 나온 KOMSTA(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 단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몽골인 디스크 환자를 치료하는 추나요법을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또 병원 직원과 정부파견 한의사 문영식과 국제협력의 정용수 등을 격려하며 한국, 몽골 친선한방병원에 앰뷸런스를 기증하고, 몽골에서의 한방진료가 국가를 대표한 세계의료로 발돋움하기를 기원했습니다.

 

 

 

  한의사 문영식은 1959년에 태어나....

 

1977년부터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에서 한의학을 공부하였고, 한의원을 개원하여 환자를 돌보면서 지역사회에 의료봉사활동을 실시하였으며, 지금은 인도로 편입된 히말라야 라닥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면서 ‘의료와 재화는 낮은 곳으로 흘러야 그 가치가 있다.’신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정부파견한의사로 2003년부터 2007까지 몽골의 한국 몽골 친선한방병원에서 5년간 근무하였습니다.

 

한국, 몽골 친선한방병원은 1998년부터 KOMSTA가 꾸준하게 벌인 의료봉사가 계기가 되어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몽골 국빈 방문 때, 양국 우호협력 강화 방안으로 추진돼 2001년 KOICA의 무상경협사업 일환으로 한국과 몽골의 합작 투자로 건립된 몽골 소유의 전통의학병원이었습니다.  이 병원엔 KOICA의 정부파견한의사 문영식과 몽골 전통의사, 국제협력의 김중길 그리고 몽골 양방의사 4명과 간호사 4명 등 모두 17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2003년부터 근무를 시작하면서 병원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을 병원장 및 직원에게 설명하여 협조를 얻었고, KOICA와 유관단체에서 지원을 받아 방치된 물리치료실을 몽골 최고의 한방물리치료실로 개조했습니다. 병원에서 매일 40~60여 명 환자들을 예약 진료하였는데, 주로 관절질환, 요통, 경추부위동통, 부인과, 내과 질환 등이며 치료는 침, 약침, 추나, 테이핑 치료와 약으로는 한국의 한약을 사용했습니다.


2005년 그의 진료실을 취재한 국정홍보처의〈몽골의 슈바이처 문영식〉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문박사는 몽골에서 최고의 명의로 알려져 있다. 한국·몽골 친선한방병원의 문박사의 진료실에는 매일 40명이 넘는 몽골 환자들이 몰린다. 관절·척추·불임 등을 우리의 한방의학으로 치료를 한다.

  수많은 몽골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완치된 후 다시 찾아와 문박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울란바토르 인근뿐 아니라 지방과 해외에서도 몽골인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다.

 

병원진료 중에 틈나는 대로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수백km 멀리 떨어진 바양골 아이막, 아르항가이 아이막, 수흐바타르 아이막, 홉수골 아이막, 고비알타이 아이막을 순회하여 무료 진료하였으며, 몽골전통의사에게 개인 실습 등 한의학을 교육하였습니다.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한의사 문영식


 

 

  한의사 문영식은 한국의 의술과 인정을 전하였습니다....

 

2005년, 그가 몽골에서 소규모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한 바 있 는 침구학교재가 제4회 대한한의학 학술장려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했습니다.  2006년. 생방송인 몽골 이글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병원소개와 한국의 추석, 몽골인의 건강관리 등을 주제로 대담하는 등 몽골의 여러 방송매체와 신문 등에 한국의 한의학의 장점과 병원의 활동 상황 등에 대하여 인터뷰도 했습니다.


몽골 보건부가 주최하고 WHO(세계보건기구)가 후원한 전통의학과 공중보건(Traditional Medicine and Public Health)에서 그는〈VDT 증후군에의한 목 통증에 대한 한의학적 치료방법(Oriental Medical Therapeutic of The Neck Pain of VDT syndrome)〉이라는 주제로 발표 이후 여러 차례 의학 공식회의나 세미나에 참석하고, 발표하여 몽골 보건부와 몽골 전통의학계와 교류했습니다.

 

또한 몽골 울란바토르 징기스칸호텔에서 개최된 제7차 국제 체질의학 회의(The 7th International Congress of Constitutional
Medicine)를 한국 몽골 친선한방병원과 경희대학교 그리고 몽골국립의
과학대학교 공동으로 주최하는 등 수 차례 국제학술회의를 주최하여 한국 한의학과 몽골 전통의학의 연구와 교류 증진에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사상의학 교수인 이의주 교수팀과〈몽골과 한국의 전통의학에 대한 건강 증진 진단기술 교류 및 구축〉을 위한 임상시험 승인을 몽골 보건부로부터 받아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몽골인을 대상으로 한 얼굴 부위 사상체질 진단기를 개발하여, 최종적으로 몽골인 체질진단시스템 개발을 위한 것이었으며, 한국 한의학이 인류 모두에게 보편적이 치료방법이 됨을 증명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많은 몽골 환자들이 한의학적 진료를 선호하고 치료 받기를 원하고 있으나, 병원에서 다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는 KOMSTA와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봉사단을 초청하여 무료진료를 실시했습니다. 2003년 KOMSTA 무료진료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진행하였고, 몽골 보건부장관의 초빙으로 이루어진 2006년 KOMSTA 무료진료는 노무현 대통령의 몽골 국빈 방문에 맞추어서 진료를 실시하여 약 3,0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이 봉사에는 대한한의사 협회장을 비롯하여 총 19명의 한의사가 참여했으며, 한국 한의학의 우수성과 홍보에 기여했습니다.

 

 

 

  문영식 수백km 떨어진 곳에서 찾아온 환자를 진료하면서 스스로 다짐합니다..

 

‘이 환자는 나를 보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고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왔으나, 나는 단지 수많은 환자 중의 한명으로 본다.’  그래서 그날 이후 그는 환자를 만날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으며 좌우명 같은 이런 임상명을 적어 진료실에 붙여 놓고 항상 되새겼습니다.

 

"지금 진료하고 있는 오직 이 한 사람의 환자를 위하여 평생 동안 배우고 익혔습니다.

진실하게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내면의 영혼을 보고 따듯하게 위로하겠습니다."

 

 

 

  한의사 문영식은 5년간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렇게 말합니다...

 

"병원을 나오기 전에 다시 내 진료실과 치료실을 둘러보았다. 매일 40~60여 명씩 진료한 여러 가지 추억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어려운환자, 잘 치료되어 웃으면서 간 환자, 치료되지 않아서 실망한 환자, 먼 시골에서 어렵게 올라와서 만족스럽게 치료받고 감사의 말을 전하고간 몽골 어르신 환자들, 어린이들, 몽골 델을 입은 할머니들, 정치인, 국회의원들 그리고 여러 전통의사와 교수들, 예술인, 체육인 등 끊임없이 다시 진료하고 치료해 주고 싶은 몽골 사람들이다."

 

"나는 여기서 진료하고 있으면 내가 한국에 있는지 몽골에 있는지 구분 이 잘 가지 않았다. 단지 환자들이 다른 언어로 말할 뿐이지, 그 분위기는 너무나 한국과 같았다. 그만큼 나에게는 친근하고 감사했다."


유목민의 나라, 아시아 내륙 초원의 칭기즈칸 제국이었던 몽골은 한의사 문영식에게 2006년 몽골 보건 분야 최고공로자 훈장인 몽골보건부장관 훈장을 수여하였고, 2007년에는 대몽골제국 800주년 영예훈장과 몽골대통령이 직접 가슴에 달아주는 ‘내림달(친선)’ 훈장을 수여함으로써, 그의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오래도록 치하하였습니다.

 

문영식은 몽골에 파견된 최초의 한의사입니다.
그의 몽골인들에 대한 따듯한 사랑은 마치 초원에 핀 무지개처럼 오래도록 영롱할 것입니다.

 

몽골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는 문영식(2007.5)



 

출처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을 사랑한 한국의 슈바이처들 / 한국국제협력단(KO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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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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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돈재미 2011.08.05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훌륭한 분...
    이런 인물들이 많아져야 이 나라가
    살만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2. 복돌이^^ 2011.08.05 1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생각나는게 많아지는 글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soybbay 2011.08.05 15: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정말 존경 존경!!

  4. 핑구야 날자 2011.08.05 1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하신 분들이죠,, 더불어 같이 일했던 분들도 조명이 되었으면 좋겠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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