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강/맞춤형

대인관계의 성패 내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대인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지 상관치 말고 내가 변덕 부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상대에 따라 흔들리지 말고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갈등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라 생각하고 나를 돌아보고 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해 찾아오는 고민들은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스트레스가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확실한 방책은 무엇일까? 30대 중반의 한 여인이 말했다.

 

“저는 남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무슨 일이죠?”

“저 몰래 바람을 피웠거든요.”

“남편에게 사과를 받지 않았나요?”

“사과를 했지만, 이미 믿음이 깨졌는데 사과를 받는다고 뭐가 해결되겠어요.”

“그럼 어떻게 하실 거죠?”

“어떻게 하긴요. 헤어질 수밖에 없죠.”

“헤어지면 다 해결될까요?”

“이렇게 고통 받지는 않을 것 같아요.”

“참 힘겨운 일이겠지만, 이참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참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의리가 뭔지 깊이 헤아려 볼 수는 없을까요?”

 

우리들은 내 배우자나 내 연인이나 이외의 이성을 만나는 것을 결코 쉽게 용납지 않는다. 이런 일이 생기면 내 마음에는 질투심이 폭발한다. 질투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가까운 사람이 나 외에 다른 사람과 행복한 것을 강하게 부정하는 심리다.

 

본래 질투심은 내 생존의 기반이 깨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투심에 잘못 휩싸이면 폭언과 폭력으로 번지고, 그로 인해 범죄가 발생하면서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생존 기반마저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질투심은 실제로 대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믿음과 의리, 그리고 사랑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30대 후반의 두 사람은 각각 이혼의 과정을 겪었다. 각자에게 아이들이 있었고 그러한 경험들이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연인관계로 발전해 재혼을 하였다. 그러나 재혼한 다음날부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 남편이 먼저 말했다.

 

“집사람이 너무 자기 욕심을 차리는 것 같아요. 제 아이들도 같이 챙겨야 하는 건데, 차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예민해져요. 이래서야 내가 어떻게 아내와 살 수 있겠어요.”

 

그러나 아내가 말했다.

 

“남편은 결혼하는 그날부터 모든 게 변했어요.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하더니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군림하려고 해요. 그리고 항상 전처와 비교하는 거예요.”

 

한 쪽에서는 이해를 못해준다고 하며, 또 다른 쪽에서는 군림한다며 맞서고 있다.

 

 

 

내 마음의 중심잡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다름아닌 내 마음에 변덕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 사랑이 약해졌고 상대에 대한 믿음과 의리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묵묵히 내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인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지 상관치 말고 내가 변덕 부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

 

30대 중반의 한 직장 남성이 말했다.

 

“제 위 직장 상사가 저만 보면 잡아먹지 못해 난리예요. 근거 없이 비방하고 욕설까지 해대는데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그럴 수도 없고 심히 괴로워요.”

 

나는 그분에게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접인장(接人章)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나를 비방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스스로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만일 나에게 진실로 비방받을 만한 허물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꾸짖어 마음속으로 시비를 가려 잘못을 고쳐야 한다.

 

만일 나의 허물이 매우 작은데도 그가 주워 모으고 덧붙였다면 그의 말은 비록 지나친 것이나 내게 실상 비방받을 근거가 있었으니, 역시 전의 잘못을 매섭게 끊어 털끝만큼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만일 내게 본디 허물이 없는데 헛된 말을 꾸몄다면 그는 망령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망령된 사람과 무슨 거짓과 참을 따지겠는가. 또한 그런 헛된 비방은 마치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구름이 허공을 지난 것과 같다. 나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렇게 처신하여 비방이 생겼을 때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써 노력할 것이니 이런 것들은 모두 나에게 유익한 일이다. 만일 그것을 듣고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시끄러움도 마다않고 기필코 자기가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려 하면, 그 허물은 더욱 깊어지고 비방은 더욱 늘어난다.’

 

 

 

비방과 비판은 다르다

 

비방은 자기의 감정을 실어 사실 이상을 왜곡하는 것이요, 비판은 자기의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을 직시하여 마땅한 바를 따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어서 시비(是非)를 논하기 위한 비판은 필요하더라도 사사로운 감정을 내세워 남을 비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살다보면 남들로부터 수많은 오해와 비방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일일이 여기에 마음을 쓰며 불필요하게 반응한단 말인가. 비록 남이 내게 건전한 비판이 아닌 비방을 할지라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위 율곡 선생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남의 말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와 같은 자세에 대해 ‘명심보감(明心寶鑑)’ 계선편(繼善篇)에는 다음처럼 말했다.

 

‘내게 선하게 대하는 이에게 나는 역시 선하게 대하고, 내게 악하게 대하는 이에게도 나는 또한 선하게 대하라.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남도 내게 악하게 대할 수 없다.’


어른이 되어도 어른 구실을 못하면 어른이 아니다. 대인관계가 어려운 이유가 상대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하면 그는 어른이 아니다. 더 이상 상대의 과실을 묻지 않아야 어른이다. 상대의 잘못으로 내 인생이 망가진다면, 상대에게 내 인생의 모두를 의존한 내 잘못은 없는 것일까? 언제까지나 배우자의 일탈과 허물, 동료의 비방과 오해 따위에 영향을 받으며 내 삶을 퇴보의 고랑에 처넣을 것인가.
내 삶을 그렇게 허비하기에는 청춘이 딱하지 않은가. 내 삶을 그렇게 소모하기에는 세월이 아깝지 않은가.

 

문제의 본질은 남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지 않음이요, 내가 믿음이 없음이요, 내가 의리를 지켜내지 못하는 거다. 또 이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내 마음을 다스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수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래 참된 믿음과 사랑, 진실한 의리는 결코 깨지지 않는다. 깨진다면 그것은 자기만의 망상이 만들어낸 허상의 믿음이요, 가짜 사랑이요, 거짓 의리일 뿐이다. 대개 의리를 따지면 실속을 잃기 쉽고, 실속을 얻으려면 의리를 잃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반드시 의리를 지켜내야 지속적으로 인간관계가 선하게 유지되면서 수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그러한 기회를 발판 삼아 내 삶이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중·장기적으로 실속이 뒤따른다.

 

내가 확고하게 사랑과 믿음과 의리를 지켜내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내 인생의 성공과 실속을 좌우하는 셈이다. 나를 돌아보자. 내 나이가 성인이 되었건만, 아직도 남과 환경 탓을 하면서 자기 인생의 책임을 회피하는 유아기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그러한 삶을 졸업하자. 아름답고 실속 있는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글 / 황웅근 인의예지 심성계발원 대표.흰구름한의원 원장

                                                                                                                                      출처 / 사보 '건강보험4월호'

 

 

로그인 없이 가능한 손가락 추천은 글쓴이의 또다른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