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올라가면 피부는 괴롭다. 무더위 탓에 체온이 상승하면 이를 식히기 위해 피부에 평소보다 혈액이 20~30% 더 몰리게 된다. 내부 장기는 차갑고 피부는 뜨거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피부 온도가 올라가면 피지(皮脂) 분비가 늘어나 여드름이 잘 생긴다. 습진ㆍ농가진 등 피부질환 발생 위험도 높아진다. 복날 하면 보신탕ㆍ삼계탕 등 기력을 높여 주는 보양식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피부도 보양식이 필요하다. |
여름철 피부 건강을 돕는 음식들 |
여름에 피부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토마토나 방울토마토를 즐기는 것이 좋다. 토마토의 붉은 색소 성분인 라이코펜이 피부를 윤택하게 지켜주기 때문이다. 2008년 ‘유럽 약제학과 생물약제학회지’에 실린 연구논문에 따르면 피부에 라이코펜 성분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매끈한 피부를 지녔다. 라이코펜을 많이 섭취하면 햇볕에 심하게 그을리는 정도가 완화된다는 연구결과도 제시됐다. 그러나 라이코펜 보충제를 섭취한 사람에겐 별 효과가 없었다. 라이코펜은 자몽ㆍ당근ㆍ수박ㆍ구아바ㆍ붉은 고추에도 함유돼 있다.
두부ㆍ두유 등 콩 제품 섭취도 피부 건강을 돕는다. 팽팽한 피부를 만들어 주는 단백질인 콜라겐의 유지에 기여하는 아이소플라본이 풍부해서다. 미국 영양학회지에 실린 연구 논문에 따르면 아이소플라본을 섭취한 실험동물(생쥐)은 햇볕의 자외선에 노출되더라도 주름이 적고 피부가 매끄러운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아이소플라본이 콜라겐의 파괴를 막아주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참치ㆍ연어ㆍ정어리ㆍ고등어 등 오메가-3 지방이 풍부한 등푸른 생선도 피부 노화를 억제하고 피부암도 예방한다. 오메가-3 지방의 일종인 EPA가 콜라겐의 파괴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오메가-3 지방은 피부 뿐 아니라 심장 건강에도 이롭다. 따라서 등 푸른 생선은 1주일에 2번은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름철 피부 건강에 이로운 기호식품은 커피와 코코아다. 초콜릿이 여드름을 일으킨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코코아가 주성분인 다크 초콜릿이 피부 건강에 유익하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코코아엔 에피카테킨이란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다. 여성 24명에게 에피카테킨이 풍부한 코코아를 12주간 제공했더니 이들의 피부 감촉이 현저히 개선됐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연구팀은 에피카테킨이 혈액 소통을 늘려 피부에 영양분과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서양인들은 로즈힙(rosehip)이란 식물을 피부 건강에 이로운 허브로 친다. 로즈힙은 서양 들장미의 일종인 개 장미(dog rose)의 열매로 대개 8∼9월에 열린다. 열매는 완두콩이나 유리구슬만 하다.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비타민 C와 감마 리놀렌산이 풍부하다. 감마 리놀렌산은 콜라겐 생성을 도와 피부를 튼튼하게 한다. 로즈힙의 빨간 열매 속엔 비타민 C가 레몬의 18배 이상 들어 있다. ‘비타민 C 폭탄’이란 별명이 붙은 것은 이래서다. 로즈힙은 차로 만들어 마시는 것이 좋다. 로즈힙 아이스티는 여름철 갈증 해소도 돕는다. 로즈힙은 기미ㆍ주근깨가 많은 여성에게도 추천된다. 기미ㆍ주근깨 등 색소 침착의 원인인 멜라닌의 합성을 비타민 C가 억제해서다.
복숭아도 여름철 피부 트러블을 억제한다. ‘동의보감’엔 “여성이 복숭아를 먹으면 안색이 좋아지고 피부가 고아져 미인이 된다”고 기술돼 있다. 복숭아는 백도와 황도로 분류된다. 7∼8월에 나오는 백도는 껍질이 연한 황백색이다. 붉은 색의 끝부분엔 피부 노화를 억제하고 염증을 없애주는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이 풍부하다. 황도는 9월 중순에서 10월까지가 제철인 ‘늦복숭아’다. 치밀하면서도 부드러운 육질과 높은 당도를 지녀 맛이 기막히다. 황도에 풍부한 펙틴 등 식이섬유는 대장의 운동성을 높이고 배변 작용을 활발하게 해준다. 한방에선 복숭아가 뾰루지ㆍ여드름 등 피부 트러블 개선에 효과적인 과일로 친다. 복숭아에 든 타닌(떫은 맛 성분)ㆍ마그네슘은 피부의 탄력을 높이고 모공을 축소해 여름철에 생기기 쉬운 습진 예방도 돕는다. 그러나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자두ㆍ수박 등의 다른 여름 과일을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 복숭아를 먹은 뒤 가려움증ㆍ부종ㆍ두드러기 등이 생긴다면 복숭아 알레르기일 가능성이 있다.
표고버섯도 여름 피부의 ‘보약’이다. 염증 완화를 돕는 아미노산인 엘리타데닌이 다량 들어 있어서다. 따라서 아토피ㆍ여드름 등 염증성 피부질환에 유효하다. 엘리타데닌은 또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고 혈관 내 콜레스테롤을 제거해 피부에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말린 표고엔 비타민 D와 이 비타민의 생성을 돕는 에르고스테린이 많이 함유돼 있다. 따라서 골밀도가 떨어지기 쉬운 건선 환자에게 권할 만하다. 비타민 D가 칼슘의 체내 흡수를 도와 뼈를 튼튼하게 해서다. 한방에선 버섯을 성질이 차고 혈액 순환에 이로운 식품으로 여긴다. 그래서 얼굴이 붉거나 아토피ㆍ여드름 등 습열(濕熱)로 인한 피부병 환자에게 권장한다. 표고도 차를 만들어 섭취하는 것이 좋다.
열대 과일인 두리안은 별명이 ‘먹는 영양 크림’이다.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두리안의 표면엔 고슴도치를 연상시킬 만큼 수많은 가시가 나 있다. 두리안은 ‘가시’란 뜻이며 동남아에선 ‘과일의 왕’으로 통한다. 열량이 높고 당질(탄수화물)이 풍부하다. 칼륨ㆍ비타민 Cㆍ엽산ㆍ판토텐산 등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다. 이중 칼륨은 이뇨(利尿), 엽산은 적혈구 생성을 돕는다. 두리안을 즐겨 먹으면 피부에 산소ㆍ영양분이 잘 전달돼 잔주름 예방에 효과적이다. 비타민 C도 바나나의 세배나 들어 있다. 비타민 C는 미백(화이트닝)ㆍ주름 예방(피부의 탄력세포인 콜라겐의 합성 촉진)을 돕는 성분이다. 또 피부를 튼튼하게 한다. 그러나 두리안은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천국의 맛, 지옥의 향기’라는 비유처럼 냄새가 지독하다. 생과를 먹기 힘들면 두리안 아이스크림이나 잼을 만들어 섭취하는 것이 대안이다.
쑤기미란 생선도 피부 건강식품이다. 6∼8월이 제철인 쑤기미는 여수에선 쐬미, 제주에선 미역치라고 불린다. 영어명인 ‘devil stinger’는 ‘쏘는 악마’란 뜻이다. 외양은 흉측하고 무섭지만 육질의 맛ㆍ향은 복어를 연상시킨다. 쑤기미엔 염증을 가라앉히는데 효과적인 판토텐산(비타민 B5)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아토피ㆍ농가진 등 염증성 피부질환자에게 추천할 만하다. 판토텐산 결핍에 기인하는 모발 갈라짐ㆍ탈모 등의 증상도 개선시킨다. 쑤기미는 대개 싱싱한 놈을 얇게 회로 저며 먹는다. 매운탕 재료로도 그만이다. 튀김ㆍ양념구이 된장국 등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쑤기미의 독은 성인의 팔 한쪽을 마비시킬 만큼 강하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서식하는 어류 중 가장 강한 독을 가진 놈 중 하나이므로 쏘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글 / 박태균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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