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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조류 인플루엔자(AI)와 의사결정의 오류

 

 

 

 

             

 

1월 18일 전라북도 고창에서 집단 폐사한 가창오리가 조류 인플루엔자(AI)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비상이 걸린 쪽은  방역당국만이 아니다. 뉴스를 통해서 소식을 접한 국민들도 그렇다. 물론 국내에서는 고병원성 AI의 인체 감염사례는  없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는 고병원성 AI 감염된 648명 중 384명이나 사망했기에 국민들의 불안감은 쉬 가라앉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조류 인플루엔자, 광우병, 구제역

 

언제나 그렇듯 동물과 관련된 질병, 그것도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질병이 발생하면 그 동물을 식용으로 파는 음식점들은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조류 인플루엔자(AI)는 닭과 오리, 광우병은 소, 구제역은 돼지. 우리가 모두 즐겨먹는 동물들이다.

 

특히 AI의 경우 보건당국에서는 국내에서 아직 인체감염 사례가 없었고, 섭씨 75도 이상의 온도에서는 바이러스가 죽기 때문에 익힌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통해 감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 때문에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피하고 있다. 이럴수록 양계농가나 오리농가들은 더 큰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의 이면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사건이 발생하면 당장에는 먹지 않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먹는다는 것이다. 질병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왜 이런 것일까?

 

 

 

두 가지 의사결정 방식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하는 계산법(algorithm)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주먹구구(마구잡이)식으로 하는 발견법(heuristic)이다. 예를 들어 세 자리 비밀번호를 잊었을 경우 계산법은 000부터 999까지 시도하는 것이고, 발견법은 그냥 마구잡이로 생각나는 번호를 시도하는 것이다. 계산법의 경우 언젠가는 확실히 열리겠지만 비효율적이다. 반면 문제 해결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만약 된다면 굉장히 효율적이다.

 

발견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가용성 발견법(availability heuristic)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 객관적인 정보에 근거하기보다는 머리에 떠오른 정보, 즉 가용할 수 있는 정보에 근거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AI가 발병한 상황에서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사러 시장에 나간 사람이 있다고 하자. 평소에 좋아하는 두 음식(치킨과 찹쌀떡)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무엇을 사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찹살떡을 살 것이다. 왜냐하면 신문과 뉴스에서 AI의 발병과 위험성, 인체에 감염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보도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바이러스는 섭씨 75도 이상에서만 가열한다면 파괴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AI 위험성에 대한 정보가 당장 떠오르기 때문에 치킨보다 몇 배나 더 위험한 찹쌀떡을 사는 오류를 범한다. ‘찹쌀떡이 위험하다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터넷 검색 창에 “찹쌀떡”과 “사망”이란 키워드를 넣고 검색해 보라. 신문에 보도되는 사망 기사만 수십 건이 넘는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식생활로 어려운 농가까지 돕는 센스

 

AI가 발병하면 전 국민이 모두 긴장할 필요는 있다. 방역당국은 AI가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의료계는 AI에 감염되었을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 역시 해당 지역을 방문할 때는 더욱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

 

만약 방역당국도 아니고, 의료계 종사자도 아니며, 해당 지역에 방문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건강하고 합리적인 식생활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평소 즐겨먹던 닭과 오리를 먹지 않는다면 AI 때문에 어려운 농가는 더욱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닭과 오리는 먹지 않으면서, 이보다 몇 배나 위험한 찹쌀떡이나 산낙지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니겠는가? 어서 빨리 AI가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닭과 오리고기를 소비해 주는 센스를 발휘해보자.

 

글  / 심리학칼럼니스트 강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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