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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생활

흙에도 경찰이 필요하다?

 

         식물에게 흙은 엄마의 품과도 같다. 식물이 온전히 자랄 수 있게 품어 주는 것이 바로 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흙의 환경은 식물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식물이 배출해서

       흙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수소이온을 깡패에 비유한다면 석회는 경찰에 비유할 수 있다.

       깡패 수소이온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경찰 석회이기 때문이다.

 

      

      

 

  

지난 호에서 ‘화초도 똥오줌 싼다’고 했더니 정말이냐고 질문하는 독자가 뜻밖에 많았다. 어떤 독자는 “우리 집 베란다 난들이 똥오줌을 싼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실망스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독자는 초등학교시절 담임 여선생님이 화장실에 가시는 걸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어쩌랴. 매혹적인 향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맛난 과일을 만들기 위해서, 현란한 꽃을 피우기 위해서 식물은 어쩔 수 없이 똥오줌을 싸야 한다.

 

내가 사는 오산시에는 농사짓는 친구들이 여럿 있다. 1994년 ‘그린음악농법’을 개발하고 나서 음악으로 재미를 본 농가들이다. 그들은 “식물도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들은 식물은 열매도 더 많이 맺고, 병해충에도 강해져 농약을 덜 뿌리거나 아주 안 뿌려도 된다.”는 내 주장을 믿고 따라 해주었다.

 

“식물이 음악을 듣는다고? 귀가 있단 말인가?” 당시에는 이런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동료 농학박사들에게는 야유와 힐난을 받았다. 물론 식물은 귀가 없다. 대신 몸 전체가 귀다. 식물세포에는 동물세포에 없는 것이 둘이 있다. 하나는 세포벽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엽록체다.

 

몸에 뼈가 없는 식물은 서 있기 위해서 딱딱한 세포벽이 있어야 했다. 음악의 음파가 식물의 몸에 닿으면 세포벽이 떤다. 이 진동은 세포막으로 전달되고, 다시 액체인 세포질로 전달된다. 세포질이 떨면 원형질 운동이 활발해지고, 이 물리적인 자극은 전기적이고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해충이나 병균에게 해로운 성분이, 그러나 인체에는 생리활성분으로 작용하는 성분(rutin과 GABA 등)이 많아진다. 잎의 숨구멍이 열려 호흡이 좋아지고, 잎에 뿌려준 양분이 잘 흡수된다.

 

오산의 농가들은 음악농법으로 친해진 친구들이다. 2년 전 그중 한 농가에 들렀더니 오이덩굴이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남편이 병이 나서 병원에 다니느라 농사를 제대도 못 지은 탓이란다.

 

 

 

흙이 강산성이면 농사 망가져

 

흙을 진단해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흙의 산도(pH)가 3.7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흙의 산도는 우리 혈액의 산도만큼이나 중요하다. 우리 혈액의 산도는 7.4인데 이보다 낮거나 높으면 생리현상이 비정상적으로 일어나 병이 생긴다고 한다.

 

흙의 산도도 마찬가지다. 식물 뿌리의 산도는 대개 7.2 정도라 흙의 산도가 7.0 부근에 가까울수록 잘 자란다. 그런데 왜 이토록 산도가 떨어졌단 말인가? 앞서 설명했듯이 식물이 무얼 먹든지 배설하는 성분은 수소이온(H+)이다. 수소이온은 산도를 떨어뜨려 산성 쪽으로 몰고 간다. 이것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식물의 자구책으로 뿌리가 수소이온을 배설하는 것이다. 바위틈 속의 소나무가 생명을 부지하고 자랄 수 있는 것은 이 수소이온 덕분이다. 사막에서 선인장이 살 수 있는 것도 이 성분 덕분이다. 수소이온은 강산의 주성분이고, 이 성분은 바위를 녹여 거기서 나오는 양분을 뿌리가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마치 썩은 고기만 먹는 독수리가 병에 걸리지 않고 사는 비결은 위액이 산도 1인 강산으로 모든 병균을 죽이고, 고기를 소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꾸는 작물은 빠른 시간 안에 잘 키워야 하므로 수소이온의 역할을 기다릴 겨를이 없다. 수소이온은 이 역할을 빼놓으면 흙 속에서 못된 짓은 도맡아 하는 성분이라 나는 이놈에게 ‘깡패’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흙 속 깡패, 경찰인 석회 주어서 잡아야

 

오이 농사가 엉망인 농가에게 물었다.

 

“언제 석회를 주었나요?”

 

“기억이 없는데요. 최근 십여 년 동안 준 기억이 없는데요.”

 

수소이온이 깡패라면 이것을 잡아주는 석회는 경찰이라 할 수 있다. 석회가 흙 속에 들어가면 수산이온(OH-)이 생긴다. 수산이온이 수소이온을 만나면 중화시켜 물을 만든다(H++OH-→H2O). 그러면 깡패는 더는 깡패가 아니고 식물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이 된다.

 

오이 농가는 내 조언을 듣고 오이덩굴을 걷고 즉시 석회를 뿌려 주었다. 그러고는 시금치 씨를 뿌렸다. 시금치처럼 석회를 좋아하는 작물도 없다. 시금치는 엄동의 하우스 안에서 무럭무럭 자랐고, 지난해 설 무렵에 수확했을 때는 떼돈을 벌었다. 이어서 오이를 심었다. 오이도 지난해의 악몽을 떨치고 무럭무럭 자랐고, 쉴 틈을 주지 않을 만큼 오이가 열렸다. 친구는 병원에도 안 갔다. 원래 아주 강산성이거나 강알칼리성이면 흙에서 질소가스가 나와서 주인의 코로 들어가 병을 만드는 것인데, 산도가 중성으로 개량되었기 때문에 병원에 더는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주인은 흙에 ‘폴리스’를 뿌려준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병이 나아서 농사를 잘 지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섭섭했지만 건강히 농사를 지어 돈을 잘 버는 주인을 보니 흐뭇했다.

 

글 / 이완주 농업사회발전연구원 부원장

 출처 / 사보 '건강보험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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