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에게 설날은 평소 먹기 힘든 고기를 탐(貪)하는 날이었다. 조정에선 신하들에게 쌀ㆍ고기ㆍ생선ㆍ소금 등을 하사했다. 사대부나 종가에선 생활이 힘든 일가에게 쌀ㆍ고기ㆍ어물(魚物)을 돌렸다. 설날 절식(節食)엔 꿩고기ㆍ 닭고기ㆍ쇠고기 중 하나를 넣은 떡국을 비롯해 만둣국ㆍ족편ㆍ편육ㆍ전유어ㆍ떡산적ㆍ갈비찜 등 동물성 식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 |
식욕ㆍ식탐이 왕성해지는 설날 |
족편과 편육은 조상들이 설날 즐겨 드셨던 대표적인 겨울 보양식이다. 쇠족ㆍ가죽ㆍ꼬리ㆍ돼지껍질ㆍ생선껍질ㆍ우양 등 콜라겐이 풍부한 식품에 물을 붓고 푹 끓여낸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네모난 그릇에 부어 식히면 묵같이 엉긴다. 이것을 편으로 썰어서 겨자 초장에 찍어 먹는 음식이 족편(足片)이다. 고기를 푹 삶은 뒤 물기를 뺀 것이 숙육(熟肉), 이를 얇게 저민 것이 편육 또는 숙편(熟片)이다.
설날에 차례상과 세배 손님 대접을 위해 장만하는 음식을 통틀어 세찬(歲饌)이라 한다. 세찬은 대부분 고칼로리ㆍ고탄수화물 식품이다. 설날엔 방안에서 가족ㆍ친구와 대화ㆍ놀이하면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므로 신체 활동량은 줄어든다. 여럿이 한상에서 식사를 하므로 평소보다 식욕ㆍ식탐이 왕성해진다. 친척들이나 집을 찾아와 하루 4∼6끼를 먹는 경우도 흔하다. 게다가 탄수화물보다 같은 무게당 칼로리가 높은 술(알코올 1g당 7㎉), 즉 세주(歲酒)에 취하기 쉽다. 따지고 보면 설날은 살이 찌기 쉬운 조건들을 두루 갖춘 셈이다.
설음식 칼로리에 유념 |
만약 다이어트 중이라면 세찬의 총 칼로리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떡국은 쇠고기 국물ㆍ고기ㆍ달걀지단 등 고열량 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1인분(한 그릇)의 열량이 450∼550㎉에 달한다. 떡만두국의 열량(한 그릇)도 500㎉ 내외로 떡국 못지않다. 만약 떡국이나 떡만두국 한 그릇만 먹고 끝낸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한 끼 권장 칼로리(700∼800㎉)에도 못 미친다. 문제는 설날의 주식인 떡국과 곁들이는 음식 중 상당수가 고칼로리란 것이다.
쇠고기 살코기는 40g에 75㎉ 밖에 되지 않지만 갈비 작은1토막(30g)은 100㎉에 달한다. 갈비엔 살코기보다 지방 비율이 높아서다. 게다가 갈비 양념엔 설탕이 많이 들어가 갈비찜 4토막(120g)을 먹으면 440㎉나 섭취하게 된다. 따라서 갈비찜을 조리할 때는 기름을 완전히 제거하고 달지 않게 양념해야 한다.
생선전ㆍ파전ㆍ돼지고기 완자전 등 설날에 무심코 먹는 각종 전도 고칼로리 음식이긴 마찬가지다. 파전 한 접시(작은 것)만 먹어도 100㎉다. 채소를 넣은 화양적의 열량(100g당 150㎉)도 의외로 높다. 기름을 두르기 때문이다.
당면ㆍ참기름을 원료로 해서 만드는 잡채도 1인분(개인접시 한개)의 열량이 200㎉에 달한다. 속보로 30분은 뛰어야 소모할 수 있는 열량이다. 잡채를 만들 때 식용유를 최대한 적게 넣는 것이 칼로리를 줄이는 요령이다.
과식 피하려면 작은 그릇에 담아야
설날에 과식을 피하려면 작은 그릇에 음식을 담아야 한다. 작은 그릇에 수북이 담긴 음식을 보면 금세 포만감이 든다. 김치ㆍ채소는 작은 보시기에 수북하게 담고, 생선은 뼈째, 조개는 껍질째 조리해 작은 그릇에 담으면 훨씬 푸짐해 보인다. 칼로리가 높은 갈비찜ㆍ전유어도 작은 그릇(1인분용)에 담아 먹는다.
설날엔 칼로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음식(채소ㆍ삼색 나물ㆍ채소 샐러드ㆍ나박김치ㆍ생선구이 등)을 먼저 먹어 배를 채운 뒤 갈비찜 등 고칼로리 음식으로 젓가락을 옮기는 것이 바른 순서다. 나물ㆍ전ㆍ찜 등에 식용유를 적게 사용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나물을 볶기 전에 살짝 데치면 기름이 나물에 덜 흡수된다. 전을 부치거나 고기를 볶는 도중에 식용유를 추가하면 음식에 식용유가 더 많이 흡수된다. 따라서 처음부터 적정량을 넣어 한 번에 조리하되 너무 센 불에 닿지 않도록 불 온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전ㆍ편육을 데울 때는 전자레인지를 사용하거나 기름을 따로 두르지 말고 달궈진 팬에 그대로 데우는 것이 좋다.
칼로리가 높은 잣이나 호두 등 견과류도 과다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식사를 마친 뒤엔 간단한 음료와 과일 정도만 먹는다. 처음부터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많은 음식을 상에 올려놓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식사할 때는 가족ㆍ친지들과 대화를 나누며 골고루 천천히 먹는다. 음식의 간이 짜면 식욕을 돋우어 과식하기 쉽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음식을 먹을 때 조금씩 다양하게 먹는 것도 요령이다. 예컨대 떡국을 1인분 다 먹기보다는 1/2인 분만 먹고 나머지는 잡채로 대신한다. 이렇게 하면 간식으로 시루떡 한쪽 정도 먹어도 괜찮다.
세주 과음 피하려면 청주를 데워 마신다 |
‘세주불온’(歲酒不溫)이란 말은 ‘설날에 마시는 술은 데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 선조는 다가올 봄에 맑은 정신으로 일하기 위해 설날엔 술을 차게 해서 마셨다. 문제는 찬 술은 데운 술보다 쓴 맛이 적어 과음하기 쉽다는 것이다. 세주를 과음하면 다이어트를 위한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된다. 청주 한잔의 열량은 70㎉다. 만약 5잔을 마시면 밥 한 공기의 열량(300㎉)보다 높아진다. 소주 3잔이면 180㎉, 맥주 2캔이면 260㎉다. 술 한 잔과 함께 전유어ㆍ고기반찬 등 기름진 음식을 안주로 먹으면 금방 떡국 한 그릇의 열량과 비슷해진다.
세주 과음을 피하려면 차례상에 올리는 청주는 데워 마신다. 데운 청주는 쓰게 느껴지므로 음주량이 줄어든다. 음식ㆍ술을 과다 섭취해서 복통ㆍ설사ㆍ소화불량 등 위장장애가 생기면 한 끼 정도 금식하는 것이 좋다. 대신 따뜻한 보리차ㆍ꿀물 등으로 탈수를 막고 상태가 호전되면 죽ㆍ미음 등 부드러운 음식부터 먹기 시작한다.
◆ 설날 음식의 칼로리(Kcal) ◆
떡국(1대접) 457, 떡만두국(1큰대접) 495, 만두국(1대접) 350, 갈비탕(1큰대접) 204, 고기만두(큰 것 3개) 385, 군만두(6개) 470, 밥 한공기 300, 절편(5∼6개) 300, 팥시루떡(큰 것 한쪽, 80g) 164, 한과(12개) 300, 약과(2개) 300, 갈비찜(1대접) 300, 삼색나물(취나물ㆍ도라지ㆍ고사리) 1접시 각 50, 빈대떡(대, 1개) 200, 생선전(중, 5개) 160, 삼색고기산적(1작은접시) 72, 파전(1작은접시) 101, 호박전(1/2작은접시) 35, 호박전(1/2 작은접시) 46, 돼지고기완자전(1/4 작은접시) 111, 잡채(1접시) 200, 맥주(1캔, 355㎖) 130, 소주(1잔, 45㎖) 60 |
글 / 중앙일보 박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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