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 외식한 지 반 년은 지난 거 알아요?” |
“우리도 1인분에 몇 만 원짜리는 못 먹어도 와인 같은 거 주는데 한번 가보자고요.”
마누라가 참았던 말을 결국 목구멍 너머로 내놓았다. 아내의 표정을 대충 이해한 내가 마지못해(?) 동의하고 점심 때 아이들과 함께 데리고 꽤나 근사해 보이는 레스토랑에 갔다. ' 이 정도면 돈이 좀 나오겠는걸.' 하는 여러가지 계산이 연산되자 갑자기 '나는 느글거리는 음식 싫어하잖아.' 라는 멘트가 떠올랐다.
“여보. 나는 감자탕이나 순두부찌개 같은 거 좋아하잖아.”
“??#%$^&..........”
예상은 했지만 내 멘트를 받은 아내의 표정은 '이 인간이 왜 이래?' 하는 그런 표정으로 확 바뀌었다. ' 아차' 싶어 얼른 수정발언을 날렸다.
“아니 뭐, 그렇다는 거지. 여기는 레스토랑이니까…. 당신하고 애들 먹고 싶은 거 시켜 봐.”
잠시 후 종업원이 들어와 뭘 주문하겠냐고 물었다.
“저희 레스토랑은 티본 스테리크, 립아이 스테이크, 뉴욕 스테이크, 오스탑 스테이크…”
직원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이상한 말’로 메뉴를 소개했고 아내가 무엇인가 주문한 뒤 와인까지 한 병을 시켰다. 직원이 총총총 사라진 뒤 아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묵직하고도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 약간의 공포(?)가 느껴졌다.
“여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웬 뜬금없는 '무슨 날???’성탄절은 아니고 발렌타인? 화이트데이? 마누라 생일?… 뭐 맞는 게 하나도 없는데…… 어? 어어어???? 혹시……'
“우리가 결혼한 지 10년째 되는 날이에요! 7, 8, 9년도 아니고 10년째라고요. 10주년!” |
정말 서운해서 말도 하기 힘든 표정을 보고 나는 화들짝 놀랐다. 외식은 반 년만인데 다른 날도 아닌, 결혼 기념일. 그것도 10주년이었는데, 시집 와서 애 둘 낳아 잘 기르고 시부모한테 효도하며 살고 있는데 남편이라는 인간은 날짜 기억은 물론 기껏 순두부찌개 타령이나 하고 있었으니….
“여보…… 오늘이 바로 그날이구나. 미안… 미안… 너무나 미안…….”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백 배 사죄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고 했던가. 눈물까지 글썽이는 아내.
“이거… 당신 먹어!!…”
이내 음식으로 나온 고기를 잘라 아내의 입에 넣어주며 내가 진심어린 표정으로 사과하자 아내는 어두운 표정을 약간 거두었다. 그러나 아내는 먹성 좋은 아이들을 떼어주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날 우리 부부는 몇 년 만에 처음 맛보는 와인을 마시며 결혼 10주년을 자축했다.
에구, 회사 다니며 먹고 살기 바빠서 그랬는데 이젠 살림하고 애들 키우면서 맞벌이 직장까지 다니는 마누라한테 더 잘 해줘야겠다.
남민배 제주도 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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