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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봄바람 따라 남도에 갔다가 꽃을 만났네

 

 

 

       손 안에 살포시 내려앉는 봄이 반가워 남도로 길을 나섰다. 가장 먼저 봄을 찾아오는 노란 산수유

      꽃을 만나러 지리산 자락 가파른 언덕배기 마을을 찾았고 섬진강과 나란한 19번 국도를 달리며

      향기로운 봄나물을 맛보았으며 매화꽃들 사이를 걸으며 어느새 성큼 다가온 봄기운을 느꼈다.

 

 

                        

 

 

이른 봄 하나둘 돋기 시작한 산나물에 산뜻한 들나물을 더해 풍요로운 봄을 맛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구례의 지리산자락 도로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산채정식’집 간판들 때문이다. 화엄사 인근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한 산나물 한정식집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기와지붕 하며 손때 묻은 대청마루와 대들보에 드르륵 열리는 미닫이문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에 봄의 기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툭 불거진 목련의 꽃눈까지 더해 출출한 여행자의 기대감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부엌에서 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마저 즐거웠는데 그때 마침 아주머니 두 분이 커다란 산채정식 밥상을 들고 온다. 취나물과 도라지, 목이버섯볶음과 미나리, 머윗대에 산두릅과 더덕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토란조림과 조기구이, 남도의 밥상에서 빼놓으면 서운할 홍어삼합과 몇 가지 젓갈과 게장까지도 얌전히 상 위에 올라앉았다. 대충 세어 봐도 서른 가지 이상의 반찬이 있었기에 잠시 젓가락이 주춤거렸는데 이내 자연스레 손이 가 닿은 것이 바로 가죽나물 부각이다.

 

‘가죽’은 참죽나무의 여린 새 잎을 일컫는 이름이다. 가죽나물은 흔하게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참죽도 드물뿐더러 채취한 잎이 잘 상하거나 하여 손이 참으로 많이 가는 식재료다. 가죽을 살짝 데쳐서 조물조물 양념해 무쳐 먹기도 하는데 부각으로 만들어 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단다. 만드는 방법은 대략 이렇다. 참죽의 어린잎을 따다가 바람 잘 부는 그늘에 하루 이틀 말려두고는 삼삼하게 간한 찹쌀 풀을 한 장 한 장 앞뒤로 발라 다시 말리기를 반복한 뒤 먹기 직전 기름에 튀겨낸다. 쌉싸래 하면서 달고 고소한 데다 독특한 향과 바삭한 식감까지 더해지니 참으로 묘한 맛이다.

 

향긋한 취나물과 산두릅 무침, 목이버섯 나물도 혀에 착착 붙는다. 새콤달콤하게 초고추장으로 쓱쓱 무쳐낸 산두릅은 봄산채 중의 여왕이다. 다 먹고도 입안 가득 산뜻한 향이 남아 있다. 여기에 우아한 향기를 품은 산더덕과 머윗대 무침까지 어느 하나 손이 가지 않는 반찬이 없다. 적당히 나물 맛을 본 다음엔 대접 하나 청해 밥과 온갖 나물을 푸짐하게 올리고는 고추장 넣고 들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쓱쓱 비벼 먹는다. 구수한 된장국에 짭조름한 남도 바다의 조기, 맛있게 곰삭은 몇 가지 젓갈 그리고 쿰쿰한 홍어까지 곁들여 배부르게 먹고 나면 비로소 진짜 봄이 온 듯하다.

 

 

 

섬진강 길 따라 봄맞이

 

 

 

섬진강과 나란히 달리는 구례~하동까지 45km에 달하는 이 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을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 지리산 계곡 중 으뜸이라는 뱀사골과 천년고찰 실상사, 그리고 춘향이의 도시 남원을 지나 구례에 발을 들여놓으면 먼저 산동면으로 간다. 3월 중순부터 서서히 꽃을 피워 이내 하늘까지 온통 노랗게 물들이는 산수유마을을 찾아서다. 상위마을과 반곡, 계척, 현천마을에 이르는 산동면 일대의 산수유마을들은 봄이면 일제히 산수유 꽃망울을 터뜨린다. 전해 내려온 이야기로는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중국 산동성 처녀가 지리산 산골마을로 시집을 오면서 산수유 묘목을 가져다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산동면’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산동면 일대에 산수유나무가 지천으로 있지만 몇 개의 마을 중 상위마을 산수유가 가장 유명하다. 지리산 자락에 기대어 사는 이 작은 마을에 산수유나무가 3만 그루나 있는데 이들이 한꺼번에 꽃을 피우면 멀리서 보기에 이 마을은 노란색 구름 속에 들어앉은 듯 보인다. 얼핏 노란색 물감을 몽땅 쏟아버린 듯도 보인다. 봄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지리산 자락의 계곡 길을 따라 산수유 산책을 즐기고 오래된 꽃나무 그늘 아래 앉아 흥얼거리며 노래도 부르고, 마을의 꽤 높은 곳에 올라 수만 그루 꽃을 한눈에 담아본다.

 

터널처럼 우거진 산수유 군락 아래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귀엽다. 여전히 순박한 시골 모습을 간직한 마을 안은 자연스럽게 쌓아올린 돌담길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그 위로 노란 산수유꽃 가지가 바람에 낭창거린다. 상위마을 아래쪽 반곡마을에도 산수유가 가득하다. 이 마을은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졌다. 인근 현천마을은 오래된 돌담과 빨간색 함석지붕 건물과 어우러진 산수유꽃 풍광 때문에 사진작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매년 열리는 구례 산수유꽃축제는 올해 3월 22일부터 9일간 개최된다.

 

 

 

말간 봄날의 매화마을

 

 

 

반나절쯤 시간을 내 봄의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을 둘러싼 전북, 전남, 경남 3개도를 잇는 장거리 도보길이다. 약 274km에 이르는 둘레길은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5개 시군과 21개 읍면 120여 개의 시골마을을 잇는 22개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산수유마을은 구례군 산동면과 남원시 주천면을 잇는 둘레길 마지막 코스(산동~주천) 중에 만날 수 있다. 남원 운봉읍에서 인월리를 잇는 9.4km의 길은 ‘1박 2일’에서 이승기가 걸었던 길로 4시간가량 소요되며 가볍게 걸을 수 있다. 또 주천~운봉 구간의 둘레길 1코스(14.3km, 6시간 소요)는 지리산 봄 정취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길로 난이도가 괜찮은 길이다.

 

산수유가 지리산 자락을 노랗게 물들이는 거의 같은 시기에 섬진강 끝자락의 광양에서도 매화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4월 초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광양의 산과 들, 마을은 온통 흰 매화꽃으로 뒤덮인다. 이맘때 다압면 매화마을은 멀리서 보면 희게 빛난다.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농원’에 들러 매화꽃 향기 나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꽃 언덕을 산책한다. 여기저기 꽃 사이를 붕붕 날아다니는 꿀벌의 날갯짓과 팝콘처럼 피어난 예쁜 매화꽃과 그 길을 손잡고 걷는 어린 연인의 뒷모습 그리고 언덕 아래 다정한 강변의 정취까지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게 없다. 특히 장독대에 놓인 3,000여 개의 항아리와 어우러진 매화꽃의 풍광이 압권이다. 그 풍경에 취해 한참이나 꽃 속을 걸었던 것 같다. 크게 바람이 불었고 머리 위로 한바탕 꽃비가 내려 앉는다. 낭만과 함께 찾아온 남도의 봄이 그렇게 무르익어간다.

 

글 / 고선영 여행작가 사진 김형호 사진가

출처 / 사보 '건강보험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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