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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

진주여행/진주가볼만한곳 진주성.촉석루.논개, 의암.호국사.창렬사

 






진주성의 촉석루

 

 

여행일자 : 2014. 6. 16~18

진주여행지/진주 가볼만한 곳 : 진주중앙시장-촉석루-하연옥(진주냉면)-경주 돌집(소석원)

                                                      진양호 전망대-진주습지공원-진주성

창녕여행지/창녕 가볼만한 곳 : 창녕 우포늪

카메라 : 소니알파77(칼자이즈 16~80mm)


진주성(촉석루,논개의암,호국사 창렬사) 몇 곳을 소개합니다.

 

진주여행에서 반드시 가볼 만한 곳이 진주성이죠. 사실 촉석루는 첫날 도착하던  날 흐린 날씨에 사진을 담았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시간이 너무 늦어 어두워져서 진주성을 다 둘러보지 못한 상태로 왠지 여행다운 여행이기보다 미진함을 느꼈습니다. 다음날 마침 내리던 비가 그치고 오후 3시 경 하늘이 맑게 개고 구름이 조금 날 무렵 다시 진주성을 찾아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 구입한 운동화 때문에 무척 고생을 했는데요. 차량으로 이동할 때는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이렇게 넓은 진주성을 돌아 볼 때 결국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진주성을 거닐었습니다. 의외로 참 좋았다는 느낌이랄까요.

 

맨발로 진주성을 거닐면서 처음으로 방문한 진주성 전체를 살피려 했지만 창녕으로 가야 하는 관계로 몇 곳을 완전히 둘러보지 못 해서 아쉬웠습니다. 훗날 진주를 다시 찾을 때 이번에 들러보지 못 했던 임진대첩계사순의단, 김시민장군 전공비,촉석정충단비, 김시민장군 동상, 공복문, 북장대, 서장대와 촉석루 야경을 꼭 담으려합니다.

 

진주성을 두루 살피며 애국충절의 고장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특히 어린 논개의 어느 남자 못지않을 정도의 나라사랑에서 나를 되돌아봅니다. 

 

원래는 1박으로 진주만 여행하려던 계획에서 날이 개는 덕분에 창녕 우포늪으로 향했습니다.

다음 여행기는 창녕 우포늪입니다.

 

 

 

흐린 오후 진주성을 들어서며

 


 


 촉석루


진주성 남쪽 벼랑 위에 장엄하게 우뚝 솟은 촉석루는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입니다. 고려 고종 28년에 창건 촉석루라는 이름은 '강 가운데 돌이 우뚝 솟은 까닭'에 누의 이름을 촉석이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촉석루는 진시에는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명소로 과거를 치르는 고사장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 당시 불에 타서 1960년에 옛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붉은 석류꽃의 낙화

 

논개의 애국충정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

바로 아래 의암 바위에서 왜군 수장을 껴안고 물로 뛰어들었다는 아픔이 전해집니다.

 



의암으로 향하는 

 

 

의암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명 민. 관. 군이 순절하자 논개가 의암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투신하여 순국한 바위입니다.

 

 

의기사

 

의기사는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면 죽는다고 하는데 전국에서 처음으로 오죽이 꽃을 피웠다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오죽들이 메말라가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논개(論介) /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렬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느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국사


고려 말기에 왜구의 빈번한 침입을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사찰입니다. 처음 이름은 내성사였다고 하네요. 조선시대 숙종이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라는 이름을 내렸습니다.

  

 


창열사


임진왜란 당시 계사년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분들의 신위를 모기기 위해 전소 40년에 건립된 사액 사당,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신위를 맨 윗자리에 모시고, 창의사 김천일, 충청병사 황진, 경상우병사 최경회 등 39분의 신위를 모심

 

 

진주성 성곽 길

 



포루

 

진주성을 방어하는 포진지로, 1607년 병사 김태허에 의해 진주성 내. 외성에 포루 12좌가 설치되었습니다. 내성의 포루는 3곳이 삼가, 의령, 곤양 등 3읍의 소속이었고 외성 포루는 진주, 단성, 초계, 거창, 사천, 함양, 남해, 합천 등 진주성을 복원하면서 상징적으로 1개소만 복원했습니다.

 

 

 


청계서원

 

고려병부상서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진양부원군 은열공관정 정 신열 선생과 고려 공민왕13년 봄, 이 땅에 목면 씨앗을 처음심어 그 중 오직 한 알을 살려 크게 번연시키고 씨아와 물레 그리고 베틀을 창제하여 온 백성들에게 따뜻한 목면 베옷을 입힌 고려 공민왕 때 전객령 판부사로 치사하신 진양군 문춘공 퇴헌 정천익 선생을 모신 곳


 

 


운주헌터

 

운주는 군막 속에서 전략을 세운다는 뜨승로 운주헌은 조선시대 통제사와 병사 집무실 명칭

 

 

 

 

경절사

 

고려 초 거란에 끝까지 대항하다 순절한 충신 하공진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였다. ‘정절을 떠받든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

 

 


진주성 비석군

 

조선조 선조37년 합포 마산에 있던 경상도 우병영을 진주성으로 옮긴 병사 겸 목사 이수일의 유애비를 비롯하여 효종, 목사 성이성의 창덕 유애비 등 조선시대에 세워진 비석군

  

 

  


진주 박물관

 

가야문화를 소개하고 서부 경남의 고고학적 연구 조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임진 왜란 당시의 최대 격전지인 진주성내에 위치해 있는 입지조건과 임진왜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1998년 1월 임진왜란전문역사박물관으로 재개관했습니다.

  

 


쌍충사 사적비

 

일명 제씨쌍충비라고도 부르는 이비는 임진왜란 때 크게 전공을 세운 성주목사 제말 장군과 이순신 장군ㅇ르 도와 큰 공을 세운 제홍록 장군의 충의를 기리는 곳입니다.

-호미숙 자전거 여행. 사진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