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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TV&영화 속 건강

엘리시움의 완전 의료시대는 도래할 수 있을까

    

 

 

 

 

 

 

 

 

 

 

 

영화 <엘리시움>은 상류층과 하류층, 두 계급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2154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황폐해진 지구에서 우주 왕복선에 몰래 타고 호화로운 우주정거장 엘리시움에 도착한 한 하층민 여성은 다리를 저는 딸아이를 안고 가정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이 여성이 급하게 찾은 것은 무인질병치료기계다. 각종 검진 및 치료 장치가 부착된 기계에 들어가면 모든 질병이 완벽하게 낫는다. 여성은 딸아이를 눕히고 버튼 조작을 시도하지만 기계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장치는 엘리시움 시민권자인 상류층들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먼 미래처럼 그려졌지만, 영화 같은 무인 치료 기술은 이미 우리 주변에 다가와 있다. 국내 의학 기술의 현주소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확대 중이다. 전문가들은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중심으로 로봇 치료가 더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오진의 가능성이나 장비의 안전성 같은 원초적인 문제부터 의료수가(진료비)지정 등 부차적 논의들까지 원격의료를 둘러싼 논쟁이 첨예하다.

 

 

 

 

 

 

"로봇의 강점은 'ROBOT' 글자 그대로 Relaxed, Optimal, Bimanual, Obesity, Technology 등으로 압축된다. 본인의 진료실을 찾는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의 90%가 로봇수술을 선택하고 있다." 지난 4월 아주대병원 백지흠 교수는 한 행사에서 로봇 수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의사가 편안하게 앉아서 수술할 수 있고(Relaxed), 최적의 수술법을 적용할 수 있으며(Optimal)한 손이 아닌 양손을 다 쓸 수 있고(Bimanual), 비만환자에게도 정확한 수술이 가능하며(Obesity), 수술 기술 습득이 쉽다(Technology)는 뜻이다.

 

로봇 수술은 이미 우리나라 의료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복강경 수술이 대표적인 예다. 국내 산부인과에서는 수년 전부터 단일공(싱글포트)복강경수술이 널리 퍼졌다. 구멍을 한 곳만 뚫으면 여러 곳을 건드릴 때보다 합병증과 수술 후 통증이 상대적으로 줄기 때문이다. 복강경 수술이 발달하면서 미용상 효과는 물론이고 환자들의 입원기간도 줄었으며 빠른 일상 복귀도 가능해졌다.


 

 

 

3D 프린터도 의학계에서는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의족이나 의수같은 보조기구를 맞춤형으로 만들거나 수술 등에 필요한 장비 등을 실제로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이를 활용한 기술이 하루 다르게 발전중이다. 특히 이 기술은 곧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신호를 보내 원하는 의료 장구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일부 병원에서는 구글 글래스를 의료진에게 보급했다. 의사가 이를 착용하면 눈앞에 환자의 진료기록이 펼쳐진다. 멀리 떨어진 곳의 의사에겐 자신이 수술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것도 가능하다. 스마트폰은 개인의 생체신호를 측정 저장하고 전송하는 헬스 케어 도구로도 진화하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상황에서도 로봇 치료는 대안으로 각광받는다. 의료진의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궁극적인 기능 때문에라도 전염병 치료에서의 로봇 활용은 필수적이다. 실제로 미국은 에볼라 수습 과정에서 로봇을 투입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에볼라 로봇이 최근 군 의료센터 3곳과 250개 병원에서 소독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제넥스사에서 만든 이 로봇은 4개의 바퀴가 달린 몸체에 스프레이가 장착된 형태로, 제논 가스를 이용해 반경 3m 내에 1초당 1.5펄스의 레이저를 쏘아 보내 인간 청소원보다 더 신속하고 철저하게 소독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로봇이 완벽하게 인간의 동작을 구현할 수 없어서 로봇 스스로 진단하고 수술하는 정밀한 진료 행위는 어렵지만, 이미 진료 보조 장치로서의 역할은 훌륭하게 하고 있다. 게다가 기기는 점점 작고 가벼워질 것이고, 의사들의 동작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원격 진료 기술이 발전하면 미국의 유명한 의사가 중동에 파견된 미군 환자를 원격으로 수술하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가능성은 무한대로 열려 있다. 세브란스병원 나군호 교수는 최근 보건행정학회 정책토론회 기고문에서 "국내 의료로봇 시스템 연구개발은 아직 초보단계지만, 전세계적으로 로봇을 이용한 의료서비스 효용성이 증명되고 있는 만큼 확대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나 교수는 "점차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술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도 가능해질 것"이라면서 "나노기술의 발전으로 기구나 로봇이 작아져 작은 로봇을 혈관에 주입해 치료할 수 있는 단계도 머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영화에서도 잘 나타났지만 기술의 발전과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굳이 미국의 의료 불평등 현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문제다. 가난한 사람은 발전한 미래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혜택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복강경 수술만 하더라도 일반 양성 종양 복강경 수술은 300만~400만원이지만 로봇 복강경수술은 800만원대에 이른다. 무턱대고 추진하기에는 현실적인 장애물이 적지 않다. 복지부는 원격의료 서비스를 가장 필요로 하는 대상으로 농어촌의 고령자와 장애인들을 지목했다. 이들은 대표적인 정보화 소외계층이다. 원격 진료를 안정적으로 구현하려면 전국 모든 지역에 광대역 통신망이 설치돼 있어야 하지만, 원격 의료가 절실한 산간 벽지 지역들은 통신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다. 통신사업자들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농어촌 지역에 대한 투자를 꺼린다. 정부는 이에 대한 추가 투자를 계획해야 하고, 이로 인해 사업은 더 복잡해진다.

 

 

 

 

 

각 이익집단의 입장이 어떻든 로봇의 발전과 이로 인한 원격 진료의 발달은 당연한 미래다. 국제 로봇연맹에 따르면 산업용 로봇 시스템 시장은 세계적으로 연 29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가까운 일본도 헬스 케어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규제 철폐를 통해 일본의 로봇 시장을 2020년까지 210억 달러 규모로 3배 성장시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의료기기 인증 절차를 완화하고 요양원에서 시범적으로 로봇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요양 로봇에 대한 안전성 표준도 마련했다. 접으면 휠체어로 변신하는 파나소닉사의 침상 로봇은 그 결과물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것은 안정성이다.

 

의료 기술은 다른기술과 달리 조금만 어긋나도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 진료 현장이 인간인 의사와 환자가 일 대 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교류하는 모습에서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환자를 기계가 '처리'하듯 다루는 모양새로 변하는 것은 또 다른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4달간 좌우가 뒤바뀐 엑스레이 필름으로 500명이 훨씬 넘는 환자들을 진단하고 이 중 100명이 넘는 환자에게 약물처방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현상은 역사 전반에 걸쳐 반복되고 있다. 이익집단의 논리에 휘말리지 않고 장기적 미래를 바라보는 보건정책이 절실하다. 그래야만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발전하는 기술이 우리 모두를 널리 이롭게 할 것이다.

 
글 / 세계일보기자 조병욱
사진 / 영화 제작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