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날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

저는 ‘어머니’라는 그 위대한 이름이 가슴 한편을 적십니다.

 

 

 

 

월사금이 없어 초등학교 입학도 못해...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3년전 4남 3녀의 셋째로 태어나, 어린아이로 전쟁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가난과 배고픔의 시린 상처는 추억의 가락으로 늘 읊어주시는 어머니!

 

딸로서는 첫째인 어머니는 한국전쟁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받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조락(凋落)을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오셨습니다. 밥조차 굶을 때가 많았던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아들에게는 힘들게 마련해주던 ‘월사금(학교에 다달이 내던 수업료)’을 딸인 어머니에게는 허용되지 않았고, 입학금조차 없어서 초등학교 입학도 못했다고 합니다. 남들이 학교를 가는 그 시간에 어머니는 땔감으로 쓸 장작을 구하기 위해 아들들을 대신하여 산에 나무를 하러 가시거나, 밭에 나가 농사를 지으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남들이 공부하기 위해 학교를 가는 게 부럽고,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어머니는, 배움의 열정을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녹이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손주들 생일카드에도 몇 글자 적어 주시고, 디지털 중독에 살고 있는 우리 젊은 세대들과는 다르게 탁월한 계산능력과 기억력이 뛰어나시며, 세 들어 살고 있는 외국인과도 간단한 일상 영어회화는 가능하답니다. 

 

 

 

 

어머니는 가난하여 쌀이나 보리쌀로 된 밥을 먹기는 정말 힘든 시기에 故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정책 중의 일환인 사방사업에 참여하면서 근로의 대가로 밀가루를 받아 수제비나 칼국수를 만들어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땔감을 해오고, 밭에서 일을 하고 와서도 장녀라는 이유로 식구들 빨래며, 군불을 지펴 밥을 하는 일도 항상 어머니 몫이었으며, 더구나 자식을 7명이나 나으신 할머니 탓에 막내로 태어난 남동생과 여동생을 할머니 대신으로 업어 키우셨다고 합니다.

 

 

 

 

 

 

 

머리에 이고 지고

 

 

   

 

 

이름도 모른 채, 시집가는 날 처음 얼굴을 보고 시집 온 어머니는 가재도구라고는 솥단지와 밥그릇, 국그릇, 남비, 수저가 전부인 살림살이로 시작을 하여,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를 일구고자, 등에는 어린 자식을 업고 봇짐 장사를 하기도 하고, 부두에 나가 어선에서 들여온 생선을 정리해 주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셨습니다.

 

 

 

 

 

머리춤에 이고 지고
등에는 젖먹이 어린 자식

하나만 더 팔자
내 새끼 밥 먹이고
하나만 더 팔자
내 새끼 옷 입히고

연탄불 피워
보글보글 된장찌개
아궁이 지펴
구들장 속 뜨근한 밥

세월이 가고 가도
조왕 앞에 정화수 떠놓고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

 

 

 

 

 

아파도 아프지 못할 날들이 무수히

 

 

 

선원의 직업을 갖게 된 아버지께서 집에 자주 오지 못하시어 당신 혼자서 네 명의 자식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어린 자식을 등에 업고, 손을 잡아 걸리기도 한 채, 또아리를 튼 머리 위에 커다란 짐을 얹어 장사를 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제 막 걸음을 걷기 시작한 자식이 멀리 달아나 사고가 나지 않도록 허리춤에 긴 끈을 매달아 연결해두고 남의 집 놋그릇을 광택이 나도록 닦아주어 품돈을 버시기도 하셨습니다.

 

난을 이기고자 아끼고 저축하는 것이 일상이 된 어머니는 아버지의 월급 중 절반 이상을 저축하셨고, 저축을 먼저하고 쓸 돈을 쓰는 어머니의 저축방식으로 인해 자식들의 준비물을 준비해줄 돈이 없어서 근처에 사는 외할머니에게 빌리러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었죠. 그래도 자식들이 혹여나 가난한 살림으로 기가 죽을까 염려하여 보리밥 가득한 도시락 밥통 위에 계란 후라이를 덮어주기도 하시고, 아픈 자식이 있으면, 평소 먹어보지 못한 귀한 과일을 사주기도 하셨습니다. 

 

 

모두를 버려도

모두를 잃어도

자식만큼은 품으로 안고

고진 역경 이겨내며

주름진 이마 위에

묻어온 한 많은 세월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며

가슴으로 끌어 안은 당신

 

 

 

아버지께서 한 명의 자식 혼례에만 함께 하신 후 지병으로 일찍 작고하시자 어머니는 짝을 이루지 못한 남은 세 명의 자식들을 혼자서 모두 혼례를 치러 주셨습니다.

 

무성한 가지들

하나 둘 제 짝을 지어주고

건재한 뿌리 하나로

든든한 버팀목 되어주신 당신

 

지병이 있으신 아버지의 병간호와 더불어 자식들이 맞벌이로 아이를 양육하기 힘들게 되자 손주까지 맡아서 키우시면서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내리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몸이 힘들고 아파도 눈물 머금으며 버텨내면서 힘든 내색 하지 않으셨던 분이 바로 어머니 당신이셨습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내리 사랑

살가운 감성 온 몸으로 뿌리고

아파도 아프지 못할 날들이 무수히

마냥 안간힘으로 눈물 머금어 이겨내는 당신

 

 

칠십을 바라보는 연세에 관절염과 요통으로 두 다리 뻗지 못한 채 깊어만 가는 밤을 지새우며, 아파도 아프지 못할 날들이 많은 이유는  ‘어머니’라는 그 이름 하나로 견뎌내시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바람 없는 이 밤도 두 다리 뻗지 못해

겨운 애환으로 잠 못 이루지만

모정으로 살아온 높이만큼

크신 사랑 하늘에 닿아

엄동 설한에도 꽃을 피울 분

...........

............

 

 

 

 

 

사랑해서 아픈 것이고, 사랑해서 슬픈 것이고, 사랑해서 행복한 것이지만, 어머니 당신께만은 사랑해서 행복한 여생의 삶만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어머니

 

머리춤에 이고 지고
등에는 젖먹이 어린 자식

하나만 더 팔자
내 새끼 밥 먹이고
하나만 더 팔자
내 새끼 옷 입히고

연탄불 피워
보글보글 된장찌개
아궁이 지펴
구들장 속 뜨근한 밥

세월이 가고 가도
조왕 앞에 정화수 떠놓고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

겨울처럼 시린 손끝
터벅터벅 거친 손바닥
그 손길에 자란 자식 손주들

당신의 그 이름 하나로도
제 가슴엔 등불이고
울컥울컥 목이 메는
불망의 어머니

넉넉하고 속 깊은 당신
내 가슴에 햇살로 머물러
죽어서도 나를 비추는
등불로 간직하고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애인 어머니!

 

 


어머니 당신은

 

모두를 버려도

모두를 잃어도
자식만큼은 품으로 안고
고진 역경 이겨내며

주름진 이마 위에
묻어온 한 많은 세월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며
가슴으로 끌어안은 당신

무성한 가지들
하나 둘 제 짝을 지어주고
건재한 뿌리 하나로
든든한 버팀목 되어주신 당신

목숨보다 소중한 내리 사랑
살가운 감성 온 몸으로 뿌리고
아파도 아프지 못할 날들이 무수히
마냥 안간힘으로 눈물 머금어 이겨내는 당신

어머니 당신은
바람 없는 이 밤도 두 다리 뻗지 못해
겨운 애환으로 잠 못 이루지만
모정으로 살아온 높이만큼
크신 사랑 하늘에 닿아
엄동 설한에도 꽃을 피울 분

그런 나의 어머니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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