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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TV&영화 속 건강

영화 '월드워Z'로 읽는 메르스 사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가 과거의 재난 영화를 다시 최근 인기 순위로 끌어올렸다. 이 가운데 이번 사태의 교훈을 먼저 경고한 영화가 있었다.바로 <월드워Z>(2013년)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에 나오는 바이러스는 한국 평택 미군기지 인근에서 처음 발견되기도 했다.

 

 

 

 

영화는 사람들을 좀비(부활한 시체)로 만드는 감염병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전직 유엔(UN) 역학조사관 출신의 주인공 제리 레인(브래드 피트)이 이 바이러스의 원인을 찾아 한국, 이스라엘 등 전 세계를 누비며 감염병에 맞선다. 결국 WHO 연구실에서 백신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으로 영화는 매듭짓는다.

 

<월드워Z>는 역학조사관이 감염병 사태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역학조사관의 중요성이 다시 알려졌다. 그동안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 예산 부족으로 인력 수급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군복무를 대신하는 의사가 주로 이 일을 맡았다. 그나마 그 숫자도 전국에 30명에 불과했다. 결국 이들이 전역하고 나면 또 새로운 조사관이 군 복무를 대신해 들어오는 구조로 노하우가 축적되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됐다. 다행히 이번 사태 이후 이들의 숫자를 늘리기로 합의됐지만 지원자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역학조사관은 ‘질병 수사관’이라고 불린다. 바이러스의 시작이 어디이며 어떻게 전파돼 갔는지를 추적한다. 바이러스 발생, 전파 현장을 조사해 바이러스의 특성, 발생 원인이나 증식과정, 무엇을 통해 전파되어 갔는지, 누구에게 전파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 때도 처음 발생한 병원의 환기구조가 바이러스를 증식시켰고,  첫 번째 환자가 기침을 다른 환자와 병원 복도 등에 바이러스가 퍼진 것으로 조사됐다. 또 복도를 걸어다닐 때 잡은 손잡이 등을 통해 바이러스가 퍼져나갔을 것이라는 분석결과도 있다. 이 역학조사관의 조사 결과는 이후 메르스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을 세우는 데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됐다.

 

 

 

 

영화에서도 좀비가 확산하는 과정이 심각해지자 UN은 제리를 찾는다. 바이러스의 원인을 알아야 백신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리는 하버드대 박사 출신의 천재 의학자와 함께 바이러스 발생 현장 조사를 나서지만 총기 오발 사고로 이 박사가 초반에 사망한다.

 

 

 

 

마크 포스터 감독은 재난 상황에서 이론에 강한 사람보다 역학조사관 처럼 현장에 강한 전문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역학조사관 교육을 받은 강대희 서울대 의과대학장(예방의학)은 “역학조사관은 현장에서 바이러스의 원인과 전파가능성 등을 찾는 사람”이라며 “교과서로만 배우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배우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대희 학장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역학조사관에 대한 대우도 아주 좋은 편이다. 특히 현장에 CDC 마크가 새겨진 옷을 입고 출동하면 영화에서 FBI 옷을 입은 수사관들에 대한 협조처럼 많은 사람들이 신뢰를 보낸다고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국내 대형병원에 조사를 나간 역학조사관들이 제대로 조사를 하지 못하고 병원도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는 기사가 여러 차례 보도됐다. 결국 역학조사관을 양성하는 문제와 더불어 사회적 인식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영화에서는 전직 역학조사관 제리는 헬기와 군용기를 타고 전 세계를 자유자재로 누빈다. 그에 대한 대우도 일반 공무원에 대한 처우와는 달라 보인다.  국민과 나아가 전 세계 시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질병수사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다. 우리 사회도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역학조사관을 비롯한 감염병 대응 체계를 근본적으로 점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글 / 조병욱 세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