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ㆍ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이 확실히 달라졌다. 이맘때면 외롭다거나 마음이 허(虛)하다는 등 가을을 타는 남성이 부쩍 늘어난다. 흔히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 불린다. 남성이 사색에 자주 잠기는 시기여서다. 실제로 남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국내 설문조사에서 ‘어느 계절에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가’를 묻자 44.7%가 가을을 꼽았다. 다음은 겨울 40.8%, 여름 7.9%, 봄 6.6% 순이었다.
남성의 인생에도 ‘가을’이 있다. 남성 갱년기다. 우리나라 40대 이상 남성은 3명 중 한 명이 ‘남성 갱년기’를 겪고 있다. 특히 10명 중 1명은 혈액 검사를 통해 남성호르몬의 혈중 농도가 지나치게 낮아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높은 흡연율, 지나친 음주 습관, 고용 불안으로 인한 스트레스 심화 등이 남성 갱년기를 촉발시킨다.
남성 갱년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남성 호르몬(테스토스테론)을 바로 알아야 한다. 남성호르몬은 수영 박태환 선수의 도핑 검사에서 검출된 성분으로 고환에서 주로 생성된다. 고환이 체온보다 2∼3도 낮아야 정자 생산을 원활하게 하지만 남성호르몬의 분비는 온도(계절)와는 무관하다.
미국의 여류작가 게일 쉬히는 자신의 갱년기 치료를 위해 남성 호르몬(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은 뒤 “이제 알겠다. 남자들이 왜 전쟁을 하는지…”라고 표현했다.
남성 호르몬은 남성에게 공격성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근육ㆍ수염을 풍성하게 하고, 성욕이 넘치게 하며, 음성을 저음으로 바꾸고, 어깨가 넓어지게 한다. 일반적으로 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은 남자가 더 남성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쩌랴? 나이가 들면 이 수치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30대부터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70대는 30대의 절반, 80대는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다. 이로 인해 겪는 것이 남성 갱년기를 비롯해 성욕 저하ㆍ근육량 감소ㆍ복부 지방량 증가ㆍ골밀도 감소ㆍ우울증 등이다. 남성 정력의 원천인 남성호르몬은 밤에 주로 분비되며 스트레스가 심하면 덜 분비된다. 정력을 유지하려면 밤에 숙면을 취하고 스트레스 관리를 잘해야 한다.
최근 남성 갱년기의 해결사로 떠오른 것도 남성 호르몬 요법이다. 주사약ㆍ먹는 약ㆍ바르는 약 등을 통해 남성 호르몬을 보충하는 것이다. 갱년기 여성에게 여성 호르몬을 처방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남성 호르몬 요법은 다수 남성 갱년기 환자들에게 상당한 만족감을 제공한다. 과거보다 성욕ㆍ발기력이 훨씬 좋아졌으며, 허리 사이즈는 물론 골프 타수까지 줄였다는 남성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아킬레스건은 있다. 전립선암이다. ‘전립선암은 남성 호르몬을 먹고 자라는 암’이기 때문이다. 유방암이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요법의 덫이라면, 전립선암은 남성 호르몬 요법의 암초인 셈이다. 외국의 연구에선 남성 호르몬의 혈중(血中) 수치가 상위 25% 안에 든 사람이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은 하위 25%인 사람보다 2.3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전립선암 초기 단계인 사람에게 외부에서 남성호르몬을 공급하면 전립선암이 심해진다.
그러나 남성 호르몬 요법이 전립선암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의료계의 다수 의견이다. 따라서 사전과 사후 검사를 철저히 받으면 남성 호르몬 요법의 부작용으로 전립선암 환자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전 검사를 통해 남성 호르몬 요법이 부적합하다고 판정되는 환자가 약 10%, 사후 검사에서 ‘시술 중지 결정’이 내려지는 환자가 20%가량이다. 만약 사전ㆍ사후 검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면 남성 호르몬 요법을 받는 환자의 30%는 전립선암 위험에 노출되는 셈이다.
갱년기 남성이 남성 호르몬 치료 시작 전에 받는 검사(사전 검사)는 직장 촉진ㆍPSA(전립선특이항원) 검사ㆍ조직 검사 등이다. 여기서 별 문제가 없고, 남성 호르몬 수치가 1㎖당 3.5∼4ng 이하이며, 복부 지방이 심하거나 골다공증 등 갱년기 증세를 보이는 남성에 국한해 남성 호르몬 요법이 실시된다.
남성 호르몬 치료를 받은 뒤에도 처음 2년간은 3개월에 한번, 그 이후엔 6개월에 한 번씩 사후 검사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전립선암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도 사전 검사에서 전립선암이 없는 것으로 판정되면 남성 호르몬 요법을 받아도 무방하다. 남성 호르몬 요법은 전립선비대증의 치유엔 도움을 주지 않는다.
한편 전립선은 정자의 생존에 필요한 전립선 액을 만드는 부위로 남성만 갖고 있다. 남성의 생식 능력에 필수적인 장기이기도 하다. 중년을 넘긴 남성중엔 노화ㆍ남성호르몬ㆍ비만 등으로 인해 평소 밤톨 같던 전립선이 호두 크기로 비대해져 소변보기를 힘들어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전립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엉뚱하게 전립선 마사지를 내세운 업소들도 생겼다. 그렇지만 병원이 아닌 곳에서 이뤄지는 전립선 마사지는 유사 성행위로, 전립선 건강이나 정력과는 무관하다.
비뇨기과 전문의가 하는 전립선 마사지는 소독된 장갑을 끼고 윤활유를 묻힌 손가락을 환자의 항문에 넣어 전립선을 밖에서 안쪽으로 3∼4회 부드럽게 문지르는 의술이다. 전립선염 진단을 위해 전립선 액을 채취하거나 전립선염으로 인한 부기를 뺄 때도 전립선 마사지를 한다. 하지만 병원 밖에서 전립선 마사지를 받으면 요도가 심하게 자극돼 요도 손상이나 염증이 동반될 수 있다. 태국 여행 도중 일부 남성이 받는다는 볼(고환) 마사지는 고환이 꼬이는 등 고환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고환 건강이나 정력 강화와는 무관하다.
전립선 건강에 이로운 식품으론 토마토ㆍ콩이 추천된다. 토마토엔 붉은색 색소이자 항산화성분인 라이코펜, 콩엔 식물성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의 일종인 아이소플라본이 풍부해서다. 토마토 소비가 많은 지역의 전립선암 발생률이 적은 지역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는 역학조사 결과가 있다. 콩을 즐겨 먹는 일본인이 미국으로 이민한 뒤 전립선암 발생률이 미국인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를 일본인 패러독스(Japanese paradox)라 한다.
호두ㆍ땅콩 등 견과류는 ‘심심풀이’가 아니라 남성 건강을 위한 ‘기능식’이다. 견과류에 풍부한 지방은 남성호르몬의 원료가 되고, 비타민E는 고환의 혈류를 향상시켜 남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고 전립선 건강을 돕는다.
글 /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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