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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양심맨부터 교수님까지, 아빠는 트랜스포






KBS 슈퍼 탤런트 1기로 데뷔한 이후 20여 년. 탤런트 최재원은 감초 연기자로, 대한민국의 양심을 지키는 ‘양심맨’으로, 기업의 홍보 이사와 대학의 교수로 끊임 없이 변신해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낭독봉사, 연탄배달 등 주기적인 봉사활동까지,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 중심에는 탤런트 최재원 스스로 “Everything”이라 말하는 가족이 있다.




지난 5월, KBS2 ‘출발드림팀2’에 탤런트 최재원과 딸 유빈이가 출연했다. 장애물 5종 경기에 참여한 후 아빠는 “유빈아, 살 좀 빼자. 너무 무겁더라”고 했고, 아빠가 제일 자랑스러울 때가 언제냐는 MC의 질문에 유빈이는 “자장면 사주실 때요”라고 답했다. 코믹한 듯 다정한 부녀의 모습은 <건강보험> 촬영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랑 뽀뽀 한번 해볼까?”라는 주문에 유빈이는 아빠를 향해 사랑스럽게 입술을 내밀었다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다음 아빠가 유빈이의 표정을 차례로 흉내 내자, 순식간에 촬영장은 웃음바다로 변한다.





“집에서 가족끼리 스킨십을 많이 하는 덕분일까요? 딸들이 커가면서 아빠를 멀리(?) 한다던데, 유빈이랑 저는 여전히 허물 없이 지내요. 제가 술도 안 마시고 모임도 크게 좋아하지 않아서 저녁시간은 대부분 가족과 함께 보내거든요. 저희 부부는 물론이고 막내 유진이까지 모두 O형이라 그런지, 살 비비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고요.”


아빠와 딸이 벤치에 앉아 나란히 포즈를 취하는 사이, 어디선가 “온니야~ 온니!”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얼마 전, 만 두 돌을 맞았다는 둘째 유진이. 놀이터에 나왔다가 아빠와 언니를 발견한 유진이가 정신 없이 달려오자 유빈이는 동생을 번쩍 들어 품에 안는다. 조마조마하게 뛰어다니며 “온니!”를 외치는 동생이 아무리 귀여워도 9년이라는 터울이 만만치는 않을 터. 유빈이에게 유진이 때문에 불편한 점은 없느냐 묻자, 유빈이는 거침없이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동생이랑 같이 노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서 제가 3년 동안 기도했어요. 동생이 태어나고 처음에는 밤마다 울어서 시끄러웠는데 금방 또 괜찮아지더라고요. 요즘은 대신 소리를 좀 지르는데, 그것도 귀여워요. 물론, 잘 때랑 웃을 때가 제일 귀엽지만요!” 때로는 숙제를 방해하고 언니를 꼬집고 때리며 장난을 쳐도, 유빈이는 유진이가 예쁘기만 하다. 아빠와 엄마 역시, 유빈이가 공부를 소홀히 할까 걱정이 되다가도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든든해진다고.


“마냥 행복했다가 걱정이 되었다가…. 둘째를 보면 만감이 교차해요. 짧게 잡아 25년 후에 유진이가 결혼을 한다고 해도, 그때 저는 이미 70대가 되어있을 테니까요. 너무 늦게 낳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후회는 안 해요. 그저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울 따름이죠.”




탤런트 최재원은 지난 연말, KBS1의 ‘당신의 100세는 안녕하십니까’라는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을 맡으며 경제 상황과 노후 대비에 대해 진단을 받기도 했다. 늦둥이 아빠로서의 책임과 노력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다.


“물론 본업은 연기에요. 하지만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리려면 고정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경제활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외식업체와 학원업체의 홍보이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죠.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치는 일은 자아실현과 수입, 둘 다에 걸쳐 있는 것이고요.”





‘연기자는 꿈을 좇는 사람’이라 여겨왔던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리는 대답이었다. 자신이 꿈꾸던 것을 포기하지 않는 대신 현실에 단단히 발 디디고 서서 가정을 지키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탤런트 최재원은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하지만 그가 지향하는 ‘현실’은 가족만이 아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존하는 것 또한 그가 원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탤런트 최재원의 삶을 이루는 또 다른 한 축은 봉사활동이다.


그는 교통안전 홍보대사, 범국민금연운동본부 금연홍보대사, 카톨릭조혈모세포은행 홍보대사 등 데뷔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홍보대사로 활동해왔고, 낭독봉사, 연탄배달, 노숙자 쉼터 찬거리 배식 등 다방면으로 행동 반경을 넓혔다.





“모태신앙으로 성당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 나서게 되었어요. 고향인 순천의 한 병원에서 2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 어머니의 영향도 분명 있겠죠. 데뷔 후 KBS공채탤런트 모임 한울타리에 들어가면서 활동영역이 좀더 다양해진 것은 분명해요. 워낙 열심히들 활동하시거든요.” 한두 번은 참여할 수 있어도 자신의 의지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봉사활동일 텐데, 그는 그저 “자연스럽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대신 딸인 유빈이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는 흔한 말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아빠처럼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런데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아빠 봉사하실 때 같이 가서 볼 때가 많거든요. 지난 번에는 엄마랑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면서 아이들을 돕는 캠페인도 직접 해봤는데, 많이 뿌듯했어요.” 유빈이의 이야기를 듣던 중 아빠 최재원은 쑥스러운 듯 “꿈이 바뀌었어? 미식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라고 했지만, 얼굴에 번지던 미소만은 감추지 못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이어가던 중, 건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잠시 어색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는 작년 여름, 건강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대사증후군’ 진단을 받았고 딸 유빈이는 체중조절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뜻대로 안 된다는 것. 특히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해 음식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는 유빈이는 나름으로 할 말이 있다.


“어렸을 때 어른들도 살이 다 키로 가니까 많이 먹으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시고, 저랑 몸무게로 라이벌이었던 친구가 점점 날씬해지고 있으니 저도 열심히 운동하고 음식도 조절할 거에요.” 행여 성조숙증이 올까 봐 딸에게 잔소리를 할 수 밖에 없다면서도 아빠는 살짝 유빈이 눈치를 본다.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한식보다는 인스턴트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 게다가 단 것까지 즐겨먹는 그의 식습관이 공개된 탓이다.





“방송에 나간 것만큼 심각하지는 않아요. 대사증후군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위험수치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식습관만 놓고 보면 건강이 나빠져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어요. 타고난 체질 덕분에 그나마 버티는 거죠. 하지만 저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도 입맛이 바뀌는 것 같아서 요즘은 조심하고 있어요.” 그는 요즘 식습관 개선에 신경 쓰는 한편, 되도록 많이 걷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간이 날 때면 네 식구가 나란히 한강변을 걷고, 강의를 위해 학교에 갈 때면 되도록 지하철을 이용하고, 프로 골퍼인 아내와 함께 한 달에 한두 번씩 필드에 나가 5시간 이상씩 걸으면서 확실히 건강이 좋아지고 있음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양가 부모님들을 뵐 때마다 잘 먹고, 많이 걷고, 가족끼리 충분히 사랑하는 것이 건강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요. 앞으로 두 딸이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된 후에도 ‘잘 통하는 멋진 아빠’가 되려면 더 건강해지고 더 많이 사랑해야죠. 두 딸과 아내, 양가 부모님까지, 가족은 저의 모든 것, 그야말로 Everything이니까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흔들림 없이 지키기 위해 무한히 변신하는 가장, 자연스럽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어느새 생활의 일부가 된 공인, 자신에게 맡겨진 배역이라면 그 무엇에든 최선을 다하는 연기자. 탤런트 최재원에게 ‘트랜스포머’라는 수식을 붙이고 싶은 이유다.



글 / 최영숙 기자
사진 / 유승현(Mage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