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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취미

술에 관대한 대한민국, 과연 괜찮을까?





광고 기획을 하는 윤 차장에게는 점심시간에도 곧잘 손님이 찾아온다. 식사를 주문하면서 자연스럽게 반주로 소주 한 병을 시킨다. 어느새 다가온 퇴근 시간. 오늘은 부서 송년회가 있는 날이라 술자리로 냉큼 달려갔다. 윤 차장은 부장님이 주는 술을 거부하지 못하고 계속 술잔을 비워갔다. 누군가가 2차, 3차를 외치며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다음날, 윤 차장은 술이 덜 깬 상태로 출근해서 졸다가 김 과장에게만 살짝 말하고 조용히 사우나로 향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13년 국민영양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주류 섭취량이 백미에 육박할 만큼 높다고 한다. 특히 직장인이 많이 분포된 30~40대 경우는 하루 맥주 섭취량이 116.18g 소주는 62.20g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를 합치면 178.47g으로 한국인 주식 재료인 백미(156.03g)보다 많은 양이다. 이는 우리가 매일 먹는 밑반찬인 배추김치(77.61g)의 2배가 넘는 수치다. 그렇다면 올해의 우리나라 술 소비 상황은 어떨까. 통계청이 발표한 올 2분기(4~6월) 우리나라 가계 동향에 따르면 사교육비, 식비, 의복비 등 사적 소비가 모두 줄었는데도 술과 담배 지출은 전년 대비 7.1%가 늘었다고 한다.





경제 불황 등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술 소비가 이렇게 늘어난 데는 혼술족(혼자 술 마시는 사람)의 증가를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최근 잡코리아가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10명 중 7명이 혼술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음주하는 주된 이유는 역시 친목 도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회식이나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술! 과연 사람들은 정말 술로 관계가 단단해지고 있을까.




"한국의 음주문화는 폭력적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가 아닌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에서 지난 2월 방영한 기획 영상 내용이다. 이 방송에서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술 권하는 사회, 술을 함께 마셔야 제대로 통한다고 생각하는 여기 이곳 대한민국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멀고 먼 외국에서도 꼬집을 정도로 우리나라 음주 실태가 고질적인 사회 문제가 된 것은 폭음하는 문화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미국 뉴욕타임스의 해외판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한국은 알코올 소비에서 세계 13위지만, 폭음에서는 세계 1위다."라며 "한국 사람들은 술을 함께 먹어야 친해진다는 생각에 폭탄주를 만들어 원샷을 외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해외의 비판적 보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술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느새 연말이 되니 "한번 만나야지?"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나돈다. 만남 대부분에는 술이 함께 한다. 술로 친목을 다진다는 의도는 나쁘지 않지만 실제로는 술로 소통을 외치다 도를 넘어선 음주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도 많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과해지면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든다. 그렇다면 '과하다'는 기준은 어느 정도의 양일까.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고위험 음주량은 알코올 도수 17%인 소주를 기준으로 남자 9잔, 여자 6잔 이상이다. 남자 14.9잔, 여자 9잔 이상이면 고위험군보다 위 단계인 매우 위험군에 속한다. WHO가 권장하는 주종별 적정 음주량은 남자 소주 5.9잔, 여자 2.9잔 정도다. 맥주라면 200ml로 남자 5.6잔, 여자 2.8잔이다. 대체로 술자리가 깊어지면 이 같은 적정량을 훌쩍 넘게 된다. 스스로 절제하지 않으면 술로 인한 문제가 있는 상황에도 어쩔 수 없이 쉽게 노출된다.





특히 연말은 각종 음주 관련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음주운전 사고다. 국민안전처와 도로교통공단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최근 5년간 연평균 교통사고 사상자는 34만 명으로 그중 14.4%가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상자였다. 이중 아침 출근 시간대에 일어난 음주운전 사고도 약 1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쭉 마시고 술이 채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운전해서 일어난 사고였다.




연말연시가 되면 전국의 지구대 파출소에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다고 한다. 과음하고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진 취객들이 대부분이다. 누군가가 신고를 해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면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안 되면 추위나 범죄에 노출되어 건강상, 재산상의 피해를 보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이처럼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이 실수해도 "술이 죄지, 사람이 무슨 죄냐."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술에 너그러운 문화가 음주 소비를 줄이지 못하고, 다시 또 폭음하는 문화로 이끄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술 없는 송년회'가 인기를 끌었다. 술 대신 식사를 하거나 문화공연을 같이 보는 송년회다. 술로 하는 소통도 좋지만, 핵심은 좋은 사람과 좋은 대화를 나누는 송년회다. 좋은 사람들과 모여 한해의 수고를 서로 격려해주는 마음만 있다면 송년회는 그로써 충분한 게 아닐까.



글 /  건강보험 '사보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