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재봉틀이 있다. 그것을 사오신 할머니조차 당신 젊었을 때 산 것
  이라고만 하니 정확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어림해도 사십 년은 족히 넘은 듯 하다.

 

재봉틀에 얽힌 내 최초의 기억은 대여섯 살 즈음의 것이다. 여름이 한창인 날, 재봉틀이 놓인 건넌방에서 할머니는 새로 태어난 사촌동생의 옷가지를 만들고 계셨다. 할머니께서 재봉틀 발판을 밟으며 요리조리 천을 움직이면 뚝딱뚝딱 작은 옷들이 만들어졌다. 솜씨가 유난히 좋았던 우리 할머니는 여든이 다 되실 때까지도 20여 년 전 그 모습처럼 재봉틀을 다루셨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에게 재봉틀 다루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는 공부하기도 바쁜데 그런 것은 뭐할려고 하려느냐며, 재봉틀을 달그닥거리는 나를 못마땅해 하셨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내 첫 작품은 할머니께서 한복집에서 얻어온 짜투리 천으로 만든 작은 손가방이었다.

재봉틀이 오래 된지라 잘 다독이며 써야 하는데, 익숙치 않은 손과 발놀림으로 바늘도 여럿 분지르고, 바늘땀도 일정치 않아 삐뚤삐뚤 제 멋대로 였다. 그렇게 재봉틀을 만지게 된 나는 바짓단 줄이기와 상보 만들기 같은 정도는 쉽게 만들 정도가 되었다. 할머니 보시기에도 솜씨가 나쁘지 않았던지, 전 같으면 당신이 하실 것도 내게 맡기곤 하셨다.


짬짬이 요긴하게 쓰이던 재봉틀이 아주 멈춰버린 것은 신기하게도 할머니께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 몇 년 전과 꼭 맞는 즈음이었다. 내 딴에는 낡은 재봉틀을 새 단장한다며 물감으로 칠까지 해 가면서 썼던 것이기도 하고, 뭔지 모를 아쉬움에 선뜻 버릴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역시 어머니는 방에 자리만 차지하니 버리라고 하시며 내 행동을 못마땅해 하셨다. 쓰지 않을 때 재봉틀이 접힌 모습은 훌륭한 탁자 모양이다. 결국 나는 재봉틀을 버리지 않고, 그 위에 테이블보를 덮고 거울을 올려놓아 화장대로 사용했다. 이제 새로운 역할로 바뀐 재봉틀은 나름대로 제 구실을 잘 해내고 있다.


요새 부쩍 정신을 잘 놓으시는 할머니 때문일까, 테이블보에 가려진 재봉틀 모습이 자꾸만 새롭게 그려진다. 착착착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것이며, 할머니와 함께 재봉틀을 배우던 기억들이 보이는 것이다.

며칠 전 할머니께서는 당신 손수건에 싸두신 돈을 이불 밑에서 꺼내시며, ‘내가 언제 또 너한테 돈을 주겠니.’ 하시며 극구 안 받겠다는 내 손에 쥐어 주셨다. 당신 건강하실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노상 무언가를 손자들에게 주고 싶어하시는 할머니.

할머니 몸 속에서 사랑을 만들어 내는 마음의 재봉틀은 아직도 쉼 없이 돌고 또 도는 중인 것만 같았다. 오늘도 재봉틀 앞에 서서 하루를 준비하는 나는 얼굴을 다듬고 옷매무새를 살피며 할머니의 사랑을 배워가고 있다. 

  

유선영/ 경기 남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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