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부터 고기 안 먹을 거야!” 당신의 자녀가 이렇게 선언한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평소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는 부모라도, 채식주의자에 대한 편견 같은 건 없다고 되뇌던 이들이라도, 자녀의 채식 선언이 예상치 못한 고민을 안겨줄 수 있다.
삼겹살이나 불고기 같은 고기 메뉴는 제외한다고 해도 우리가 흔히 먹는 김치찌개, 비빔밥, 심지어 뭇국도 채식주의 식단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채식주의 생활이 녹록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자녀가 비건을 선택한 거라면 계란을 넣은 토스트를 비롯해 모든 제과 제빵류 일체가 ‘간단한 아침 메뉴’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에 당혹감은 커진다.
말 그대로 ‘함께 밥 먹는’ 식구(食口)의 한 구성원이, 지금껏 공유해온 반상(飯床)의 독트린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노선을 선언하게 되면, 식단 준비에 대한 번거로움에서 시작해 ‘웬만하면 그냥 먹지’라는 불평 내지 압박을 거쳐 ‘왜 내 소신을 무시해?’라는 갈등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이 현실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묘사된 갈등은 그저 문학적 상징과 수사라고 생각했었다.
국내에서도 채식주의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청소년 중에서도 어느 날 육식을 그만두겠다고 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학대에 가까운 가축 사육과 충격적 도살의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한 동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결심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린 부모는 성장기 자녀의 건강 유지와, 채식주의자로 살기 위한 사회적 교육적 고려를 둘 다 해야 한다.
우선 자녀 건강 측면에서, 아동 청소년의 채식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에 단백질 섭취가 부족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채식을 하더라도 단백질 섭취에 큰 문제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오히려 현대의 많은 아이들이 필요량보다 훨씬 많은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비만과 과체중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채식주의 청소년들은 오히려 비만과 제2 당뇨병 발병 위험이 낮다.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단백질은 두부, 콩, 두유, 씨앗류, 견과류 등을 통해 섭취할 수 있다. 한국영양학회의 한국인 영양섭취기준에 따르면 12~18세 청소년은 하루 45~55g, 9~11세 아동은 하루 35g, 6~8세는 하루 25g의 단백질을 섭취하도록 권장한다. 두부 한 모가25~30g의 단백질을 함유(두부 100g 당 단백질 8g 정도)하고 있으며, 두유나 익힌 콩은 한 컵에 15g의 단백질이 들어있다.
특히 병아리콩은 강낭콩이나 완두콩보다 2배 이상의 많은 단백질(100g 당 약 20g)을 함유하고 있다. 건강한 다이어트식으로 각광받는 중동 음식 ‘후무스’가 바로 병아리콩을 주재료로 만든 것이다.
피넛버터의 단백질 함량은 한 큰술에 4g 정도다. 달걀을 먹는다면 한 개에 단백질 6g 정도를 섭취할 수 있다. 이밖에 호박씨 등 씨앗류, 아몬드 등 견과류 등을 통해 단백질 섭취가 가능하다.
채식주의 자녀를 둔 부모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단백질보다는 ‘철분 부족’이다. 철분은 육류에서 섭취하는 것이 흡수가 잘 되기 때문이다. 채소에서는 시금치와 통곡류에서 철분을 섭취할 수 있는데, 라임 레몬 오렌지 등 비타민 C와 함께 먹으면 흡수가 잘 되므로 샐러드로 함께 먹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달걀 치즈 요거트 등 유제품까지 먹지 않는 비건이라면 ‘비타민 B12 부족’이 문제가 된다. 비타민 B12는 식물성 식품으로는 섭취할 수 없는 성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건에게는 영양제를 통해 비타민 B12를 보충하거나, 비타민 B12가 강화된 시리얼이나 두유 등을 섭취하도록 권장되고 있다.
영양섭취에 대한 해결은 어떻게 보면 오히려 쉬운 문제다. 집에서, 학교에서, 또 식당에서 채식주의자는 유난 떠는 사람, 주변사람을 번거롭게 만드는 원흉이라는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반대로 가축 사육과 도살에 충격을 받고 채식을 선언한 자녀 입장에서는 여전히 육식을 하는 다른 가족을 용납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부모는 채식을 선언한 자녀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육식과 채식을 하는 각자의 입장을 서로 이해하도록 교육해야 한다. “유난 떨지 말고 그냥 먹어라”는 식의 압박은 금물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는 조언이 필요하다.
단 부모는 자녀가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간혹 날씬해지겠다는 생각에서 채식을 선택하는 청소년들이 없지 않은데, 과체중이 아닌데도 다이어트에 집착하거나 음식을 거부하는 행동 등은 심각한 질환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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