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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유괴? 뭔 소리야, 우리 애 집에 멀쩡히 잘 있는데!"


 

  얼마 전 마침 개교기념일이어서 집에 있었다. 운동하고 샤워 후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웬 전화인가 의아해하며 수화기를 드니 '그놈 목소리'가 들렸다. 딸 이름(고1 년생)을 대며 내가 데리고
  있으니 많이도 필요 없고 일천만 원만 보내라는 것이었다.

 

  “유괴라니, 당신 애들 유괴범은 100% 잡힌다는 것 몰라서 하는 짓이야, 시방?”


나는 기세 좋게 오히려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낀 것은 딸아이인 듯한 “아빠, 살려주세요”라는 우는 음성이 수화기를 통해 들리면서부터였다.

 


나는 ‘그놈’이 하라는 대로 휴대폰으로도 전화를 받는 한편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을 초등학교 학생처럼 불러주었다. 어제까지 조회했던 예금 비밀번호는 웬일인지 자꾸 틀렸다. ‘ 그놈’이버럭짜증을냈다. 잔액이 40만 원도 안 된다고 하니 ‘그놈’은 10분 줄테니 돈을 입금시키라며 인심 쓰듯 말했다.


다시 내가 이백만 원은 30분 사이에 해볼 수 있을 거 같다고 하자 ‘그놈’은 “아이 살리려거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하며 전화를 끊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양말을 신는데 여의치 않았다. 외출복으로 갈아 입고 문을 열려는 순간 신고가 떠올랐다.‘ 딸을 무사하게 하려면 경찰에 신고해선 안 되는데….’ 고민이 계속되었다.


그때 잘 아는 아무개 경찰서장이 떠올랐다.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같은데 우선 딸에게 전화부터 해보세요. 그리고 다시 전화주세요.” 아무개 서장이 내 전화를 받고 말했다. 그제야 왜 딸아이한테 전화해볼 생각을 못했는지, 아차 싶었다. 벨이 여러 번 울렸는데도 딸아인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영락없이 잘못 되었구나’, 깊은 체념의 늪에 빠져드는 순간 딸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예, 아빠 저 검진 끝내고 시내 나와 친구들하고 밥 먹고 있어요!”


딸아인 생글거리는 평소의 전화음성대로 말하고 있었다. 아무개 경찰서장의 말처럼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에 걸려든 것이었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을 통해 그런 범죄를 알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내가 겪으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없었다.


아무개 경찰서장에게 즉시 전화를 했음은 물론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괘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휴대전화에 찍힌 ‘그놈’의 번호를 눌러댔다. 분명 발신음으로 찍힌 번호인데, 없는 번호라는 멘트가 흘러 나왔다. 또 걸어오겠지 생각하며 은행에 지급중지 요청의 전화를 한 후에도 '그놈 목소리'는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답답하고 한심스러워 견딜 길이 없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보이스피싱은 버젓이 자행되고 있을 것이란 점이다. 특히 자녀납치를 운운하는 사기건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범죄란 점이 문제다.

이스피싱 범죄가 얼마나 자심한지 “수업 중이나 시험보는 시간 휴대폰 켜야 하나 꺼야 하나” 하는 제목의 신문기사가 있을 정도이니 할 말을 잃는다.

 

그런데도 일부 학교들은 등교 시 휴대폰소지 자체를 금지하고 있으니, 그 강심장이 놀라울 따름이다. 보이스피싱을 직접 겪은 내가 한 가지 터득한 지혜가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녀유괴 운운하며 돈부터 보내라는 전화는 십중팔구 보이스피싱이다. 진짜 유괴의 경우 그렇듯 조급하게 돈부터 요구하지 않으니까. 그에 맞춰 이렇게 대처해보면 어떨까.


“뭔 소리야, 우리 애 지금 집에 멀쩡히 잘 있는데!”

 

장세진/ 전주시 덕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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