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높은 곳에 올라가면 두려움을 느끼고, 좁은 공간에 있으면 답답함을 느끼며, 낯선 사람을 만날 때는 어색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높은 장소에 올라가거나 사방이 막힌 좁은 공간에 있는 것이 단순한 두려움을 넘어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일들이다. 이를 공포증(phobia)이라고 한다.
공포증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국제질병기준(ICD)의 불안장애 중 하나로,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 물건 등에 대해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이를 회피하는 장애를 말한다. 공포증 환자들은 자신이 공포를 느끼는 대상에 대해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로 인해 직업 활동이나 사회적 관계,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 불안장애의 일종인 공포증의 다양한 종류와 그 특징에 대해 알아보자.
안전한 높이에서도 두려움 느끼는 ‘고소공포증’
사람은 누구나 높은 장소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자이로드롭처럼 아파트 25층 높이에서 시속 94km의 속도로 3초 만에 지상으로 낙하하는 놀이기구를 타거나, 200m 남짓한 높은 곳에서 줄만 매단 채 아래로 뛰어내리는 번지점프를 하면 자기 보호 본능에 따라 공포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의학적으로 진단하는 고소공포증은 단순히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다.
고소공포증 환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높이에서도 마치 번지점프대에 올라선 것처럼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인다.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건물의 고층에 있다는 것 자체로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바깥 풍경이 보이는 유리벽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이성적으로는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위층으로 올라가는 순간부터 엄청난 공포를 경험한다.
증상이 더 심해지면 계단이나 의자처럼 자신의 키보다 훨씬 낮은 곳도 무서워서 오르지 못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상상만 해도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고소공포증은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장소에 대해 심각한 수준의 공포를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혼잡한 공간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광장공포증’
광장공포증(agoraphobia)은 광장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agora’와 공포증을 뜻하는 ‘phobia’의 합성어다. 명칭만 보면 광장처럼 넓은 장소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증상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광장공포증은 즉시 벗어나기 어렵거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 또는 장소에 있을 때 극도의 공포를 경험하는 증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마트나 영화관처럼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어 재빨리 그 장소를 벗어나기 어렵거나, 지하철이나 버스처럼 도중에 내릴 수 없는 대중교통은 광장공포증 환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장소다.
광장공포증 환자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회피하려고 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통제 불가능한 장소를 가야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누군가와 동행하려고 한다. 즉각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혼자 있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공포가 극에 달하면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등 고통스러운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특정 장소에서 발작을 경험하면 그 이후로 해당 장소에 가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증상이 심해지면 아예 집밖을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된다.
닫힌 공간에서 두려움이 극대화되는 ‘폐소공포증’
폐소공포증(claustrophobia)은 좁은 곳이나 밀폐된 곳을 뜻하는 라틴어 ‘claustrum’과 공포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phobos’의 합성어다.
단어 뜻대로 사방이 막혀 있는 비좁고 폐쇄된 장소에 있을 때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좁은 장소에 있게 되면 답답함을 느끼는 정도지만, 폐소공포증 환자들은 식은땀을 흘리고 호흡 곤란이 오며 심한 경우에는 비명을 지르며 그 공간을 탈출하기 위해 시도하거나 급기야 기절하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폐소공포증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간은 엘리베이터나 비행기, 터널처럼 닫혀 있는 공간이다. 비행기가 추락할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다는 생각만으로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다. 지하 주차장이나 심지어는 차 안에서도 공포감을 느낀다.
자신의 불안감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좁은 공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가빠지고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처럼 좁은 공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경우에 폐소공포증으로 분류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공포인 ‘사회공포증’
낯선 사람을 만나면 말을 더듬거나 얼굴에 홍조를 띨 때가 있다. 성격적으로 수줍음이 많거나 새로운 만남이 어색할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새로운 만남에 적응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공포증 환자들은 다르다. 사람들을 만날 생각만 해도 두렵고,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는 상황에 대해 지나친 불안을 느끼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가슴 두근거림이나 두통, 복통 등의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대화를 나눌 때는 머릿속이 정지되는 느낌이 들며 자신도 모르게 횡설수설하게 되고, 급기야는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이처럼 사회공포증(social phobia)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불안장애를 의미한다.
사회공포증은 상황과 증상에 따라 다양한 병명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대인공포증(anthrophobia),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이나 연주를 할 때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발표공포증(seminarophobia)과 무대공포증(stage fright), 개방된 공간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식사공포증(sitophobia), 사람들과 마주하면 얼굴이 붉어지는 적면공포증(erythrophobia) 등이 있다.
사회공포증 환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극도로 낮은 자존감은 사람을 대하는 사회적 상황 자체를 공포로 여기게 하고, 결국에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해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태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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