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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항상 사랑으로 날 지켜 봐 오신 아버지, 아버지!

  친정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두 분 금슬이 워낙 좋으셨던 까닭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마자 동네 어르신들은 아버지 걱정부터 했습니다.

 

 

아버지는 연세도 많으신 데다 평생토록 혼자서 밥한 끼 차려 드신 적이 없는 분이라 앞으로 어떻게 사실지가 첫 번째 걱정이었고, 어머님을 못 잊으셔서 혹 ‘나쁜 선택’을 하시지 않을까하는 점이 두 번째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함께 살자는 오빠의 제안을 거절하고 고향집에서 혼자 지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은 역시 합리적인 판단을 하며 현실에 적응하는 능력을 지녔더군요. 걱정과 달리 아버지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직접 계란 후라이도 하고, 밥도 지어 드시며 어머니 없는 슬픔을 잘 이겨냈고 지금은 고향 파주에서 소일 삼아 텃밭을 일구며 여생을 보내고 계십니다.

 

마을의 아주머니들이 가끔씩 담가 드리는 김치며 이런저런 반찬도 항상 부족함이 없다고 하셔서 마음도 안심이 됩니다. 며칠 전에는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아이들 손을 잡고 친정 나들이에 올랐습니다. 얼마나 사는 게 바빴으면 나들이란 말이 나올까요?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마침 장에 나갔다 돌아오신 아버지는 염색약을 제게 내밀며 겸연 쩍게 웃으십니다.

 

“이거… 너그 엄마가 옛날부텀… 센 머리가 싫다구 해서…”

 

아! 그랬습니다. 엄마는 아버지 머리가 하얗게 세는 게 싫다며 머릿결이 희끗해지기 무섭게 염색을 종용하곤 하셨죠. 반백의 할아버지가 돼가던 아버지는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면 젊은 남자가 돼서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검은 머리를 멋지게 쓸어 올리면서 말이에요.


“니가 수고 좀 해줘야 쓰것다.”

 

반백의 머리에 무심해 하면서도 생전의 어머니가 싫어했다는 이유만으로 염색약을 사 들고 오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다 문득 먼저 가신 어머니가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남편이 이토록 잊지 못해 하는데 그렇게 빨리 떠날 이유는 무언지….

 

저는 아버지의 머릿결 한 올 한 올을 빗어 내리며 염색약을 발라 드렸습니다. 그런데 맵지도 않은 염색약 앞에서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흐르는 눈물을 감추느라 혼이 났습니다.


“아버지, 까만 머리가 잘 어울리시네요. 다음에도 해드릴 테니 머리 하얗게 되면 전화 하세요” 라며 애써 웃는데도 눈물과 콧물이 걷잡을 수 없어 밖으로 뛰어나가며 ‘팽’소리가 나도록 코를 풀어야 했습니다.

 

“날씨 쌀쌀허다. 감기 조심해라이~”


아버지의 그 말씀에 눈물은 더 쏟아지는데 살며시 내 등을 토닥이는 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손이었습니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만 짓느라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그 손이 왜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질까요!

 

“넌 엄마한테 매 맞으면 여기서 혼자 울었었지…”

 

아! 아버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황미경/ 강원도 춘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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