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인 나는,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한복에 대해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한복은 명절 때나 제사를 지낼 때 입는 옷이라 생각했었고, 입어보지도 않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 는 옷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90년대 초, 동료들과 선배들의 부러움을 뒤로하고 나는 다니던 일본 회사에서 파리로 발령을 받았다. |
도꾜에서도 크고 작은 외국 일을 도맡아 하던 내게 주어진, 지겨웠던 도꾜의 사회를 탈출할 수 있는 더할 수 없는 기회였다. 당시 파리 컬렉션에 참여하고 있던 우리 회사의 국제 업무를 보던 내가 파리에 도착하던 시기에 한국인 디자이너 최초로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가 파리 컬렉션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이야 디올을 디자인하는 영국인 디자이너 '죤 갈리아노'라든가 루이 뷔통의 미국인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 로샤스를 디자인하는 벨기에 디자이너 '올리비에 테스켄스'같은 외국인 디자이너들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는 파리지만, 당시만해도 외국 디자이너들에게 상당히 배타적이었던 파리 컬렉션이었기에 파리 컬렉션이 민속 의상 경연 대회도 아닌데 뭔가 착오가 있겠거니 생각했다.
더욱이 당시의 패션계는 '린다'라든가 '신디 크래포드'와 같은 글래머러스한 슈퍼모델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로맨티즘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로 정확하게 10년이 지난 뒤, 나는 당시의 내가 얼마나 무지했으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간과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었는지를 통감해야 했다.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것처럼 10년 동안 이영희는 파리의 패션계에 한국의 패션을 알리는데 정말 기적 같은 일들을 이루어냈다. 물론 한국 디자이너로서가 아닌, 디자이너 이영희로서 말이다. 이영희의 성공은 그녀가 서양 옷이 아닌 한복을 먼저 공부한 디자이너였기 때문이다.
입체 재단에 바탕을 둔 서양의 옷에 반해 모든 것이 선과 평면 디자인으로 제작되는 한복의 실루엣은 처음부터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제까지 일본 디자이너들의 전용물로만 알려졌던 이런 평면 패턴과 아예 옷을 만드는 기초부터 다른 이영희의, 한복에서 출발한 실루엣과 색감은 점차 입소문이 나며 동양의 이국적인 선과 음양의 철학에 바탕을 둔 옷으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한국제품이라면 싸구려 섬유제품 밖에 기억하지 못하던 패션 피플들에게 이영희의 독특한 동양적 세계가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가 흰 면을 가지고 우리의 고유한 색이라며 쪽빛 염료를 들이는 장면이 프랑스의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것을 보며 나는 억척스런 우리의 어머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프랑스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나 기자들 앞에서 거침이 없었고 솔직했다. 만약 그녀가 가식적인 교양과 세련됨을 가장한 지식인 흉내를 냈더라면 이 방면에 이미 이골이 나 있는 파리의 패션계에서 그토록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서구적인 가식과 교양을 무시할 수 있는 한국 어머니의 당당함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패션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바로 우리의 5,000년 역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무식함 때문이라는 자신감과 오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이런 자신감은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르몽드』지의 로랑스 베나임(LAURENCE BENAIM) 기자는 그녀의 패션과 한복, 한국의 문화에 관해 무려 두 페이지에 걸친 특집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한국 이야기가 이 신문에 이렇게 대대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광주항쟁 이후 처음이었다).
그녀가 디자이너로서 파리에 집착하게 된 것은 '마티스'의 유럽 상륙에 맞추어 대우 자동차와 조인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 패션 디자이너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어요. 바로 패션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의 상품은 그 고부가가치도 자연히 함께 올라가 품질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죠. "
현지에서 쇼를 한 후 이탈리아와 폴란드의 매스컴은 이영희와 대우 자동차의 이색적인 만남을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자동차라는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조선 시대의 궁중 의상에서 이영희의 파리 컬렉션 의상까지를 망라한 기획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일 뿐만이 아니라 유구한 전통과 문화, 파리에서도 인정받는 패션을 가진 나라라는 것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다림질 소리가 지겨웠다는 이영희, 하지만 이미 자신의 손녀에게 한복 짓는 법을 전수하는 할머니가 되었다며 미소하는 이 대가의 당당함앞에 나는 바로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야야 했다. 항상 서구적인 사고 방식으로 의복을 이야기하고 판단하던 나늘 돌아다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심우찬/ 패션칼럼리스트
사진협찬 이영희한국의상·질경이 우리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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