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에서 책 서너 권을 품에 안은 꼬마 숙녀와 마주쳤다. 똘망똘망하고 깜찍하고 사랑스러웠다.

  병실로 들어서는데, 꼬마 숙녀가 뒤따라 들어왔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해맑게 웃는 꼬마 숙녀가 바로 가영이였다.

  여덟 살배기 가영이는 또래보다 한참 작았다. 
 장운동이 매우 느리고 정체돼 음식물이 차곡차곡 쌓이기만 할 뿐 영양 섭취

  가 
전혀 되지 않은 탓이다.   가영이는 생후 15개월 때부터 6년 동안 줄곧 병원 생활을 해왔다.

  옷을 들어 올려 배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덩치 큰 링거 거치대를 제 몸인 양 밀고 다니지 않았다면
가영이는 그저 새침하고 

  사랑스러운 꼬마 숙녀로만 보였을 것이다.

 

 

 

[부제 :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 앓고 있는 가영(8세)이 이야기]

 

  생후 15개월, 터질 듯한 배를 안고 병원을 찾다 


지난 2006년 4월,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가영이를 데리고 엄마 김배정 씨(39세)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았다.

 

2주일이 지난후, 의사는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이라는 너무도 생소한 병명을 얘기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어처구니없는 증상들에 배정 씨는 그저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봤다.


“모유를 먹을 때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어요.

 돌이 지나고 이유식과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배가늘부풀어 있고 대변 누기를 힘들어하더라고요.

 

 소아과며 한의원이며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그저 변비라고만 했어요.

 밤늦게 혹은 새벽녘에 너무 아파해 응급실에 가도 관장을 하고 변비약을 처방받는 게 고작이었어요.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이라는 병이 있는 줄도 몰랐고 가영이가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갓난쟁이가, 터질 듯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를 움켜쥐고 울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엄마.

 

서울의 병원을 찾던 그날 새벽에도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며 아파하는 가영이를 위해 배정 씨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집 근처 병원에서 같은 증상이 반복되니까 어딘가 막힌것같다고 수술을 해보자 하더라고요.

그런데 겨우 15개월밖에안 된 가영이를 수술대 위에 눕힐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밀 검사를 하고 정확한 병명을 찾아보자 싶어 서울로 올라왔죠.

잠깐이면 될 줄 알았는데….”


배정 씨는 의사 진단을 받고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3개월 동안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에, 3개월 후면 좋아지겠거니 내심 기대도 했다.

그 3개월이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이제 6년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어느 누구도 그 끝을 얘기해 주지 못하고 있다.

 

 

  하루 밥 세 숟가락 양이 전부, 영양분은 혈관으로


가영이가 앓고 있는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은 선천적인 장운동장애로 위장에서부터 음식물이 차곡차곡 쌓이기만 할 뿐 소화는 물
론 영양 섭취도 전혀 되지 않는 병이다.

 

않아 정기적으로 관장을 해줘야 한다.

쌓인 음식물은 부패해 배는 늘 가스로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있고, 정상적인 배변이 되지

 

심장 가까이에 있는 혈관에 동전만 한 크기의 케모포트(중심정맥관)를 삽입해 영양분을 섭취 하는 탓에 링거 거치대를 제 몸 인양끼고 산다. 

 

더욱이 배에 찬 가스를 빼내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가영이는 코에 튜브까지 달고 살았다.
 

“코에 튜브를 달고 있을 때에 가영이는 무척 까칠하고 예민했어요.  

제 딴에는 창피했나 봐요.  

짜증이 잦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싫어할 정도였어요.

수술을 받고 튜브를 뺀 지금은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지고 훨씬 의젓해졌어요.”
 

현재 가영이가 하루에 먹는 음식량은 밥숟가락으로 세 숟가락 정도에 우유 150㎖가 전부.

그나마도 배정 씨가 어르고 달래야 겨우 먹는 시늉이라도 한다고. 

어릴 때부터 음식을 멀리 하다 보니 음식을 거부하는 것 같아 배정 씨는 내내 안타깝기만 하다.

 

가영이는 고향인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병원에서 기저귀를 떼고 뛰는 것을 익히고 말을 배우면서 여덟 살배기 꼬마 숙녀로 자랐다. 기운이 없어 늘 앉아서 책을 읽거나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6년 병원 생활에 9차례 수술을 견뎌내다


지난 6년 동안 가영이는 오로지 ‘성장’ 을 위해 아홉 차례나 수술대에 오르며 모진 병원생활을 견뎌냈다.

고농도영양제를 혈관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케모포트 삽입 수술을 받았고, 이 부분이 감염되면서 수차례 가슴을 여닫아야했다.

 

그리고 지난 4월, 가영이는 음식물이 쌓이면서 늘어난 위장의 반을 잘라내고 배 옆쪽으로 인공 장로(臟路)를 내는 수술을 견뎌냈다.

 

수술에서 회복까지 꼬박 두 달이 걸렸는데, 얼마 후 복압 때문에 내장들이 장로로 쏟아져 나오는 통에 또 한 차례 응급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홉 번째 수술이었다.

 

배정 씨는 갓난쟁이 가영이가 그 혹독한 시련들을 참고 견디며 이만큼 예쁘게 자라준 것이 그저 고맙고 기특하다. 더욱이 지금은 검사도 혼자 받으러 다니고 자기 몸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의젓해졌다. 

 

그럼에도 배정 씨는 가영이가 자라는 것을 마냥 기뻐 할 수 만도 없다고 말한다.

 

“ 지금까지는 자기의 몸에 대해 담담하게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좀 더 크고 생각이 많아지면 다른 아이와 비교하게 될까 봐 겁이 나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나만 이런 혹독한 짐을 지고 살아야하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집에 가기를, 학교 다니기를 바라는 꼬마


가영이 걱정하기도 바쁜 배정 씨의 또 다른 고민거리는 바로 하루가 다르게 부는 병원비다.

대부분을 병원에서 지내면서 영양제를 달고 살아야하는데,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은 희귀난치성 질환 코드에 포함되지 않아 산정특례를 받을 수 없다.

 

더욱이 지난해 11월, 가영이가 만 6세를 넘으면서 병원비 부담이 더 늘었다. 그나마 가영이가 맞는 영양제 TPN이 보험 적용이 되는 것이라 다행이었다.
 

“그동안 병원 후원회나 여러 단체가 도움을 많이 줬어요. 힘들 때마다 지칠 때마다 그분들 의사랑과 따뜻한 마음들이 큰 힘이 됐어요. 고맙고 또 고맙죠. 가영이가 이만큼 자란 것도 어찌 보면 그분들 덕분이에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난해 초부터 보름이나 길게는 한 달 남짓 집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됐다.

가영이에게는 즐거운 변화였고 배정 씨에게는 새로운 희망이었다.
 

“집에 가는 게 좋아요. 집에 가면 텔레비전도 많이 보고 오빠랑 놀 수 있어서 무척 좋아요.”

 

엄마 배정 씨는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어도 오빠 재영이를 누구보다도 잘 따르는 가영이나, 동생을 무척 아끼는 오빠 재영이가고맙고 대견하다.

 

“아마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부모들이 같은 마음일 거예요.

 완치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고 더디더라도 조금씩 나아지기만을 바라죠.

 우선은 조금 더 건강해져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입학을 한 해 미뤄 뒀는데, 2년 후에는 갈 수 있었으면 해요. 

 교실에 한두 시간 앉아  있다가 오더라도 학교에 가서 친구들도 사귀고….”

 

 배정 씨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런데, 걱정하는 배정 씨와는 달리, 가영이의 꿈은 이미 저 멀리로 내달리고 있었다.

 

“내 꿈은 치과의사가 되는 거예요.

 예전에 아빠가 소아과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했는데, 나는 치과의사가 되고 싶어요.  오빠랑 같이 치과의사가 되어서 오빠는 위층에서, 나는 아래층에서 치료하면 좋겠어요. 오빠가 상한 이를 뽑으면 나는 치료를 할 거예요.

그런데요, 사실은 이를 뽑는 게 조금 무서워요.”

 

멋쩍은 듯이 웃었지만, 꿈을 얘기하는 가영이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만성가성장폐쇄증후군이란?

  장운동 장애로 해부학적 폐쇄 부위 없이 반복되는 장폐쇄 증상과 징후를 나타내는 드문 질환이다.

  이 질환의 반 이상이 출생 후 수개월 내에 증상을 보인다. 음식물이 위장에서 부터 소화도 되지 않고 쌓여 내려가지 않아

  배는  가스로 늘 불룩해 있고, 영양 섭취도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드문 질환이라 아직 환우회도 조직돼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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