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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TV&영화 속 건강

'스트레스'와 '화(火)'를 내려놓는 ‘위대한 침묵’


 

 세상과 단절한 채 수행하는 수도자들에게 늘 고개를 숙여왔다. 영성과 구도를 향한 고행에 경외를 느끼는 까닭이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의문을 품어왔다.

 정신과 육체를 극도로 옥죄는 고행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흔히 마음의 평화가 그 비결이라고 하는데, 속세를 떠난다고 해서 인간에게 번민이 사라질까.

 

 

 

 

 

  알프스 산속 고독한 기도원과 영화'위대한 침묵'

 

  최근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상트피에르 샤르트뢰즈에 자리하고 있는 그랑드 샤르트뢰즈(Grande Chartreuse) 수도원을 다녀온 것은 그런 개인적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유럽 수도원을 직접 찾아 영성의 뿌리를 만나고자 한 순례단에 참여한 덕분이었다.

 

 종교인과 언론인으로 구성된 순례단은 열흘 간 독일,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수도원들을 돌아봤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이 해발 1300미터의 알프스 산 속에 있는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이었다.  

 

 이 수도원은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본원이다.

11세기에 브루노 성인(St.Bruno)이 창립한 이후로 외부인과의 접촉을 철저히 금한 채 수도자들의 고독한 기도처로만 존재했다. 

 의학도 출신의 독일 영화인 필립 그로닝이 1980년대 중반에 수사(修士)들의 수행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고 요청했을 때 수도원 측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99년에야 그로닝은 수도원으로부터 기적 같은 연락을 받는다.  촬영을 하라는 것이었다.  

 대신에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붙었다.  

 스태프 없이 감독 혼자서 수도원에 들어와 생활하며 촬영을 할 것, 음악이나 조명 같은 효과를 일절 쓰지 말 것, 촬영한 필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 것 등. 그로닝은 수도원이 제시한 조건에 맞춰 직접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2년에 걸쳐 촬영을 했다. 

 


 지난 2009년 ‘위대한 침묵’이 국내에서 상영됐을 때 예상 밖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3시간여 동안 대화가 거의 나오지 않고 음악도 없이 수도자들의 조용한 수행 모습을 담은, 일견 지루한 영화다.

 요란한 상업영화에 익숙한 한국 관객들이 이 침묵의 작품에 관심을 기울인 까닭은 무엇일까.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에서 우연히 만난 老(노) 수사의 웃음에서 그 까닭을 헤아릴 수 있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 수도원은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봉쇄 수도원이다.

 영화 ‘위대한 침묵’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후에도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금한 채 수사들이 격절의 수도에 몰두하고 있다.

 수도원 측은 수도원 내부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순례객들을 위해  본원 아래쪽에 수사들의 일상을 재현한 박물관을 마련해놨다. 

 

 이번 한국 순례단도 박물관에서 관계자들의 안내로 수사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박물관 위쪽의 본원으로 올라가니 입구에 영어로 ‘Silence’(침묵)라고 쓰여 있었다.

 순례객들이 떠들어서 수사들의 기도에 방해를 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것인 듯했다. 

 본원의 적막을 감싸고 있는 담의 끝까지 걸은 후 다시 내려올 때 종소리가 은은히 울렸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때 수도원의 한 곳이 열려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주차장 입구였다.  그곳에서 흰색 수도복을 입고 있는 노 수사를 발견했다. 
 “한국의 저널리스트인데,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고 말을 걸자, 뜻밖에도 노수사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노 수사는 이름이 베노아라고 했다.

 올해 70세인 그는 1964년 수도원에 들어왔다고 했다. 본원의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인과 접촉이 가능한 신부 수사였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안 쪽으로 들어가면서 손을 들어서 “바이, 바이”라고 인사를 했다. 

 

 헤어진 후에도 노수사의 따스한 미소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너무도 맑고 평화로운 웃음이었다.

 낯선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담연(淡然)할 수 있다니…. 

 

 영화 ‘위대한 침묵’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침묵의 수도를 하며 살아가는 수사들의 담연한 모습이 답답하기보다 아름답게 비쳐서일 것이다. 그것이 제 몫을 주장하며 요란하게 악다구니를 쓰는 현대인의 삶을 되돌아보게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소식(小食), 규칙적인 움직임 그리고 세상의 번민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수도원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며, 수사들의 일상은 말 그대로 고행(苦行)이다.  

 

 신부 수사의 경우, 밤 11시 30분부터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그 때 아침 기도를 시작해서 밤 12시 15분에 수사들의 공동 미사에서 또 기도를 한다. 2시 30분에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다시 기도를 한 후에 잠자리에 든다.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다시 기도와 노동(수사들은 수도원의 자급자족을 위해 다양한 일을 한다.)을 한다. 

 

 수사들은 수도원의 제 1규칙인 침묵을 지켜야 한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발걸음, 문소리 등 일체의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동료 수사들에게 전할 말이 있을 때에도 쪽지를 써서 당사자의 개인 사물함에 조용히 넣어둔다고 한다. 매주 월요일 오후 산악 행군을 하는 데 이때 유일하게 동료들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철저히 통제된 삶을 살면서 수사들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까.

 순례단에 동참한 종교인들과 함께 그 비결을 헤아려봤다.

 

 첫 번째로는 소식(小食)을 들 수 있다.

 수사들은 자기 방의 음식 투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소량의 음식만 먹기 때문에 과식을 할 수가 없다. 육식을 피하고, 매주 금요일에는 오직 빵과 물만 먹는다. 

 

 두 번째는 규칙적인 몸 움직임이다.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게 수도원 생활이다. 매주 월요일 반드시 산악행군을 하는 것도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할 나위도 없겠다.  

 

 현재 100세의 나이에도 의료 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인 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는 최근 한국에도 소개된 책 ‘스트레스 놓기 연습’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건강과 장수를 위해서는 덜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삶의 비결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부터라도 조금 가볍게 먹고, 몸은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보세요.”  

 

 무엇보다 수사들의 으뜸 건강 비결은 세상의 번민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데 있다.

 그것을 피하지 않고 직접 상대해서 이겨내는 훈련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

 이번에 수도원 순례를 하면서 그것을 알 수가 있었다. 

 

시게아키 의사는 “어떤 인간에게도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없는 상태를 염원하기 보다는 그것을 이겨내고 놓아버리는 훈련을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영성을 논외로 하고 건강 차원에서만 본다면, 수사들은 그 훈련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셈이다.

 베노아 노 수사의 맑은 미소가 어디서 나왔겠는가. 속세의 욕심과 스트레스를 내려놓은 덕분에 얻은 웃음일 것이다. 
 

 

 

  배우 김정태와 '화'를 다스리는 방법

 

 유럽 수도원 순례 중에 베노아 수사의 미소가 떠오를 때마다 엉뚱하게 배우 김정태의 절

이야기가 함께 생각났다.

 

 중견 배우인 김정태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로 악역으로 활약해왔다.

“영화 속 악한 인물과 똑같을 것 같다” 는 등의 평을 들어온 그는 최근에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뜻밖에 익살스런 재담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천연덕스럽게 악역을 연기하는 것 못지않게 유머러스한 모습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던 그가 어느 토크쇼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여관방에서 숙박비도 못내 남이 남긴 밥을 먹던 시절을 이야기하면서였다. 그 시절에 그는 간경화를 앓았다고 했다. 

 

 "어느 날 배에 복수가 차기 시작해 어머니와 한의원에 갔는데 한의사가 여기 있으면 당신 죽으니까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어요."

 

 그러나 그는 당시 영화 '똥개'와 '해바라기'를 찍고 있어서 배역을 놓칠까봐 영화 제작진에게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김정태는 "그 당시에 어머니와 여동생은 내가 죽을까봐 곡을 했다"고 말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때 어머니가 그에게 하루 세 번씩 절을 할 것을 권했다. 

 자신을 목숨보다 아끼는 어머니 소원을 들어드린다는 생각으로 절을 하기 시작한 그는 놀라운 치유의 기적을 경험한다. 

 식욕이 돌아오면서 복수가 빠진 것이다.

 

 그는 절을 하면서 사업 실패로 가족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털어낼 수 있었다고 했다.

 미움과 함께 뱃속에 차 있던 병이 함께 사라진 것이다.  

 틱낫한 스님이 이야기하는, '화(火, anger)를 다스리는 방법’을 체험으로 터득한 셈이다.

 

 건강을 되찾은 이야기를 하면서 비로소 김정태는 환하게 웃었다.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 난다는 말이 있지만, 그까짓 털 좀 나면 어떤가. 김정태의 웃음은 일상에서 고행을 겪은 후에 귀하게 얻은 성화(聖花)가 아닐까.

 

 

장재선 / 문화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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