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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살아가는 이야기

10년 전 구두, 풋풋했던 20대의 추억

 

 10년 전 구두를 꺼냈다. 

 한기를 내뿜는 바람이 무서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중무장을 해야 하는 12월 어느 날이었다.

 

 뾰족한 구두코에 리본 장식이 달린 빨간색 정장 구두였다.

 

 큼지막한 리본이 살짝 ‘클래식’(영화 ‘클래식’에서 여주인공은 촌스럽다는 말 대신 ‘클래식’하다고 표현했다. ^^)했지만 이 겨울에는 어쩐지 복고스타일로 치장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

 그때 나는 온통 붉은색 에너지로만 세상을 살았던 20대의 끝자락이 못내 아쉬워서 빨갛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소 잘 신지도 않은 구두를 덥석 사고 말았다.

 

 그러나 새 구두 때문에 발뒤꿈치가 벌겋게 까지고 물집이 잡혀 연신 밴드를 붙여대기 바빴다.  발뒤꿈치가 까져서 깨금발로 절뚝거렸지만 그래도 딴엔 열심히 신고 다녔다.

 

 그러나 뒤꿈치의 시뻘건 아픔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덧댄 밴드를 교체해주는 것에 와락 싫증이 나자 이내 그 구두는 외면을 받고 말았다.  그렇게 빨간색 뾰족구두는 신발장 구석 한편에서 10년 동안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그 뾰족구두를 다시 신게 된 것은 갑작스러웠다.

 

 신발장을 정리하던 중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구두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굽도 새로 갈고 깨끗하게 닦아 광택이 더해지니 ‘클래식했던’ 구두가 제법 괜찮아 보였다.  버려지지 않은 것에 감사라도 하듯 그 뾰족구두는 반짝반짝 빨간 윤기를 더하고 있었다.

 자그마치 10년 동안의 강제적 칩거였으니 오죽했으랴.

 

 10년 후 다시 신게 된 그 뾰족구두는 여전히 발뒤꿈치의 아픔을 안겨준다.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양 뒤꿈치에 밴드를 붙인다. 순간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왜 나는 뾰족구두를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10년 만에 우연히 발견된 구두는 새 단장을 거치면 다시 그 사용가치를 회복할 수 있었다. 

 10년 전 그 구두를 신고 걸었던 출근길,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그저 어슴푸레할 뿐이다.

 이십 대의 치열한 감정만 떠오를 뿐 그 기억을 아무리 닦아보고 또 윤기를 더하려 해도 새롭게 단장이 되지 않는다.

 

 10년 전과 달리 이제 나는 구두를 신기 위해 다시 밴드를 찾지 않는다.

 

 10년의 세월을 지내오면서 연약했던 내 뒤꿈치가 어느덧 굳은살로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뾰족구두는 10년의 세월 속에 정지되어 있었지만, 나의 뒤꿈치는 그 시간만큼 강해졌다.

 삶은 그렇게 보내온 시간만큼 쌓이는 경험만큼 맨살의 멍에를 서서히 풀어주는 것 같다. 

 

 

 

 

글 / 김남희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 

일러스트 /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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