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10년이 넘었고, "두 아이의 엄마고, 관심 있는 것은 남편 월급이 올해는 얼마나 인상될까?"
"우리는 언제 돈 모아서 번듯한 내 집을 마련해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애는 반장을 언제 한번 시켜보나?"
이런저런 소소한 모든 것이 내 관심사이고 삶의 무게라고 생각했다.
내 삶과 남편과 아이들의 삶이 실타래처럼 엮여 있어 어느 것도 떼질 수 없고, 또한 온전한 나만의 삶의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이 말을 알기 전까지는.
‘버킷 리스트(bucketlist)’.
지난해 처음부터 결말까지 어느 한 편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본 드라마가 있었다.
김선아와 이동욱 주연의 ‘여인의 향기’. 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연재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데, 난 그때 그 말을 처음 들었다.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인 것 알았는데, ‘버킷~ 저게 뭐지?’ 싶었다.
그리고 그 드라마가 끝날 때쯤 나도 한번 ‘버킷 리스트’를 적어 보고 싶었는데, 글쎄, 그게 쉽지가 않았다.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기, 세계 일주하기, 로또복권에 당첨돼 보기.
내가 적어놓고도 참 실망스러운 것이, 이게 진정 버킷 리스트인가, 그리고 그때야 나는 정말 내가 아줌마라는 것을 절감했다.
가족과의 삶은 있지만 온전한 나 자신의 삶은 꿈꾸지 못하는, 꿈이 없는 사람.
어린 시절 나는 정말 꿈도 많고 욕심도 많았는데………. 달리기를 잘했던 나는 6학년 운동회날 달리기를 제일 잘하는 애와 한 조가 되었다고 출발선에서부터 울고 달렸다, 1등을 못한다고. 그리고 정말 2등을 하고 엉엉 울었다.
그렇게 욕심 많던 소녀가 이제는 아무 꿈도 없다니……. 괜히 슬퍼졌다.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던가, 내 젊은 날 내가 꿈꿨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곰곰이 생각하니 나는 글쓰기를 참 좋아했다. 작가까지야 꿈꾸겠는가마는 노년에 내 삶을 적은 수필집을 한 권 써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도 그 순간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도 좋겠지만, 친구들과 제주도 올레 길을 한 번 걸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인생에서 도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에 나 자신을 쏟고 싶어졌다.
그래서 신청한 것이 오는 2월 25일 한자 급수시험 4급이다.
신청서를 내려고 오랜만에 사진관에 들러 증명사진을 찍는데 가슴 한편에 바람이 분다. 한자 급수시험 4급에 합격하면 그날 저녁 외식이나 하러 갈까나...
글 / 김명란 인천광역시 부평구, 일러스트 /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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